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3화 - 필연(必然)(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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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어 스산한 느낌마저 주었으며, 애초부터 집의 형상을 갖추지도 못해 그 초가집보다도 못한 막집들은 마치 땅에서 사는 벌레들이 기거하는 굴처럼 보였다.
그 황폐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깔끔하고 화려한 비닷옷을 입은 이들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이닥쳤고, 황폐한 곳에 어울리는 헐벗은 이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허!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에게 따뜻한 옷 한벌 지어주는 게 그리도 아까운 건가?! 고얀 자들 같으니라고."
"나, 나으리..소인이야 당연히 면포를 내야 하지만, 저 어린 것에게 어찌 군포가 부과된다는 말씀이십니까요."
억지로 말라붙은 목을 쥐어짜내 낸 듯한 목소리로 옷조차 제대로 입고있지 못한 중년인이 항변했다.
그의 옆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해 앙상하게 마른 어린 아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며 아비의 바지춤이 유일한 버팀목인양 애처롭게 붙잡고 있었다.
"어허! 어린 아이라고 어찌 군역의 의무가 없을까? 나라에서 외적을 막아주기 때문에 그 목숨을 부지하면서 어찌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지 않느냔 말이야!"
"하, 하지만 구, 국법에는..."
"닥쳐라!"
국법을 들먹이자 켕기는게 많았는지 멋들어진 갓을 쓴 염소 수염을 한 사내는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악을 써가며 역정을 내었다.
"국법을 집행하는 이몸 앞에서 감히 법을 논해? 호방(戶房)의 이름값이 우수운 건가? 앙?!"
"흑흑...나으리. 제발 한번만, 한번만 사정을 봐주십시오 제발."
말도 안되는 억지였지만 법의 집행자인 아전들은 백성들에게는 실질적인 국법 자체였으므로 아무리 사실과 다르더라도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리 없었다.
남은 건 그의 자비를 구하는 일 뿐인데 20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의 이름으로도 면포를 걷는 놈들이니 그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비된 이로서 이미 아사 직전인 아들을 끝끝내 굶겨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대로 군포를 낼 수는 없으니 압류라는 명목으로 집안의 남은 식량마저 가져갈 것이 분명했다.
아비의 절절함을 담아 무릎으로 기어 아전의 바짓가랑을 잡아 어떻게든 자비를 구걸하려 했다.
"이런 썅! 그 더러운 손으로 어디 감히 이몸에 손을 대는 겐가?! 감히 관원의 몸에 손을 대? 정녕 죽고 싶은 건가!"
사실 명나라에서 수입한 고급 비단에 때가 타는 게 화가 났던 것이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 공무집행을 하는 관원의 몸에 손을 댔다는 터무니 없는 말을 내뱉는다.
짝
"아, 아부지! 으아아앙!"
먹지 못해 허약한 몸은 투실한 살집이 가득한 아전의 손아귀에서 나오는 힘을 버티지 못했다.
아전이 때린 뺨따귀에 한 집안의 가장이, 아버지가 무너져 내렸다.
"쯧 약해 빠져가지고는. 자네 동생이 근래 도망갔다고 하지? 그 죄를 갚아야 할 것이며 또 신성한 국방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가지고 어디 동생의 몫까지 부담할 수 있겠는가?"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함, 입 안에서 느껴지는 피맛, 그리고 땅바닥에서 느껴지는 흙맛 보다도 그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절망이었다.
족징(族徵)
가족마저 연좌로 파멸시킨다는 그 수탈의 굴레.
그 지옥같은 단어의 마수에 이젠 자신이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미 자신과 아들은 굶어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면 체납으로 끌려가 매맞고 죽겠지.
저 동래로 도망갔다는 동생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는 그 지옥에 도망가야 할 정도로 여기는 그 이상의 지옥이니 형이 된 자로서 어찌 동생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떠나는 길을 막는단 말인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는데 이놈의 나라의 정치는 왜구보다는 확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사실 죽음을 직감하긴 했지만, 아내가 약 한번 못 써보고 죽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을 때 그는 이미 삶의 미련을 놓아 버렸다.
지금 굳이 살아 있는 건 불쌍한 아들놈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아비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 뿐.
그저 단 한번뿐이라도 배불리 먹고 저승으로 가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꿈이 있었으니까.
"오오, 여기 꽤나 많은 걸 쟁여놨군. 마른 잡초도 뿌리를 캐면 투실한 법이라는데 이 놈의 집구석도 정말이야 하하하."
놈들이 아들을 위해 뼈빠지게 이래 준비한 그 한줌의 식량마저 가져간다.
이 빌어먹을 나라는 한끼를 배불리 먹고 죽고싶다는 그 꿈마저 가져가는가?
이 지옥같은 나라. 확 망해버려라.
어디 왜적이라도 안 쳐들어오나? 왜적이 쳐들어 온다면 반드시 향도(길잡이)가 되어서라도 저 빌어먹을 아전이 있는 관아가 불타는 꼴을 보고야 말 것이다!
눈물과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울고있은 아들을 달래는 사내와, 그 사내의 집구석을 훑으며 하나라도 털어갈 게 없나 뒤집고 있는 무리들의 사이로 중후한 목소리 하나가 흘러들어왔다.
"개같은 새끼들의, 개같은 짓거리에 의한, 참으로 개같은 광경이로구나."
뭔가 심상치 않은 있어보이는 목소리에, 또 그 목소리로 내뱉은 단어의 모욕성에 호방을 비롯한 무리들은 뛰쳐나와 목소리의 주인을 에워쌌다.
"그 무슨 막말이오! 보아하니 양반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국법을 집행하는 관원을 능멸할 수는 없는..."
"야이 개새끼야."
"이, 이자가 정녕!"
목소리의 주인, 이이첨의 계속되는 욕에 화가 났는지 호방은 어떻게든 놈을 손봐주려고 마음먹고 주변의 군졸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다.
"내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말직이지만 국법에 대해서는 네놈같은 개새끼보다는 잘 알고 있지. 적어도 나는 사람이거든."
"이이! 여봐라! 저놈을 치거라!"
"국법에!"
도저히 참지못해 이이첨을 구타하라 명령하려는 호방의 말에 군졸들이 몽둥이를 들고 실행에 나서려는 찰나,그가 너무나도 큰 소리로 외치자 순간 멈짓할 수밖에 없었다.
"백골징포(白骨徵布, 죽은 이에게 과세)를 하라고, 황구첨정(黃口簽丁, 어린 아이에게 과세)을 하라고, 족징(族徵)을 하라고 어디 되어있는가?! 네놈이 말하는 국법은 개새끼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개 잡놈의 법인가?"
"그, 그건 법에 융통성이.."
가장 켕기던 부분을 말하려는 듯하자 호방은 어떻게든 항변하려 말을 꺼냈지만 삿대질을 하며 씹어먹을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이이첨의 기세에 눌려 말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관원을 능멸하는 게 죄라면, 국법을! 주상전하를 능멸하는 것은 죄가 아니더냐!"
이이첨은 부둥켜 안고 울고있는 부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관원의 몸에 손을 댄 게 죄라면, 주상전하의 백성을 저리 모질게 대하는 것은 죄가 아니더냐!"
"시발 그만!"
더 듣기가 힘들었던지, 아니면 이미 좋게 해결하긴 글렀다는 생각이 섰는지 호방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서 관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오나 관복을 보아하니 정말로 말직으로 보이외다. 허허, 그런데 말이오 양반 나으리. 그거 아시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호방은 이이첨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이이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을러댔다.
"사또께서, 또 향청의 무수한 양반 어르신들께서 이 일을 좋게 보지 않으실 텐데. 나으리께서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소? 종9품의 참봉 나으리."
종9품의 낮은 품계를 굳이 본인의 면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숫제 조롱하려는 의도였다.
방군수포의 폐단이 나타나게 된 근본 원인은 바로 저 수탈의 카르텔 때문이었다. 민(유림)-관(사또)합작으로 기획이 되어 아전(공무원)을 통해 집행되는 저 공고한 커넥션은 수탈물의 분배를 통해 끈끈하게 다져지고 공고해져 왔다.
아전의 협박이 타당한 것이 일개 참봉이 어찌 종5품의 고위직인 현령(縣令)에 대항한단 말인가. 사실상 그의 묵인하에 이뤄졌고, 그가 뒷배가 될 것이 분명한데.
게다가 지방의 여론을 장악한 유림에서 자신을 국법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한 무도한 관료로 몰아 버리면 그들의 펜, 아니 붓 끝에 자신은 난도질당해 넝마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젊은 열혈 관원이자 나중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을 정도로 충심이 깊은 인물이지만 이이첨은 본래 역사에서 희대의 권신이자 간신으로 이름이 남았던 걸물이었다.
믿는 구석 없이 왔을 리가 없다는 것.
"개새끼야. 다 짖었느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 모양인데 선비가 길을 가다가 호환을 만나 객사하는 것이 조선 팔도에 흔치 않은 건 아니외다."
이제는 숫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호방의 살기어린 눈빛에도 그저 코웃음을 치며 조소하는 이이첨이었다.
원래는 지나가는 선비가 활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얘기가 많았는데, 지나가는 선비를 호랑이가 때려잡는다니. 아직 박지원의 호질이란 소설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니가 지금까지 지껄였던 말. 우의정 대감께 이 종9품 참봉 따위께서 아주, 아주우 잘 전해줄 거니 걱정 말라고. '공무'에 '민생'을 살피기 바쁜 관원이라 모르는가 본데 대감께서 친히 이곳으로 오고 계시거든?"
우의정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기세등등했던 아전의 얼굴이 굳는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이번에 거제도에 새로 설치된 그 곳말야."
모를 리가 없었다.
전 조선의 화제가 되어버린 왜인의 귀화와 그가 이끄는 병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관청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아전의 좁쌀만한 눈이 부릅떠졌고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의정께서는 그 새로운 관청을 점검하고 귀화한 왜인을 위무하기 위해 오시는 거라 반드시 내 보고를 받기로 되어 있지. 왜냐하면 관원이 나 하나뿐이거든. 근데 네놈도 알다시피 윗분들이 지방을 순시할 때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떤 상황에 대한 보고도 받는다는 거 알지?"
중앙의 관료가 지방을 공식적으로 순시할 경우 겸사겸사 그 지방의 현황에 대한 보고도 받도록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을 그 보고때문에 머리가 아픈 적이 많은 아전이 모를리가 없었다.
아전의 동공이 더욱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데 거기에 네놈이 지금까지 당당히 지껄였던, 저절렀던 말과 만행을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뭐 저 높이 계신 현령나리과 유림 어르신들께서 겨우 한양에 계신 우의정 대감 정도는 우스우려나?"
"허...헉."
우의정이라는 조정의 대신중 하나이자 동인이라는 조선 붕당의 영수인 이산해의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자 너무도 버거웠는지 호방의 아래턱이 저 밑으로 가슴에 닿을 듯이 가라앉아 다물어 질 줄을 몰랐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이첨은 권력밀착형 간신이자 호가호위의 대명사였다. 왕도 구워삶은 간신 끝판왕이 쪼렙 탐관오리조차 못되는 그 탐관오리의 떨거지 아전나부랭이도 못 때려잡을리가.
호가호위를 할 거면 상대의 패를, 또 상대를 잘 확인했어야 했다.
이제는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하여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무슨 나라라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매달리는 아전놈을 발로 걷어 차 매몰차게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이이첨은 부둥켜 안고 있는 가여운 부자(父子)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시원하게 반전을 주며 해결한 것 같지만 그건 자신의 기분 뿐이었을 뿐.
굶주리게 만드는 원흉인 저 부자의 빈곤, 그 빈곤한 자들의 피마저도 거침없이 빨아대는 거대한 수탈의 장본인인 관아.
그 두가지에 대한 해결이 없다면 부자의 불행은 앞으로도 진행형일 것이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당도하지 못한, 결국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담아 이이첨은 침중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미안하구나. 너무 늦어서."
해결책을 쥔 이로서 저 부자에게 늦게 당도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자, 이나라 조선이 저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는 그 썩음의 만연함이 골수에 스며들었을 정도라 늦은 것 같다는 자조적인 전망에 관료로서 백성에게 말하는 미안함이었다.
그의 말에 아비에게 매달리듯 안겨 있던 아이가 다가왔다. 비쩍 말라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는 아이였다.
"나으리, 호, 혹시 제 엄니 보셨나요?"
아이에겐 너무나도 높아 보이는 존재, 양반이자 관료에게 말을 하는 것이기에 약간은 떨면서도 아이는 눈만은 피하지 않고 이이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엄니는 나으리 같은 관리분과 함께 멀리 가셨다고 했어요. 해서 혹시 나으리는 아시나요?"
무슨 상황인가 싶어 아비를 쳐다보니 금세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상황이 짐작이 되었다.
죽었다는 말을, 저승사자가 데려갔다는 말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고 가녀린 저 아이. 그렇게 거짓을 말한 것이구나.
차마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이첨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물기가 일렁였다.
'저 아이의 말이 맞아. 이 조선의 관리는 백성에게, 보듬어야 할 백성들에게 저승사자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아무리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나락에 떨어져 있는줄은 차마 몰랐다.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조선이 이곳을 노략질하는 외적들에 비해 나을 것이 과연 있는가란 물음에 도저히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어미가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에 차마 대답할 수 없는 어른이 자신이지만, 적어도 어미가 왜 그리로 가야 했는지의 원인은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으리.."
하지만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문득 도깨비가 생각이 났다.
아낌없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재물을 풀고, 왜구들이 쳐들어 오면 어김없이 방망이를 휘둘러서 쫒아내던 존재.
작업중 큰 부상을 입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조선 병졸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런! 기다려 봐요. 명령어 안쓰고 있기를 잘했네."
그 병졸을 순식간에 치료해 주는 기적을 목도하며 그 도깨비를 가리키는 표현에 한 줄을 더 넣을 수 있었다.
병마마저 치료하는 존재라고.
그 주명이라는 사내라면 이 조선이란 나라의 깊은 병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도깨비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왠지 아이에게 해줄만한 말이 떠올랐다.
아이의 어깨를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잡으며 이이첨은 말했다.
"도깨비 나라에 갔단다. 그 나라의 관리가 데려갔지."
"나으리. 거기가 어디에요? 도깨비가 어디 살아요?'
아이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돌려 저 거제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주 멀리 있지만, 아주 살기좋은 곳이란다."
"헤헤, 엄마는 좋은 곳에 계시는 군요. 다행이에요."
스스로 간신의 기질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오늘따라 너무도 잘 굴러가는 혀가 스스로 너무도 고마운 이이첨이었다.
어미가 좋은 곳에 있다는 말을 듣자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니 거짓이겠지만, 괴력난신이겠지만 말한 보람이 있었다.
공자께서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없다고 하진 않으셨지 않던가? 어린 아이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까짓 괴력난신을 말하는 것쯤이야, 유학자의 본분을 어기는 것쯤이야 그게 대순가.
그게 싫다면? 저 호방같은 개새끼들과 한통속이 되어 성현의 이름으로 수탈을 하거나, 저 사림의 병신들처럼 성현의 이름을 앵무새처럼 짖어대며 나라를 요순시대, 아니 석기시대로 되돌리려 하겠지.
"나으리. 혹시 그 도깨비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엄마가 잘 있나 여쭤보려구요."
도깨비를 만나고 싶다는 아이의 물음에 이이첨은 물끄러미 거제도 방향을 보며 생각하더니 밝게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원래는 저 멀리 살지만 도깨비 중 하나가 가끔 이 땅에 찾아오기도 한단다. 그 도깨비가 사는 곳을 아는데 따라오겠느냐?"
유리걸식하며 유랑하는 이들이 이이첨 자신에게는 익숙한 그 '훈련소' 목책 앞에서 나눠주는 식량을 먹고 배부름에 흥에 겨워 춤을 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먹을 것이 있는 곳에 역시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거기서 모든 인연이 생겨난다.
그것이 필연이다.
설령 나라가 무너지더라도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인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
'player_gain_rice'
[자원(쌀)을 5,000kg 획득합니다.(CP 1 소모)]
30명의 사람들이 1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고작 1포인트다.
돈 치트보다 효율도 좋은게 1,000만원 상당의 화폐를 그걸로 얻으면 전부 쌀로 산다고 해도 대략 4톤에 못 미치는 수준을 얻을 수밖에 없고 운송비와 기타 손실을 생각하면 더 떨어진다.
이 훌륭한 쌀 생성 치트 덕분에 군량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고, 그런 여유 덕분에 사람들에게 쌀을 퍼줄 수 있는 것이다.
'밀튼 프리드먼을 대놓고 엿먹이는 치트네.'
경제학을 잠시 배웠던 주명이기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기억하고 할 수 있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그렇게 못 먹고 살 줄이야.'
군량이 풍족한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사하여 시체가 된 아기를 정성스럽게 안고와서 자신에게 제발 아이에게 밥을 달라 말하는 피골이 상접해 시체처럼 보이는 여인의 눈물섞인 호소를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군량이 풍족하지 않았어도 전직 왜구인 2기 해병대원들을 굶기는 한이 있더라도 저 불쌍한 백성들에게 베풀었을 거다.
곧 설날이 다가오니, 또 쌀도 계속 먹으면 물리니 떠이라도 돌릴까 하는 생각을 하는 주명이었다.
떡 자체를 생성할까 하다가 그럼 떡을 만드는 조선인들을 고용할 수 없고, 만들어 먹는 손맛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반복적으로 밀턴 프리드먼을 엿먹였다.
'player_gain_rice'
'player_gain_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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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떡이 엄청 많앙! 고마워요 도깨비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