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75화 (75/77)

〈 75화 〉 74화 - 전초전(前哨戰)(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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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 위치한 아이누 진영에 펄럭이는 오니(鬼)깃발을 바라보며 하루쓰구는 가문을 가끔 방문하는 사카이 상인들에게서 들었던 깃발의 주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붉은 오니라, 대마도에서도 그렇고 나가사키에서도 날뛰었다지? 무위가 출중하다고는 들었는데 아이누 놈들과 붙어먹었을 줄은."

그 기억속에서 일신의 무력이 출중하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었지만 그것과 지금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며 아군을 학살하고 있는 거대한 화살의 일제사격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는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괴력난신이나 담고있는 저 가당찮은 깃발을 조롱하듯 노려보는 하루쓰구에게 요시히로가 말을 걸었다.

"하루쓰구님, 혹시몰라 준비했던 대나무들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키자키공 말씀대로요. 저 활의 위력은 철포(조총)와 같다고 상정하고 대응을 해야겠소."

하지만 전란을 거쳐온 전국시대의 무장들 답게 금새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하루쓰구와 요시히로였다.

조총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대나무를 여럿 묶은 것을 방패벽처럼 세워놓은 것으로, 그 효과성은 오다 노부나가의 활약 이후 전장의 필수병과가 된 조총병들을 상대로 이미 여러번 입증된바 있었다.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고 왔기에 총대장의 지위에 있었던 하루쓰구의 동의를 얻자 요시히로는 대나무벽을 세워 화살을 방비할 것을 명령했다.

그 명령에 전란에 단련된 왜인들 답게 다들 신속하게 반응했다.

카키자키 가문과 그들의 요청을 받아 달려온 3개 가문의 병력들은 마치 그런 명령이 내려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마냥 일사분란하게 선박에 비치된 대나무를 꺼내어 사격지점에 세워둔 것이다.

마치 폭우처럼 쏟아지며 수백명의 병졸들을 꿰뚫었던 장궁의 사격이 대나무에 막혀 힘을 잃기 시작했고 화살세례에 당하는 병졸들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조총도 막는 대나무벽의 강한 방호력을 장궁으로 뚫기에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걸 확인하자 해안가의 아이누 병력들도 사격을 중단했고 화살의 소나기는 일시적으로 그치게 되며 정적이 찾아온 전장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곧 제대로 부딛칠 두 군대의 충돌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그런 정적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누구나 알았던 것이다.

이윽고 아이누 정벌군의 배들이 해안에 닿기 시작하자 노련한 병졸들은 방패벽을 내세워 빠르게 상륙지점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려고 했다.

해안에 상륙한다고 해서 바로 모래사장에 발을 디디는 게 아니다.

얕은 물이 있는 지점쯤에 바로 뛰어내려 달려가는게 상륙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뛰어내림과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절대로 순탄하게 상륙할 수 없다는 것을 다들 깨닫게 되었다.

"아아악! 내 발!"

"이런 개새끼들! 해안가에 마름쇠를 뿌려놨어!"

얕은 물에 가려진 마름쇠가 뛰어내리는 병사들의 발과 무릎을 찌르고 있었다.

대 기마병용으로 만들어진 저 거대한 마름쇠는 피아식별 스킬로 일본인들의 움직임을 훤히 내다본 주명이 밀물때쯤 놈들이 몰려올 것이라 예상하고 바로 직전의 썰물 때 해변에 설치해 둔 것이었다.

말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만든 마름쇠가 인간의 발을 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마름쇠의 뾰족한 칼날이 병졸들의 발에 상처를 내고 심지어 꿰뚫기까지 하는 모습은 무척 잔인한 모습이었고 해변은 그들이 흘린 핏로 붉게 물들었다.

발에 상처를 입은 이들은 물론 나머지도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병졸들의 움직이 둔화되었고 대나무방벽 역시 꽤나 무거운 그것을 내리는 것도 일이였거니와 마름쇠에 걸려 잘 나아가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그것이 병사들의 진로를 막는 방해벽이 되어 버렸다.

선발대로 상륙한 수천의 병졸들은 해안에 발이 묶여 잘 나아가지 못했고 마치 닭장처럼 수많은 인파가 좁은 지점에 몰려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그 불안한 틈을 마치 노리고 있었다는 듯 아이누 진영에서 다시한번 장궁의 일제사격이 이어졌다.

"끄아아악!"

화살의 소나기가 이어지자 해변 곳곳이 비명소리로 가득차고 피로 물들었다.

"대나무 방벽을 세우란 말야!"

"저 빌어먹을 놈들이 곡사로 화살을 퍼붓고 있어 어렵습니다!"

선발대를 지휘했던 무사는 악을 쓰며 뭔가 대책을 세워 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제댈 잘 되지 않았다.

먼 거리의 배에 있었을 때야 사격의 탄도가 제한되어 대나무 방벽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해안에 가까이 다가온 이상 곡사로 쏘아져 머리 위로 날아오는 화살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

설령 대나무 방벽을 온전히 세울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하루쓰구는 들고있던 부채를 집어던지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어!"

자신들이 대나무벽을 세우자 놈들의 궁병이 사격을 그치고 뒤로 물러나 왜 그런가 했더니 바로 곡사로 다시한번 큰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지금 벌어지는 참상을 보고 깨달았던 것이다.

이천의 유카르 부대가 다 모이자 적군이 오기 하루 전부터 주명이 실시한 것은 일제사격의 영점을 잡는 훈련이었고 화살을 아끼지 않고 퍼붓고 퍼붓었던 그 훈련 덕분에 오늘 전장에서 장궁병들은 크게 빗나가는 화살이 없이 정확하게 사격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그 결과는 소나기의 빗줄기가 형태를 갖추고 멈추어 버린 듯 해변에 빼곡하게 박한 기다란 화살들과 그 화살에 꿰뚫린 아이누 정벌군의 병졸들이었다.

놈들의 활은 갑옷을 입은 병졸마저도 관통하여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에 빗맞지 않았다면 모두 사상자로 봐야하니 너무나도 피해가 컸다.

"족히 천명은 죽어나가겠구나..."

하루쓰구는 너무나도 참담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당연히 캄캄했지만 설령 눈을 뜨고있다 하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륙하기도 전에 삼백, 상륙한 뒤에 일천.

고작 야만인들을 상대로 한 피해치고는, 아니 그 어떤 군대를 상대로 했다한들 일만육천 중 거의 일할에 가까운 일천삼백이 단 한번에 쓸려 버렸다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손실이었다.

"하루쓰구님, 이미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일단 상륙을 하면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카키자키 요시히로의 말이 들리자 눈을 부릅뜨고 전장을 노려보던 하루쓰구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말대로 이미 큰 피해를 봐 놓고 물러난다면 군심을 도저히 회복할 길이 없다.

놈들이 예상치 못하게 활이라는 보조무기 따위로 큰 피해를 주기는 했지만 어차피 전쟁이라는 것은 단병접전에서 승부가 나기 마련이다.

남아있는 일만 오천의 병력이 일시에 상륙한다면 그 압도적인 질량으로 저 궁병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전략을 수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래 가장 상륙하기 용이한 해안 부분에 순차적으로 상륙하기로 되어 있던 것을 아무리 험한 해안이라도 상관없이 전방위에서 상륙하기로 한 것.

"전 군을 세방면으로 나누어 일군은 지금 상륙한 선발대를 돕고 나머지 이군과 삼군은 좌 우에서 별도로 상륙한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하루쓰구님!"

총대장의 판단에 나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요시히로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이대로 축차투입이 되어봤자 이미 적체가 되고있는 침공로에서 적들의 사격에 노출되어 피해만 늘릴 뿐이니 다소 피해를 보더라도 다른 상륙지점에도 상륙하여 병력의 우위를 살리는 것이 그의 생각에도 옳다고 보았으니까.

명령이 내려지자 신속하게 세방면으로 갈라지는 정벌군의 함대.

좌우의 함대는 각각 해안가에서 1Km 떨어진 지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중앙의 함대는 세차게 노를 저어 최대한 빨리 해안에 다가가 고전하고 있는 선발대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배, 배가 걸리다니!"

"암초입니다!"

하지만 좌우로 펼쳐진 함대는 그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노를 저으며 항해를 하다가 암초를 만나 부딛치게 되어 좌초하는 배가 속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주명이 안배했던 것인데, 중앙의 침공로가 막히면 다른 곳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는 단 하루만에 암초지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냐고?

무한의 인벤토리에 주변의 커다란 바위들을 죄다 집어넣은 뒤 바닷물에 쏟아버리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저 급조된 암초지대였다.

이 근방의 물길을 모를 리가 없었던 카키자키 가문의 병졸들이 길잡이를 맡았기에 당연히 이곳에는 암초따위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굳은 믿음은 최속의 속력으로 항해한다는 결론을 내었고, 그 결론 덕분에 암초에 전속력으로 부딛친 배들인 하나둘씩 구멍이 나 침몰하기 시작했다.

좌우로 갈라진 병력들을 태운 함선들의 삼할이 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고기밥이 되어버리게 된 상황에서 지휘관은 결단을 내려야 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명이 암초를 마치 우회 상륙방향을 향해 반원을 그리듯 절묘하게 감싸며 깔아둔 덕분에 더 먼 곳에 다시 상륙포인트를 잡으려 하는 행동마저도 차단되었던지라 지금 이곳에서 상륙해야 했다.

우회해서 상륙을 해야 한다는 명령은 지휘관이 목이 베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했으니 정말로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군기가 무척이나 엄했던 일본국의 군인이었던 지휘관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안되겠다! 모두 배에서 내려 헤엄쳐서 상륙하라!"

최악의 선택지로.

람리 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악어들이 보여준 기적적인 전과를 이번에는 그 선조인 왜인들을 향해 바닷물이 보여줄 차례였다.

아이누를 상대로 큰 우위를 점하게 해 주었던 그 무거운 철갑옷이 이제는 그들의 짐이 되어버렸다.

"살려줘!"

헤엄을 치지 못하는 병사나, 설령 헤엄을 칠 수 있다 하더라도 갑옷과 병장기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들은 차디찬 바다에 삼켜져 버렸다.

해양민족인 탓에 기본적으로 다들 수영실력을 갖추고 있어 물에빠져 죽는 이들이 고작 수백에 불과했지만 아직 전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거의 모든 체력을 소진하여 기진맥진한 채로 상륙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체력이 완전하고 왜인들의 갑옷과는 차원이 다른 판금갑옷을 갖춰입은 해병대원들이었으니까.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다카모리의 말을 시작으로 칼로 무참하게 베풀어지는 피의 환영식이 개시되었다.

다카모리가 이끄는 좌군은 20명의 해병대 50명의 유카르 부대원과 함께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우군 역시 같은 규모로 대기하고 있었다.

각각 50명씩 배치된 유카르 부대원은 모두 팽배수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2,015명의 유카르 부대원들은 주명에 의해 그중에서 단병접전 기술이 뛰어난 300명 정도의 팽배수와 나머지 1,715명의 장궁병으로 편제되었다.

두정갑의 수량이 많지 았았기 때문에 오직 팽배수만이 두정갑과 등패, 환도를 갖추었고, 나머지 장궁병들은 주명이 구현한 웨일스 장궁과 단검, 그리고 가죽갑옷으로 무장시켰다.

그 300명의 팽배수 중 200명이 해병대 70명과 함께 중앙에 대기하며 그 뒤의 언덕에 배치된 궁병대를 보호하고 있었고 남은 100명의 팽배수와 해병대 40명을 좌우에 미리 배치해 둔 것이다.

각각 70명이 수천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전황은 그 70명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흘러갓다.

진형을 갖출 수도 없이 순차적으로 모든 체력을 다 소모하며 해안에 도달하 이들을 사냥하는 것은 굳이 해병대의 무장과 실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손쉬운 작업이었으니까.

금세 본진이 위치한 해안 양 옆의 험준해 보이는 해안이 피로 물들어 핏물이 바다위로 넘실거렸다.

중앙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병력을 보강해 규모를 앞세워 궁병대를 도륙하기 위해 달려가려 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마름쇠만이 아니었던 것.

"하, 함정이야!"

"살려줘!"

마른 모래가 나타나자 마자 나타난 함정에 빠진 병력들은 바닥에 꽂혀있던 나무 말뚝에 꿰여 사상자가 속출했고 그만큼 진격이 더욱 지연되었다.

"이건?! 기 기름냄새야!"

거기에 수만의 아이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챙겨온 연어기름이 해안가에 무진장 뿌려져 있었다.

후일 삿포로로 불리게될 집결지에 모이려 이동할 때 각자 챙겨온 비상식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연어였고, 주명에 의해 보다 양질의 식재료를 공급받게 되자 처분이 곤란했던 연어들의 기름을 짜 주명이 인벤토리에 샇아 두었던 것이 오늘 쓰인 것이다.

마른 모래사장을 밟자마자 느껴야 하는 퍼석함 대신 질척이는 불쾌한 느낌과 더욱 끔찍한 기름 냄새에 섬뜩함을 느낀 왜인들이 머뭇거리는 그 순간 저 멀리 아이누 궁병대 쪽에서 불화살이 여럿 날아왔다.

"끄아아악!"

그리고 마치 불의 벽처럼 아이누 군과 왜인들의 정벌군 사이를 가로박은 불길이 활활 타올라 그 위에 놓여있던 이들을 집어 삼키었다.

연어기름이라는 것이 그다지 불에 잘 타는 것도 아니고 화약처럼 수천의 적을 격살할 정도로 효과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길에 타죽은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속도가 생명인 상륙전에서 그 자체로 장벽이 되어버린다는 게 문제였다.

함정에 지연되고 불길에 가로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왜인들을 향해 화살의 소나기는 그치지 않고 쏟아졌고 그건 이미 소나기가 아니라 폭우가 계속 몰아치는 장마였다.

쉴세없이 쏟아져 병사들의 목숨을 쓸어가는 장맛비.

저 병졸들은 여기서 허무하게 죽어야 할 이들이 아니었다.

호조 가문을 정벌할 관백 전하의 옆에 서서 당당히 행군하며 가문의 이름을 드높여야 할 정병들이 마치 도축당하는 짐승들처럼 헛되히 죽어나가고 있었다.

히데요시 전하에게 상찬을 받아 당당한 일본국의 다이묘로 인정을 받는다는 미래가 병사들과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아 하루쓰구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책! 대책을 세우란 말이야!"

속절없이 죽어가는 병졸들을 타는 속으로 바라보며 하루쓰구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다른 이들이라고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그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좌우군이 어떤 꼴을 겪고 있는지를 아직 알지못하고 있다는 것.

고작 70명의 적에게 수백의 아군이 목이 베이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또 기진맥진하여 해안에 당도했다 그렇게 목이 베이는 동료를 바라보며 발만 구르다 익사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모습을.

이미 진즉에 익사하여 저 바닥에서 물고기들에게 뜯어먹히고 있는 병졸들의 모습을 그가 봤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정신건강에나 다행이었지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는 전혀 다행이 아니었고 이번 상륙전음 점점 패전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패전에 쐐기를 박을 곳은 바로 중앙의 침공로에서였다.

기름 자체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사그라드는 불의 벽을 뚫고 하나둘씩 왜인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점차 모이고 모여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원체 끌고온 병력이 많았기 때문에 마름쇠와 화살의 폭우, 그리고 함정을 뚫고도 그곳까지 도달한 병력은 무려 800에 달하였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카키자키 요시히로의 신임을 받고있는 무사 벤케이(弁慶)였다.

"모두 진형을 갖추고 돌격을 준비하라!"

가문을 위해 봉사한 수십년의 세월동안 가장 많은 실전경험을 갖춘 노장이었던 그는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어떻게든 병력을 모아 진형을 갖추었다.

곡사로 화살이 쏘아진다는 것을 이용해 최대한 아이누 놈들에게 근접하여 집결한다는 그의 판단은 결국 놈들의 화살로부터 안전해 질 수 있었으니 탁월한 판단이었다.

이미 후방에 배치되어 사격의 각도를 확보할 수 없었던 유카르 장병대는 아군의 희생을 무시하고 직사로 전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어떻게든 죽음의 해변을 벗어난 병사들이 점점 벤케이의 주변으로 집결하기 시작했고 혼성 연합군이었음에도 그가 내뿜는 강맹한 무인의 기세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충분한 병사들이 모였다고 판단한 벤케이는 눈앞에 보이는 270명의 아이누 병사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아무리 지금까지 큰 피해를 주었다 하더라도 일단 근접하여 붙게 되면 절대로 우리 야마토 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숱한 아이누 사람들을 베어 넘겼던 벤케이는 아이누 놈들이 근접전에서 얼마나 허약한지 잘 알았다.

거기다 고작 270명의 병력이라니.

벤케이는 비웃음이 절로 들게만드는 그 형편없는 편제에 코웃음을 쳤다.

화살로 큰 피해를 입혔다고 좋아하겠지만 눈앞의 270명이 뚫린다면 뒤에 서 있는 궁병대쯤은 순식간에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근접병종을 고작 일할 남짓 편제하는 군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애초에 편제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그 잘못됨의 대가를 피로 치르게 만들 것이라 다짐했다.

아무리 70명 정도는 정체를 모를 전신갑옷을 입고있다고 하지만 그저 무겁기만 할 뿐 성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고작 조그만 징으로 철을 두른 가죽갑옷은 말할 것도 없이 쓰레기 같은 성능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판금갑과 두정갑이라는 각각 천하제일갑과 동방제일갑의 위명을 떨친 역사적인 갑옷에 대한 벤케이의 평가는 당시 일본인들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알았다면 그렇게 비웃지 못했겠지.

점점 합류하는 병력이 늘어나 천여명에 이르자 벤케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적들의 진형을 훑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가다듬어진 그의 날카로운 감각이 취약해 보이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징박힌 가죽갑옷을 입은 이들이 특히 많이 서 있는 우측이, 그러니까 적들 입장에서는 좌군쪽이 약점이라고 보고 주변에 모인 부대원들을 사선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아군의 정예병력에 방점을 두어 적군의 정예병력을 분쇄하고 시간차를 두고 교전하게될 다른 쪽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적들을 측면에서 포위공격하는 진형이 사선진.

하지만 정석에 따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게 애초에 정예병력이랄게 없어 보이는 저 아이누 군대를 상대하느니만큼 굳이 안정적인 정석대로 갈 필요가 없어 보였다.

벤케이는 과감하게 가장 약한 쪽에 정예병력을 배치했다.

본래 반대쪽 날개의 병력이 상대방 병력을 최대한 묶어두어야 가능한 전법이 사선진이었고 지금 그가 하는 것은 무척이나 무리수이자 무험수였지만 벤케이는 아군의 좌익이 적을 묶어둔다는 가정따위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쇄할 지도 모르지."

그정도로 아이누와 야마토 인들의 실력차이는 확연했으니까.

사선진을 이루어 먼저 적의 좌익에 도달할 아군의 우익이 순식간에 적의 취약한 부분을 박살낸다.

그 사이에 아군의 우익은 시간차를 두고 교전에 돌입하여 손쉽게 적의 우익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아군의 정예병력이 밀집한 우익이 적군을 분멸하고 적들의 측면을 향해 진격하여 포위하면 놈들은 그야말로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막 돌격명령을 내릴 타이밍을 재고 있던 벤케이들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어? 한놈이 이쪽으로 달려듭니다!"

"이런 미친놈이!"

적을 분멸할 핵심이 되어줄 우익, 가장 정예병력이 밀집해 있는 우익을 향해 단 한명이 돌격해 온다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벤케이는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 여러번 눈을 비벼보았지만 현실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저 용기에 다들 좋아라 고무되어 있겠지만 놈을 처참히 죽여버리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테니."

아마 제놈의 생각에는 홀로 분투하여 장렬히 산화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는 것 같다만 분투라는 게 성립하지 못하도록 압도적으로 척살하면 될 일이었다.

"노부스케, 무네미토! 저놈을 처리해라!"

그래서 주변에 모여든 병졸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 보이는 두명의 무사를 지명하여 허무한 죽음을 맞게 해줄 생각이었다.

"곧 놈의 목을...아니!"

하지만 그가 보게된 광경은 절대로 예상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허무한 죽음이 발생하긴 했지만 놈이 아니라 두 무사에게 들이닥쳤던 것.

좌우에서 쇄도하는 검격을 중갑주를 입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회피한 놈이 휘두른 검격에 노부스케의 목이 달아났다.

그 틈을 노려 재차 이어진 무네미토의 검격이 놈의 등을 가격했지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튕겨나가는 그의 검.

"이게 무슨?! 컥.."

그 말도안되는 모습에 놀라 당황한 무네미토의 목 역시 그틈을 노려 검을 날린 놈의 검격에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

그 모습에 마치 불나방이 불길에 뛰어드는 멍청한 모습을 구경하는 듯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놈을 쳐다보고 있던 일천의 병력의 입이 모두 다물어졌다.

그 침묵 속에서 처음 입을 연 이는 붉은 중갑주를 입은 자였다.

"난 쓰네히라다!"

한때 자신의 피 빤쪽인 아이누 사람들의 저승사자라 불리며 사신의 별칭을 얻었던 쓰네히라.

그가 판금갑을 입고 또다른 피의 반쪽과 같은 동족들을 향해 당당히 서 있었다.

"아이누의 검에 맞설 자 누구인가!"

동족의 학살자였던 그가 이제는 동족들을 대표하는 아이누의 검으로 다시 우뚝 서려한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기세에 압도되어, 그리고 쓰네히라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을 알고있던 이들은 그 이름에 압도되어 침묵이 계속되고 있는 왜인들의 군대를 향해 쓰네히라는 검을 들고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아이누를 위하여!"

주군이자 고용주인 주명으로부터 오늘 활약해 달라 부탁을 받았을 때 솔직히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이누의 피를 이은 너만이, 그 중에서 가장 검술이 뛰어난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누의 피를 이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저질렀던 죗값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죽음마저 각오했다.

"아이누의 이름으로 싸우는 거다. 대신 홀로 보내지 않을 테니.."

하지만 주군이 자신에게 해준 조치를 보고는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주군은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날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려는 것이었다.

[이름 : 일본도+5]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증가된 피해 + 50%]

[이름 : 강화 판금갑+5]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방어력 + 75%]

[이름 : '쓰네히라의 목걸이'+10]

[레벨 : 50(경험치: 0/25)]

[효과 : 피해저항 + 100%]

[한 어머니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만든 목걸이입니다.]

전쟁은 템빨이다.

그걸 알아차릴 수 없는 적들은 닿을 수 없는 공격에 절망하다 결국 목을 쓰네히라의 검에 내주고 시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쓰네히라에게 압도적인 템을 맞춰준 그 주군이 자신이 돌격하기 전 해주었던 말이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가서 쓸어버려."

압도적으로 차오르는 충만한 힘을 느끼며 쓰네히라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적을 쓸어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내 목숨을 아이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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