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50화 (50/77)

〈 50화 〉 49화 - 전쟁과 사냥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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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왜 요즘 저 왜국의 소저(小姐, 아가씨를 지칭하는 말) 얼굴빛이 좋아 보이는 겐가?"

"하하하...요새 피부관리라도 받는 게 아닐까요?"

전보다 피부도 좋아지고 전반적으로 인상 자체가 훨씬 부드러워진 나미에의 모습에 의심의 눈초리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정여수는 주명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좋을 때지."

"네?"

"아무것도 아닐세. 크흠, 그러니까 소저의 갑옷을 새로 구했고 그걸 손봐달라?"

"예. 지금 입고있는 갑옷도 어르신의 손을 거친 거라 훌륭하지만 제가 보여드릴 갑옷은 종전의 갑옷과는 많이 다릅니다."

당연히 다르다.

차원이 다르니까.

옷 중의 갑(甲)이라는 갑옷중에서도 갑(甲).

갑옷중의 갑옷이자 끝판왕, 천하제일갑이라고 불리는 미친 성능의 물건이 바로 판금갑(플레이트 아머)이다.

어느정도냐면 갑옷의 뛰어남 덕분에 서양의 무기체계를 둔기 위주로 뜯어 고치고 하프소딩이라는 검법체계도 만들었다.

거기다 기사계급의 존재감을 전장에서 각인시켜 봉건제를 확고히 했으니 사회와 정치체계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믿겠는가.

날붙이로 베거나 찌르는 방식의 무기로는 판금갑을 착용한 자에게 거의 타격을 줄 수가 없다.

창검이 안 박히는데 조그만 화살촉 쪼가리가 박힐 리 없으니 화살도 무용지물.

갑옷의 이음매나 미처 가려지지 않은 조그만 틈을 노려 단검으로 쑤시거나, 하프 소딩(Half-swording)으로 검을 단검처럼 잡아 찌르거나, 묵직한 둔기로 질량타격을 하는  것 외에는 타격을 줄 방법이 없는 미친 물건인 것.

뭐 총 앞에서는 한방으로 평등하다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플레이트 메일이 역사에 획을 그었던 엄청난 갑옷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머스켓과 아르케부스 같은 개인총기가 보편화된 유럽에서 지금도 현역으로 뛸 수 있을 리가 없지.

총기를 버텨낼 정도의 갑옷이란 인증으로 총알이 뚫지 못하고 만들어진 홈을 ‘불렛 프루프(Bullet proof)’라 부르는 문화가 지금 유럽에 실제 있으니 말이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그 플레이트 아머란 물건을 어떻게 구했냐고?

장장 몇일에 걸친 노가다의 산물이었다.

오로지 나미에만을 생각하며 CP아까운 줄 모르고 반복한 노가다.

오브젝트 ID는 같은 계열끼리는 그 번호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시작한 노가다.

방법을 말해주자면,

먼저 그녀가 지금 입고있는 갑옷의 ID를 스캔 명령어로 확인한다.

[당세구족(当世具足)의 아이디 : AA0125]

그녀가 입고있는 갑옷은 일본어로 '토오세이구소쿠'라 불리는 당세구족으로 지금 시대의 사무라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갑옷.

아이템이었다면 마치 ‘조부’처럼 저마다 각각의 ID가 있었겠으나 일반 오브젝트는 그 물건의 종류별로 ID가 부여된다.

그러니 'AA0125'라고 되어있는 건 당세구족이란 갑옷 종류의 ID인것.

그리고 여러 갑옷 종류들을 구분하는 것은 주명이 직감하기에 아마도 숫자로 이뤄진 마지막 세자리알 것이다.

그러므로 당세구족의 ID 뒷번호 125라는 숫자의 위아래 수치를 계속해서 입력해 가며 판금갑이 나올 때까지 돌린 것.

'Player_gain_AA0124'

[오오료오이(大鎧)을 획득하였습니다.]

'Player_gain_AA0126'

[모가미도오(最上胴)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렇게 수십번을 돌린 결과 운 좋게 판금갑옷이 걸린 것이다.

'Player_gain_AA0148'

[플레이트 아머(Plate armor)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녀가 다치지 않기를 원하는, 그녀의 몸에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에서 나온 극한의 노가다였다.

그간의 전투로 여인의 몸에 너무 많은 상처를 두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주명이 그렇게 갑옷을 얻는 데 매달렸던 것.

...당연히 전투로 큰 상처를 입었던 일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이다.

주명이 그녀의 몸을 봤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게 바로 제가 말한 그 갑옷입니다."

"오오 이것은!"

탁월한 무구장인이자 대장장이답게 정씨 어르신은 판금갑을 보자마자 저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바로 파악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갑옷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바쁜 어르신을 보며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 주명은 손을 뻗어 나미에의 손을 잡았다.

"...뭐, 뭐야?! 왜그래."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는 밖에서 손을 잡으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퉁명스러운 나미에의 말투였지만 주명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에선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비록 간간히 이질적인 단단한 느낌이 느껴짐에도 그 굳은살마저도 좋았다.

***

여진족은 말갈족의 후예로 크게 세 족속으로 구분되었다.

요동의 건주여진과 그 바로 동쪽의 해서여진.

마지막으로 동해 인근의 연해주에 기거하는 야인여진.

이 중에서 가장 강한 부류가 누군가 하면 이견이 갈리겠지만 가장 유서깊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모든 여진족이 해서여진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금 태조 아골타의 후예들인 해서여진을 이루는 4개 대부족 중 하나인 호이파(輝發) 부족의 거주지 가운데에 위치한 가장 거대한 게르에 한 장년인이 초조해 하고 있었다.

“지금쯤 올 때가 되었는데...”

장년인이 기다리는 건 타 부족의 전갈을 들고올 전령이었다.

호이파의 족장 바인다리는 일주일 전부터 주변의 부족들에게 전령을 보내 참전을 요구했다.

마음같아서는 해서여진과 야인여진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끌어모으고 싶었지만 그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오로지 해서여진에게만 전령을 보냈다.

왜냐하면 이미 두만강 하류의 야인여진들이 미친 조선놈에 의해 다 박살나 버려 야인여진은 없다고 봐야 했으니.

이미 그놈에게 우지에라는 야인 여진에서도 가장 큰 부족 중 하나가 사라졌다.

고작 그놈 단 한명과 그에 딸린 일천의 땅개들에게 말이다.

기마병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일반적인 여진족이라면 같은 여진기병이 그렇게 당했다는 데에 수치스러움을 느꼈을 만도 하지만 바인다리는 아니었다.

“그 사람같지도 않은 괴물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후우...”

몇달 전 녹둔도를 습격하러 갔다가 호되게 당하고 온지라 우지에 부족의 졸전이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원을 그리며 휘두른 검격 한번에 기병 여럿이 위아래로 두동강난 그 충격적인 광경이 떠올라 밤마다 악몽을 꾼다.

악몽같이 강한 무위를 지닌 놈이었다.

거기다 명국에서도 쉽사리 쓰지 못하는 귀한 화약을 산더미처럼 묻어 놓고 유인해 우지에 부족의 군대를 말 그대로 폭사 시켰다지?

화약이 대저 어떤 물건이던가.

나름 문명의 물을 먹고왔던 덕에 그 귀한 소금보다도 족히 백배는 귀한 화약의 가치를 잘 아는 바인다리였기 때문에 놈의 재력이 짐작되자 두려웠다.

“절대 홀로 맞서서는 아니된다.”

두려움에 사무쳐 내린 결론은 그 하늘에 닿은 무위와 산처럼 거대한 재력에 도저히 호이파 홀로 맞설 수 없다는 것.

홀로 8,000명의 병력을 충분히 낼 수 있는 대부족이 호이파 부족임에도 바인다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확신했다.

“놈은 정말로 만인지적이다. 관운장과 장익덕 이상으로 강한, 진짜 만명도 도륙할 놈이야! 적어도 만육천 이상은 모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서여진 이곳저곳에 전령을 보낸 것.

“하지만 해서의 주요 4부족 중에서는 결국 울라(烏拉, 오랍)만이 응할 것이다. 하다(哈達, 합달)는 건주여진을 견제하느라 여유가 없고, 여허(葉赫, 예허)는 몽골 놈들과 접하고 있으니 마찬가지의 이유로.”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에 대항하기 위해 여허를 중심으로 9부 연합군 결성에 대해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따로 살아온 세월이 세월인지라 지지부진한 상황이었고 그걸 바인다리는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데 주명이라는 괴물의 등장에 일단 호이파와 울라 두 부족의 연합군이 먼저 결성되는 것이니, 9부 연합을 결성학 위한 초석으로 볼 수 있으니 그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 여겼다.

"2개 부족의 힘을 모으면 최소한 1만 6천의 기병을 끌어낼 수 있으며, 군소 부족들까지 함세시킨다면 족히 2만의 대병력이 모인다!"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해 끌어모을 수 있는 병력의 규모를 생각하자 다시 자신감이 올라왔는지 얼굴빛을 회복한 바인다리.

사실 그도 그 미친 괴력의 조선인(주명)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서 단 열 몇번의 검격으로 일백기의 기병을 도륙하는 게 어디 사람새낀가?

굳이 자신을 건들지 않았으면 나름 동족이라 볼 수 있는 야인여진들이 그 조선인에게 박살나더라도 강건너 불구경으로 쳐다볼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조선인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

그래도 부족의 안녕을 위해 애써 무시하고 피해가 생겨도 참았다.

변경의 정찰병력을 놈이 때려잡으며 피해를 입히더라도, 겁쟁이라고 부족민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그거 못본체하고 부디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건만...

그런 굴욕적인 인내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그 조선인과 놈의 병력은 점점 더 호이파 부족이 자리잡은 송화강 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몇 주 전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놈이 최근 호이파 부족의 정찰기병대를 전멸시킨 게 바로 호이파의 본거지로부터 불과 250리(10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 타고난 기병인 여진족의 거리 개념으로는 거의 턱밑까지 다가온 셈.

보이는 족족 여진 기병을 사살하고 근방의 동물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그 악독한 놈이 다가오는 것을 지금처럼 그저 보고만 있는다면 호이파 부족도 우지에 부족과 같은 멸족의 운명을 맞이하리라 보고 바인다리는 대책을 강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대책은 충분한 듯 보였다.

만인지적이라고? 그럼 이만명으로 상대해 주면 되지!

"네놈이 아무리 괴물이라도 홀로 2만의 여진기병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는 위대한 아골타의 후예들이란 말이다!"

자신들은 금나라를 세웠던 위대한 아골타의 정통 후예들이라고 믿는 해서여진.

그들은 스스로 다른 근본없는 건주여진과 짐승같은 야인여진과는 다르다고 자부심을 가져왔고 해서여진의 일원인 바인다리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골타께서 보고 계실 것이니 패배도, 후퇴도 없다. 약해빠진 조선놈들 따윈 여진 기병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것이 숙명이리라!"

선조의 명예를 더럽힐 수 없다며 약해빠진 조선인 따위에게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결연한 바인다리의 모습에선 몇달 전 주명에게 호되게 당해 기병 몇백을 순식간에 잃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울라(烏拉, 오랍)에서 참전한다고 답신을 보냈습니다! 8,000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겨는 바인다리의 자신감과 용맹의 원천 중 하나였던 여진족 '대군세'를 이룰 가장 중요한 조건이 갖춰지자 그는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모든 전사에게 소집령을 내려라. 전쟁이다!"

1천의 주명군이 홀로 외롭게 2만의 여진군을 상대하게 될 무척이나 일방적으로 보이는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오늘도 여진기병들을 착실히 때려잡고 전장을 정리하던 주명과 일행.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던 나미에를 쳐다보는 주명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역시 판금갑옷이 짱이지’

근접전을 벌이다 보니 다른 전투때는 아무리 못해도 생채기 한둘은 입었던 나미에였지만 판금갑옷을 착용하고부터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

오히려 이 판금갑옷의 미친 성능을 깨달은 그녀에 의해 낚시용으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일부러 보여준 틈에 좋다고 칼을 내질렀지만 칼 따위가 판금갑을 어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릴없이 튕겨져 나오는 제 검을 보며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여진족의 목을 손쉽게 뎅겅!

이런 낚시였다.

그녀의 미적 취향을 반영해서 정씨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마치 일본 사무라이 갑옷처럼 외관을 꾸미긴 했지만 어쨌든 저걸 맞춰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명의 눈길이 대낮임에도 은은한 빛을 내뿜는 신비한 일본도로 옮겨졌다.

해병대원들에게 듣기로는 마치 이 세상 물건이 아닌 신성한 신검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저 검.

분명 저건 아이템이었고 그렇다면 확인할 게 있었다.

잠시 저 멀리 일렁이는 수천의 붉은 물결을 노려보며 주명은 나미에에게 말을 건넸다.

“나미에, 이 검의 이름이 월아라고 했지?”

“응, 달빛을 보고 예적의 기억이 나서 지은 이름이야.”

달빛을 갈망하던 그녀 자신의 어렷을 적 모습을 떠올리며, 또 주명을 만나 이제는 대신할 무언가를 찾았다는 성취감에 지은 이름이라는 거는 말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검이네. 검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느낌은 처음 들어.”

“그렇지? ‘달의 아이’라는 이름처럼 마치 밤하늘의 달빛을 떼어내어 검으로 빚은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니까.”

검은 무사의 분신이자 또다른 자아.

주명은 이해하지 못할 자화자찬을 하는 나미에였지만 지금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오브젝트가 아이템이 되다니...그때 거제도에서 봤던 알림이 진짜였어.”

[이름 : 월아]

[레벨 : 1(0/0.5)]

[효과 : +5% 피해저항, +5% 회복력]

[따뜻한 달빛은 결국 소녀에게 닿았습니다.]

그때는 대체 뭔 개소리가 알림 메시지로 떴나 했는데 이제보니 그 새로 추가된 희귀등급 아이템이란 게 진짜 존재했다.

마지막 확인을 위해 월아라는 이름을 붙인 날짜를 물었고 그건 그 메시지가 뜬 날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렇다는 건,

“오브젝트를 강화하고 이름을 붙이면 아이템이 된다!”

다만 이름을 붙인다는 부분은 아직까지는 그 진정한 작동원리가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아이템을 생성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았다는 게 중요했다.

아이템은 알다시피 경험치 꼼수로 미친듯이 강화시키는 게 가능한 상황!

만약 아이템을 생성할 수 있다면?

“니들은 좆됐어.”

탁트인 저 멀리 일렁이고 있는,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붉은 물결을 보며 주명은 차갑게 조소했다.

호이파 부족이라고 했던가? 하긴 이만큼 당했으면 모여서 다구리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되긴 했지.

수천이든 수만이든 모아봐라.

전쟁은 숫자다라고 생각했겠지.

근데 미안하지만 RTS(전략시뮬레이션)를 플레이할 생각은 없다.

니들은 압도적 병력을 들고 전장에 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론 다수의 몹들이 모여 사냥터에 기어들어온 꼴이 될 지니.

이 세상의 장르를 RPG, 그 중에서도 핵&슬레쉬로 만드는 열쇠는 바로 템빨에 있나니.

‘조부’를 손에 쥐고 주명은 스스로 확신했다.

전쟁은 템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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