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18화 (18/77)

〈 18화 〉 17화 - 결착(決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마에다(前田)는 착잡한 표정으로 좌우를 번갈아 응시했다.

기세좋게 공세를 이어갔지만 놈들을 너무도 얕봤고, 그 방심의 대가는 자신의 부하들의 목숨으로 치르고 있었다.

'이 병력이 무너지면 절대로 아니된다.'

대마도의 병력이라 하여 모두가 온전히 대마도주의 병력인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성심이 깊고 정예한 직속 군대가 있으며 그들이 영주의 권위와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에서는 바로 자신들이 그 직속군이었고 주력군이었는데, 지금 그 주력군이 하나둘씩 저 간악한 왜구들에게 쓰러지고 있었다. 다이묘이자 주군인 소 요시토시의 힘이, 그 권위의 원천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2,000명의 병력이 섬멸당한다면 벌어질 일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다른 병력이 있으니 당장이야 대마도주 겸 다이묘 자리는 보전하겠지. 하지만 힘이 빠져버린 주군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고, 온갖 세력의 집합소인 이 복마전 같은 대마도에서 그게 의미하는 건 결국 주군의 몰락이었다.

대마도주의 가신으로서 그걸 막고 싶었지만 전장에서 오래 굴러본 경험에 의해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끄는 군은 패배하고 자신의 목숨도 경각에 달해 있다고.

뒤에서 몰아치는, 지금까지 상대한 전방의 적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투력을 지닌 적의 진짜 주력군.

그들을 옆에서 보조하는 가증스러운 항구의 불량배 무리들. 적어도 놈들은 그다지 정예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시가전이라는 전장의 특성이 놈들에게 가져다 주는 '지리'라는 이점 때문에 그놈들과의 전투마저도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좌군(左軍)이, 좌군이 붕괴했습니다!"

"우군(友軍)도 패퇴하고 있습니다!"

신사부로라는 이름의 거물, 왜구의 총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괴가 이끄는 진짜 주력군에 의해 좌군이 패하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고작 불량배들의 무리와 싸우러 내보낸 우군마저도 패퇴하고 있을 줄이야.

전방이었다가 이제는 후방이 된 방향, 왜구의 '주력군'이라 믿었던 3,000명의 적군이 있던 곳은 단 500명의 후군(後軍)으로 방비하라 남겨 두었었다. 그들도 곧 패퇴하겠지.

좌군으로 보낸 700명과 우군으로 보낸 300명, 후군의 500명이 전장이라는 장기판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아있는 패는 500명의 중군(中軍)뿐. 아무리 패잔병들이 합류한다 해도 절대 1,000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에 반해 몰려올 적들의 규모는 최소 4,000명에 최대 5,500명. 이런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에서 적의 총병력 6,000명이 상당수 깎여 있기를 바라는 것은 바보겠지.

"허어..."

암담한 전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장군! 뒤, 뒤에..."

그 암담함에 한술 더 뜨게 만드는 부하의 보고에 마에다는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절망감에 부하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있고 한탄해야 했다.

"하늘이 우릴 버리시는구나."

뒤라고 하면 후군이 있는 방향인데, 아직 몇 시진(時辰)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이 벌써 패퇴하고 적군이 밀려올 줄이야.

이정도로 빨리 밀렸다면 압도적으로 적군이 이겼다는 것인데, 그러면 후방의 적군병력 3,000명의 병력소모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족히 2,500은 넘는 규모의 적들이 밀려올 것 같다는 생각에 곧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 패배가 목전에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군, 아군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부하의 말에 마에다는 눈을 부릅뜨며 후방을 바라보았다.

피칠갑을 하여 붉게 물든 갑옷을 입고 거대한 양손검을 든 사내를 위시로, 수백의 아군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고맙소. 보다 예를 취해야 마땅하건만 보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군."

"김주명이라고 합니다."

"조선인 이시로군."

배타적인 섬나라 문화의 특성상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내비칠 것 같았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혀 그부분은 개의치 않고 반겨주는 것 같았다.

"이름이 슈아키라(朱明 : しゅあきら)라, 붉은(しゅ) 빛(あきら)이라는 이름 그대로 귀공은 적의 피로 물든 붉은 갑옷을 입고 있고 또한 우리에게 빛이 되는구려. 이것이야말로 운명의 안배인 것인가."

누가 섬나라 종족 아니랄까봐 다급한 상황에서도 요상한 뜬구름을 잡는 마에다를 보며 주명은 화제를 돌렸다.

"전황이 어떻습니까?"

"최악이오. 남은 병력은 중군 500명뿐이고 패잔병들이 합류한다 해도 1,000이 되지 못할 것인데 반해 적들은 적어도 5배가 넘는 숫자이니."

주명의 눈에도 '피아식별' 스킬 덕분에 보게된, 전방에 지평선처럼 넘실거리는 붉은 물결이 보였다. 수천의 적의를 가진 인간들로 이뤄진 적의(敵意)의 파도.

불과 얼마전에 봤던 것과 비슷한 광경이라 기시감을 느꼈다.

'초희, 괜찮은 거니?'

그날 자신의 무책임한 항해 덕분에 대성통곡을 했던 그녀, 연이은 고난에 상처받은 마음에 생에 미련을 접고 자신을 떠나가 바로 이곳 대마도의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린 비운의 여인.

그 불쌍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생각이 미치자, 그 기구함에 일조를 했던 왜구들에 대한 적개심에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가장 시급한 건 좌군이 막고 있었던 적의 본군 방향, 신사부로라고 하는 적의 수괴가 달려오는 방향이오. 우군이 있던 쪽에도 적들이 있기는 하지만 놈들은 겨우 불량배의 무리라 전황에 큰 영향을 끼지지는 못하지. 비록 그런 것들에게도 패퇴한 군을 이끄는 자로서 할말은 없소만..."

"왼쪽에 적의 깃발이 있겠군요."

"깃발? 아! 왜구들의 총대장 깃발을 의미하는 거라면 맞소."

적의 깃발이, 수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자 주명은 '조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파괴불괴' 속성이 붙은 위대한 검 '조부'의 무적에 가까운 내구도가 아니었다면 찌그러져 버렸을 정도의 엄청난 힘으로.

"오른쪽을 맡아 주십시오. 제가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도 넘는 시간 동안 조선의 백성들을 유린하며 수천 수만의 초희들을 만들어낸 저 왜구의 무리.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제대로 단죄된 적이 없는 빌어먹을 새끼들.

이성계의 황산대첩은 침공군을 물리친 것인데 그것을 어찌 단죄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찌 그것을 단죄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아무도 제대로 피를 흘린 놈들이 없기에 '정벌'이란 말도 가당찮았다.

그러나 오늘, 왜구놈들이 미쳤는지 들고일어난 오늘의 전투에서 적의 총대장을 찢어발겨 버린다면, 왜구들을 모조리 찢어죽여 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단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대에 걸친 원한과 피값,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그 어마어마한 빛더미를 놈에게 일부나마 청산받을 시간이다. 왜구에 의한 일방적인 원한의 쌓임을, 그 빌어먹을 불함리한 폭력의 사슬을 끊고 이제 다른 식으로 결착(決着)을 지을 때가 왔다.

"흑.."

자신이 이 세상에 처음 출현한 그날,

절망과 비탄에 잠겨 생기없는 눈으로 유린당하던,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고통이 떠올라 주명은 입술을 꽉 깨물고  '좁를 들고 왼쪽으로 향했다.

신사부로라고 했던가.

'다 뒈졌어.'

저 왼쪽의 트루 왜구 새끼들은 다 경험치다. 깃발만 무너트리는 깔금한 전쟁은 이번 경우엔 안한다. 명언을 남기며 인류사의 큰 족적을 새긴 그 홀시 장군 말대로 다 쳐죽일 것이다.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쪽발이들을 죽이고, 죽이고, 더 많이 죽여라!)

-William Frederick Halsey-

"야! 같이가!"

근데 왜 나미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주명의 마음이 조금은 흐트러지는 것 같은 것일까. 자신의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었음에도 그래도 동료라고 걱정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뭉클해져서일까.

참나, 고작 몇일의 인연이 뭐라고.

수백년의 원한이 지닌 무게 앞에서 그저 아무 의미도 없는...

"어, 어 알았어."

***

항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공터. 그곳에서 한 노파와 젊은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파의 눈은 주명을 뒤쫒고 있었다. 그가 그려내는 거대한 행적을 보며 만족한 듯이 웃음을 짓던 노파는 고개를 돌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의 제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가, 그분께 돌아가고 싶니?"

젊은 여인, 초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스승님. 지금 돌아가면 짐만 될 뿐이에요."

그분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 뛰쳐나온 자신이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는 노파, '명월(明月)'이라 불리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기에 나중에라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긴, 아직은 네 신통력이 미숙해서 고작해야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밖에 할수 없으니 잘 생각했다. 적어도 영기(靈氣)를 유형화 시키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 사람의 무당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초희가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우러러보고 있는 이 노파는 마르지 않는 영기(靈氣)의 바다이자 영기 그 자체인 것 같은 대단한 존재였다. 그녀가 영기(靈氣)를 다루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신령스러운 존재가 이땅에 강림한 것이 아닌가 믿고싶을 정도.

미래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꿰뚫어 보고, 죽어가는 사람마저도 살리는 그 영험함을 대체 어찌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조선 팔도에 다시 나 외에는 다시없을 것 같았던 영매(靈媒)가 바로 아가 너다. 당장의 성취에 연연하지 말고 큰 흐름을 보거라."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정해 주며 길러주기까지 하는 저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초희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감사해요 스승님."

사별한 남편과 함께 있었을 때 외에는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의 행복이 여기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별은 해 드리는 게 도리일 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분간은 수련에 힘쓰거라."

"예, 스승님."

따스한 눈빛으로 그녀가 거둔 제자를 응시하던 현기어린 두 눈은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항구로 향했다.

상황은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결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곳에 피어난 일들의 향방이 결정될 순간, 바로 결착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다만 그걸 직접 보지 못하고 '예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거대한 운명의 저울추를 지닌 거인들은 자신마저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간접적으로 주변인을 통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진면목을 그것에 흔들리는 주변의 초목들의 움직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하듯.

주명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과연 남쪽에서 불어올 바람을, 역시나 거인이기에 보이지 않는 풍신수길(豊臣秀吉) 이란 태풍에 맞서 조선의 초목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누구보다도 조선에 살아가는 초목들, 특히 바람에 손쉬이 흔들리는 여리디 여린 들풀들마저도 사랑했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의 계시,

그 남자가 소천(召天)한 날은 첫번째 계시를 받았던 그날이었지.

"살고 죽는 이치를 깨달은지 오래니 편안할 뿐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환하게 웃음지으며 편안하다 말씀하셨던 그 남자.

시대를 뛰어넘은 위대한 사상가였고, 자신 마음속의 유일한 선비로 남은 사람이자, 도저히 그 학문의 깊이를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어 존경스럽던 그 남자.

그리고,

'편안하신가요, 그곳은? 부디 그러길 바랄게요. 부디...'

깊이 연모하였으나 마음속에, 기억속에 묻어두어야 했던 정인.

기다림의 밤 그 시간들을 베어 모았다가, 그가 온 밤에 그 시간들을 굽이굽이 펴서라도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었던 그 정인을 말이다.

***

"これが私の限界なのか...(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바쳐 수천의 칼을 끌어모았음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 자신의 한계가 맞는 것이지.

그저 나란 놈은 여기까지였던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초로의 사내 신사부로는 체념의 한숨을 내뱉었다. 짙은 아쉬움을 담아.

"끄아아악!"

마치 소용돌이처럼 전장에 구현된 것 같았다. 붉은 피를 사방에 뿌려대는 죽음의 소용돌이가.

저 붉은 갑옷의 사내가 몸을 회전하며 거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부하들이 마치 추풍낙엽처럼 썰려나가기 시작했다.

뭔가 신박하고 죽여주는 것을 상상만으로 남겨두다 현실에서 해봤는데 진짜 그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 어린 아이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뭣이 그리도 즐거운지 입꼬리를 올리며 즐거워하고 있는 저 괴물의 웃음은 마치 현세에 강림한 오니가 인간들을 짓밟고 내장을 씹으며 짓는 그런 흉흉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의 결말을 바란 것이 절대 아닌데,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 오니다! 이길 수 없어. 도, 도망쳐!"

자신이 이루었던 모든 것을 박살낼 비참하고 괴로운 끝이.

"아악! 내 팔!"

온몸이 찢겨질 것 같은 고통스러운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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