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74화 (74/77)

〈 74화 〉 73화 - 전초전(前哨戰)(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가죽과 물고기 비늘로 지은 옷을 입은 수십의 아이누 사람들이 험한 산길을 헤치며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주위로 전신갑옷으로 무장한 해병대원 하나와 커다란 활을 등에 매고있는 유카르 대원 다섯명이 마치 앞선 사람들을 호위하듯 따라오고 있었다.

유카르 대원들은 해병대원과 함께 주명이 의도했던 대로 소속된 부족의 인원들을 이끌고 집결지인 삿포로로 가는 중이었다.

몇일동안 이어진 고된 여정에 사람들의 표정은 지쳐 있었지만 그들을 이끌어 주고 호위해 주고 있는 그 다섯의 부족원들을 믿었기 때문에 마냥 절망적인 얼굴은 아니었다.

가운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중 모자(母子)로 보이는 두명이 지친 기색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언제까지 더 가야해?”

어린 나이에 먼 거리를 움직여온 소년은 너무도 지친 나머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보챘다.

“조금만 참아. 곧 바다가 보일거야. 그러면 더 걷지 않아도 된다고 족장님이 그랬단다.”

소년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달래려는듯 그녀의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족장을 고개로 가리키며 말했다.

두 모자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부족원들 주위를 둘러싼 유카르 부대원 다섯명 중 추격자가 있을 경우 가장 위험할 수 있는 후위를 책임지려는 듯 맨 뒤에서 따라오며 있는 선 굵게 생긴 중년인 대원은 이들의 족장이었다.

그리고 부족원들의 큰 믿음을 받고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리로 가면 정말 카무이님이 있어?”

“....그래. 족장님께서 말씀하신 거니 있을 것 같네.”

카무이란 게 진짜 있는지는 소년의 어머니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족장이란 사람은 믿었다.

그정도로 부족원들에게 신뢰를 받는 족장이었기에 그로부터 전설에나 등장하는 카무이가 내려와 현세에 강림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스갯소리로 취급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의심 반 믿음 반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은 카무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족장의 말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족장 아저씨가 그러는데 카무이님이 우릴 구해줄 거래! 카무이님에게 저 일본 사람들은 상대도 안된대!”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자신들을 핍박하는 왜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득 품고있는 아이누 아이들은 카무이가 있다는 말에 너나할것없이 즐거워하며 왜인들을 그분이 무찔러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마치 현대의 아이들이 답답한 현실을 시원하게 헤쳐 나가는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듯이 말이다.

“...엄마도 그러길 바라지만 아직 모르겠어.”

물론 소년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어른 부족원들은 카무이란 존재에 대해 그다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정든 터전을 놔두고 움직이는 것도 카무이를 믿는다기 보다는 그의 말을 전해준 족장을 믿어서 그런 것이었다.

이들이 이 먼 여정을 나서도록 종용한 자이면서 사람들이 그리 하도록 결심하게 만든 자는 카무이가 아니라 바로 저 뒤에서 혹시 다가올 지 모르는 왜인들의 약탈대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후열에서 연신 주변을 경계하며 따라오고 있는 족장이었던것.

고개를 돌려 이미 떠나온 정든 터전이 있는 방향을 물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려 했다가도 든든한 버팀목처럼 뒤에서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는 족장의 모습에 안도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존재이자 마을의 기둥인 족장이지만 그 자신은 큰 불행을 겪은 사람이었다.

몇달전,

아내를 잃고 그에게 남겨진 삶의 유일한 의미였던 하나뿐인 어린 딸이 아이누 마을을 약탈하러온 왜인들에게 잡혀가 버렸다.

딸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왜인들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난자당했음에도 살아남은 강인한 족장이었지만 살아남았음을 기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날 평소의 침착한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실신할 때까지 몇날 몇일을 통곡했다.

하지만 그 후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툴툴 털고 일어나 묵묵히 족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정도로 듬직하고 책임감 강한 사내였다.

딸을 잃은 상처와 상실은 자신의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 영원히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부족원들을 향한 책임감에 견디고 감내하고 살아왔던 것.

그 책임감 강한 사내가 부족을 두고 뛰쳐나가게 만든 자가 바로 카무이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도다!"

카무이가 근처에 당도했다는 소문과 그가 행했던 위업에 대해 전해듣고는 족장은 격동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바로 무기를 들고 뛰쳐나갔던 것이다.

카무이의 당도는 그에게 '싸움'의 시작을 의미했다.

신적인 강함을 지닌 카무이란 존재가 정말 사실이라면 왜인들을 상대로 복수를 위해 '싸움'을 벌일 수 있으니까.

사실 워낙 왜인들에게 맺힌 게 많았던 아이누 사람들은 누구나 놈들에게 이를 갈며 복수할 기회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빼앗기고 잃고 당해왔던 수백년의 긴 세월에 대한, 수만의 거대한 원한에 대한 핏값과 죗값을 묻고 싶어서.

그래서 왜인들과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기꺼이 한목숨 내놓고자 달려올 의지가 있는 이들이었으나 그동안 숨죽여 싸움을 피했던 것은 개죽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고작 뼈와 돌로 무기를 만드는 자신들과는 달리 막강한 철제무기를 지닌 저 왜인들과는 애초에 싸움이라는게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마치 짐승처럼 아이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기만 하는 싸움을 싸움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숨죽이고 있지만 분노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기만 있다면 모든 아이누가 활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싸울 수 있다는 확신만 누군가가 불러일으켜 준다면 기꺼이 들고 일어나고 싶다는 열망은 마치 물기 하나없이 마른 장작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마냥 아이누 사람들의 마음에 팽배해 있었고 때마침 그걸 태워줄 희망이란 불꽃을 일으키는 카무이란 존재가 이땅에 강림한 것이다.

전설에나 나올법한 신적인 존재 카무이.

처음 카무이란 존재가 나타나 홀로 수십의 왜인을 쓸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누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의 헛소문으로 치부했을 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식들이 쌓이고 쌓이며 카무이의 실존과 실력을 증명하기 시작하자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해안가의 동포들로부터 들려오는 그분의 무용담이 하나둘씩 전해지는 등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한 증거들이 계속해서 더해지자 아이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카무이가 맞다면 더이상 왜인들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이누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 강한 존재가 자신들과 같이 있으니 이제는 싸울 수 있다는 희망에 그동안 눌러왔던 저항의 불꽃들이 하나둘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족장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은 제일먼저 카무이에게로 뛰어갔다.

그래서 주명에게 처음부터 수백의 아이누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고 그들을 활용해 종국엔 이천에 달하는 아이누 전사들을 소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카무이께서 앞장서서 신적인 힘으로 적을 쓸어버려도 좋지만 부디 자신들에게도 저 간악하고 강대한 왜인들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아이누 사람만 무참히 일방적으로 살육당하는 지금까지의 그런 끔찍한 방식이 아닌 서로 대등하게 피를 흘리고 같은 목숨값을 지불하는 치열하고 정당한 대결이라는 의미인 '싸움'이 왜인과 아이누 사람들 사이에도 성립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수백년동안 패배에 익숙해져 사냥당하는 짐승들에 불과했던 아이누 사람들에게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조차도 그저 꿈에서나 가능한 공상에 불과했으니.

그런데 그 공상이 현실이 되고 정말 '싸움'이 가능해 지는 것 이상을 카무이께서는 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승리.

항상 패배해 왔던 아이누 사람들과 너무나도 멀었던 것이기에 이제는 그 의미마저 잊어버릴 것 같은 그 단어의 의미를 아이누 사람들이 자각하고 마음속에 열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족장 역시 거기서 승리에 대한 희망을 봤다.

단 일격으로 거대한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그분의 힘, 또 왜인들이 지닌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훌륭한 무구를 지닌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친위군(해병대)까지.

카무이께서는 자신들이 왜인들과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 주었고 그 훈련 자체는 주명과 해병대 생각에 정말 기초중의 기초였지만 아이누 사람들에게는 그런 훈련마저도 새로운 세상이었다.

진작에 이런 훈련을 받았다면 왜인들과의 싸움이 조금이라도 덜 일방적이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아이누 역사상 그 누가 아이누 사람들을 이리 많이 모아서 훈련을 시킬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카무이가 지급을 약속한 갑옷들의 견본을 몇개 살펴본 자들은 그 놀라움 품질에 경악했다.

해병대원들이 입고있는 판금갑보다는 못하지만 조선이라는 곳의 두정갑 정도면 갑옷 중에서도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출중한 물건이니 고작 뼈갑옷 정도만이 방어구의 전부였던 아이누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은 컸던 것.

거기다 마치 자신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마치 자신들을 위해 존재했던 것 같은 저 너무나도 훌륭한 성능의 거대한 장궁은 무엇이란 말인가.

갑옷마저도 뚫는 장궁의 강력함을 본 아이누 사람들은 그동안 철제 갑옷을 입고 자신들을 농락하며 양데 사이를 휘젓듯이 학살했던 저 왜인들의 심장을 화살로 꿰뚫어 죽여버릴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되자 미친듯이 환호했다.

아이누 역사상 그 누가 이런 훌륭한 갑주와 무기로 사람들을 무장시킬 수 있었단 말인가.

아이누 역사상 왜인들에게 처참히 당할 뿐인 그저 숫자만 많은 '무리' 말고 왜인들과 대적이 가능한 잘 무장한 '군대'가 등장했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지금 이 에조치에 아이누 사람으로 이뤄진 군대가 창설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카무이님이 오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왜인들에게 딸아이가 끌려가 노예로 팔려간 이후 그는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무기력함에 삶의 의미를 잃고 그저 하루하루만 책임감에 떠밀려 살아갈 뿐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딸을 볼 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모질게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그 희망은 점점 빛이 바래져만 갔고 이제는 마음속에 딸아이를 묻어두려 했는데...

카무이께서 처음 자신들이 모였을 때 해주었던 말이 그를 일깨웠다.

"놈들에게 터전을 빼앗겼는가? 놈들에게 가족을 잃었는가?! 여기 있는 모두는 다들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상처를 지닌 이들일 것이다."

카무이의 말에 딸아이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울컥했고,

"그 비극을 만든 왜인들은 스스로 개척자라 말하며 이땅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빼앗으려 온 놈들이다. 놈들은 이땅의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아이누는 사라져야 하고 사냥당해야 하는 짐승이라고 말한다!"

그분의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묻겠다. 이땅은 누구의 것인가?"

"당연히 우리 아이누의 것입니다!"

그분의 물음에 주변의 수천 동포들과 한입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저 무도한 왜인들에 의해 짓밟혀 왔던 진실을 목놓아 외쳤다.

"아이누는 사냥감인가? 사라져야할 존재인가?!"

그리고 왜인들이 수도없이 창칼로 던져왔던 저 질문.

"아닙니다!!"

그동안은 압도적인 전력차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으로 긍정했던 저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강한 부정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이누는 이땅의 주인이자 당당한 전사들이다! 나 카무이의 옆에 서 있는 너희들은 이땅의 주인이자 강인한 전사들이 분명하니 반드시 저 왜인들에게 아이누의 힘을 보여주자!!"

"우와아아!"

그분의 말에 심장이 격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딸아이를 잃어버린 후로 죽어있던 심장이 그날처럼 다시 요동쳤다.

'아이누의 힘을 일깨워준 분이다. 반드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강조하셨던 자신들의 힘은 바로 어깨에 둘러맨 장궁에서 나오는 것.

이 거대한 활을 든 아이누는 보통 아이누가 아니라 주인이자 전사이며 왜인들을 사냥할 사냥꾼일지니 반드시 카무이를 따라 승리할 것이다.

그는 활을 매만지며 그때의 격동읠 다시금 떠올리며 카무이를 불신하는 듯한 소년의 어머니에게 들으란 듯이 끼어들어 소년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녀석의 말이 맞다. 카무이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다.”

“...”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족장이 확인시켜 주자 소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좋아했지만 녀석의 어머니는 아직도 불신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이 카무이님에게 본 희망을 그대로 재현해 보이고 싶었다.

“일단 이 활을 보겠나?”

“엄청 거대한 활이네요.”

활은 재료를 가리지만 화살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기왕 삿포로에 사람들이 모이게 된 거 그들을 시켜 최대한 많은 화살을 생산하기 위해 견본으로 선발대 일부에게 쥐어준 장궁이었다.

이걸 가지고 딱 맞는 크기의 거대 화살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내라고 일거리를 쥐어주고 그 대신 후한 식량을 내어줄 생각에서 그런 것이었다.

거의 사람 키만한 거대한 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묵직한 위압감을 주었고 적어도 카무이라는 자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활은 진짜라고 소년의 어머니는 생각했다.

“활로는 왜인들은 갑옷을 어찌할 수 없어요. 제 남편도 평소 자주 쓰던 활로 저항해 보았지만...”

남편을 왜인 약탈대에게 잃었던 그녀는 왜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사냥꾼인 남편이었지만 활 따위로는 철갑주로 무장한 그들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고 그날 그녀는 미망인이 되어 버렸고 활이라는 무기에 대한 평가는 최악으로 상처처럼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거대하기만 할 뿐인 화살이 그 왜인들과 싸울 때 얼마나 보탬이 될 지 회의적이었다.

"보거라."

족장은 그 한마디만을 말한 후 어깨의 화살통에서 거대한 화살 하나를 꺼내 활시위에 매었다.

활을 당기는 족장의 드러난 어깨와 팔이 부들거리며 핏줄마저 툭 튀어나오는 모습에서 얼마나 큰 장력을 지닌 활인지 가늠이 되었고, 활시위를 족장이 놓자 쏜살같이 튀어나간 활은 그 장력이 어떠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게 되는지 보여주었다.

"세, 세상에! 바위를...바위를 뚫고 들어가다니."

저 멀리 공터에 있는 단단해 바위를 한참이나 뚫고 들어간 화살을 보며 싸움에 문외한인 소년의 어머니조차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활이라면 왜인들의 갑옷을 충분히 뚫을 수 있다고.

왜인들에게 무력하게 당하지 않고 자신들도 놈들을 죽일 수 있다고.

"저 활이라면 그이도. 그이도...흑..흑흑:."

불현듯 허망하게 죽어버린 남편이 떠오르자 그녀는 슬픔이 치밀어 올랐는지 흐느끼며 울었다.

자신과 아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수십발의 화살로 놈들을 명중시켰지만 단 하나도 왜인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었고 남편은 놈들의 조롱을 들으며 무참히 목이 베여야 했다.

남편이 벌어준 천금같은 시간에 아들과 함께 집 뒤의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저 멀리 보이는 자신들의 터전에서 벌어진 남편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녀는 너무 아쉬웠다.

그때 남편에게 저런 무기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란 생각에.

"카무이께서 주신 활이다."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족장은 왜 자신이 카무이를 믿고 그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수천의 전사들이 그분의 밑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수천의 전사들이 이 활을 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분이 내려주신 아이누의 힘이다."

"우와! 그럼 우리가 이길 거에요!"

"...!"

족장의 말에 소년은 마치 다 이기기라도 한 마냥 환호했고 소년의 어머니는 수천의 전사들이 모여 이 강력한 무기를 쥐고 싸움을 벌인다는 말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족장은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았다.

남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들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 선포하듯이 힘주어 말했다.

"이 활이 있다면 절대로 예전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무력하게 당했다는 말에 남편의 일이 떠오른 그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족장이 처음 출발할 때 왜 집결지로 가서 화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천진난만하게 활을 매만지며 즐거워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 그 아들을 지켜줄 카무이와 수천의 전사들을 떠올렸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사들이 들고있는 저 활에 쓰일 화살을 만들어야 한다.

전사들에게 더 많은 화살을 쥐어줄 수록 더 많은 왜인들이 저 활의 위력앞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 마치 남편의 복수를 대신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활이 있다면 아이누 사람들이 왜인들에게 이전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오르자 몸이 부서져서라도, 잠을 줄여서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디 카무이의 깃발 아래 모인 전사들의 아내들은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러지 않을 거라 믿으며 말이다.

저 활이 있다면 더이상 사냥당하는 짐승이 아니다.

힘을 각성한 아이누는 더이상 약하지 않다.

***

활의 생산이 궤도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주명은 곧바로 100Km를 날듯이 뛰어가 후일 삿포로라 불릴 바닷가에 집결해 있는 수만의 아이누들에게 정말 반나절만에 도달했다.

자신이 당도하자 무척이나 격무에 시달렸던지 얼굴이 반쪽이 되었던 다카모리가 무척이나 주군의 도착을 반가워했지만 녀석의 푸념을 들어주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거기서 인벤토리에 쟁여둔 식량과 물자를 푼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미에를 이곳의 총 책임자로 임명했던 것.

"나미에, 이곳을 지켜줘."

"...."

천하의 나쁜 놈들인 왜구들도 아니고 아무래도 같은 동족인 왜인들의 정규군과 그녀를 싸우게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 카키자키 가문 사람들과 싸워도 아무 상관 없는데?"

"조금 더럽게 싸울거야.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장으로 만들 거니까."

또 자신이 수행할 유격전이라는 것이 그녀가 선호하는 시원시원한 전투가 아니라 구질구질하고 질척한 그런 류의 싸움이 될 것이 뻔했던지라 그녀를 존중해서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주명, 무사는 전장을 가리지 않아."

"무사가 있어야 할 곳은 지켜야할 사람들의 곁이지. 나미에가 있어야 이곳 사람들을 믿고 맡겨둔 채로 싸울 수 있어서야."

주명의 말마따나 혹시 이곳에서 무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가 있으면 적어도 홀로 수백의 적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하여 남겨둔 것이다.

"...난 네 옆에 서고싶어. 하지만 네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끝끝내 납득하지 못하고 그저 부탁이니 들어준다고 말에 주명은 그녀를 향해 다가가 살포시 안아주었다.

다행히 주변에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낮부터 이렇게 대담하게 애정표현을 한다는 것에 나미에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얼굴이 빨개졌다.

"뭐, 뭐하는거야!"

그러면서도 품속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안겨있는 그녀의 체온과 향기를 느끼며 주명은 나미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

자신의 여자에게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려 하지 않겠다고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남자의 모습은 무척이나 상식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지만 애초에 주명과 나미에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할 말이 많아보이는 듯한 나미에였지만 그렇게까지 나오는 주명을 더 곤란하게 할 수는 없었는지 입을 다물고 그의 품을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나미에와의 대화가 일단락된 뒤 주명은 해병대 30명 정도와 이제는 장궁병이 되어버린 유카르 대원 100명 정도를 선발하여 나미에를 따라 식량창고를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임무를 내려 주었다.

물론 계속해서 소모가 될 화살의 제작을 감독하고 별도의 지시가 있는 경우 화살을 보급대에 내어줘야 한다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주명이 지시를 내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아이누 부족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주명이 집결지로 삼았던 이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지만 바로 그 모습 때문에 아이누 사람들은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누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모일 일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뿔뿔히 부족단위로 흩어져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버렸던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결과가 벌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은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든 카무이에 대한 경외감이 점점 커져갔다.

거기에 수만의 사람들이 몇달을 먹을 수 있는 그 엄청난 물자를 허공에서 말 그대로 소환하는 그 기적에 사람들은 모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는 카무이의 이름을 칭송했다.

주명이 의도적으로 보여준 그 퍼포먼스 덕분에 신성함이라는 후광을 등에업은 주명은 아이누 사람들 사이를 조율하는 일이 한층 수월해 졌다.

서로 평생을 따로 살아왔던 집단이 한 곳에 그것도 수백, 수천이 넘는 숫자로 모였다면 충돌이나 갈등이 일어나는 게 순리에 가깝다.

원래는 서로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고자 고성과 소요사태가 빈번히 일어나 더욱 혼란을 가중시켰어야 할 곳이었지만 주명의 존재 덕분에 그런 일이 일체 벌어지지 않았다.

신적인 존재인 카무이가 까라고 하는데 누가 반박을 할 수 있겠는가.

혼잡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주명이 정한 구획에 맞추어 사람들이 배치되고 물자가 배분되면서 안정을 찾아가자 주명이 도착한지 하루만에 질서가 잡혔다.

주명은 이제 떠날 때가 왔음을 느꼈다.

나미에와는 이미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괜히 작별인사를 했다가는 그녀의 마음만 더 뒤숭숭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누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인이 되어버려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그녀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돌아섰을 뿐.

"여기서 생산되는 화살을 들고 내일 바로 본진으로 돌아오도록."

그곳에 남아 치안을 유지할 인원을 빼고 1,400여 명의 유카르와 120명의 해병대원들에게 화살을 들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복귀하라 명령을 내려둔 뒤 다시 100Km를 달려 훗카이도 남쪽의 아부타라 불리게 될 해안가에 위치한 본진에 도착했다.

"휴 힘드네.."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왕복 200Km를 한 숨도 쉬지않고 달리는 것은 아무리 중간에 하루를 쉬었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완성된 2,000개의 장궁을 점검하고 병력들이 모이는 대로 최종 훈련에 나서야 했으니까.

부디 준비가 완전해질 수 있도록 샤를 놈이 몰고있는 콘셉시온 호가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당도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신의 깃발 아래 아이누 사람들이 모였던 날 이후로 이미 보름이나 지나 있었고, 적들이 오오다테에 도착한지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조만간 놈들은 무거운 궁둥이를 떼고 이곳으로 다가올 것이니 준비를 해야 했다.

전쟁의 준비를.

다가올 첫 전투에서 놈들에게 비를 뿌릴 예정이라 준비할 게 많았다.

***

수백척의 선단 중 가장 호화로운 배에 올라탄 두 명의 인물이 북쪽에 보이기 시작하는 해안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루쓰구님,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그저 약간 멀미 기운이 있는 것 같군."

"귀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저 짐승들을 빨리 밟아 놓아야 겠군요."

요시히로 역시 한 가문의 당주이자 다이묘였지만 동북지방의 맹주 난부 가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가신이라도 된 마냥 착 달라붙어 난부 하루쓰구를 수행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중소기업의 나이든 사장이 대기업의 어린 회장을 상대로 영업용 접대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은 이번 전쟁을 길게 끌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놈들을 일단 찾는다면 반나절 만에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저 멀리 해안선에서 방책을 세우고 상륙을 저지하려는 듯 모여있는 아이누 짐승들의 모습이 보였으니 이미 전쟁은 거의 끝난 셈이었다.

놈들을 찾았기 때문에 반나절이면 끝날 전투니까.

고작 물고기 비늘로 된 옷이나 입고 다니며 갑옷이라고 해봐야 고작 뼈로된 것을 걸치고 다니는 냄새나는 야만인들 따위 반나절도 아깝다.

그런데 저 광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붉은 가죽으로 된 옷에 동그란 징이 여럿 박혀있는 것들을 걸치고 있는 아이누라니.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걸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고작 수백 정도가 그 갑옷처럼 보이는 물건을 입은 채로 창칼을 들고 있었지만 아이누가 갑옷을 입었다니.

징처럼 보이는 두정으로 가죽으로된 외피 내부의 철편을 고정하는 게 두정갑의 구조였고 겉으로 보이는 가죽과 징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 다수의 철판이 갖춰져 있어 엄청난 방호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아이누가 입은 두정갑.

물론 그 실체를 왜인들이 알 리가 없었던지라 철판도 아니고 고작 철로된 징으로 방어력을 기대하는 야만인들의 무식함을 내심 비웃었지만 아이누가 철제 갑옷으로 무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음. 카키카키 공. 저것들이 정말 아이누 그것들이 맞소?"

"어...그, 그게 저럴리가 없는데."

두 다이묘뿐 아니라 수백척의 선단에 타고있던 모두가 동요했고 심지어 저들이 아이누가 아니라 다른 영주의 병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갑주를 갖추입은 수백의 전사들 뒤에 자리잡고 있었던 수천의 장궁병들은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시위를 놓자마자 쏜살같이 날아가는 화살들의 비로 하늘이 잠시 가려져 사방이 검게 물들일 정도였다.

이천발에 가까운 화살들은 그 숫자도 숫자였지만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위협적이었다.

그 화살들이 마치 해일처럼 거대한 파괴력을 얻으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방패병 앞으로!"

물론 전국시대를 거치며 단련된 왜인들의 군대는 충분히 강했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곡사로 날아오는 화살 따위는 방패에 막힐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따로 준비한 방패를 들어 방패병을 세우면 그만이라 자부했다.

"멍천한 놈들. 화살 따위로 상륙을 저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아니!"

카키자키 요시히로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모르는 무식한 야만인들의 헛짓거라라고 비웃어 주려 했다.

"아아아악!"

"끄아아악!"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명소리와 함께 알게된 사실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는다는 불가능한 헛짓거리를 한 것은 자신들이라는 것.

명중하지 못하고 뱃전에 꼳히는 거대한 화살이 선체를 뚫고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면 요시히로와 하루쓰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는 거대한 활과 화살의 습격에 자신들의 병사들이 꿰여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요시히로는 분통을 터트렸다.

"어서 빨리 상륙하라!"

답은 어서 빨리 상륙하는 것인데 쉴세없이 몰아치며 그치지 않고 내리는 화살의 비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급히 상륙하기 위해 돌진하던 수백의 병사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바닷물에 떠다니는 것을 보게되자 요시히로는 왠지 이 전쟁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번 아이누 놈들은 뭔가 달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놈들이 달라졌는가를 고민하던 그의 눈에 저 멀리 펄럭이는 놈들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 깃발에는 오니(鬼)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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