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3화 (13/200)

13화: 식탁의 목적(8)

""오오.. 맛있네!""

담백하면서도 요리를 만든 사람한테는 최고의 칭찬이다.

"야, 한 번 저거 제육도 먹어보자."

호연 형님이 옆에 있는 제육 그릇을 갖고 오라며 성급하게 손짓한다.

저쪽도 음식 장사를 하는 분이니 맛에 흥미가 생긴 것 같다.

"어디 안 달아나니까 걱정 마십쇼."

내가 제육 접시를 잡자마자 윤슬이가 손가락에 끼운 에디슨 젓가락을 높게 치켜든다.

"윤스리도!"

"필중이도!"

"아니, 아저씨는 왜 자칭을 3인칭으로 하세요..."

강씨 아저씨의 본명이 강필중이다.

머리가 완연히 회색인 중년이 저리 말씀하신다.

"가끔 오십대도 다섯 살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 중에 오십대는 필중 형님밖에 없습니다.

저한테는 아까 추하다고 한 말씀 하시더니. 형님도 애처럼 구시잖아요!"

"그럼 나도 추한 걸로 해."

강씨 아저씨.

상당히 쿨한 편.

저런 점이 매력이기도 하다.

아저씨가 저렇게 털털한 성격이 아니셨다면 나도 헌책방에 자주 들리지 않았을 수 있겠다.

이번에도 제육에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은 동생이다.

어른 먼저!

라는 딱딱한 말을 꺼낼 사람은 공교롭게도 세 명의 남정네 중 단 한 명도 없었다.

"고기가 상크매."

"어이구, 상큼해~? 맛있지?"

"체고야!"

또 한 번 엄지를 날려주는 윤슬이.

최고라니.

내가 누구한테 최고라는 말을 들었던 게 언제더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넌 내가 고기만 이렇게 구워줘도 최고라고 해주는구나.

은근한 감동이 잔물결처럼 밀려온다.

이번에도 윤슬이의 반응을 보더니 강씨 아저씨와 호연 형님의 시식이 이어진다.

역시나 호평. 두 분 다 나이를 어느 정도 드신 만큼 미사여구를 사용하진 않지만 단지 '맛있다'라는 말만으로도 내겐 큰 용기가 된다.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가장 입맛이 까다로운 나이대가 중년인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맛보았을 때이면서도 아직 미각이 쇠퇴하지 않을 시기니까.

"그래도 두 분이 맛있다고 해주시니까 조금 마음이 편해져요.

특히 호연 형님. 오래 고깃집 운영하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뭔가 제 실력에 믿음이 가네요."

"그럼! 너두 알겠지만 내가 빈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거 음식들 뭐 넣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괜찮네.

물어봐도 되냐? 어차피 우리 가게에선 쓰지도 못할 조리법이겠지만."

"아... 별 특이한 거 넣진 않았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좀 사용해봤어요. 둘 다."

"아하! 아까 동생이 고기에다 상큼하다길래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토마토 향 때문에 그랬구나."

호연 형님은 그제야 납득했단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제육과 가지 튀김의 칠리 소스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사용한 건

저번에 고깃집에서 토마토 라면 만들었던 게 떠올라서 그랬다.

제육 만들 때 가장 고심해야 되는 부분이 감칠맛이다. 고기 자체가 양념육이기 때문에 마이야르를 만들기가 애매하다. 자칫 불판에 댔다가 양념 때문에 타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을 토마토의 감칠맛으로 대체한 것이다.

"가지 튀김 소스도 되게 먹을 만한데? 여기에도 토마토 넣은 거니?"

"그쵸, 그거 칠리 소스인데. 원래 케첩 넣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토마토 페이스트로 바꿔서 농도 좀 잡았어요.

튀김엔 조금 더 꾸덕하고 짙은 양념이 잘 맞을 것 같아서."

"음... 난 요리는 잘 모르지만, 이거 소스 식감이 되게 매력적이다. 가지에도 기름이 잘 배어서 되게 튀김 자체가 맛있기도 하고.

종종 생각 날 것 같은 맛인데?"

강씨 아저씨의 꾸밈 없는 호평가다.

소스 메이킹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 같다!

이내 강씨 아저씨와 호연 형님, 그리고 윤슬이가 젓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도 따라서 몇 점 집어먹어봤는데, 역시 환상이었다.

돼지 뒷다리의 적당히 쫀득한 식감과 토마토 베이스의 고추장 양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혓바닥을 쓰다듬는다. 입천장을 강타하는 감칠맛!

"와, 튀김도 장난 아니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다.

가지의 육질에 기름이 스며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별미다. 그런데 튀김옷과 어우러져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또, 이 소스가 맛이 밸런스를 잡아준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튀김을 새콤하고 달달하게 뒤덮는다.

그렇게 훈기가 도는 식사 시간이 10분 정도 이어지자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보인다.

윤슬이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고, 손님 두 분도 늦은 밤에 찾아왔지만 후회 없을 정도로 괜찮은 식사였다고 말해주신다.

그것만으로도 요리를 만든 보람이 있어 기쁘다.

내가 차리는 식탁의 목적은 이런 것이다.

열심히 조리한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야 근데 송주현이, 너 여기서 동생이랑 같이 지내려면 꽤 빡세겄다?

침대에 식탁 하나 두니까 우리 몸 가누기도 힘든 정도인데?"

"그렇긴 하죠. 그래도 두 분 안 계시면 그럭저럭 있을 만은 해요."

건장한 남정네 셋과 꼬맹이 하나가 조그만한 원룸에 앉아있으니 비좁게도 느껴진다.

윤슬이는 어떨지 몰라도 성인 남자 셋은 각각 키가 180을 넘어서는 장신이라 마치 지하철처럼 부대끼는 느낌이다.

호연 형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의외는 아니다.

"난 그래도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은데. 대학생 같지 않냐? 이렇게 있으니까.

뭔가 대학 동기네 자취방 가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느낌."

"아니, 필중 형님. 여기서 대학 나온 건 형님밖에 없는데요."

"이런 공감대 형성 실패했네."

대학.

대학이라.

강씨 아저씨 말씀을 들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대학에 갔으려나. 보통 부모님 밑에서 사는 보통의 삶.

그랬다면 윤슬이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테고.

강씨 아저씨나 호연 형님을 만날 일도 없었겠지.

'그런 건 별론데.'

입 모양만 옴싹거린다.

"옵바."

"으응?"

"안아죠."

동생이 갑자기 앉아있는 무릎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야, 주현아 애기 졸린가부다."

"우리가 조금 늦게 오긴 했지?"

호연 형님과 강필중 아저씨는 당황한 듯 눈이 쪼그라든다. 애가 졸려서 이러는 줄 아는가보다.

"아뇨, 제가 초대했으니까요. 두 분 반응 보니까 요리에 자신이 더 붙어서 좋았어요."

"그려 근데 애기는 졸린 거 같으니까 우린 일어나볼게. 어차피 내일 장사도 준비해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

"그럼요. 다음에 가게 개업하면 두 분은 공짜로 해드릴 테니까 꼭 놀러오세요."

"뭔 공짜여.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자주 들려서 밥값내고 먹고 갈 거니까 걱정 말어!"

강씨 아저씨는 대꾸하시면서도 호연 형님을 일으킨다. 집 밖으로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신다.

윤슬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대로 품에 안은 채로 두 분을 배웅했다. 배웅이라 해봤자 몸만 돌려서 손 흔드는 것뿐이었지만.

두 남자가 집을 떠나니 갑자기 집 안이 넓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슬이는 여전히 내 가슴팍에 얼굴을 푹 묻고 있다.

숨막힐 정도로.

정말로 졸려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내가 방금 강씨 아저씨의 말을 듣고, 윤슬이가 없던 미래를 상상하던 와중에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내 표정이 아마 썩 안 좋았던 모양이다.

오빠 표정이 안 좋으니 동생도 불안해진 게 아닐까.

아니면 그런 나를 위로해주려고 이렇게 와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진심으로 날 위해주는 가족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쓰담쓰담.

윤슬이의 뒷통수를 만져준다.

부드러운 머릿결.

볼록하게 튀어나온 두상을 따라 손이 물결친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내 동생."

"응, 옵바 동생."

"오빠 동생이야?"

"네."

"오빠도 윤슬이 오빠지?"

"응. 마자여."

바보 같은 남매의 바보 같은 대화.

내 마음도 바보처럼 애틋해진다.

안겨 있다보니 어느새 졸린 듯 꾸벅이는 윤슬이.

침대에 고이 내려두고 빈 그릇을 정리한다.

동생 잠 깨지 않게.

조심조심.

**

가로등이 띄엄띄엄 밤길을 비춘다.

저벅저벅-

도로와 맞닿는 낡은 운동화의 걸음들.

중년의 두 남자는 나란히 걷는다.

친밀하면서도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를 두고.

"형님, 제가 뭐랬습니까? 주현이 꽤 믿을 만하죠?"

"그러게. 어느새 스물다섯 먹더니 요리를 그만치 잘할 줄은 나도 몰랐네."

"제가 잘 가르쳤다니까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강필중과 진호연.

송주현이 피 섞이지 않은 남 중에선 제일 의지하는 두 남자.

18살 때부터 그의 성장을 지켜봐왔던 두 중년으로서는 오늘 감회가 새롭다.

"주현이 녀석 첨 봤을 땐, 조금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애가 악에 받힌 것 같은 것두 같았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잘 없잖아."

"그쵸, 동생 생겨서 그런가. 요즘은 오히려 부쩍 여유 생긴 것 같다니까요?

보통 애 키워야 되면 마음도 바빠지고 그러지 않나?"

"글쎄... 그러게 말이다. 윤슬이가 워낙 착해서 오히려 주현이 마음에 안정을 주나보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송주현의 최근 모습은 이 만큼 두 남자에게 괄목할 만한 일이었다.

오늘 밤도 빨리 집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지만 송주현이 초대하길래 거부할 수 없었다.

송주현과 두 남자가 함께해온 시간은 그런 7년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그거 메뉴로 팔면 좀 잘 될 것 같냐? 호연아."

"제가 봤을 땐 괜찮을 것 같은데요? 워낙 지금 상가 자리 알아보고 있는 쪽이 성북에 대학가 주변이거든요. 아무래도 둘 다 가격 저렴하게 칠 수 있으니까 그 점이 메리트죠.

또, 제육이나 가지 튀김 정도면 밑준비만 잘해두면 금방 조리해서 나가면 되니까, 시간 문제도 없고.

혼자 하기에도 괜찮아보이고..."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맞는 거겠지. 네가 음식 장사만 거의 20년 했는데."

"그럼요! 제가 이런 부분에서 실수할 놈이었으면 가게 이 만큼 유지하고 있겠어요?

그런데... 조금 걱정인 것도 있죠."

"뭔데?"

"요즘 워낙 요식업장이 많으니까. 아무리 맛있게 잘해도 기본 유입이 적으면 초반에 되게 고생하거든요.

자리를 잘 잡건 못 잡건 그건 똑같을 텐데. 그때를 잘 버텨야 뭐라도 될 건데 말이에요."

"홍보를 잘 하면 괜찮지 않냐?"

"1인 업장에서 무슨 수로 홍보를 해요?"

"그건 그렇긴 하지. 윤슬이가 매장 내에 있으면 귀여워서라도 밥 먹으러 들어오지 않을까? 손님들이."

"그런 건 형님이나 그런 거죠! 확실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크게 기대하긴 어렵죠."

"그래?"

두 남자의 대화만큼이나 밤도 무르익는다. 이 둘은 며칠 전 동대문에서 크레페가 누구 때문에 잔뜩 팔렸는지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쓸데 없는 걱정과 망상을 부풀리며 귀가 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