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64화 (64/77)

〈 64화 〉 63화 - 일기당천(一騎當千)(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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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푸타는 처음에 그를 붉은 호랑이로 알았다.

수백의 기병을 상대로 홀로 난입해 마치 산군(山君)의 옥좌를 쌓듯이 시체의 산을 쌓던 그 무위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 몇일 그를, 아니 그분을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노예로 떨어질 와르카 부족의 운명에서 구함받긴 했으나 대체 무슨 얘기를 할지 몰라 처음에는 말문을 떼기가 어려웠다.

이 추운 혹한의 대지에서 순수한 호의따위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 역시 와르카 부족을 손에 넣으려고 왔을 거라고 짐작했다.

"어려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부족원들좀 배불리 먹이자."

하지만 그가 맨 처음 꺼낸 얘기는 그런 자신의 예상을 시작부터 부숴버렸다.

"아, 그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겠네."

그리고 그가 올라 부족의 침공으로 죽어간 이들을 손수 땅을 파 묻어 주었을때 도무지 울컥하고 올라오는 고마움을 누를 수가 없었다.

문명의 중심지인 중원에서 멀어 철기조차 제대로 갖출 수 없었던 이곳에서는 혹한의 기후 때문에 봄일지라도 땅이 얼어붙어 있는 것은 매한가지라 장례 중 가장 극진한 방법이라는 매장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천쪼가리를 덮은 풍장을 하거나 돌무더기를 쌓아 그나마 예우를 갖추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의 무지막지한 힘과 거대한 검 덕분에 먼저 죽어간 부족원들에 대한 매장이 가능했다.

다만 의문이었던 것은 대체 왜 무기를 땅을 파는 일에 사용할까 하는 것.

철기가 귀했던 와르카 부족에서는 철로된 무기는 숭상을 넘어 일종의 애니미즘적인 숭배의 대상이었고, 그자가 들고 있는 거검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것 같은 신비하면서도 위엄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더욱 그랬으니까.

"신성한 무기를 땅을 파는데 사용하셔도 되는 겁니까?"

"이런 철쪼가리보다는 사람이 더 신성해."

"..."

그리고 그에대한 그분의 답을 듣게되자 마푸타는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감복했고, 그분이 망자를 위로하기 위해 불러준 어떤 노래를 듣고 나서는 최후의 자존심마저 꺾고 반드시 저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리라 다짐했다.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너를 보내고'라는 이름의 그 노래는 떠나간 정인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면서 망자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말하기도 하는 묘한 노래였다.

노래가 지닌 매력을 넘어선 마력에 모든 부족이 빠져들어 나중에는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거기서 마푸타는 기적을 체험했다.

"처음 듣는 낯설은 말이면서 동시에 예전부터 들었던 것처럼 너무 낯익었지."

그분의 언어는 마치 태초의 언어이자 신의 언어같았다.

분명 자신들의 언어처럼 들리는데도 동시에 무언가 다른 언어, 아니 언어들처럼 들렸으니까.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언어들을 모아 만들어졌으며 모든 언어의 시작점에 위치했을 원형이자 기본의 언어처럼 보였다.

어떤 언어와도 통할 수 있는 언어의 정수이자 근간인 언어 이상의 신성한 언어.

그분의 노래말을 따라 부르는 부족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왜 자신들의 언어가 아니었으면서도 그리도 친숙하게 느껴졌을까.

"그 신어를 처음 들었음에도 모든 부족민들이 조선어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천리를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저 조선이란 나라의 언어를 어째서 수천의 와르카 부족민들이 단 한번만 듣고도 따라부를 수 있었으며 그 의미를 직감적으로 알아듣고 함께 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단 3일만에 그 처음듣는 언어를 더듬거리면서도 할 줄 아는 이들이 생겨났으니 이건 절대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늘 신(압카이 엔두리, Abkai enduri)의 조화였지 그건."

그래서 하늘 신의 조화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분은 그저 강한 호랑이따위가 아닌, 하늘의 의지와 닿아있는 드높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처음 가졌던 경계심을 도저히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존재라면 당연히 부족 전체가 그분의 발밑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게 아닌가 하고.

"이 빵이라는 거 너무 맛있어요 엄마!"

"천천히 먹으렴. 음식이 아직도 넉넉하단다."

게다가 요 몇일 사이 그분께서 주신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 그것도 너무나도 맛있는 저 빵이라는 이름의 음식들 때문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린 아이들을 보라.

마푸타는 알 수 없겠지만 그 빵은 샤를이라는 요리의 마에스트로가 만들어준 브리오슈(Brioche)라는 빵이었다.

오로지 주명의 동료로 있으니까 사용이 가능한 산더미같은 설탕과 버터, 그리고 계란을 이용해 만든 달달한 빵이었으니 탄수화물이라곤 밀가루를 불에 구운 맛대가리 없는 것들만 접하던 와르카 부족원들에게는 미각의 신세계를 열어준 것.

"이 이맛은?! 역시 하늘 신의 사도께서 주신 음식은 천상의 맛이야!"

처음보는 음식이라고 꺼려하던 나이든 부족원들도 한번 맛을 들이더니 한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찾아볼 수 없게되었다.

처음 듣는 언어가 너무나도 빠르게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천상의 맛을 보여줘서인지 부족의 사람들은 그를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푸타는 이미 그 노래를 접한 첫날에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말대로 그분은 최소 하늘신의 사도일 것이 분명하니 오히려 와르카 부족이 매달리며 제발 받아달라고 애걸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복잡하게 말하지 않지. 나를 따라라."

"물론입니다. 저희 와르카 부족은 사도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3일째 되는 날 들려온 그분의 제의에 무릎을 꿇고 수락했다.

다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수락에 씨익 웃으며 그분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좋다. 이 순간부터 너희가 최강의 기병이다."

기병중의 기병이라는 건주여진의 기병도 있고, 아직은 그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몽골 기병도 있을 것이며, 패잔병들마저 자신의 부족을 압도했던 금나라의 후예 해서여진의 기병도 있을 것인데 어찌 야인여진에 불과한 자신들이 최강이 된단 말인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고 판금갑과 마갑을 미리 만들어 두었지."

와르카 부족을 복속하기로 결정한 주명은 정여수에게 부탁해 판금갑과 마갑을 한벌 제작해 달라고 했고 완성된 것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왔던 것이다.

이미 나미에와 주명, 그리고 20인의 1기 해병대원들의 것을 정여수와 장인들이 만들면서 판금갑 제작기술이 물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그 제작기간도 짧았거니와 품질은 말할것도 없이 좋았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본래 판금갑이 지녔던 회색의 단조로운 디자인에서 탈피하여 마치 동양의 도깨비를 보는 듯한 디자인으로 마개조된 모습이었던 것.

왜색이 짙은 해병대의 판금갑을 보며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주명이 제식갑옷의 디자인을 만들고 자신의 판금갑의 디자인도 그걸로 바꿔버렸다.

갑옷의 빛은 핏빛의 붉은색에, 전체적으로 유려한 곡선을 강조한 형상이었다.

가장 특징적인 건 투구에는 흉악하게 생긴 도깨비의 얼굴을 그려넣은 바이저(얼굴가리개)가 부착되어 있었다는 것과, 투구의 위에 두개의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었다는 것.

붉은 빛을 띠는 갑옷과 저 도깨비의 머리같은 투구를 완전히 갖춰 입으면 마치 한명의 도깨비가 된 듯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마갑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그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구조에 대해서는 정여수의 식견을 믿고 온전히 그에게 맞춰주었지만 유일하게 주문했던 부분은 붉은 색으로 칠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붉은 갑옷과 마갑을 시범적으로 착용할 한명으로 낙점된 이는 주명이 눈여겨보고 있기도 했고 이젠 와르카 부족의 족장이기도 했던 마푸타.

"말이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난처함 가득한 말마따나 바로 난관에 부딪쳤다.

중세 기사들이 타는 말은 원래도 큰 체구를 지녔던 말을 품종개량을 거듭하여 전투마로 거듭나게한 덩치큰 녀석들이다.

하지만 조랑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몽골말로 대표되는 동양의 말들은 그 크기가 크지 않았고, 그나마 큰 축에 속하는 여진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에대한 생각을 이미 해둔바 있는 주명이었기에 금방 해결될 수 있었다.

"콘솔 포인트가 아깝긴 한데 기병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지."

오브젝트도 레벨업을 하는데 동물이라고 못하랴.

다만 오브젝트 중 특별한 물건들인 아이템처럼 숫자로 표시되는 것들이 아니라면 오브젝트를 레벨업해서 강화하는 거는 거의 밑빠진 독에 물붇기였던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동물은 사실 아이템과 동급의, 아니 그 이상의 혜자성을 자랑했다.

호랑이가 수시로 먹이를 사냥하는 것을 보면 동물들에게도 레벨업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개연성이 무척이나 높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호랑이든 토끼든 모두 레벨이 1이었고 경험치를 얻을 일이 없었기에 사실상 그 레벨은 고정된 수치였다.

호랑이와 토끼의 차이는 그 능력치와 스킬 뿐이었던것.

여기서 '효과'만이 존재했던 아이템과는 달리 사람처럼 '능력치'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말인즉슨 고작 한시간어치의 가치를 지닌 1 CP를 투자하여 100의 경험치를 동물에게 준다면 무려 19레벨을 올려 20레벨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만 아쉬웠던 것은 사람처럼 레벨업 시 2포인트를 주는 게 아니라 겨우 0.5포인트만 주는 거라 레벨업의 효과가 25%밖에 안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레벨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밸런스를 위해 적정해 보일 정도였다.

[이름 : 어둔(말)]

[레벨 : 1(0/0.5)

[능력 : 힘 26, 민첩 23, 지능 5, 주력 5]

말이라는 동물에게는 특수능력치로 주력(走力)이라는 게 있었고 그게 가장 중요해 보였기 때문에, 19레벨을 업시키며 얻은 9.5의 포인트를 마갑을 찰 수 있도록 힘을 3포인트 준 것 외에는 모조리 주력에 때려박은 결과,

[이름 : 어둔(말)]

[레벨 : 20(5/10)

[능력 : 힘 29, 민첩 23, 지능 5, 주력 11.5]

여진어로 '바람'이라는 뜻으로 어둔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던 마푸타의 조랑말이 진짜 바람처럼 빠른 천리마가 되어 버렸다.

"이, 이건!"

함께한지가 몇년이 넘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애마에게 일어난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할 수 있었던 마푸타는, 애마에 올라 시험삼아 질주를 해 보더니 그 엄청난 스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달라진 그의 애마는 판금갑을 갖춰입은 주인을 태우고 거기에 마갑을 씌우고도 힘에 여유가 넘쳐 보일 정도였으니 더이상 난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친 김에 기다란 기병용 창인 랜스까지 쥐어주며 표적을 향해 돌격해 보라고 하자 마푸타는 이게 그의 천직이었다는 듯 신이 나서 바람처럼 내달려 폭풍처럼 표적을 향해 랜스를 쑤셔박았다.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빨라진 속도에, 힘을 올려 육중해진 말의 무게와 마갑, 판금갑의 무게까지 실리자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표적이 된 큰 아름드리 나무에 깊숙하게 박힌 기병창을 바라보며 마푸타는 자신이 한 일임에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만약 사람에게 방금 전 저 기병창을 사용한 돌격을 실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지 상상이 되니 가슴속에 차오르는 자신감과 투지를 느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명이 부족원 열명을 데려다가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는 마푸타를 향해 활을 쏘게 했고, 열발의 화살은 모조리 인마에 적중했는데도 그 어떤 화살도 유효한 타격을 가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실감하며 마푸타는 최강이라는 단어에 의심을 가졌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최강의 기병이라는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었어..."

이 무구와 말과 함께라면 저 해서여진 따위는 물론이고 건주여진의 그 무시무시한 만주기병도 두렵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지닌 기병.

기사(Knight)가 동방에 나타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부대명 : 철기대]

[부대 등급 : 1]

[적용효과 : 공격력 +1%, 방어력 +1%]

[병력 : 1/1]

[사기 : 60/150]

[전법 : 랜스 차지(Lance Charge)]

단 한명임에도 시스템에게 하나의 부대로 인정받을 정도로 기사의 존재감은 다른 병종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다만 전술은 가다듬어야겠지. 아예 갈릴레이처럼 기사를 하나 초빙할까? 거기는 화승총 때문에 퇴물취급을 받고 있을거라 이곳에서 날뛸 수 있다면 좋아할 텐데.'

철기대를 충원하여 제대로된 전력으로 삼기 위한 주명의 행복한 고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구체화될 수록 천하제일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허명을 주장하는 저 만주기병의 악몽은 실체화될 것이다.

주명에게 귀부하고 기사라는 병종을 구현한 뒤의 일정은 순조로웠다.

정주민이었다면 녹둔도까지의 수백리 여정이 힘겨웠겠지만 여진족 자체가 반 유목민족이었던터라 한번 이동이 결정되자 순식간에 준비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들은 녹둔도에서 강을 건너면 나오는 북쪽의 공터에 거주시킬 예정이었다.

아직은 녹둔도 주민들이 여진족의 일종인 이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심정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이들은 기병으로 쓰려고 데려온 것이기 때문에 넓은 평지가 위치해 있는 곳에 주둔시키는 게 나았으니까.

녹둔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속도도 빨랐고 또 기대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랜스 차지에 아주 재미가 들렸는지 쉴새없이 돌격하여 어딘가에 박아대는 마푸타가 결국 랜스를 박살냈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일도 없었다.

랜스란 물건이 애초에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여분을 꽤나 챙겨왔던 주명이라 마푸타를 굳이 나무랄 필요가 없기도 했고.

"내일이면 녹둔도가 보이겠네."

"아, 녹둔도에 가면 빨리좀 씻고 싶어. 으 찜찜해."

여 몇일 자신이 근처에 오는 것을 꺼려해 다가가려고만 하면 성을 냈던 이유가 저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주명은 약간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충분히 이해했다.

하루종일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 반복되는 이 지루한 여정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은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공격 한번도 안받았다는게 참 다행이야. 지루하긴 했지만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솔직히 제발 위험한 일이 안 일어나길 바랐었거든."

어느새 저 여진족 아이들과 꽤나 친해졌는지 나미에가 평화로워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주명은 마음씨 따뜻한 그녀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북서쪽에서 적 기병들이 온다. 전원 전투준비!"

저 멀리 북쪽에서 수백기의 기병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노약자와 아이, 여인들을 대열의 뒤로 보내고 적이 쳐들어 오는 방향쪽으로 집결하는 와르카의 수백 기병들을 바라보며 주명은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기사가 처음으로 전장에 등장하는 순간이 되겠네."

말박이들에게 진짜 기병을 선보일 시간 말이다.

***

올라 부족의 전사 사이파는 본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속이 탔었다.

그래서 당초 맡았던 후방 경계임무를 제쳐두고 부하들과 말을 달려 와르카 부족의 숙영지로 향했다.

거기서 본 것은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본대의 시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무려 1천기의 기병이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 이상의 전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함에도 복수심에 불타오른 그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본대에는 자신의 아들이 종군하고 있었으니까.

300기에 이르는 부하들을 이끌고 흔적을 추적한지 사흘째 되는 날, 마침내 원수들의 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제는 조금 이성을 찾게된 그는 먼저 저 원수놈들의 전력을 가늠해 보았는데, 올라 부족의 정예한 전사 1천명을 고혼으로 만들어 버렸다기에는 놈들의 전력이 너무도 허접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진격을 명했다.

"어? 저놈은 뭐야?! 미친건가!"

그 허접한 전력들을 죄다 몰고 오더라도 다 짓밟아 버릴 자신이 있었는데 적들은 고작 단 한명만을 내보냈다.

붉은 갑주를 전신에, 그리고 말에게도 갖춰 입힌 놈의 모습이 특이하긴 했지만 고작 한명이었다.

"밟아버려!"

고작 1기로 300기의 해서여진 기병을 상대하려 했던 오만과 만용에 대한 응징을 하면 그만.

그래서 여진 기병들이 습관처럼 행하는 초반의 견제사격조차 생략하고 놈에게 돌격했는데,

"어?"

놈의 말이 너무 거대했다.

그리고 그놈의 말이 뿜어대는 위압적인 기세에 자신들이 타고있는 초라한 크기의 말들이 놀라 마치 쥐떼가 흩어지듯 도저히 전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도 빨랐다.

흩어지려 하는 말들 사이를 뚫고 놈의 경로와 일직선상에 놓은 대상을 향해, 아직 채 속력이 붙지 못해 도망가지 못했던 불운한 인마를 향해 마치 질풍처럼 들이닥쳤다.

"끄아아악!"

히히힝

그 결과는 마치 두조각의 고기가 꼬치에 꿰인 모양으로 기다란 창에 함께 꿰뚫려 버린 한명의 기수와 한마리의 말이었다.

그 육중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원을 그리며 선회한 그 철갑의 괴물은 이제는 검을 빼어들고 흩어지려 하는 쥐떼들에게 들이닥쳤다.

그 철갑의 괴물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들이닥쳤기 때문에 또다시 한명의 기수가 놈으 검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 기수가 반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마나한 반격이었기 때문에 결국 반격을 안한것과 같았다.

놈이 처음 달려들어오던 경로를 역으로 질주하며 서넛의 기수를 베어버린 철갑의 괴물은 유유히 놈의 진영으로 가 버렸고 사이파와 부하들은 놀란 말들이 도무지 진정하지 못하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통에 그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만 했다.

"이런 개같은 자식!"

당황한 나머지 전장을 이탈하려는 부하 한놈을 베어버린 사이파는 피묻은 칼을 치켜들며 다시 진형을 갖출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거대한 말의 위세에 겁을 먹은지 오래인 말들은 도무지 인간의 통제에 따라주지 않았고 진형을 갖추는 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러는 사이 다시 그 기다란 창을 들고 나타난 철갑의 괴물.

"활을 쏴라!"

놈과 가까이 붙은 것은 아니었기에 말들이 아직까지는 멘탈을 챙길 수 있었으니 가능한 명령이었다.

수백의 기수들이 쏜 화살이 하늘을 뒤덮으며 철갑의 괴물에게 쇄도했지만,

팅 팅 팅

너무도 무기력하게 철갑에 막혀 버렸다.

간혹 마갑이 가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스쳐 지나간 경우도 있었지만 철갑의 괴물의 발을 묶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기다란 창을 들고 놈이 돌격해 오자 이제는 말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마저 전장을 벗어나려 했고,

"이, 이길 수 없어. 도, 도망쳐!"

"이런 겁쟁이 새끼들 같으니!"

사이파가 도망가려는 놈들을 몇놈 베어버리며 추스르려 해도 이미 사기가 박살나 버려 도저히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겁쟁이들과는 달리 아직까지 전장에 남아있던 사이파에게는 불행하게도 놈의 일직선 경로의 위에 놓은 인마는 바로 자신이었다.

"끄르륵...."

자신의 가슴을 꿰뚫어버린 거대한 창을 두 손으로 잡으며 어떻게든 빼 내어 보려 발악하는 사이파였지만 곧 확정적인 사형선고에 순응하며 의식을 잃었다.

영원히.

전장 한가운데 홀로 서서 검을 빼어 하늘로 치켜든 마푸타의 모습에 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던 와르카 부족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그들을 지켜보는 한쌍의 남녀.

"주명, 나도 저거 하고 싶어! 꼭 해줄거지? 응!?"

"...어, 알겠어."

철기대의 부대장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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