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4화 (14/200)

14화: 오누이 식당 개업!(1)

고롱- 고롱-

작게 코고는 윤슬이.

어떤 꿈을 꾸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잠버릇이 유독 심해보인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런 윤슬이의 말랑한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찍어보았다.

흠칫- 하더니.

"옵바는... 그만.. 빼서.."

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을 뱉는다.

뭘 나랑 생각한다는 걸까.

어떤 꿈인지 물어보고 싶다.

스마트폰을 꺼내 뱅킹 앱을 킨다.

[송주현님의 현재 잔고]

[5,241,315원]

"어휴, 돈 많이 나갔다. 호연 형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큰 일 날 뻔했어."

강씨 아저씨와 호연 형님.

두 분을 초대하고 나서 몇 주가 흘렀다.

당연히 그만큼 사업장 선정이라던가 인테리어 공사 등 여러 부분이 진행되었다.

결국 보문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 성북천 인근의 조금 낡은 상가. 그곳의 1층 자리를 임대하게 됐다.

본래 1층이라면 자릿세가 꽤 나가는데 그 상가의 주인과 호연 형님이 친척 관계라고 한다.

그 덕에 임대료를 조금 할인받을 수도 있었다.

'야! 우리 사이에 임대료 하나 못 깎아주냐?'

'아니, 형님 가게면은 깎아드리겠는데, 저분은 저랑 모르는 사이잖아요...'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쟤는 내 동생 같은 놈이니까, 너한테도 동생 같은 놈인 거지.

그리고 모르는 사이라고? 그럼 오늘부터 알고 지내! 인맥도 넓히고, 좋네.'

'허허.'

호연 형님의 다소 막무가내스러운 돌파력 덕분에 내가 득을 보게 된 셈이다.

애초에 상가 주인분도 그렇게 돈에 욕심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저희 가게 오시면 가끔 한 끼씩 대접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그 정도로 합의보죠. 이것도 인연일지 모르니까요. 호연 형님도 저렇게 말씀하시고.'

이런 대화가 오고간 덕에 상가 임대료를 기존보다 10% 싸게 지불하기로 했다.

이 정도 세이브하면 적어도 며칠 간 판매할 음식의 원재료값은 버는 셈이다. 장사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엄청난 거다.

여기까지만 해도 호연 형님한테는 꽤 큰 빚을 진 셈이지만 심지어 내부 인테리어까지 도와주셨다.

실내 공사를 해야 되는데, 여기서 내부를 다 뜯어고쳐야 되기 때문에 인건비 등등 돈이 많이 빠져나간다.

심지어 주방 식기구, 식탁과 의자 등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그런 것들을 구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것도 호연 형님이다.

'야! 형님이 누구냐. 형님 장사 경력 몇 년?'

'20년~!'

사실 18년 정도라고 하지만 20년이라고 올려치기 해줘야 좋아한다.

'형님만 믿고 따라와라!'

생판 남이었다면 정말 수상한 멘트다.

하지만 호연 형님은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형님의 조언에 따라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거나 의탁자를 구했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깔끔한 인테리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후... 문제는 딱 하나인데."

식당 이름.

과연 상호를 무엇으로 해야할까.

스스로 말하긴 조금 뭐하지만 이름 짓는 센스는 영 없다.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들만큼 어휘가 뛰어나지도 않고 말이다.

헌책방의 책에서 쌓은 지식으로는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호연 형님이나 강씨 아저씨와도 상의해봤지만 대답은 이런 느낌이었다.

'주현아, 형님이 생각해봤을 때. 가게 이름은 아무래도 사장의 영역이 맞다. 거기까진 내가 어떻게 못해줘.'

'음... 송주현 식당은 어때?'

차례로 호연 형님과 강씨 아저씨의 답변이다.

둘 다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다.

기껏 추천해주신 강씨 아저씨께는 죄송하지만 자기 이름 걸고 하는 건 좀...

암튼 좀 그렇다.

"아, 뭔가 좋은 생각이 딱! 하고 떠오르면 좋은데."

위대한 작가들은 그렇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래봤자 할 줄 아는 게 요리나 서빙뿐이니.

"이뿌다.. 핸님... 달님..."

옆에서 간만에 낮잠을 자는 윤슬이가 계속 잠꼬대를 한다.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는가 하면.

입술을 우물우물거리며 몸을 뒤척이기도 한다.

정말 무슨 꿈을 꾸길래 이러는 걸까.

**

장윤슬의 꿈 속 세계.

그곳은 척 보기에도 수상했다.

텅 빈 백색의 공간.

그곳에 해와 달.

두 광원이 동시에 떠있는 것이다.

"우움..?"

다섯 살 난 장윤슬이 생각하기에도 그건 이상했다.

왜 주위엔 자신밖에 없는 것이며.

또,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인가.

그러나 꿈이란 본래 자각하기 어려운 것.

그저 장윤슬은 하늘을 꿈뻑꿈뻑 올려다보았다.

"엉..? 옵바는 어디 있찌..."

주위가 수상하니, 먼저 오빠부터 찾는다.

반자동적인 반응이다.

근 한 달 동안은 무얼 할 때이건 송주현이 함께 있었다. 그야 유치원도 가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송주현이 옆에 있지 않으면 옆구리가 허하게 느껴질 정도다.

"빨강 모자 삼촌이랑 인나."

요근래 송주현은 종종 가게 준비를 해야 한다며 진호연과 만났다. 때마다 어지간하면 장윤슬을 동행했고, 진호연은 지금 미운 털이 박혀있다.

빨강 모자 삼촌인 진호연은

-  '옵바'를 자꾸 이리 저리 불러대는 귀찮은 녀석

정도의 인식이 되고야 말았다.

"부후..."

또 진호연 때문에 이상한 곳으로 불려온 것이 아닐까 싶은 장윤슬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오빠를 찾으러 나선다.

오늘은 기필코 그 빨강 모자에게 한 마디 쏴붙여주리라.

"옵바는 윤스리랑 놀아야 대. 그만 빼서가."

라고.

성큼성큼.

씩씩대며 큼직한 걸음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러더니 해와 달, 그 사이에서 길다란 동아줄이 내려온다.

특수부대원처럼 능숙한 솜씨로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건 두 명의 꼬마들.

서로 똑닮았는데, 한 명은 남자 아이고.

다른 한 명은 여자 아이다.

복장은 각각 옛된 백의다.

조선시대나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나 입었을 법한.

물론 그런 지식따위 없는 장윤슬은 겉으로 티는 안내도 '뭐 이런 옷을 입고 있지?'라고 생각한다.

오빠가 사준 레이싱 자켓이 302배 정도 더 이쁘다. 아, 302는 장윤슬이 심심할 때 혼자서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본 숫자 중 제일 큰 것이다.

""안녕!""

"으응... 안녕."

윤슬이는 발로 땅을 끄적이며 서먹하게 인사한다.

오빠가 옆에 있더라면 바지춤이라도 부여잡고 뒤에 숨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였다.

둘 다 제 또래 같았지만 그래서 더욱 어색하다.

유치원에서의 좋지 못한 기억도 있고, 최근엔 제 또래와 대화를 얼마 간 하지 못했다.

말을 잇기 곤란하다.

그러던 중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윤슬이 이제 가게에서 오빠랑 있으려면 손님들이랑 얘기 많이 하게 될 거야. 어색해도 슬슬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연습을 해볼까요?

솔직히 조금 버거운 요구였다.

오빠나 할머니, 초코 아저씨나 빨강 모자 삼촌이 아니면 함부로 말 걸기 힘들다.

'그치만... 옵바 말 들어야 해.'

왜냐면 송주현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오빠의 말을 따르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덕에 이 이상한 흰 옷을 입고 있는 녀석들에게도 말을 걸 용기가 생겼다.

"너네 모야."

다만 다소 공격적으로.

"우리는 오누이. 나는 달님, 그리고 이 옆에 여동생은 햇님이야."

"엇... 이름 이뿌다."

"너두 이뻐, 윤슬."

"움? 나 말 안 해써. 내 이름."

"우리는 맨날 저 위에서 보고 있으니까 알아. 오빠는 송주현. 너는 장윤슬. 할머니는 안순연."

"...?!"

달님의 말을 듣고 경계도가 올랐다.

자신과 오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할머니의 성함까지 알고 있다니?

'함모니 이르믄... 나도 몰르는데.'

함모니는 함모니였을 뿐, 단 한 번도 안순연씨였던 적이 없던 것이다!

"우리가 부탁할게 있어서 왔어, 윤슬아."

이번엔 햇님이라고 하는 여동생 쪽에서 말을 이었다.

"몬데."

"지금 너희 오빠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윤슬이가 해결해줬으면 좋겠어."

"윤스리가?"

"응! 응! 윤슬이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드러볼게. 말해바."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듣는다. 두 남매가 수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게 이름이 아무래도 떠오르지를 않는다고 해서 말이야. 우리가 하나 추천해줄까 하거든. 어떻게 생각해?"

"...?"

그걸 왜 본인한테 묻는지 윤슬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는 걸로 받아들일게! 그럼 너희 오빠한테 가서 식당 이름은 오누이 식당으로 지어달라고 좀 해줄래?"

"시러."

"?!"

"너네가 오누이자나. 근데 옵바가 왜 너네 이름을 갖따써?"

햇님은 풀이 죽고 말았다.

윤슬이의 정론에 논파당하고 말았기 때문.

이때 달님이 기지를 발휘한다.

"그게 아니지, 윤슬아."

"그럼 몬데."

"오누이는 남매라는 뜻이야. 근데 주현이 형이랑 윤슬이 너도 남매잖아?

그리고 가게에서 같이 일하기로 했구. 그럼 우리 얘기가 아니라 형이랑 너, 두 남매 얘기가 되는 걸?"

"읏...?"

윤슬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서서히 고개를 까딱거린다.

아무래도 저 달님이란 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햇님이 동생이고 달님이 오빠라더니, 역시 오빠는 얕볼게 못 된다.

저 녀석도 크면 우리 '옵바'처럼 되려나.

"말은... 해볼께."

"응! 고마워, 윤슬아."

달님이 윤슬이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쑥쓰러워져서 손을 다시 쑥 빼고 뒤춤에 숨긴다.

그때 오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엉큼하게 웃는다.

허나 윤슬이는 쑥쓰러워 몸을 꼬느라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자기들 할 말만 하고 오누이는 다시 동아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끼잉끼잉대며 열심히 올라간다.

'뭐야, 이대로 친구해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아쉽다.

뭐, 그래도 괜찮다. 자신에겐 오빠가 있으니까.

다만 저대로 지들 할 말만 전하고 도망가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장윤슬은

"너희 진짜 모야!!"

하고 그들 뒤통수에 한바탕 소리를 질러줬는데.

"어...? 송주현입니다만..."

어느새 자신 앞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오빠가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동공이 지진하는 송주현.

그제야 깨달았다.

꿈이었구나.

아무래도 자신이 소리를 지른 게 오누이가 아니라 꿈에서 깬 뒤, 오빠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미안해졌다.

하지만 순순히 사과하기 싫었다.

나쁜 건 자신이 아니라, 그 오누이놈들이니까.

"옵바... 앙몽 꿔써..."

"아이구, 우리 윤슬이가 무서운 꿈꿨구나? 그래서 그렇게 소리 질렀어? 이리 오세요."

"응... 무서워써여."

그렇게 상황을 무마하려 오빠에게 거짓을 고했다.

송주현은 아까부터 뒤척이는 꼴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악몽을 꿨다니.

충분히 이해하기로 하고 동생을 꼬옥 안아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