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동생이 굴러들어옴(1)
"아, 이럴 줄 알았다."
눈 앞의 비극적 전경.
단란한 가족식사와 회사 동료들 간의 모임.
화목해 보이지만 알바생들에겐 그저 잠재적 일거리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난 알바생이다.
아직 저녁 타임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됐는데 매장에 손님이 가득하다. 비가 오는 날은 늘 이렇다.
손님이 놀랄 정도로 많이 온다.
고기 기름 튀는 소리가 빗소리랑 비슷해서라나 뭐라나.
테이블은 만석.
바닥은 비 때문에 눅눅해지고.
매장 밖 대기실에 대기번호 10번까지.
내부 좌석이 8번까지밖에 없다는 건 함정.
예상컨대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만석일 거다.
"야, 주현아. 이거 3번 테이블 고기 나왔으니까 빨리 가져가."
"네... 지금 갑니다."
백발 이모가 통삼겹 3인분을 쟁반에 세팅해 홀 쪽으로 건네준다.
냉큼 받아들어 분주한 걸음걸이로 3번 테이블까지 향했다.
저기압이라 몸이 늘어지지만 힘내기로 한다.
이럴 때 날씨에 져버리면 일하는 내내 몸도 마음도 피곤해지니까.
3번 테이블로 향하는 길.
삼겹을 내려두기 전부터 불안하다.
앉아있는 손님들의 마구 흘기는 듯한 눈빛.
화가 나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가 났다는 걸 내게 숨길 생각이 없다.
"주문하신 통삼겹 3인분 나왔습니다."
"아니, 주문한 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늦어?"
"아하... 저희가 오늘 만석이기도 하고,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주문이 살짝 밀렸어요. 죄송합니다."
"으휴, 빨리 굽기나 해라. 배고프니까."
낮잡는 태도 + 반말부터 이미 투스트라이크 아웃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양반인 편이다.
반주를 곁들인 테이블의 손님들은 종종 말투가 거칠고, 행동도 제멋대로다.
이런 일에 일일이 화를 내면 괜히 나만 피곤해진다.
치이익-
침착함을 가장하며 고기를 달궈진 불판 위에 올린다.
눈치 빠른 알바 동생이 아까 이 테이블 반찬 올리면서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있는 게 수상하다 싶긴 했는데.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저기, 알바생. 잠깐 나 좀 봐봐."
".... 예?"
"형, 이거 보라니까. 얼굴 반반하게 잘 생겼어 이 친구."
"그러네, 괜찮네. 부모한테 감사해야겠다."
"학생은 꼭 효도해야 돼. 우리 애들은 뭐 집에 들어가면 아는 체도 안 하고 애먼 날에 용돈 타령이지 뭐..."
"...."
내가 입을 꾹 다물고 고기 굽는 데만 집중하자 금세 지들끼리 알아서 대화 주제를 바꾼다.
저들은 칭찬할 셈으로 이야기한 것이겠으나 썩 기분이 좋진 않다. 굳이 처음 보는 아저씨들한테 가타부타 듣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효도 타령하는 것도 별로다.
남의 가정에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경솔하게 느껴진다.
"맛있게 드세요."
"응, 수고~."
"아이고, 역시 고기는 이 집이 기가 막히게 굽네? 저 알바생이 잘 하는 건가?"
이쁘장하게 마이야르가 올라올 정도로 구워진 통삼겹살. 금빛깔이 먹음직스럽게 기름과 어우러진 고기를 불판의 가장자리로 밀어두고.
재빠르게 3번 테이블을 벗어났다.
"그냥 정신 수련한다고 생각하자."
혼자 중얼거린다.
자고로 알바는 몸과 기술보다 멘탈이 중요하다는 게 내 철학이다.
지난 7년도 그렇게 버텨왔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도 자유롭게 못 사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런 손님들이랑 다투어봤자 그저 피곤해질 뿐이다.
괜히 시비걸리면 나뿐만 아니라 사장님한테도 피해가 간다. 그런 상황은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오늘 하루도.
"버틴다."
외마디로 의지를 표현하며 다시금 주방 쪽으로 향한다.
다음 테이블로 향할 준비.
이모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어주신 고기를 들고 다음 테이블로 향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사장님의 흐뭇한 미소가 주방 안쪽에서 흘끗 보인다.
살짝 목례하고는 홀 쪽으로 향한다.
**
녹초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마감을 마치는 아르바이트 제군들.
사장님 역시 내일을 위한 고기 손질을 마치고 귀가 준비를 하신다.
주방 이모들도 앞치마를 벗어 잘 개어놓는다. 가끔 허리나 무릎을 두들기며.
매출을 보면 승리였지만 직원들은 모두 패잔병 같다.
늘 그렇듯 오늘도 전쟁이었다.
아니, 오늘은 유별나게 조금 더 그랬다.
나는 주방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내일 보자."
힘차게 돌아오는 답변.
사장님만큼은 늘 그렇듯 기운 찬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하루도 우울하거나 지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다.
내일.
그래, 내일도 와야지.
사장님이 워낙 사람 좋으셔서 이곳에서 7년간 일하고 있지만 업무가 결코 편한 것은 아니다.
고기 구우면 손에 기름도 튀어서 따갑다.
그리고 술 먹고 진상 부리는 손님들도 많다.
시급이 쎈 게 그것을 상회할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높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실내에서 근무가 가능한 알바는 고깃집 정도밖에 없다.
이해타산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고르다보니 18살때부터 여기서 일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난 부모와 일찍이 절연한 자식이니까.
뭘 먹으려해도 직접 벌어야 했다.
그저 그뿐이다.
"주현이 형, 내일 봐요~!"
"그래, 내일 보자. 수고했어."
남들보다 한 발 먼저 귀갓길에 나섰다.
알바 동생이 굳이 매장 바깥까지 걸어나와서 인사를 건넨다. 아까 진상 테이블을 고의로 회피한 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고깃집에서 귀가하는 길은 나 홀로 왼쪽.
나머지 오른쪽이다.
굳이 남들과 행동을 맞출 필요 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은 솔플이다.
담백해서 마음에 든다.
어느새 하늘은 보란 듯이 개어있었고, 공중엔 보름달이 달무리를 이루었다.
꿉꿉하게 남은 수중기 탓에 달빛이 더욱 영롱하게 사위를 밝힌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풍경은 하늘뿐이라고. 거리를 거닐 때 무심코 올려다보게 되는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조금이나마 남들 누리는 대로 누리고 싶달까.
마음을 나눌 만한 가족이 있어주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랐을까.
감상적인 마음이 든다.
상념에 젖어 집에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다.
멍하니 걷다보니 집 앞 골목에 도착했다.
"응? 뭐야, 불 켜져있네."
빌라의 불이 은은히 밤의 골목을 비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것까지 켜져있다.
난 혼자서 사는데.
"이상하다. 내가 불을 안 끄고 나왔다고?"
그렇다기보단 불을 키고 나왔을 리가 없다.
애초에 난 절약주의가 은근히 몸에 배었으며, 출근 시각인 이른 오후에는 결코 조명을 키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 집 위치는 2층이므로 한달음이다.
띠, 띠, 띠, 띠.
도어락을 풀고 문을 열자 훈기가 폴폴 새어나온다.
"늦었구나, 고생했다."
"할머니 오셨어요? 연락은 주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연락을 안 했겠니? 너가 하두 안 받으니까 그냥 어쩔 수 없다 싶어서 이렇게 들어온 거지.
안 그래도 바깥이 쌀쌀한데."
확실히 삼월의 바깥은 서늘했다.
비가와서 더욱 그랬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실제로 부재중 통화 기록이 찍혀있었다.
[사랑하는 외할머니]
[부재중 전화 4건]
나는 외투를 적당히 의자 위에 걸고, 할머니의 앞에 앉는다.
외할머니 얼굴을 오랜만에 뵈니까 아까까지 일 때문에 힘들었던 것도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라고 묻는 것과 동시에.
왠지 할머니 등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 같은데, 가려져서 잘 보이진 않는다.
무심결에 슬쩍 허리를 돌려 뭐가 있는지 볼려고 했다.
그랬는데.
스륵-
피한다?
방금 내 시선을 피해서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얘! 윤슬이, 나와서 인사해야지. 그렇게 숨으믄 못 써요."
할머니가 되게 으름장을 놓자 꼬마 천사 같이 이쁘장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배꼽 인사.
"장윤들임니다."
"어, 그래. 안녕...."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집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보통은 고깃집에서 일할 때 부모와 함께 나온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조금 안 좋아졌다.
"웬 애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어요? 허리도 안 좋으시잖아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너한테 부탁할게 있어서 온 거야."
"무슨 부탁... 이요?"
"일단 얘 소개부터 좀 해야겠구나. 장윤슬이, 느이 모친 딸이다."
제 외손주라는 표현을 이리도 애둘러 하신다. 나를 배려하신 행동일 거다.
"그럼 그 여자가 새로 낳은 딸?"
할머니는 고개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친모와는 절연하고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있던 무빈소 장례식에도 안 갔으니, 장윤슬을 만나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거예요?"
"너한텐 사실 이런 말 꺼내기 되게 미안하구... 그렇다만.
너만 괜찮으면 윤슬이랑 같이 지내는 게 어떤가 싶다."
"아."
외할머니의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떤 심정으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알 것만 같아서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는다.
나도 썩 엿 같은 인생이지만, 우리 할머니 외동딸도 기구한 운명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가난한 남자랑 결혼했다. 심지어 둘 다 직업이 시인인지라 멀쩡한 수입원도 없었고, 남편은 끝내 요절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 반쪽이 죽은 슬픔을 고스란히 하나뿐인 아들내미한테 전가했다.
굶기고, 폭력에, 방치, 씨발.
그런 나를 구해준 게 외할머니다.
또 한 세월이 흘러 다른 남자랑 새로 가정을 꾸렸다고 들었는데, 그 뒤로 따라온 소식이 교통 사고로 둘 다 한꺼번에 뒈졌다는 소식이었다.
하나도 안 슬프고, 하나도 동정되지 않는다.
다만 저 어린 친구는 별개였다.
"저 애는, 아니 윤슬이는 괜찮았대요?"
"애기는 내가 데리고 키웠다. 내 딸이지만 너한테 그 꼬라지로 대한 걸 보구 어떻게 가만히 있겠니?
이 애도 똑같은 꼴 당할지 모르는데."
새로 결혼한 남자도 딱히 믿을 만한 인간은 아니었는가보다. 원래 끼리끼리 결혼하는 법이긴 하지만.
내가 좋지 않게 생각할까봐, 그간 저 애의 존재에 대해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저런 말씀, 장윤슬이가 나와 함께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은 결국 어디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는 얘기겠지.
외할머니, 당신께서도 힘에 부치실 때다.
나이도 이제 여든을 바라보시고, 끝내 제 딸 뒷바라지 하느라 많이 쇠약하셨으니.
하나뿐인 딸의 장례식이 있던 것도 한 달 전인데, 몸도 마음도 애 키울 만큼 여유 있진 않으시겠지.
암튼 나와 피 섞인 동생이니까, 같이 사는 게 썩 거부감 들지 않긴 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우리 어른들의 의사만이 아니다.
"윤슬아, 혹시 잠깐 이리 와볼까?"
내 부름에 앙증맞은 발을 콩콩거리며 다가왔다.
앉아있는 나와 우뚝 선 윤슬이의 시선이 딱 맞물린다. 허공에서 얽힌다.
그 정도로 아직 작은 아이였다.
"와써여."
"윤슬이만 괜찮으면, 당분간 나랑 여기서 같이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우움... 안 되는데."
네, 안 된다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