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75화 - 전초전(前哨戰)(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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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이마시는 본인이 원하던대로 팽배수에 발탁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 쓰네히라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는 곳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저 원수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놈이 죽는다면 자신의 손에 죽음을 당하기를 바랐던 그는 쓰네히라가 밀집해 있는 적들을 향해 돌격했을 때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지 못한 것은 전쟁터에서 사사롭게 소리를 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빡세게 자신들을 굴린 해병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수놈이 죽으로 간다는데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데에는 쓰네히라가 그토록 자신이 침을 뱉고 모욕을 주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술을 봐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증오와 복수심에 놈이 적들에게 가서 처참히 뒈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같이 들었다.
'네놈 따위가 아이누의 검은 무슨!'
하지만 사촌형이자 원수인 쓰네히라가 사무라이를 홀로 둘이나 썰어버렸을 때 세차게 뛰는 심장을 느꼈다.
사무라이가 누구인가.
강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며 아이누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가공할 존재들 아니던가.
사무라이 단 한명이 쳐들어와 마을 하나가 학살된 적이 있을 정도로 고급 검술과 중갑옷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은 괴물중의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을 사촌형은 마치 허수아비를 베어버리듯 너무나도 손쉽게 목을 쳐 버렸다.
"아이누를 위하여!"
그리고 그 엄청난 실력을 평소에 자신들을 무척이나 무시하고 멸시하던 왜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준 사촌형이 끝내 동족의 이름을 떨쳐 울렸을 때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격동했다.
"내 목숨을 아이누에!"
그리고 형이 저 말을 외치며 수천의 왜인들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 카무이마시는 들끓는 복수심을 오늘만큼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듯이 형이 외쳤던 말을 따라했다.
"내 목숨을 아이누에."
하지만 혼잣말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낮고 묵직하게 울려퍼지는 독백의 합주는 합창처럼 울려 퍼졌고 주변에서 들리는 그 소리를 듣고 양 옆을 번갈아 돌아보던 유카르 대원들은 모두가 하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은 강했다.
수천의 왜인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압도하며 적들을 베어 넘겼다.
그 강맹하며 빠르기 그지없는 검술은 적을 베어넘길 때마다 더욱 더 강렬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사신(死神)이야. 정말로 사신(死神)이야!"
그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무위에 감명받은 나머지 일전에 쓰네히라가 떨쳤던 공포의 위명을 누군가가 내뱉었다.
카무이마시는 그자를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다. 저 사람은 사신(死神) 따위가 아니야!"
"그럼 뭔데?"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아이누의 이름으로 홀로 거대한 적과 맞서고 있는 형을향해 경의어린 시선을 보내며 카무이마시는 마땅히 불리어야할 진짜 위명을 말해 주었다.
"아이누의 검."
동족을 학살하던 저주받을 존재 사신(死神)이 이젠 동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며 그 이름을 드높이는 아이누의 검이 되어버렸다.
그 영광스러운 탈태(奪胎)의 희생양이 되고있는 왜인들은 죽을맛이었다.
놈도 사람인지라 분명 놈에게 적중하는 눈먼 칼이나 창들이 지금까지 굳이 세어본다면 적어도 이백번은 넘었을 것이다.
"저놈은 무적이란 말인가?!"
금속 특유의 두들겼을 때 나는 청명한 소리만 울려퍼졌을뿐 단 한번도 그 갑옷을 뚫고 놈의 피륙에 닿은 냉병기가 없었다.
판금갑이 어째서 천하제일갑이라고 불리는지, 어째서 기사들이 날뛰는 서양에서는 둔기가 주력 무기로 쓰여왔는지를 잘 모르는 왜인들은 그 무지의 대가를 피로서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저 한놈 때문에 벌써 죽은이만 사십명이다. 그중에 무사만 해도 여섯이 넘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어째서!"
변형된 사선진을 이용해 고작 270명밖에 되지않는 적들을 압살한다는 계획 따위는 이미 벤케이의 마음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이제는 저 한놈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가 당면한 문제였는도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고작 한명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놈을 포위한 뒤 축차투입을 한다면 처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은 들었다.
하지만 점점 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저 흉악한 장궁을 들고있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어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저 장궁병이 이쪽으로 온다는 것은 그 빌어먹을 곡사가 끊긴다는 뜻.'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임에도 노련한 벤케이는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낼 수 있는 베테랑이었다.
"모두 뒤로 후퇴하라! 상륙지점으로 후퇴하라!"
그가 찾아낸 활로란 뒤로 물러나는 것.
단 한놈때문에 물러나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지만 여기서 더 밍기적거리다간 저 흉악한 장궁병들의 화살 세례에 벌집이 될 수가 있었다.
뒤로 물러난다면 이미 이쪽으로 전진하고 있는 장궁병들은 활 특유의 탄도 때문이라도 그 끔찍한 곡사를 당장은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판단이 벤케이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더군다나 놈들의 화살통이 많이 비어있다. 그 화살세례가 이어지더라도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명당 오십발씩이나 주어졌던 화살을 담은 거대한 화살통을 들고있는 장궁병들의 어깨는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는데, 거의 모든 이가 화살이 한두대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 여기 계속 있었다면 저 한두대 남은 화살의 직사에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지만 물러난다면 얼마남지 않은 화살을 이유로 예전처럼 곡사를 펼치기는 어려웠으니 말이다.
벤케이의 주변에 모였던 일천의 병력은 천천히 대오를 갖춰가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타나만 불똥만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는 불의 장벽의 잔해를 넘어 적들이 뒤로 도망가기 전까지 이십의 적을 더 참살했던 쓰네히라는 뒤돌아 검을 들어 아군을 향해 포효했다.
그 모습을 본 해병대원들과 유카르 부대원들은 창칼을 높이들고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아이누의 검 만세!"
이제는 사라지려 하는 불의 장벽이 그어놓은 검게 탄 선을 기점으로 적들이 더 다가오지 못하고 그저 겁에 질린 짐승들처럼 모여있기만 하자 이곳에 서 있는 그 누구도 다 알 수 있었다.
초전에서 아이누가 왜인들을 상대로 멋지게 승리했다는 것을.
"모두 물러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주명은 알았다.
별도로 나누어 보냈던 좌우의 병력들이 점점 적들에게 포위되어 가는 것이 피아식별이라는 맵핵급 스킬로 훤히 볼 수 있었다.
아무리 헤엄을 치느라 기진맥진해서 도달했기 때문에 처리하기 손쉬운 적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은 보통 지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반복되면 팔이 굼떠지기 마련이다.
단 70의 병력으로 수백의 적을 베어넘겼던 좌군과 우군은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그것은 푸른 점들이 점멸하며 작아지는 모습으로 주명의 시야에 나타났다.
중앙 역시 쓰네히라의 활약 덕분에 적들의 병력이 물러섰지만 속속들이 상륙하고 있는 적들의 병력이 거의 만단위에 가까워지자 지금 가진 병력을 가지고 정면승부를 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
주명의 명령에 유카르 대원들과 해병대원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뒤로 움직였고 몇몇은 좌후로 흩어져 후퇴 명령을 좌군과 우군에게 전하기 위해 바삐 뛰어갔다.
"대략 사천 정도 때려잡은 것 같네."
오늘 장궁병의 폭우와도 같은 사격에 목숨을 잃은 이가 이천이 넘었고, 쓰네히라를 비롯한 해병대와 유카르 팽배수들이 썰어넘긴 적들도 모두합쳐 일천에 달했다.
나머지 일천은?
"오백년 정도 뒤 악어가 일본군을 상대로 했던 전과를 여기는 바닷물이 거두네."
배가 주명이 설계한 암초에 걸려 침몰당하자 바다에 빠져 어푸푸 허우적 대다가 익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적은 아직도 일만이천에 달하니 고작 이천의 병력뿐인 주명의 병력과 비교했을 때 아직도 다섯배의 수적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궁병 비중이 너무나도 높은 자신의 병력 특성상 그대로 평원에서 적들과 붙게 된다면 큰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릴 놓치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따라붙겠지."
단 한번의 회전에서 짓밟을 수 있도록 꼬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추격하며 평원으로 몰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제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지."
작정하고 추격하려는 적들을 상대로 준비한 유격전이 이번 전쟁의 핵심이었으니까.
놈들은 오늘의 패전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패를 꺼내들었다고 착각하겠지만 진정으로 놈들에게 지옥을 열어줄 패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게릴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죽어라."
기세가 작살나 버려 진격할 힘이 없는건지, 물러나는 자신의 병력을 그저 바라만 보고있는 아이누 정벌군을 향해 살기어린 비웃음을 지어준 주명은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사, 사천을 잃었습니다."
"..."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전의 규모에 그 소식을 전하는 전령마저도 입이 얼어붙어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다.
그런 보고를 받는 하루쓰구는 침통하다못해 절망에 빠진 모습이었다.
도무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더군다나 어떻게 앞으로 이 일을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눈앞이 깜깜했다.
"하루쓰구님, 아직 아군의 병력은 절대적 우위에 있습니다. 또 궁병이 제법 오늘 매서운 활약을 보였지만 놈들의 단병접전 병력은 너무도 적기 때문에 접근하여 제대로 붙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보다못한 요시히로가 나서 대응책을 진언했다.
실제로 주명이 이끄는 아이누 군대의 근접전 병종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그의 들을 듣고는 그럴듯하다 생각이 든 하루쓰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카키자키 공의 말이 맞소.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놈들에게 최대한 뒤쫒으며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어 놓아야겠소. 그렇게 추격전이 벌어지다 나중에 평지가 나타났을 때 단 한번 제대로 싸움을 걸면 반드시 이길 수 있겠지."
"하루쓰구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 근방 지리를 잘 아는 병사들을 수소문해 나뉘어진 병력마다 붙여 놓도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어제 저들이 출정을 기념하며 연 연회에서 떠들어 댔던 것처럼 아이누를 짓밟는다느니 반나절이면 끝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이미 아이누는 사냥당하는 짐승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야 이길 수 있는 난적으로 지위가 급상승한 것이다.
요시히로의 진언대로 병력은 세방향으로 나뉘었는데, 하루쓰구와 요시히로와 포함된 병력이 중군이었고 나머지 좌우군은 각각 안도 가문과 쓰가루 가문에서 맡기로 했기 때문에 편제는 금세 마무리될 수 있었다.
세부 조율까지 마치고 막사를 나오는 하루쓰구의 앞에 퇴각 이후로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벤케이가 다가왔다.
"주군, 쓰네히라가 살아있습니다."
"뭐라!? 그 배신자놈이 기어코 짐승들과 붙어먹었구나. 제 반쪽을 흐르는 짐승의 피가 야마토인의 반쪽보다 진했던 게지."
"그것보다...오늘 놈에게 70명을 잃었습니다."
"뭐, 뭐라?!"
벤케이의 말을 들은 요시히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가 70명이 죽었다고 하는 말은 그 앞에 중요한 단서가 생략되어 있었는데 그 단서를 요시히로는 알았으니까.
"전장에서 홀로 70명을 죽였단 말인가. 그때도 실력이 괴물이었는데 더한 괴물이 되어 돌아왔구나.."
그것도 단신으로 뛰어들어 수천의 아군을 상대로 한 전과입니다라고 사실대로 고하기엔 벤케이의 자존심이 너무도 상했기 때문에 그 진실은 감추고 따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보다는 이 얘기를 꺼낸 본론을 꺼냄으로써 목적한 바를 이루려 했다.
"그 계집년이 살아있다는 것을 놈은 모르지 않습니까?"
"아 놈의 어미 말인가? 눈과 혀를 뽑기는 했지만 살아있기는 하지. 아마 내 손에 죽었다고 알고있을 테지."
요시히로가 의도적으로 쓰네히라를 동족을 죽이는데 투입했다는 진실을 안 그날 놈은 미친놈처럼 칼부림을 해댔고 그 보고를 받은 요시히로는 가장 먼저 놈의 모친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놈과 부하들 사이의 접전이 벌어졌고 결국 놈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쫓아보내기는 했지만 부하 수십을 베고 도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는 사실을 듣고는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는지 요시히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랜 시간을 다이묘로서 군림해왔기 때문에 정략에 꽤나 밝은 편이었던 그는 벤케이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꺼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적의 강력한 검을 흔들 수 있는 패가 자신들에게 있다며 그걸 사용할 것을 종용하는 게 아닌가.
"그년을 끌고 오라고 해라. 그리고 놈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려라. 쓰네히라를 보내지 않으면 놈의 어미는 죽는다고."
"알겠습니다."
명을 받드는 벤케에의 표정에는 짙은 살기와 광기가 서려 있었다.
평소에도 쓰네히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모친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이곳으로 달려올 그놈이 고통받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
"멋졌소."
"...!"
자신만 바라보면 침을 뱉거나 따귀를 때리는 것이 일상이던 사촌동생이 다가와 건넨 칭찬의 한만디에 쓰네히라는 당황한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형이 내 원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그건 착각하지 마시오!"
괜히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저 말을 남기고 떠나가는 사촌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쓰네히라는 그 말의 여운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는지 입을 오물거리며 그 한단어를 반복했다.
"형....형, 형."
그 말을 녀석에게서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녀석의 아버지인 외삼촌을 자신의 손으로 무참히 살해한 이후에야 놈을 알았고 그때 처음만났지만 형이라고 녀석에게서 불려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기대하지 못했었다.
왜 그런 안하던 행동을 녀석이 오늘 하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오늘 화살을 보급받는대로 그 유격전이라는 것을 펼친다고 했지?"
오늘 주군의 전쟁실력을 너무나도 잘 봤기 때문에 주군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번 전쟁의 진정한 히든카드인 저 유격전을 당해야할 적군이 괜시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쓰네히라였다.
***
수백은 되어보일 왜인들의 병졸들이 공터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빌어먹을 짐승 새끼들. 발걸음 한번 겁나게 빠르네!"
"그래도 우리니까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지 다른 사람들은 어림도 없었어."
"암, 나중에 저놈들하고 제대로 붙어서 이기면 다 우리 공인거지."
그 수백의 병졸들은 쓰가루 가문에서 보내온 병졸들 대다수와 요시히로가 붙여준 카키자키 가문 소속의 병졸들로 좌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적들의 도주 경로에 최대한 근접하여 놈들이 섣부르게 전장을 이탈하는 것을 막고 가능하다면 놈들을 따라잡아 요시히로가 미리 봐두었던 회전 가능한 평지 몇군데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놈들의 꼬리를 잘 붙잡고 왔다는 생각에 척후병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한 이곳의 병졸들이었고, 그 자부심 덕분에 이대로 놈들을 붙잡아 놓고 이동경로를 파악해 둘 수 있다면 나중에 충분히 아이누 따위는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어? 하늘이 왜 갑자기 어두워짖지."
"저, 저건! 도망쳐야해!"
갑자기 저 멀리 그늘이 생겨 의아해 하던 그들이 발견한 것은 하늘을 뒤덮을 듯이 내리 쏟아지는 화살의 비였다.
"끄아아악!"
방금 전까지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아이누 정벌의 일등공신은 자신들이 될 거라는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지상으로 내리꽂는 화살의 비는 지금당장 자신들을 집어삼킬 것 같은 핓빛 현실이었다.
환상은 화살에 꿰뚫리고 피로 물들어 절망으로, 영원한 망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공터에 가득했던 수백의 병사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모조리 화살세례에 죽음을 당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광경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
천 단위로 병력을 분할한 후 미리 피아식별 스킬이라는 맵핵기술로 적들의 위치와 동선을 확인하고는 주명은 두 그룹의 병사들을 움직여 그들을 각개격파하려 했다.
그의 눈에는 빨간 점들이 뭉쳐있는 배치가 한눈 들어오기 때문에 그걸 보고 판단하여 동선을 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북쪽으로 이동한다!"
오늘도 저 북쪽에 또다른 게릴라의 희생양이 될 왜인들의 부대가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확실히 보였다.
저 붉은 점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놈들의 병력을 갉아먹다보면 분명히 때가 다가올 것이다.
몰살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