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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해적왕-52화 (52/77)

〈 52화 〉 51화 - 전쟁과 사냥(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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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부족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거대한 사냥터가 되어 버렸다.

탕탕탕

“끄아악!”

방금 전까지 저항하던 수십의 여진족 패잔병들이 총병대의 연이은 조준사격에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는 이곳은 실전 사격 연습장이기도 했다.

“구해 주셔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흑.”

그들이 쓰러진 뒤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뒤에서 뛰쳐나와 자신들을 구해준 군대를 향해 고마워 절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조선인들.

그들은 도망치는 여진족들의 챙겨간 노예라는 이름의 재산이었다.

이제는 주명과 만나 다시 사람이 된.

“씨부럴 놈들! 다 죽여!”

어찌보면 지금 총병대의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여진족에 대한 살상이 일어난 데에는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겪은 참상을 목도하곤 눈이 뒤집어 졌다는 것이 컸다.

특히 아비와 남편을 잃고 유린당한 결과 원수의 씨를 품었는지 배가 불러온다며 어찌 살아야 하냐고 통곡하는 조선인 처녀를 보고나서부터는 총병대원들은 눈앞의 여진족들을 사람으로 보기를 포기했다.

“저것들 다 죽여!”

그냥 움직이는 과녁으로 보았을 뿐.

“사이토! 저 씨발것들 더 많이 죽이는 놈이 앞으로  형이 되는 거다!”

“좋다!”

총포대의 최고 사수였던 장호식과 사이토는 특히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마치 시합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개 씨발! 호식형님,  내가  형님 형이 될 생각따윈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저새끼들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겠소!”

“니미럴 간나 새끼들! 내래 다 듁여 버리갔어!”

여진족의 만행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그 살인적인 사격 경쟁에 저 둘을 포함한 200인의 총병대가 모두 뛰어들었다.

군집한 군대를 상대할 것도 아니니 개별적으로 조준사격을 통해 적을 격살했는데,  문제는 총병대의 사격 실력이 너무도 뛰어났던것.

그 결과는 지나치게 죽여 줬는데, 잔적들을 토벌하며 죽인 수효가 벌써 500에 달할 정도였다.

물론 그건 주명이 오늘 새벽에 세웠던 거대한 공적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새벽에 있었던 기습적인 화공으로 태워죽인 적이 무려 일천에 달했으니까.

그리고 불붙은 적들이 달려오는 도주로에 자리잡은 총병대가 마치 사격장에서 다가오는 표적지를 상대로 기량을 연습하듯 손쉽게 사냥한 적들이 또 일천.

마지막으로 대어를 낚기 위해 야마모토와 해병대를 시켜 화염박을 잔뜩 매설한 뒤 적장을 유인했던 것이 빛을 발하여 순식간에 천 삼백의 적을 폭사시켰고,

그러고도 목숨이 붙어있는 놈들을 총병대가 마무리하여 죽인 게 또 칠백.

이날 족히 사천의 적병을 태워서, 쏘아서, 터쳐서  죽였던 것이다.

아무리 초봄의 건조함에 화공을 하기 쉬운 숲 주변이었다는 것과 비싼 화약을 산더미처럼 소모하였다는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또한 최신식 수발총으로 무장한 총병대의 위력을 옅볼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묻어둔 화약에 폭사하거나 불타 죽은 이에 거의 필적하는 수효를 사살한 게 그들이었으니까.

그런 전투로 인한 살상 외에도 살려고 강을 건너다 저체온으로 쓰러져 죽고, 건넌 뒤 얼어죽거나 상처가 도져 죽는 등 패배 후의 비전투손실로 죽은 적이 이천명.

합치면 족히 육천을 멸한 셈이니 공격 한번에 이만이라는 적의 전력을 30%나 소멸시킨 엄청난 전과였다.

거기다 호이파의 족장 바인다리까지 폭사하였으므로 그걸 전공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말해 무엇하랴.

다만 주변의 눈을 의식해 전공을 그대로 적어올리는 것은 안될 말이었다.

“전공을 축소하는 것도 일이네 쩝. 최대한 사실에 맞도록 일부의 진실들을 나열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지.”

특히 조선에서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는 화약에 대한 부분은 기밀을 요했다.

화약을 물쓰듯 썼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의심을 받을 지 모르니까.

“왜국에서 구해 소유했던 얼마 안되는 화약을 일부 소모하여 건조한 기후를 이용해 화계를 썼다 정도로 써야겠지?”

폭음 자체를 숨길 수는 없으니 화약을 어렵게 ‘소량’ 구했던 것을 아끼고 아껴 쓰는 거라고 허위로 보고할 것이다.

“총병대 애들은 예전처럼 아예 누락해서  보고해야 겠지? 걔들 세운 전공 말해줘 봐야 믿지도 않을 거고.”

그의 독백처럼 총병대에 대해서는 아예 밝히지도 않았다.

평화에 젖어 군무에 어두운 조선이었으니 총병으로 뭘 했다고 보고를 한다 해도 믿지도 않을 테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테니까.

일년 전 대마도에서 보낸 자들은 군사기밀이자 비밀병기일 수도 있는 조총을 조선에 보여주는 일본입장에서는 이적행위까지 해가며 경고했다.

일본의 전쟁위협에 조선이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일말의 기대를 품고.

물론 활을 최종병기로 알고 궁기병만이 진리로 알고 있던 조선에서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만.

그런 조정이니 총병을 운용한다 보고해봐야 돈이 남아돌아서 저런 쓸데없는 병종을 키우는 것 같다며 혹시 부정한 일로 재물을 모은 게 아니냐며 괜한 의심만 받을 것이다.

탄금대 전투에서 기병을 조총병에게 말아먹는 패배를 겪고 나서야 그 무서움을 알게 되는 자들이 조선의 조정이었으니까.

“장계에는 적의 정탐을 우회하여 기습적인 화공으로 적의 본거지를 쳐 적의 수급 몇백급을 얻었다 정도로 써야겠어.”

실제로 수급 자체는 딱 그정도로만 챙겨갈 것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는 셈이었다.

굳이 수급을 거두지 않아 목이 붙어있는 시체로 누워있는 여진족이 족히 수천이 넘어간다는 디테일한 사실은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월이 가면 썩어 땅에 묻혀서 가려지겠지.

“사실대로 다 적어 올리면 엄청난 전공에 선조가 경계할 지도 모르니까 말야.”

호이파 부족이 박살났다는 것은 니탕개의 난으로 쌓인게 많은 조선에 통쾌한 일이었다.

분명 엄청난 치하를 받을 게 분명하지만 그 선조에게 알려서 좋을 게 없었다.

웃는 얼굴로 푸짐한 포상을 내려주면서도 뒤에서는 이제 어떻게든 목줄을 채운다고 수작질을 할 새끼였으니까.

특히 총병대는 주명에게는 비장의 카드나 다름없니 더더욱 알릴 수 없었다.

지금이야 총기에 대해 뭣도 모르는 선조놈이 쓸데없는 화기를 다룬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겠지만 나중에 총병의 가능성을 점차 깨닫게 되면 필히 경계할 것이 분명하니까.

또 그들의 전장의 ‘게임 체인저’라는 총병의 진정한 존재가치를 깨닫게 되면 분명 주명을 역적으로 몰아서라도 뺏어가려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전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올린 모든 장계에서 고의로 총병대의 활약을 누락했다.

그 덕분에 조정과 북병사 이일은 주명의 전력이 정예한 검수들(해병대)뿐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전투도 일천에 달하는 정예 검수들을 데리고 거둔 성과 정도로 파악할 것이고 그리 생각해 줘야 주명에게도 좋다.

여기서 일천이란 숫자도 중요하다.

자신의 덕에 감화되어 귀부한 왜인(?)이 골칫거리 왜구를 소탕한다는 갸륵함 때문에 사실상 준-군벌화를 용인받은 주명.

하지만 조선에 알려지는 자신의 병력 상한은 딱 일천 정도인게 좋다고 보았으니까.

“조선 병력이 십칠만으로 알고 있을 거니 일천 정도면 개미 밟듯이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할걸. 1%도 안되니까.”

그정도 병력이라면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니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사냥터로 변해 버렸네. 핵&슬레쉬가 아니라 FPS가 된 건 같지만.”

분노에 차서,  또 신나서 적들을 쏴 재끼고 있는 총병대와 멀뚱멀뚱 병풍처럼 그런 전우들의 활약을 입맛을 다시며 지켜보고 있는 해병대를 번갈아 가며 주명을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던 주명의 시선은 벌판에 널린 여진족의 무수한 시체들로 옮겨졌다.

하지만 끔찍한 광경임에도 저놈들이 수십년 후 벌일 일을 아는 주명은 그저 저기널린 시체가 경험치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뿐이지 저들의 죽음에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런 식이면 호이파 부족도 곧 뿔뿔히 흩어지겠지.”

저 호이파 족에게 남은 위안이라면 아직도 그들 부족의 패잔병들과 다른 부족의 패잔병들이 처참한 몰골이지만 상당수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 첫째.

둘째는 인구가 밀집된 부족의 주 거주지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부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큰 피해를 보았지만 족장은 다시 뽑으면 되고 병력은 인구가 그래도 보존되었다면 다시 뽑아내면 될 일이었다.

패잔병들이라도 남았으니 당장 호이파가 약해졌다는 것을 노리고 달려올 승냥이들을 막을 최소한의 무력은 남아있다는 거‘였’을 테니까.

하지만 과거형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젠 아니었다.

지리 멸렬하여 군데군데 숨어있는 여진족들의 패잔병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며 마치 잡몹 청소하듯 쓸어버리는 사냥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탕탕탕

잠시 장계를 어찌 쓸 지에 대해 주명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무려 일백의 여진족이 죽어나갔다.

“지금까지 죽인 게 육백이나 되나 이런 기세라면 오늘 족히 일천은 더 죽여버릴 수 있겠구나.”

이곳은 사냥터였고 특히나 총병대가 신이난 사격장이었다.

아까부터 장호식과 사이토가 날뛰고 있고 다른 총병들도 날뛰는 꼴을 보니 부대원의 레벨업과 부대의 등급업은 떼어놓은 당상인 듯 보였다.

해병대는 활약할 여지가 별로 없었기에 그저 총병대를 호위하며 간혹 튀어나오는 잔적만을 처리할 뿐이었다.

다만 총병들의 신난 모습에서 조금은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저게 인간의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

“이건 도구, 그러니까 템빨의 승리라고 봐야지.  총과 화약이라는.”

총상을 입어 벌집이 된 몰골과, 화염박에 의해 몸이 터졌는지 참혹하기 그지없는 육편들을 보며 주명은 나미에를 안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승리가 중요한 나와는 달리 올바른 무사니까 그녀는.”

적을 죽이는 데 정당하도 올바른 게 어딨냐만은 적어도 나미에의 무사도에 따르면 칼을 쥐었을 때부터 죽음은 서로 각오한 바이니 그 생과 사를 가르는 건 기량과 투지의 차이였다.

하지만 이곳을 보라.

총상을 입었음에도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달려와 결국 해병대의 칼질에 마무리된 놈이 한둘이 아니다.

어찌나 독하던지 놈들은 죽어서까지 무기를 꼭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니 여진족들의 투지와 기량이 총병들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저렇게 참혹하게 널브러져 있는 그들의 시신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싸움은 그녀가 좋아할 리 없으니까.”

아마 총으로 용맹한 적을 손쉽게 쓰러트리는 모습이 비록 적이지만 전사들을 모독하는 거라 여겨 분개할수도 있을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실력 대 실력으로 기량을 겨뤄 승패가 나뉘는 인간적인 전투가 아니라 원거리에서 압도적인 기술과 화력의 힘으로 작살내는 이런 기술적인 학살은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전장에 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녀의 가치관에 맞는 전장에 설 수 있도록 해 주는게 나름대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수려한 외모의 한 여검객이 북서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흑색 머리칼은 그녀의 훤칠한 키와 맞물려 마치 이곳을 넘보지 말라 서 있는 굳건한 깃발처럼 보였고,

또한 따라가고 싶었던 누군가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길게 늘어놓은 것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 만큼이나 그녀의 마음은 약간의 원망과 대부분의 초조함으로 흔들렸다.

“언니, 힘센 도깨비 아저씨가 이기겠죠?”

하지만 귀여운 소녀가 다가와 묻는 말에 자신의 흔들림을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

총명한 두뇌 덕분에 이제는 능숙하게 구사하게 된 조선어로 나미에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 세상에서 도깨비를 이길 수 있는 건 없단다.”

“그렇죠? 헤헤 친구들이 걱정하길래 큰 소리로 핀잔을 줬는데 역시 윤아가 옳았어요!”

귀여운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서도 나미에의 시선은 저 북방의 강 너머를 훑었다.

주명이 떠나간지 벌써 일주일.

녀석과 적들의 기동력을 생각하면 이미 뭐라도 소식이 당도했어야 정상인데, 그 일주일동안 꼬박 이곳에 나와 서 있었던 나미에는 그 어떤 특이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심한 바람만이 불어올 뿐인 북방의 대지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삼키며 나미에는 귀에 걸린 귀걸이를 쓰다듬었다.

이러면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말이다.

갑자기 그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던 나미에를 대신해 북쪽을 쳐다보던 윤아가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언니! 저기좀 봐요!”

저 멀리 수백필이 넘어가는 말에 전리품을 잔뜩 싫고,  수십마리가 넘어가는 소가 끄는 수레에 사람들을 태워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호위하듯이 둘러싸며 다가오는 이들의 맨 앞에서 다가오는 남자,

이제는 말을 몰고 더 위풍 당당하게 그녀의 남자를 보며 나미에는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혼자만의 인사를 했다.

“무사히 돌아왔네.”

닿지는 않겠으나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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