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0화 - 전쟁과 사냥(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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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에서 각각 치러졌던 1525년의 파비아 전투와 1592년의 탄금대 전투.
전쟁 결과에 따른 정치적 영향을 떠나서 이 두 전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총포가 전쟁에서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까지 전장의 주인공은 단연 기병이었고 전쟁은 기병싸움이었다.
하지만 두 전투에서 주인공이었어야 할 프랑스의 중장기병과 신립의 조선 궁기병은 총병의 화력에 무참히 무너지고 기병 중심이었던 전쟁은 일대 전환을 맞는다.
"하지만 순수하게 총병의 화력으로만 이기려면 적어도 천 단위의 총병이 필요할텐데 이제와서 그럴 순 없으니..쩝."
아무리 템빨이 중요하다지만 전쟁에서 숫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20배의 차이를 뒤집을 전술적 해법을 모색하려 파비아 전투와 탄금대 전투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결정적 변수인 총병의 숫자 부족이라는 데서 막혀 '구현 어려움'이라는 결론만 낳게 된다.
하긴 대규모 병력이 맞붙는 회전(會戰)이었던 두 전투는 소규모 병력으로 대규모 병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참고할만한 게 아니었다.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질럿 820기, 드라군 200기가 있는 상황에서 대략 2만기 가량의 벌쳐를 상대하는 상황.
아무리 한 공방업을 50업 정도 하고 스플레쉬 데미지까지 장착한 영웅 울트라(주명)가 있다고 하더라도 20배의 차이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졌다면 질럿들에게 방업(플레이트 아머)을 미친듯이 해주고, 드라군들은 공업(수발총)을 미친듯이 해줘서 한 20업 정도 한다면 비벼볼 수도 있겠지만 저놈들이 기다려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주명의 예상보다 적들이 너무 빨리 모였다는게 문제였다.
"2만명이 전부 다 궁기병이네. 저놈들이 다 모인지 3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가만히 군량만 까먹고 있을 리는 없으니 곧 쳐들어오겠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시간이 되는 대로 송화강 쪽으로 정찰을 나와 놈들이 집결하는 호이파 부족의 주둔지쪽을 정찰해 왔던 주명은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만의 여진족이 쳐들어왔던 니탕개의 난에 필적하는 대규모 전투가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 놈들은 2만의 궁기병이 마치 벌떼처럼 치고 빠지는 스웜전술을 이 근방에 흔한 평지에서 활용할 텐데,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주명의 무력만 믿고 싸운다면 초래될 결과가 상상되지 미간이 찌푸려졌다.
놈들이 이렇게 다구리를 치려고 모인 것을 보니 자신의 무력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분명 알고 있다.
그래서 기병의 기동력을 활용해 최대한 견제만 날리며 묶어두려 할 것이다.
그동안 압도적인 병력의 우위로 사방에서 동시에 들이치면 조총병의 공격력과 해병대의 방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해낼 수 없다.
자신을 묶어두는 적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활로 견제만 날릴 것이기에 말에 필적하는 속도를 지닌 주명이 그래도 한 500명 ~ 600명의 적을 죽이며 분전했을 때는 이미...
"전멸했겠지."
이제는 아이템으로 진화하여 미친듯한 방어력을 자랑하게된 그녀의 판금갑옷 '월혼(月魂)'일지라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 앞에서는 결국 무력화되고, 그녀는 주명이 그토록 다시보기 싫었던 나가사키에서의 그 상처입은 모습 이상으로 무너질 것이다.
"씨발."
혹시 거기서 목숨을 잃지 못하게 되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상상이 되니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여진족들을 들쑤시고 다녔을 때부터 이미 이런 전투는 이미 각오한바 있었다.
놈들을 척살하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놈들이 그에 대응하여 몰려와 자신을 처치하려 온다는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명은 항상 미리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지에 부족이란 놈들과 싸울 때도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화약을 이용해 큰 성과를 거두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콘솔 명령어와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대비할 것이다.
"화력과 무기가 우수한 소규모 병력이 기동력이 우수한 다수의 병력을 이기는 방법이 없을까?"
포탄의 불바다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 유닛이 몹시 마려운 주명이었다.
저 궁기병 벌쳐놈들에게는 시즈탱크인데.
***
"이건 예상을 넘어서는 숫자로군."
조산보 만호 김갑수가, 아니 주명이 올린 장계를 보는 이일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2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경험으로도 쉽게 가려지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이일 자신도 휘발(輝發, 호이파) 부족의 전체적인 전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주명의 '공세적 청야전술'에 호이파 놈들이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을테니 필연적으로 이어질 보복공세가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낙관했다.
놈들이 숫자를 모아봐야 고작 5, 6천 정도 모으겠거니 하고 예상했으니까.
그런데 무려 2만의 대군세라니, 이건 니탕개의 난의 재림이 아닌가.
이일은 그때의 참혹한 피해가 떠올랐는지 침음성을 삼켰다.
결국은 방어에 성공했으니 전략적으로는 승리라고 할 수 있다지만 수천의 목숨이 희생되었는데도 결국 니탕개란 놈은 죽이지 못했고 여진놈들이 흘린 피는 한줌도 안 되니 그걸 어찌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초조함에 장계를 내던지고 부하들을 소집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계의 다음 부분을 마저 빠르게 훑었다.
대책없이 행동할 녀석이 아니니 뭔가 기발한 수를 내었을 수도 있겠거니 했는데,
"이, 이런 미친!"
도리어 미친 짓을 하겠다는 예고를 보고야 말았다.
***
선빵필승(先手必勝)
일단 먼저 때리는 게 당연히 유리하고, 당연히 그게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기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나 기병들이 무서운 건 말을 탔을 때 나오는 기동력일 텐데 아무리 여진족이 말타기를 좋아해도 잠을 자야할 시간까지 말을 타고 있겠는가?
2만 대 1천.
20대 1이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전력차에, 상대는 느려터진 보병.
상식적으로도 호이파를 중심으로 모인 기병들이 본진 주변의 정찰을 빡빡하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바로 내일 저 악귀같은 조선인을 응징하기 위해 부족들끼리의 단합도 할 겸 멋들어진 출정식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내일 있을 확정적인 승리를 기념하고자 모아두었던 술과 최근에 잡아들인 여인들을 다른 부족에게 풀어 진탕 쳐먹고 놀았었는데,
"으아아! 야습이다!"
"불이야!"
안 그래도 숲 인근에 자리잡고 있던 본진이었던데다 초봄의 건조함이 깔려 있던 터라 물처럼 뿌려진 화약의 폭발력까지 더해지니 도저히 불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었다.
화약이 가득 담긴 표주박이 심지 역할을 하는 조그만 새끼줄에 불을 붙인채 호이파와 여진 군세의 주둔지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쾅
몽골인들이 주로 쓴다는 유목민의 상징 게르의 천으로 된 벽에 난 간이 창문 안으로 던져진 그 물건은 잠시 후 거대한 화염과 거기서 나오는 화광을 내뿜으며 폭발했고 게르뿐만 아니라 인근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화약이 인벤토리에 산처럼 쌓여있는 주명만이 사용 가능한 물건이자 전쟁은 돈빨이자 템빨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이 저 화염병의 짝퉁인 화염박(朴)이었다.
피아식별 기술 덕분에 적이 있지 않은 경로로만 다닐 수 있는 주명의 사기적인 전장의 맵핵능력.
화염박을 비롯한 각종 보급품을 무한대로 실을 수 있는 인벤토리.
두가지가 합쳐지자 간간히 세워져 있는 적들의 경계를 피해 갑옷도, 무기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가벼운 몸으로 왔던 덕분에 주명과 해병대는 빠른 속도로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벼운 몸으로 왔기에 가능했던 험한 산길 위주로 왔던 것은 빠르면서도 은밀한 기동에 기여하기도 했고.
선빵필승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습과 펀치력은 그 맵핵 덕분에, 선빵의 위력은 화염박 덕분에 갖춘 셈.
"우와..."
인벤토리 능력의 신묘함 덕분에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던, 또 한번도 적들을 마주치지 않고 행군이 이뤄지는 기적적인 행군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모두가 입이 떡 하고 벌어졌던 것은 덤.
지금은 수발총으로 바꿔 굳이 화승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지만 원래 조총병들은 불피우기의 스페셜리스트들이다.
화승이 언제 꺼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불을 피우는 것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였으니까.
미리 만들어놓은 화염박을 주명이 꺼내 놓자마자 어느샌가 이미 불이 붙어져 있는 횃불을 보면 그들의 실력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짐승같은 여진족들이 늘 그러하듯 노예들을 끼고 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주명이 맨 앞에 서서 빠른 속도로 달리며 화염박을 던질 곳을 지목했다.
그러면 화염박을 든 해병대와 총병대 대원들이 지목된 곳을 향해 던지는 게 반복되었고,
쾅
"으아아악!"
그렇게 이어진 화염박의 폭격에 짧은 시간 동안에도 무려 수십곳의 게르가 폭파되거나 불에 탔다.
수백의 목숨이 폭발에 터져 죽거나 그 후에 이어진 불에 타 죽는 참상 속에서 지금 시간이 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이라는 점과 맞물려 여진족들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진 화염박의 폭격 속에 만들어진 불은 숲에도 옮겨붙어 인근의 산천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동남쪽으로 이동한다!"
화염박을 던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불길이 일어나자 주명은 병력을 철수시켜 약속된 그 지점으로 이동했다.
호이파의 주둔지의 지형은 산들 사이에 송화강이 흐르며 주변의 산들을 깎아 만들어진 일종의 분지였다.
북서쪽으로 그 분지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송화강 오른편에 있었던 놈들의 주둔지는 북서쪽과 동남쪽의 강과 맞닿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과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명이 폭격을 동반한 기습을 시작한 곳이 바로 북서쪽이며 바람의 방향은 때마침 북서풍.
건조한 날씨에 말라붙은 숲이라는 땔감이 만났으니 주둔지를 휘감은 숲을 따라 불길이 번지는 속도는 혼란에 빠져 방향도 제대로 감을 못잡을 것이 분명한 여진놈들보다 빠를 것이다.
불길이 시작된 북서쪽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부분이 불길로 둘러싸여 화염에 포위된 놈들이 뛰쳐나올 방향은 얼음장 같은 강을 건너거나 아니면 동남쪽뿐이었다.
북서쪽에서 동남쪽의 그 지점까지 불길과 적군을 피해 어떻게 가느냐고 묻는다면 피아식별 스킬의 사기성을 모르고 한 소리.
"나를 따라 속보로 이동한다! 왼쪽으로 돈 뒤 다시한번 왼쪽으로 틀면 된다!"
혼란에 빠져 피아식별조차 안되고 그저 고함만 지르며 날뛰고 있는 적들을 유유히 피해 적진 한복판을 가로질러 뛰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간간히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완전무장을 갖췄고 자신들에게 없는 높은 사기와 엄청 강한 지휘관을 지닌 200의 병력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꺄아악!"
"살려줘!"
여진족 민간인으로 보이는, 아니면 놈들에게 붙잡혀온 노예들로 보이는 자들의 비명소리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주명은 별 탈없이 계획했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군, 성공하셨군요!"
그곳에서 이제는 자신을 주군이라 부르는 야마모토를 만날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이 기습을 하는 동안 만들었을 함정이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해병대와 총병대는 주명이 선공을 한다고 했을 때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전략이라고 말하며 말리고 싶었다.
가는길에 어찌 발각되지 않을 것이며, 간 다 하더라도 기병들을 상대로 뭘로 피해를 준단 말인가.
하지만 주명에 대한 굳건한 믿음때문에 무모할 수도 있는 이 작전에 군말없이 따라와 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지만 신묘한 지휘와 화염박이라는 엄청난 물건 덕분에 이 무모한 기습이 성공에 더 가까워졌으니 모두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길 수 있다는 사기가 충천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런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주명은 침착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전투 대형을 갖춰라. 사냥의 시간이 왔다!"
사냥이라는 말에 부하들이, 특히 총병대원들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환호했다.
***
군소 부족에서 바친 어느 이름모를 미녀와 한참을 뒹군 뒤 그녀의 몸을 주무르며 단잠을 자고있었던 바인다리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으아아악! 뜨거, 뜨거워!"
"살려줘어어! 아아악!"
사방에 보이는 것은 불길이요, 사방에 들리는 것은 비명소리다.
이미 온 사방이 불바다였기 때문에 사람이 불에 타죽는 끔찍한 모습, 한때 강인한 여진 전사였던 이들이 불길이 주는 공포에 빠져 쥐떼처럼 이리뛰고 저리뛰는 추잡한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한방 제대로 먹었구나...."
화공과 기습이 어우러진 적습에 당했다는 패배감과 허탈함에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의 주인이자 자랑스러운 아골타의 후예.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며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패배해서는 안된다.
"모두 정신 차려! 불길이 북서쪽에서 몰려오고 있으니 동남쪽으로 간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부하들을 규합하여 활로를 향해 나아갔다.
한참을 말을 몰아 내달리다보니 주변에 자신을 따르는 이가 수천은 되어 보였고 이 주변에서는 불길이 거세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을 했던 바인다리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벌집이 되어있는 무수한 시신들을 보며 분노에 부르르 떨었다.
탕탕탕
"끄륵.."
그리고 그 시신들의 앞에서 마찬가지로 벌집이 되어 사냥당하고 있는 여진족 전사들을 보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마치 사냥감이 사냥당하는 것 같은 비참한 그 모습보다 더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주변을 가득 메운 시신의 숫자였다.
족히 1천은 이곳에서 저 빌어먹을 총성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탕탕탕탕탕
고작 몇초 지났을 뿐인데 재차 이어지는 총성에 그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을 헤아려 보니 총기의 수량은 고작 70정 정도 되어 보였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지만 자랑스런 여진 기병대가 어찌 저정도 숫자의 총병에게 당한단 말...아니!"
그리고 다시 재차 이어지는 70구의 불꽃과, 연이여 몇 초 뒤에 이어지는 또다른 70구의 불꽃을 보며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삼, 삼열로 나누어 사격을 하고 있다니! 이 빌어먹을 놈들!"
속사라는 특성을 지닌 총병대는 신형 수발총의 스펙 덕분에 거의 1분에 6발 ~ 7발을 쏠 수 있었는데, 거기다 삼단사격이라는 전법이 결합되니 무시무시한 연속사격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계속되는 총격에 바인다리의 눈앞에서 다시 수십의 시신이 추가되었다.
"한번에 들이친다! 전원 돌격하라!"
아무리 저놈들의 화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고작 200명에 불과하다.
수천의 기병으로 돌격한다면 마치 폭풍에 먼지가 쓸리듯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 놈들이 도주하는 구나. 기병대 앞에서 등을 보이다니 멍청한 놈들!"
자신들이 돌격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총병들을 보며 바인다리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다만 이상했던 것은 놈들이 도망치기 전 조그만 불씨들을 뿌렸던 것인데 그게 마치 심지가 타들어가듯 빛을 발했고, 그런 게 돌격하고 있는 방향 곳곳에서 수십개나 눈에 띄였던 것.
하지만 기병은 기세요 속력이다.
이미 가속을 한 이상 반드시 돌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멈추지 않았다.
그저 눈장난으로 현혹하여 속도라도 늦춰보려는 놈들의 허접한 공성계(空城計)이겠거니 하고 비웃었는데,
콰과광!!
대지가 찢어지며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하는 화염이 작렬하여 수천의 기병을 삼켜 버렸고, 화염과 함께 섞인 작은 쇳조각과 돌맹이들이 달궈진 채로 작열하며 마치 산탄처럼 그들을 찢어발겼다.
그 압도적인 살육의 현장을 흔들리는 눈에 마지막으로 담으며 바인다리의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지에 놈들이 이렇게 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화염이 일궈낸 그 거대한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기다린 것은 번뜩이는 창칼을 들며 질풍처럼 쇄도하는 해병대의 돌격이었다.
"해병대 전원 돌격하라!"
"돌격!!!"
수천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는 가운데,
주둔지에서는 불에 타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이 강을 이루었으며, 그 기름위로 불이 붙어 만들어진 불길의 강이 더 많은 기름기 가득한 땔감을 찾아 소각하고 있었다.
차디찬 강으로 몸을 던진 이들은 잠시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초봄의 새벽녁에 찾아노는 한파에 오들오들 떨다 죽어갔으며, 어떤 이는 강을 건너는 도중에 숨이 끊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