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73화 (73/77)

〈 73화 〉 72화 - 전초전(前哨戰)(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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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자키 요시히로는 오오다테의 항구를 가득 메운 수백척의 함선들을 보며 승리에 대한 확신이 굳어졌다.

“족히 일만 오천은 되겠구나!”

이 에조치 땅에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던 엄청난 대군이었다.

일만정도 모일 거라는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대군이 이곳에 모인 데에는 히데요시가 추진하고 있는 호조(北条) 가문에 대한 정벌이라는 큰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북방의 맹주로 군림하여 홀로 수만의 병력을 낼 수 있었던 강자가 호조 가문이었지만 사실상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의 힘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또 호조 가문만 정벌하면 일본 통일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런 압도적인 전력차를 두고도 가만히 있을 히데요시가 아니었다.

1590년 봄부터 얘기가 돈 히데요시의 호조 정벌이 점차 가시화 되자 한때 호조 가문의 발치에 엎드려 맹주로 받들던 동북지방 다이묘들은 금세 태도를 바꾸고는 어서 정벌에 동참하여 공을 세우고 싶어서 몸이 달아올랐다.

히데요시가 무려 이십만의 병력을 동원할 거라는 확실한 첩보를 듣고는 이미 누가 승리할지 파악이 끝났기 때문에 어서 빨리 숟가락을 얹고 그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했던 것.

하지만 전국시대의 치열한 전장으로부터 반걸음 정도 떨어져 있어 고작 수천 규모의 국지전이나 익숙했던 동북지방 영주들은 도합 삼십만에 이르는 저 거대한 규모의 대전쟁에 나가 자신의 부하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불확실함을 해결하기 위해 난부, 안도, 쓰가루 3개 가문에서는 최대한의 전력을 뽑아내 이 에조치로 온 것이다.

아이누 따위는 금방 제압할 것이므로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니 이번의 연습전쟁에 전력을 투입한다고 본 전쟁인 호조 정벌에 늦을 염려따위는 없다.

또 아이누 상대로 큰 피해를 입을 리 없으니 부하들에게 안전한 실전경험을 더해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누라지만 그래도 수천이 모였으니 그 수급을 모으면 적어도 겉으로 보이기엔 히데요시에게 올릴만한 공훈이 된다.

위의 세가지 이유로.

거기다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난부가문에서는 무려 당주인 하루쓰구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찾아온다고 한 것이 다른 다이묘들을 자극해서 상승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아이누 놈들을 토벌하는 데 딱 일주일이면 충분하겠군 크하하하!”

놈들을 찾고 그곳까지 가는 데 오일, 쳐부수는 데 반나절, 전장을 정리하는데 하루 반.

요시히로가 예상하는 토벌기간이었다.

분기를 못이기고 이천이나 모인 놈들이니 도망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선택지에서 지워 버렸다.

분명 멍청하게 정면에서 맞상대하려 할 터이니 찾아가 쳐부수면 그만이었다.

그런 생각에 카키자키 요시히로는 가신에게 명령해 가문의 창고를 활짝 열 것을 지시했다.

“술과 음식을 아낌없이 풀어라!”

절대로 장기전을,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미 이겨버린 전쟁이라는 생각에 가신들도 별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특히나 아이누 따위를 상대로 오래 끌 이유도, 오래 끌릴 가능성도 없다.

술과 음식을 풀어 최대한 단시일 내에 대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속공으로 바로 쓸어버리는 것이 결국 가난한 카키자키 가문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끄덕임이기도 했다.

가문의 병력까지 합쳐 1만 6천에 달하는 대병력의 보급을 대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동북지방의 영주들이 출정할 때 보급을 챙겨 왔다고는 하지만 분명 카키자키 가문에서 대어주어야할 부분도 존재했고, 또 원군을 청한 게 가문이니만큼 거부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코쿠다카로 1만석도 되지 않는 가문의 경제력으로는 이대로 저들이 일주일만 주둔을 하더라도 파산할 판이었다.

아이누를 단지 일주일만에 때려잡겠다는 요시히로의 대담한 구상은 오만함에서 나온 게 아니라 초조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정말로 일주일만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가문은 파산하고 평민 신분이 되어 저 바다 너머의 일본 본토로 쫒겨가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호탕한 모습을 가장하는 요시히로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짐승들이 장기전으로 나올 리가 없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야!'

***

아이누들이 집결해 있는 해안가 근방에 위치한 작은 구릉에서 한 젊은 청년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의욕은 넘쳤지만 청년의 검은 너무도 어설프고 어색해서 도무지 힘이 실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후우...”

검을 몇번 휘둘러본 청년 카무이마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과시간의 고된 훈련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일과후에 따로 이렇게 연습은 했음에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검술 실력에 너무나 답답했던 것.

“이 사선 내려베기란 동작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곰 고기를 굽는 자’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준 카무이마시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신이라는 뜻도 있지만 곰이라는 뜻도 되는 단어가 카무이.

아들이 곰도 때려잡아 고기로 구워먹은 정도로 강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지어준 이름이지만 정작 사슴도 때려잡을 자신이 없었다.

야생에서 생존하고 이것저것 기괴한 것도 먹어가며 살아남는 거라면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무언가를 해하는 전투기술에서는 너무도 잼병이었다.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던 충격이 너무도 컸던 나머지 그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의 사촌형의 증오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놈이 생각나자 저절로 이가 갈려왔다.

“개같은 새끼. 어?”

근데 바로 눈앞에 그 개같은 놈이 나타나 버려 그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원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창피함에 분노가 일깨워진 카무이마시는 오른 손을 들어 사촌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꺼져.”

손아귀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 놈을 친 후 들끓는 분노을 내비치며 저리 가 버리라고  거칠게 말했지만 쓰네히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네 아이누의 저승사자 씨? 역시 네놈의 쓰레기 같은 본성은 절대로 감춰질 수 없는..응?”

쓰네히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며 쓰레기를 보는 조롱 섞인 눈빛으로 쏘아보았던 카무이마시는 이어진 놈의 행동에 당황해야 했다.

쓰네히라는 아무 말 없이 검으로 어떤 동작을 반복해서 펼쳤는데 그건 카무이마시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해 계속해서 막혔던 사선 내려베기 동작이었다.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다.

수천명의 아이누 민병대를 일일이 지도할 수 없어 140명의 해병대원이 각자 100명~150명씩 맡아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홀로 수백을 가르치는 교습이 수월하게 될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이론이 아니라 몸을 직접 움직여 체득해야 하는 검술 교습이었으니.

그저 기초체력과 무기에 대한 익숙함을 높여줄 정도만을 가르치는 이들이 기대했고 가르침을 받는 이들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원수같은 왜인들에게 한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 이상을 기대하는 아이누인도 있었고 카무이마시도 그중 하나였지만 그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몸 쓰는게 잼병이라 그 누구보다도 떨어졌다.

앞서는 의욕에 어떻게든 실력을 늘려 보겠다고 몇일 전부터 일과후에 이렇게 따로 혼자 연습을 해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자신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

그런데 저 원수놈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모습에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어! 저런 식으로라면 할 수 있겟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핵심이 되는 부분을 몸으로 강조해 가며 반복해서 동작을 시연해 주는 쓰네히라 덕분에 자신같은 몸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

그래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들어 놈이 보여줬던 모습대로 저 원수놈을 향해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동작도 익힐겸, 그리고 원수놈에 대한 분노도 표출할 겸 나온 행동이었다.

검을 내리치면서 본인도 아차했지만 저 원수놈의 실력이 출중하다니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군을 향해 칼을 휘두르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주제에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사촌형인 쓰네히라는 자신이 욕설은 물론 침을 뱉거나 때리는 등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저 묵묵히 받아줄 뿐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감정이 실렸던 탓인지 큰 힘이 들어간 일격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 힘을 제대로 검격에 싫을 수 있었기에 강렬하기 그지없는 사선베기였다.

“...빌어먹을.”

하지만 자신의 성공적인 검격을 고작 반걸음의 움직임으로 손쉽게 피한 뒤 잘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쓰네히라를 보며 카무이마시는 이를 악물고 재차 사선 내려베기를 시도했다.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강한 힘이 실리고 있었다.

"죽어! 죽어버리라고!"

그리고 검격에 실리는 감정이 더욱 강해지며 카무이마시 본인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살의가 끓어 넘쳤다.

자신의 검격으로 놈의 목숨을 끊어버리며 복수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그런 것들이 마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 같은 효과도 더해주며 점점 더 그의 동작은 날카로워지고 치명적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쓰네히라의 여유로운 숨결과 그가 단 한번도 공격에 스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허억, 허억...”

그렇게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검을 휘두르자 그는 결국 거친 숨을 토해내며 대자로 뻗어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꽤나 높은 수준으로 올라온 자신의 내려베기 실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고 있었다.

쓰네히라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도달한 것인지 녀석도 역시 웃고 있었다.

“이 개..”

원수놈이 자신 앞에서 웃는다는 사실에 열이 뻗쳐 욕을 내뱉으려던 그는 쓰네히라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분노와 아직까지 인정할 수 없는 어떤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카무이마시는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꺼져.”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말이었지만 들끓는 분노에 더없이 거칠기 그지없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말은 뭔가 맥이 풀려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쓰네히라는 말없이 반대편으로 돌아 가버렸고 카무이마시는 인정하기 싫은 어떤 감정을 마음속에서 비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왠지 놈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 같다는 느낌에 화가 치밀면서도 뭔지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

남쪽의 바다에서 다가오는 짠내나는 바다내음은 봄의 완연한 따뜻함과 함께 유달리 비린내가 심해 마치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기에 주명은 다가올 전투에 대한 생각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고, 그 피비린내가 자신의 주위에 모여든 이들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주명은 다카모리로부터 훈련의 진척도에 대한 보고를 듣고는 저도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이대로는 아이누 사람들 다 죽으라고 내모는 꼴이야. 차라리 내가 다 쓸어버릴까? 아니야, 그럼 의미가 없어.'

아이누인들이 중심이 되어 적들을 물리쳐야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전략적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저들을 임진년의 전쟁에 동원하고 고유한 언어가 있음에도 마치 이물질을 침투시키듯 조선어를 널리 퍼트릴 생각인 이기적인 존재가 바로 저 아이누 사람들이 카무이라 숭배하며 따르는 자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이 그나마 내켜하는 최소한의 대가가 '아이누의 승리'였다.

본래의 색을 잃어가며 점점 아이누라는 자주성과 정체성를 훼손당할 대가로 그들에게 제 손으로 일군 값진 승리를 쥐어줘야 했으니까.

자신이 나서 빠르게 전쟁을 끝내면 한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누 사람들이 살 수 있겠지만 그런 '주명의 승리'로 살아남아 봤자 앞으로 그 누구도 아이누가 아닌 주명에게 복속된 떨거지 민족 정도로 기억해 줄 것 아닌가.

설령 그들이 정체성을 잃게 되더라도 아이누라는 이름 만큼은 영광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멋진 승리를 아이누라는 이름에 주고 싶었다.

더 높아진 삶의 질을 아이누 사람들에게 누리게 해주는 것은 자신의 백성이니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대가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근데 이런 식으로라면 저 흉악한 왜놈들을 상대로, 그것도 최소 다섯배 이상의 병력차이가 나는 대군을 상대로 멋진 승리는 커녕 대패할 확률이 높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주명은 결국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정했다.”

단병접전에서 놈들을 꺾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산지가 많은 에조치(훗카이도)의 환경과 사냥을 주업으로 하던 아이누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려해 내린 결정은 병종에서는 원거리 병종이고 전술에서는 유격전이었다.

먼저 병종.

총포를 쥐어주기에는 이제와서 한계가 있고 또 활은 그 자체로 보조무기로서의 역할만을 할 수 있는 병기 자체의 한계가 있으니 원거리 병종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장궁이었다.

체인메일로 무장한 당시 프랑스의 기사들을 궤멸시켰던 웨일스 장궁의 위력은 갑옷마저도 관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대로된 판금갑을 관통할 수는 없지만 이 동방의 갑옷 수준이라면, 거기에 좋은 철이 나지 않아 철판을 대는 면적이 타 국가들에 비해 적은 편인 이 일본의 갑옷이라면 충분히 관통할 수 있다.

활이라는 게 숙련도가 많이 필요한 물건이지만 원래 생업 자체가 사냥이었던 아이누 사람들이니 조준사격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화망사격을 할 수준으로는 금방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재료가 되는 목재인 유럽 주목(Baccata)은 일전에 판금갑을 구할 때 하야타카로부터 덤으로 받은 적이 있으니 스캔하여 코드를 알아낸 뒤 콘솔 명령어를 이용해 톤 단위로 생성하면 된다.

그리고 장궁을 만드는 건 재료가 되는 주목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전혀 어려운 공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전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 창과 칼을 사용하는 무예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아이누 사람들이지만 생활이 사냥이고 채집이었던 그들은 체력과 지구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산이 많은 훗카이도의 자연환경과 조합하여 원거리 무기로 싸우고 단병접전을 피한다는 조건하에 도출해 낼 수 있는 전술은 유격전 하나였다.

'롱보우로 짤짤이를 넣으며, 물론 숙련도가 낮으니 수천 단위로 매복했다 화망사격을 하는 식으로 큰 짤짤이를 넣어야지.'

그런식의 전술이 가능한 이유는 자신은 사실상의 맵핵인 피아식별 스킬이 있느니까.

'다만 짤짤이는 짤짤이일 뿐이다.'

유격전은 적을 분멸할 수 있는 충격력이라는 게 전무하다시피한 전술이라 기본적으로 장기전을 깔고 들어가야 한다.

전쟁은 속공(速攻)이라는 손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전술이지만 압도적인 전력차와 기량차이를 생각하면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형에 익숙하다는 이점은 카키자키 가문이 있으니 의미가 없고 보병의 속도차이란게 거기서 거기니 잘못하면 포위되어 쓸려버릴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놈들을 훗카이도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렇다면 또 연동이 되는 것이 청야전술(淸野戰術).

'어차피 아이누 사람들을 모아 통합하려 했으니 그들을 이끌고 훗카이도 북서쪽의 해안까지 이동해야 한다.'

지금 일본의 훗카이도 내 최대 도시인 삿포로가 녹둔도와 항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곳에 도시를 새로 세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계획을 좀 더 빠르게 더 거친 방법으로 실행하게 된 것이다.

'내게 모인 이천의 아이누 사람들이 속한 부락들은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겠지만 그 외에 지역은 강제로라도 데려갈 수밖에 없다.'

입맛이 썼지만 청야전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놈들의 거점인 오오다테로부터 삿포로 사이의 200Km 거리 사이에는 아무런 보급도 받을 수 없어야 했다.

주명이 있는 이곳은 적들이 있을 훗카이도 최남단의 오시마반도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동쪽 해안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해안선이 동쪽으로 뻗기 시작하면서 나오는 지금 일본의 아부타(虻田) 지역이었다.

오오다테로부터 이곳 아부타까지는 대략 90Km정도 거리고 이미 그 거리에는 카키자키 가문의 잦은 약탈로 초토화가 되었으니 굳이 가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훗카이도라는 섬에 배를 타고 온 놈들이니 분명 걸어오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올 것이니 실질적으로 여기서 집결지인 삿포로까지 110Km정도만 소개하면 될 일이었다.

아마도 훗날 아부타(虻田)라 불릴 이곳에서 상륙하는 놈들을 상대로 첫 전투를 벌이게 될 수도 있겠지.

초전을 승리로 장식해야 수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제발 놈들이 그래주기를 주명은 마음속으로 바랐다.

'상륙전에서 장궁맛좀 보여주게 제발 이리로 배타고 와라.'

가능하다면 상륙하는 놈들에게 큰 피해를 준 뒤에 물러난다.

그게 안 되더라도 일단은 물러나 보급을 절대 받을 수 없는 수백킬로미터의 산지에서 기동하며 장궁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누적시킨다.

아이누를 손쉽게 짓밟으려 최대한 많은 병력을 끌고왔을 것이니 병력이 아까워서라도 놈들에게는 사지가 될 산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굴곡이 심한 산지를 이리뛰고 저리뛰며 전선을 늘이게 되면 안그래도 연합군이라 결속이 단단하지 못한 저놈들은 필연적으로 나뉘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면 분명 공세종말점에 도달함은 물론 사기와 전투력이 떨어져 있을 놈들에게 정예 무사들로 이뤄져 큰 충격력을 가질 수 있는 해병대를 활용해 각개격파를 시도한다.

그렇게 싸우기로 결정했다.

결정이 내려지자 주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카모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카모리! 재료를 내어줄 테이니 유카르 대원들 중 손재주가 좋은 500명 정도 뽑아 내가 일러주는 물건을 최대한 많이 만들게 지시해라."

"예!"

주명은 웨일스 장궁의 설계도를 최대한 자세하게 그린 것을 다카모리에게 여러장 나누어 주었다.

따로 문자로 쓰여있지 않아도 그림만 보고는 제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적인 설계도였으니 역사학도로서 각종 무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명의 잡지식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000명의 대원들은 100명의 해병대원들과 함께 각자 출발한 마을로 흩어져 부락민들을 내가 일러주는 곳으로 집결시켜라. 이들은 나미에가 이끌 것이다. 그녀에게는 내가 곧 따로 설명하지."

나중에 나미에에게도 동일한 내용의 부탁을 할 예정이었다.

동료인 그녀에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먼저 지휘계통을 활용해 다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우선이니 부하였던 다카모리에게 먼저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리 말하고는 주명은 간략하게 표시된 훗카이도의 지도를 다카모리에게 건네주었다.

그 지도에는 오오다테와 삿포로의 위치에 큰 표시가 되어 있었으며 간략한 지도였지만 그 사이에 있는 경로에는 산맥과 강 같은 주요 지형정보는 아주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절반이나 되는 가장 많은 인원을, 그리고 해병대 대다수를 할당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할지 걱정이었다.

아무리 서남부에 국한된 소개령이었다지만 이 넓은 훗카이도에 흩어져 살고있는 수만명의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이었다.

쉬울 리가 없어 반드시 보완책이 필요했고 그건 주명의 입밖으로 나온 다음 말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카모리 너는 해병대 30명과 남은 500명의 유카르 대원들을 이끌고 하루 뒤에 출발하여 아직 남아있는 아이누 부락을 집결지로 데리고 가도록."

나미에가 함께하며 가장 많은 인원을 올려보낼 1차와 다카모리가 올라갈 2차로 나누어 틈새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

다만 지금까지 나온 명령 중 주명이 어디에 간다는 말이 없었으니 결국 주명은 이곳에 남아 장궁 제작을 감독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저 칼잡이로 살아온 터라 대규모로 집결지에 모여들 아이누 인들을 어떻게 관리를 해야할지 막막한 마음이 든 다카모리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올렸다.

"주군, 집결지에 모인 이후는 어떻게 할까요?"

그런 다카모리의 고민에 공감한다는 듯 주명은 씨익 웃어보이며 걱정하지 말라고 등을 두드려 주곤 말했다.

"최대한 많은 군량을 내어줄 테이니 몇일만 그곳에서 버텨라. 장궁이 만들어지는 대로 내가 그곳으로 갈 것이다.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200Km면 자신에겐 전력질주로 반나절이다.

초월적인 민첩성 덕분에 말의 속도마저도 뛰어넘으며, 그 이상으로 괴물같은 힘 덕분에 쉼 없이 달릴 수 있는것이 가능한 자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궁을 만드느라 함께있던 10명의 해병대와 500명의 유카르 대원들에게 장궁을 지키도록 한 뒤 본인이 반나절만에 그 집결지로 뛰어가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비축분과 명령어를 활용해 생성할 것들을 활용해 모인 유민들이 쓸 물자를 댈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랜 부족단위 생활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그곳으로가 잘 다독이며 질서를 잡을 필요도 있었다.

"그곳에서 질서가 얼추 잡히면 일부 병력을 치안 유지를 위해 남겨놓고 나머지 모든 병력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

자신이 오오다테로 달려가 본 바에 따르면 놈들의 대군이 그곳에 당도한 게 오늘 오후였으니 놈들이 미적거리며 정비를 한다 하더라도 고작 4 ~ 5일만에 거기까지 끝마쳐야 했다.

주군이 말한 전투라는 단어에 다카모리의 눈이 빛났다.

주군과 함께했던 전투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으니 전투라는 말은 곧 승리라는 말과 동의어였으니 그에대한 기대감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주명의 지시를 들은 다카모리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훗카이도 동남쪽의 해안가에 있던 수천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산더미처럼 쌓인 특이한 모양의 나무를 잘라 활 모양으로 깎아대는 이들이 수백이요,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검사의 지휘 하에 지도를 앞에두고 경로를 정하느라 시끌벅적한 이들이 수천이었다.

그리고 그들 무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누인들은 부산하게 움직임으로써 두려움을 겨우 잊으며 제발 자신들이 카무이라고 부르는 저 강대한 존재가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그래서 그 부산함 속에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마다 가족 한둘은 왜인들에게 잃었고 가진것을 죄다 빼았기거나 빼앗기는 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푼돈만을 받고 내어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땅의 아이누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으니까.

내몰리고 내몰린 다급함이 그들을 카무이의 깃발이 있다는 이곳으로 이끌었다.

카무이가 현신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그라들던 희망을 가지고 모여든 이들에게 주어진 단 마지막 한번의 기회.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건 이미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는 멸족 아니면 노예의 삶일 뿐.

카무이가 일러준 저 북쪽의 바닷가에 위치한 집결지로 아이누 사람들이 죄다 모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전투에서 패한다면 그곳에 바닷가에 인접해 있다는 사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가 있다고 하여 그들을 지켜주거나 도망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니까.

또한 저 바다는 흉악한 왜인들이 몰려오는 공포의 바다였으며 자신들에게는 그저 노예로 끌려가는 족쇄를 매달게 되는 그런 억압의 바다였을 뿐이니 바다는 저 야마토 민족이라 부르는 왜인들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한때는 어린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너무도 즐거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는 저 푸른 바다는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고나서는 마치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왜인들의 칼을 보는 것 같아 도무지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왜인들 때문에 어떤 아이누 아이도 바다에서 놀지 못한다.

아니, 오시마 반도 가까운 곳 사는 그 어떤 아이누 사람들도 함부로 바다에서 살지 못한다.

그래서 산과 벌판을 누비며 유격전을 벌인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납득했다.

저 왜인들과 싸워야 한다면 그래도 자신들의 터전이며 익숙한 공간인 산에서 결판을 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저 깊고도 푸른 왜인들의 바다에 뒤지지 않을 만한 것이라고는 초록의 높은 산일 뿐.

그들이 왜인들의 횡포에 어쩔 수 없이 평지에서 내몰려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산은 아직 그들에게 남아있으니, 삼켜질 것 같은 바다의 깊이에 두려움 느끼는 대신 드높은 산의 높이에 용기를 얻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싸워 보리라.

저 카무이께서 진실로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거대한 산과 같은 분이라면 바다마저도 이길 수 있겠지.

죽음 아니면 영광.

이 전쟁터가 그들의 무덤이 되어 다 죽던가, 아니면 영광의 땅이 되어 다시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주거나.

왜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천진난만한 얼굴로 하루종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랬던 것처럼, 아이누 아이들은 다시 바다에서 뛰어놀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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