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0화 - 전초전(前哨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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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결계를 거두었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저 왜국의 괴물이 곧 움직일 것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순리에서 벗어난 존재임에도 버젓이 인정받으며 존재해온 편애받는 존재.
왜국이 하늘의 편애를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이자 왜국 그 자체인 야마토혼의 시작이자 궁극적 표상.
놈이 깨어나 움직이는 것이, 그녀를 향해 적의를 가지고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담대한 마음을 지닌 그녀조차도 전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적의에 두려움이 들었다.
수천년 동안 놈이 오롯이 쌓아온 거대한 악업의 무게감은 그정도로 대단했다.
몸이 떨려왔다.
마치 피할 수 없는 확정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의 떨림.
명월은 눈을 감으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힘을 회복하는 데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 해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놈이 온다면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물론 이대로 조선으로 돌아가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나 결사의 각오로 이 대마도로 온 그녀가 선택할 리 없는 선택지였다.
그녀가 이 대마도에 온 것은 두 가지 목적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였으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이미 이루었고 남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이곳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녀가 온 첫번째 목적이자 이미 이루었다고 한 하나는 바로 역천의 기수를 놈에게서 지키는 것이었다.
드높은 하늘이 안배한 천명보다도 더 상위의 명령인 세계가 부여한 역천의 사명을 짊어진 기수.
주명이 짊어진 그 사명만이 하늘이 삼한의 사람들에게 정해준 패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명월은 주명이 현대에서 이 세계로 넘어온다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분명 그 시작이 미약하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몇년 전 대마도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놈을 방심시킨 뒤 펼친 장막이 아니었다면, 마지막으로 필승의 운명과 천명을 맹신하는 그놈의 오만이 아니었다면 역천의 기수는 세상에 출현하자 마자 지워졌을 것이다.
하필이면 역천의 기수가 출현하는 곳이 놈의 인지범위 내라는 것이 문제였다.
수천리의 먼 거리에서도 국가와 민족의 원기(元氣)를 느낄 수 있는 그 괴물의 드넓은 촉각에 남해 어디선가 출현할 역천의 기수가 감지되지 않을 리 없으니까.
역천의 기수 특유의 그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게 된다면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존재라는 본능적인 위기감과 거부감에 반드시 제거하려 하겠지.
그걸 막기 위한 대마도행이었다.
역천의 기수가 출현하기 전 그녀가 먼저 대마도에 나타남으로써 놈의 신경을 긁고 이목을 끌어 찾아오게 만든다.
명월의 의도적 출현은 놈이 그녀가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물결의 전부인줄 착각하라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라는 미약한 파도를 확인하고 방심한 놈에게 역천의 기수라는 진정한 파도, 운명을 부술 그 진정한 격변의 파도를 감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다행히 3년 전 놈을 대면했을 때 자신에 비해 마치 거인과 개미 사이의 격차처럼 제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녀의 힘을 보고 그저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놈은 목숨만은 살려줄 터이니 허튼 짓을 하지 말란 경고만 남기고 떠나갔다.
아마 그녀라는 미약한 파도는 천명을 받은 자신들의 드높은 파도앞에 스러질 거라고 자신했겠지만 그녀 자신은 그저 눈속임용이라는 것을 놈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기만의 첫 단초가 만들어지자 그걸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천천히 또 조금씩 놈의 감각에 걸리지 않도록 장막을 펼쳤다.
무려 3년에 걸쳐 완성한 그 결계는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역천의 기수를 놈으로부터 드러나지 못하게 가리는 것.
주명이란 희망이 싹을 틔우기 전까지 그 괴물의 마수로부터 가리기 위한 결계를 펼쳐 놈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이 그 결계의 기능이었고 그래서 장막(帳幕)이라고 불렀다.
마치 기다란 반원모양의 선을 주욱 그어버리듯 저 동해로부터 시작하여 대마도를 지나 규슈 중간을 통과하는 장막을 펼쳐 그 반원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을 놈의 초월적인 탐지를 차단한다.
그 장막은 주명이 성장하여 녹둔도라는 기반에 싹을 틔울 때까지의 시간을 벌었으니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주명이라는 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종국엔 세상을 집어삼킬 정도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니까.
누군가 가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홀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천명을 받은 저 북방의 늑대와 마주했음에도 결국은 버텨낸 주명을 보고 그녀는 그것을 확신했다.
그 확신에 그녀가 이 대마도로 찾아온 두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는 마음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 마지않는건 두번째 목적의 실현이었고 그것만 바라보며 지금까지 버텨왔으니까.
첫번째 목적인 역천의 기수를 보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인 그 장막을 거두어야만이 두번째 목적이 실현 가능하니까.
그녀의 손끝에서 일렁이는 푸른 기운이 마치 거세게 출렁이는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명월은 고개를 들어 동남쪽의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눈으로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자이지만 그녀는 놈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미 역천의 기수는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네놈은 어떻게든 막으려 하겠지만 이미 늦었다."
역천의 기수가 기반을 닦은 이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그 괴물같은 노인은 물론 저 가증스러운 하늘조차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짜증도 짜증이지만 혼란스럽겠지? 대체 어느쪽을 먼저 밟아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하필이면 대마도와 에조치라는 놈의 탐지거리 양 극단에 놓여있는 그녀와 역천의 기수.
지금 장막을 거둔 데에는 이 시점을 노린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놈이 자신에게 금방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녀를 밟아버리리라 마음먹고 힘을 회복하기도 바쁜 와중에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형태로 존재하는 역천의 기수를 발견한 나머지 혼란에 빠져들겠지.
아마 상당한 기간동안 그녀와 기수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못잡고 양쪽으로 전력을 분산시키며 갈팡질팡할 것이 분명하다.
"헤메고 또 헤메거라. 아무리 지고한 힘을 지녔다 하더라도 네놈의 본성은 그 지고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옹졸하고 우유부단하니 한참을 헤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영력을 다루는 이들 중에 그놈과 비견될 이는 저 중원에 잠들어 있는 단 한명뿐일 정도로 지고한 힘을 지녔으나 그놈보다 대담한 이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워 더 소심한 놈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였다.
참으로 성품마저 왜놈중의 왜놈 다웠다.
하지만 그렇게 헤메더라도 결국은 한쪽에 온전한 힘을 집중할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때 놈을 자신에게 끌어들여야 했다.
대마도에 집중되어 있는 수맥의 중심에 위치한 지점에 선 명월은 각오를 다졌다.
바로 이곳이 두번째 목적을 실현시켜 줄 핵심이 될 것이며, 이곳에 온전한 힘을 부여하기 위해 장막을 거둔 것이다.
그녀가 가진 대부분의 힘을 잡아먹었던 장막을 거둠으로써 풀려난 거대한 영력이 거칠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최대한의 힘으로 수맥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로부터 나온 푸른 기운들이 수맥의 중심점에 중첩되며 쌓이기 시작했다.
본래 범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인 영기(靈氣)지만 그 누적된 힘의 총량이 커지자 누가 오더라도 푸르고 거친 기운이 이곳에 일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렁이는 푸른 영기가 모이고 모여 푸른 바다에 작렬함으로써 거대한 바람과 파도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을까.
왜놈들은 삼한땅을 침공하기 전 반드시 이 대마도에 모이게 되어있다.
계시에서도 그러했고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러했다.
'네놈이 몽고의 침공군을 막고자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던 그 장소에서, 그 방식 그대로 저 왜놈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영력을 지녀 보름(2주)만에 카미가제(神風)를 일으켰던 놈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놈들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한 영력을 모을 수 있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2년.
그녀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바다를 논개가 몸을 던진 그 남강으로 만들어 왜적들의 침공군을 모조리 바닷물에 쳐박아 버릴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놈의 우유부단함을 파고들도록 일부러 선택지를 던졌다.
"쉽사리 선택하지 못할 것이야. 저 북방과 에조치에서 핍박받는 이들을 규합하며 점점 커져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운인지, 아니면 수십만 군졸들을 집어삼킬 파도인지. 양쪽에 네놈의 개들을 보내며 시간과 전력을 허비하거라."
물론 결국은 자신과 주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선택된 대상에게 그 괴물이 찾아갈 것이다.
선택지를 던졌지만 절대로 놈이 역천의 기수를 택하도록 놔둘 생각이 없는 그녀였다.
놈을 결국 자신에게 끌어들이려고 놈에겐 영광스러운 장소였던 이 대마도에서 놈이 자랑했을 폭풍의 재림이란 방식으로 도발을 하는 것이니까.
놈이 수백년 전에 폭풍이란 이적을 행했던 그 장소에서 그 방식 그대로 재앙을 재현하여 놈의 신민들을 수몰시킨다? 절대로 참지 못할 것이다.
"그 고고한 자존심에 절대로 역천의 기수에게 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그 오만한 시선 때문에 절대로 역천의 기수가 지닌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놈은 역천의 기수가 지닌 힘의 실체, 그 거대한 세계의 의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그저 미지의 위협적이면서도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니 그저 걸리적거리기만할 미지의 위협은 무시하고 결국 그녀 자신에게로 칼끝을 돌릴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거대한 칼이 떨어져 만들어졌다고 하던가.
그 말마따나 결국 놈이, 전 일본이 그녀에게 달려들겠지.
마음속으로 놈이 보낼 사냥개들의 전력을, 그놈들을 치우고 또 치웠을 때 결국은 이곳에 놈이 당도할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그 시간은 그녀가 이 수맥에 충분한 힘을 모으는데 걸리는 시간과 맞닿아 있었으며, 동시에 계시에서 봤던 전란의 시작점과도 맞닿아 있었다.
왜놈들의 군세라는 목표, 그걸 집어삼켜 목적을 이워줄 폭풍이라는 수단, 노인의 당도라는 모든것을 끝장낼 절대적 제한이 한점에 모여 있었다.
그러므로 아슬아슬한 시간싸움이었다.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반드시."
2년 후인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그 시간이자 동시에 그녀가 충분한 힘을 모으는 시간이면서 또 그녀의 목숨을 끝장낼 수 있는 그 노인이 당도할 시간.
절대적 죽음과도 같은 그 노인이 두려웠지만 놈의 앞에서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저 가증스러운 하늘과 역겨운 왜놈들의 야마토혼을 동시에 상징하는 그 노인 앞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너라 최초의 천황이라는 자여."
논개의 혼을 이으려는 또한명의 기녀가 왜국 모든 신민과 모든 영토를 이끄는 장수(將帥)인 최초의 천황을 그녀 스스로를 던져 함께 남해에 빠트리기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저 남해는 논개의 남강보다 거대하지만 상대는 왜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자이니 익사시키기에 격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조금씩 떨려오는 손을 움직여 그녀는 정인이 남겨준 비녀를 매만졌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스승님.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녀의 스승이자 정인이었던 그남자와 저 먼 곳에서 해후할 때가 머지 않았다.
왜놈들을 집어삼킬 폭풍 정도의 힘을 내려면 그녀 자신의 모든 힘은 물론 생명을 지탱하는 진원진기마저 모두 바쳐야 했으니까.
***
카키자키 가문의 본거지인 오오다테(大館)성.
그 성의 주인이자 더 나아가 에조치 전부를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카키자키 요시히로는 그 생각에 금이 가도록 만드는 상황에 시름에 잠겨 있었다.
"허어, 어찌 파견된 모든 병력들이 단 하나도 돌아오고 있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이누를 약탈하라 보낸 수백의 병력중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누 놈들이 요즘 가문과의 거래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었다.
약탈대와 거래 모두 가문의 경제적 이익을 주는 활동들이었기 때문에 한창 돈벌이에 골몰하던 요시히로에게는 큰 걱정거리를 주었던 것.
"빨리 상경을 하기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할 터인데 이리 지연되면 안되는데."
거기에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이 지연된다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걱정거리,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걱정이 요즘 스멀스멀 올라왔다.
요 몇주동안 단 한번의 소요사태도 보고받은 적이 없었고, 그건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함을 보는 것 같아 불안했다.
"너무 이상할 정도로 아이누 놈들이 조용하다. 그럴 리가 없는 놈들인데."
짐승과도 같은 수준인 아이누들은 항시 자신에게 칼을 겨누며 수시로 반란을 일으켰던 존재였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거래'라는 이름의 강탈을 창칼을 들고 강요하는 것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카키자키 가문이 수시로 예방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주변의 아이누 마을들을 침공해 초토화 시켰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 초토화를 목적으로 한 예방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자, 사신(死神)이라 불렸던 한 무사를 떠올리자 요시히로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짐승의 핏줄은 결국 짐승인 법이지. 최대한 많은 짐승의 피로 그 더러움을 씻으면 야마토인으로 대접해줄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제 주인을 물었으니."
동족을 살해하라는 명을 알면서도 내려왔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어 가문의 인원들을 크게 상하게 만들고 도주해 버린 그 반역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히 분기가 치밀었다.
"떠돌이 낭인 따위는 언제든 밟아죽일 수 있다. 그리고 저 아이누 짐승들이 설령 봉기를 일으킨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밟아버릴 수 있다."
폭풍 전의 고요를 느껴 불안하다지만 최악이라고 해봐야 고작 짐승들의 봉기일 뿐이다.
야만인에 불과한 그 짐승 놈들의 무장이란 게 너무도 보잘것없었던지라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요시히로였다.
돌칼과 뼈칼을 들고 싸우는 놈들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면 그게 더 병신이지.
더군다나 제놈들끼리도 화합하지 못하고 단결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짐승들이니, 아마 봉기를 하더라도 고작 수백명 규모로 일으킬 게 뻔하다.
하지만 왜 이리 불안한 것인가.
요시히로 자신의 목숨을 전장과 정쟁에서 구해준 본능적인 육감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각하! 큰일입니다!"
그 불안함을 섬뜩하고 실체적인 두려움으로 바꿔줄 소식을 정찰을 나갔던 부하가 들고왔다.
"뭐라? 아이누 놈들이 집결하고 있다고?!"
"예! 모인 병력이 무려 이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천의 병력이라면 아무리 아이누가 보잘 것 없는 무장수준에 형편없는 전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인 숫자였다.
가문의 시조때 벌어졌던 고샤마인 봉기가 자신의 대에 재현되려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요시히로는 큰 중압감을 느꼈다.
그건 고작 봉기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천의 아이누가 모여들었고 그 엄청난 기세에 오시마 반도에 일본인들이 세운 12개의 관 중 10개가 넘어갔을 정도로 위험했었다.
그건 봉기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종식한 건 가문의 시조였던 카키자키 노부히로셨지.
시조께서 활약하며 가문의 시작을 알렸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 카키자키 가문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로지 수도로 상경하여 천하의 주인인 히데요시에게 정식 다이묘로 인정받고자 하는 데 가문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당장 병력을 소집하고 무장시킬 군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 상태로 전쟁을 벌인다면 설마 아이누 따위에게 지지는 않겠지만 큰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건 지금 자신의 최우선 과제인 수도 상경에 먹구름을 끼게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누 따위에게 고전한 자를 히데요시 관백께서 다이묘로 인정할 리 없으니까.
한참을 자주(自主)라는 명분과 수월한 승리라는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요시히로는 결국 실리를 택했다.
"난부(南部)와 쓰가루(津軽), 그리고 안도(安東) 가문에 전령을 보내라!"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져 있는 에조치와 도호쿠(동북) 지역.
도호쿠 지방의 최북단, 그러니까 쓰가루 해협의 일본쪽 방향에는 쓰가루 다메노부(津軽為信)가 당주로 있는 쓰가루 가문이 오우라(大浦)성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밑는 안도 와자스에(安東業季)를 당주로 하는 안도(安東) 가문이 히야마(檜山)성을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쓰가루 가문의 오른쪽 아래, 그리고 안도 가운의 오른쪽 위에는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며 도호쿠 지방의 사실상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난부(南部) 가문이 있었다.
무려 본성이 무가의 중심이라는 겐지(源)에 닿아있는 고귀한 혈족이자 그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호쿠의 중심.
난부 하루쓰구(南部晴継)가 현재 그 난부 가문의 당주이며 산노헤(三戸)성을 본거지로 두고 있었다.
물론 저들은 하나같이 카키자키 가문을 무시하고 제대로 된 다이묘로 대우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앙금은 있었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에조치는 오로지 카키자키 가문의 것이고 가문에서 온전히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동북지역의 다이묘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들 역시 히데요시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전공에 목말라 있을 것이니 그리 큰 대가를 내어주지 않더라도 참전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자신의 선택이 잘한 것임을 더욱 확신했다.
자신의 가문에서 낼 수 있는 병력은 현재 겨우 천명.
하지만 동북의 3개 가문은 그 역량이 자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소로 잡아도 쓰가루 가문에서 이천, 안도 가문에서 오천, 난부 가문에서 팔천을 댈 수 있는 역량을 지녔으니까.
저 세 가문이 함께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일만 이상의 병력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니 이천의 아이누따위는 금세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개별적으로 반항할 때에는 모기 때려잡듯이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엔 나름 자비를 베풀었었다.
소요를 일으킨 놈들의 전부의 목숨을 거두지 않고 일부만 처리한 채 나머지는 살려 왔고 예방전쟁을 벌일 때에서 몇놈만 본보기로 죽였을 뿐 저 먼 북쪽으로 쫒아내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포로 따위는 필요 없겠지. 이번 기회에 짐승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 놓으면 에조치가 평온해 질 것이다."
괜히 살려둬 봐야 이번처럼 모여 대들기나 할 뿐이니 이번에 집결한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그러면 인근 아이누 마을들은 전력의 공백이 생길 것이니 북상하여 가문의 영역을 확장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요시히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수컷 짐승들은 해충과 같아서 쓸어버려야 하지만 저 아이누 여인들은 팔면 꽤나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수도로 상경하는 자신의 모습이 다시 가까워진 것 같아 흡족했다.
***
다시 말하지만 전쟁은 템빨이다.
그리고 전쟁을 상대방은 RTS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주명에게는 핵&슬래시 RPG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더욱 현실로 굳어지게 만들어줄 물건이 범선과 함께 도착했다.
무려 세개 씩이나, 그것도 세트로.
[이름 : 팔지경('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1(경험치: 0/0.5)]
[효과 : 10% 확률로 아이템(기타) 강화(하루 1회)]
[세트 아이템 효과 :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5%]
[이름 : 천총운검('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1(경험치: 0/0.5)]
[효과 : 10% 확률로 아이템(무기와 방어구) 강화(하루 1회)]
[세트 아이템 효과 :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5%]
[이름 : 팔척경구옥('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1(경험치: 0/0.5)]
[효과 : 10% 확률로 아이템(장신구) 강화(하루 1회)]
[세트 아이템 효과 :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5%]
[아이템 강화 성공 시 기본 효과가 100%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실패 시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최대 강화 한도는 아이템 등급(일반 5/마법 10/희귀 15/유니크 20)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한 아이템 강화 주문서를 가지게 되었다.
밸런스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근데 확률이 아무리 세트 아이템 3개를 다 모은 효과를 받아도 겨우 25%인데 저거 가지고 사기라고 하기에는 무리라고?
그럴리가.
일단 당연히 레벨업 꼼수도 부린다.
['삼종의 신기' 세트를 모두 모아 '파괴불가' 속성이 부여됩니다.]
그리고 소모성 아이템인 강화주문서가 아니기에 가능한, 또한 세트 아이템 효과로 파괴불가가 붙었기에 가능한 셀프 강화를 건다!
기타 아이템인 거울은 거울로, 무기인 검은 검으로, 마지막으로 장신구인 구슬은 구슬로 될때까지 강화한다.
어차피 무려 파괴불가의 아이템이니 부서지지 않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강화가 되게 되어있다.
그 결과는?
[이름 : 팔지경+3('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64.5% 확률로 아이템(기타) 강화(하루 4회)]
[세트 아이템 효과 : 파괴불가,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20%]
[이름 : 천총운검+3('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64.5% 확률로 아이템(무기와 방어구) 강화(하루 4회)]
[세트 아이템 효과 : 파괴불가,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20%]
[이름 : 팔척경구옥+3('삼종의 신기' 세트 3/3)]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64.5% 확률로 아이템(장신구) 강화(하루 4회)]
[세트 아이템 효과 : 파괴불가, 아이템 강화 성공확률 +20%]
기본 효과였던 10% 성공 확률과 하루 1회의 강화 횟수, 그리고 세트 아이템 기본 효과였던 성공확률 +5%가 강화 세번 성공에 300% 뻥튀기 된 결과를 보라.
무려 성공확률 124.5%로 강화가 성공한다는 말이 아닌가.
이건 반드시 강화가 성공한다는 거다!
이 단계까지 왔다면 이제 스노우볼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이쯤되면 삼종의 신기가 고작 일반 아이템이라는 것을 아쉬워 해야할 지경이다.
안그랬으면 확정적으로 할 수 있는 강화의 최대치가 더 높았을 테니 말이지.
모두 최대치인 +5로 강화해 버리면 무기와 방어구/기타/장신구별로 각각 하루에 6번, 174%의 확률로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가 사기란 말인가.
"할배요."
[이름 : 거대한 검 '조부(祖父)'+20]
[레벨 : 300(경험치: 0/325)]
[효과 : '파괴불가', +2,400% 증가된 피해, +510% 명중률 상승, +40 모든 능력치 상승(최대치), +2,200% 피해저항(최대치)]
[모든 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추앙받는 검입니다.]
'조부'께서는 조상신으로 진화하셨다.
[이름 : 김주명]
[레벨 : 14(5,550/18,000)
[능력 : 힘 40(+20), 민첩 31(+20), 지능 30(+20)]
[기술 : 통솔(Lv11), 투척(Lv9), 검술(Lv35), 피아식별(Lv201)]
어떤 새끼든 다 오라고 해.
+20 '조부'가 내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