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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8화 (8/200)

8화: 식탁의 목적(3)

발걸음은 빨라진 와중에 내 손은 꼭 잡고 있는 윤슬이. 외출하면 늘 이렇다.

전에 처음 대형마트까지 나갔을 때도 먼저 손을 잡아온 건 윤슬이었다.

'옵바, 손.'

'어이구?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손 잡는 거야?'

'웅, 옵바를 이러버리면 큰 일이야.'

뭐야.

분실되는 대상이 네가 아니라 나인 거냐고.

아무렴 어떤가.

나는 동생이 걱정인데 동생은 내 걱정이라니, 우애가 좋다.

윤슬이와 나란히 손 잡고 기획 상품 코너 쪽으로 도착하자 서글서글한 안내직원들이 웃으며 맞이해준다.

"어서오세요. 한 번 둘러보시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갈게요. 윤슬아 언니한테 한 번 인사해줘야지."

"장윤들입니다~."

보통 안녕하세요 아닌가.

우리 동생은 자기 이름에 자부심이 많은가보다.

내가 친절하게 맞받아드리자 직원이 눈썹을 치켜올린다. 의외인 듯하다.

그야 저런 정형된 친절 멘트에 일일이 답해주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나도 얼마 전까지 알바생이었다. 저런 준비된 말에도 일일이 답해주면 은근히 고맙고 감동이란 걸 알고 있다.

윤슬이의 시선은 아까부터 못 박힌 듯 고정돼있다. 직원들을 지나쳐 그곳으로 향한다.

갈색 폴리 소재의 레이싱 자켓. 팔뚝 쪽에 무심히 패치가 붙어있어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과 똑닮았다.

"윤슬이는 저게 좋아요?"

"네!"

분명 다른 상품들에도 윤슬이의 관심이 갈 만했지만 내가 출발 전에 옷을 사주겠다고 언질을 두어서 이러는 것 같다.

잘 어울릴 것 같긴 한데.

가격도 9만원 살짝 안 되고, 조금 비싸지만 이 정도면 괜찮긴 한데...

잠깐 뒤로 돌아 방금 내게 인사해준 점원분께 다가갔다.

"혹시 저쪽에 전시된 옷들 있잖아요. 애기들 사이즈도 있나요?"

"아, 자녀분이 입으시려구요?"

"그런 느낌이죠. 동생이긴 한데요."

"아동복으로는 안 나오는 모델인데요. 그 반대편 매대 쪽에 아동용 상품이 있긴 하거든요."

"아동용이요?"

"네, 캐릭터 콜라보 상품이긴 한데."

이미 자켓에 매료된 장윤슬씨한테 복귀.

"이거 사이즈가 윤슬이한테 맞는 게 없다는데? 저거 뒤에 있는 건 어때?"

윤슬이는 뒤에 있는 아동용 상품을 흘끗 보더니 다시 고개를 훽 돌린다.

"저거 아니에여."

"아니야?"

확실히 캐릭터 상품이다보니 유아적이긴 하지만 웬 자동차 캐릭터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져있어 리얼리티가 모자라긴 하다.

잘 생각해보면 마트에서 장난감을 볼 때도, 캐릭터 상품보다는 조금 더 고증이 잘 된 쪽의 자동차 모델을 선호했던 것 같다.

우리 동생 취향 알만하구만.

리얼리즘을 중요시하신다.

"그럼 점원분한테 한 번 다시 여쭤보러 갈까요?"

"응!"

이번엔 윤슬이 손 잡고 재도전.

쥐고 있는 손에 은근 힘이 들어간 게 긴장한 모양이다.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간 진지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떡- 삼킨다.

애가 얼마나 저 자켓이 갖고 싶으면 이럴까.

"동생이 저쪽에 있는 자켓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제일 작은 사이즈라도 한 번 재고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아아! 당연히 보여드려야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솔직히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데 꺼내서 보여달라고 하기 죄송스럽다.

이럴 땐 최대한 예의 갖춰서 부탁드리는 게 맞겠지.

그나마 성격이 좋은 점원분이라 다행이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점원분이 낮은 굽의 구두를 뚜걱뚜걱 울리며 빠르게 걸어오신다.

숨도 벅차보인다.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 재고가 안쪽에 있어서 조금 걸렸어요. 이거 제일 작은 사이즈인데, 한 번 동생분 입혀보시겠어요?"

"윤슬아, 언니가 지금 윤슬이 위해서 꺼내주셨는데 뭐라고 해야 돼요?"

"고마씁니다!"

윤슬이는 늘 그렇듯 배꼽인사한다.

요즘 이런 애가 있는가, 모르겠네.

내가 아는 애들 중에 인사 제일 잘하는 건 장윤슬이다. 물론 아는 애기가 한 명뿐이지만.

"어머! 동생분 너무 귀여우시다."

"그럼요, 인사도 너무 잘하죠?"

너무 귀엽다면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점원분.

팔불출 어른들끼리 본인 얘기로 떠들고 있을 때 윤슬이는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입고 있던 더플코트는 내가 받아줬는데, 아까 코트에 비해서 손 쉽게 입는 것 같긴 하다.

일단 폴리 원단이라 입고 벗는데 문제 없는 것 같긴 한데.

"팔이 주먹 하나만큼 남네... 또, 밑단 시보리가 엉덩이까지 덮고."

근데 문제는 윤슬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거의 콧김을 뿜고 있다.

젖살이 남아 말랑한 볼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정도로 좋아하다니, 어려서부터 무서운 덕력이다.

벌써부터 나를 능가함이 틀림없다.

"윤슬이는 이게 마음에 들어?"

"이거 조아여."

단호하시다.

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애 하루이틀 볼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내가 키울 건데.

시간 지나면서 몸이 자라나지 않을까?

조금 많이 커서 중세 시대 망토 같긴 한데,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니까.

그게 중요하지. 윤슬이가 좋아하는 거 사줘야지.

"점원분 혹시 이거 계산해주시겠어요?"

"구매하시려구요?"

"네, 아무래도 동생이 좋아하는 거 사줘야지 자주 입겠다 싶어서요."

윤슬이가 걸쳤을 때 헐렁거리는 자켓을 보고 살짝 의아해하다가

내 답을 듣고 멋쩍게 웃으신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차피 애들은 금방 크니까 조금 큰 옷 사는 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속내는 어떤지 모르나, 이미 구매하는 것은 결정된 일이었다.

멋지게 카드로 긁고, 영수증은 버려달라고 부탁드렸다. 구매한 자켓을 곧바로 윤슬이한테 입혀주었다.

입이 귀에 걸린다.

그리고 자켓이 워낙 헐렁해 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나풀나풀 흔들리는데, 이게 또 여행을 다니는 꼬마 부랑자 같아서 귀엽게 느껴진다.

디자인 플라자의 지하 전시장에서 나오자 반대편 길가에 주욱 늘어선 점포들이 보인다.

포장마차에서 푸드트럭까지.

다양하다.

나도 돈이 모자랐더라면 상가에 자리를 임대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장사해야 됐을지도 모른다.

오늘만 해도 전혀 따듯한 날씨는 아닌데, 특히 겨울이 되면 추워서 더 힘들 것 같다.

남의 돈 벌어먹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옵바, 윤스리 배고프다. 쫄쫄."

'쫄쫄'이라며 자기 배를 위아래로 문지른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우움... 바야 대여."

둘러보셔야겠단다.

이런 길거리에서 끼니를 떼울 땐 둘러보면서 뭐 먹을지 정하는 것부터가 재미이기도 하다.

디자인 플라자 근처인 탓에 꽤 붐빈다.

주변엔 조금 낡은 백화점도 있고.

웬 행사장스러운 무대도 있다.

그런 것들을 옆에 끼고 지나갈 때마다 윤슬이가 신기하단 듯이 고개를 기웃거리는 게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자주해야겠다 싶다.

그렇게 걷다가 별안간 윤슬이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뭔가 또 원하는 게 생긴 것이다.

뭘 원하는지 윤슬이의 눈빛을 직선으로 따라가보자 크레페 장사하는 푸드트럭이 보인다.

"밥 같은 거 말구, 저런 거로 되겠어?"

"머거 보고 시퍼여."

"그래?"

원래 같았으면 안 된다고 했을 수도 있다.

시간은 슬슬 오후 5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걸 먹으면 이따 집에 가서라도 저녁을 잘 안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윤슬이가 크레페를 먹고 싶다고 하니까 나까지 먹고 싶어졌다.

"그럼 윤슬이 오빠랑 하나 사서 나눠먹자. 대신 이따가 저녁 맛있는 거 만들어줄 테니까."

"나너 먹는 거 조아."

벌써 나눔의 미덕을 알다니. 윤슬이도 한 발 양보했으니 기분좋게 먹으러 가기로 한다.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대화가 잘 통해서 편하다.

"어서 와요."

크레페 파는 트럭 앞으로 가자 초로의 사장님이 중후한 목소리로 맞아주신다.

"따님 먹이려구 온 거예요?"

"아... 네. 나이 차이 조금 많이 나는 동생인데. 맛있어 보인다고, 꼭 먹고 싶다고 해서요."

"그래, 그럼 잠깐 기다려요. 금방 하나 해줄 테니까."

"네? 아, 감사합니다."

연세가 나보다 훨씬 많은데도 선뜻 존대해주시니 존경스럽다.

또, 뒤에 메뉴 판이 블랙 보드로 만들어져 있는데 사장님께서 알아서 준비해주실 모양이다.

사장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철판 위에 얇게 핀다. 누렇던 반죽이 열에 익자 부드러운 황금빛을 낸다. 말랑한 팬케이크 느낌.

반으로 접어 두께감을 만들고, 그 위에 먹음직스런 누텔라를 펴바른다. 찐득한 누텔라가 반죽에 붙는 모양이 벌써 침샘을 자극한다.

그 위엔 복스런 과일 3종 세트.

바나나, 딸기, 블루베리

진득한 반죽으로 감싸고 생크림과 초코 시럽을 올려 마무리. 흑백의 심미적 조화.

심플하지만 맛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게 눈에 보인다.

"감사합니다."

윤슬이한테 먼저 먹어보라고, 크레페를 주곤 돈을 지불했다. 가격을 지불하곤 내려다보자 윤슬이가 별빛처럼 눈을 반짝인다.

"으음~ 마시써!"

내 쪽으로 팔을 길게 뻗어 맛 보란다.

아직은 짤막한 팔이 늘어뜨려봐야 내 가슴팍이 한계였고, 고개를 숙여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음, 확실히 밸런스 잡힌 맛이다.

생크림과 초코시럽, 그리고 누텔라의 조합이 너무 달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반죽 안에 든 적당량의 과일이 그 단 맛을 잡아준다.

상큼한 맛이 입에 돌면서 시원하다.

누텔라와 생크림이 끝에 남으며 디저트로써 확실한 여운까지 선사.

"음! 사장님, 이거 너무 맛있네요."

"흐흣, 그거 다행입니다."

점잖게 답하는 사장님은 은근히 호감이다. 혼자 장사하신지 꽤 된 듯 익숙한 손놀림이었는데, 여러 모로 묻고 싶어졌다.

나도 초기에는 혼자서 장사할 생각이니까.

"사장님 여기서 오래 장사하셨어요?"

"꽤 오래 됐죠. 원래는 아내랑 같이 하던 가게인데, 지금은 그쪽 몸이 안 좋아져서 일단은 나 혼자 유지하고 있어요."

실제로 포장마차 내부의 크기는 한사람이 들어가기엔 꽤 넓었다. 두 사람 정도가 딱 넉넉히 자리 잡을 것 같은 크기다.

"아아... 그러시구나. 몸은 좀 괜찮으시대요?"

"글쎄 나이 먹으면 괜찮고 뭐고가 있겠나. 그냥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사는 거죠. 적당히 힘 빼고. 어떻게든."

"아직 저는 어려서 잘 모르겠네요."

사장님께선 꽤 허심탄회하게 본인 얘기를 꺼내신다.

과묵해보였는데, 보기보다 마음이 열린 분인 것 같다.

"손님도 장사하는 분인가요?"

"어... 아직은 아니에요. 너무 티나게 쳐다봤나요?"

"그 정도까진 아닌데, 그냥 오래 장사하다보니까 눈칫밥 좀 먹은 거죠.

왠지 눈빛이 그런 것 같아서요. 나도 옛날엔 그런 눈빛이었나 싶기도 하네요, 허허."

사장님 솜씨를 너무 뚫어지게 응시해서 티가 났는가 싶다. 살짝 쑥쓰러워졌다.

2분 간의 짧은 침묵이 맴돈다. 그 침묵을 매운 것은 오직 윤슬이의 크레페 먹는 소리뿐이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무슨 길거리 쇼라도 하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윤슬이가 크레페 먹는 모습에 주위가 쏠린 것이었다.

내 뒤에 바싹 붙어 아무 것도 모르고 냠냠 크레페 먹방을 홀로 찍고 계신 장윤슬씨에게 행인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

아주 비정상적일 정도로.

-  저 애 좀 봐. 너무 이쁘게 잘 먹는다.

-  CF 찍는 줄? 볼까지 빵빵해서 더 귀여운 듯.

-  그니까. 나도 먹고 싶은데 우리 줄 설래?

-  야, 사람들 갑자기 몰리는데! 빨리 서자. 이러다 기다리겠다.

-  큰 일 났다! 경쟁 붙었다. 뛰어!

짧은 시간 내에 크레페 가게 앞에 콘서트장처럼 행렬을 이루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손님 한둘이 들리는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원래 인기가 많은 가게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방금까지 대화를 주고 받던 사장님의 얼굴을 스윽 쳐다보니

상당히 당황한 듯 보인다. 능숙한 손놀림에 비해 표정은 얼음장 같은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이냐, 갑자기?"

우리가 크레페 가게 앞을 막고 있는 형국이 되어 윤슬이 손 잡고 길가로 나왔다.

때마침 허벅지 쪽에서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주머니를 뒤적인다.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보았는데, 웬 이상한 메시지들이 떠있다.

윤슬이에 관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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