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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5화 (15/200)

15화: 오누이 식당 개업!(2)

봄의 훈기가 완연해진 4월의 중순 무렵.

가게의 내부 공사도 마무리될 때다.

간판만 달면 나와 윤슬이의 사업장이 완성된다.

동생과 성북천을 따라걷는다. 가게까지 가는 올라가는 길에 산책로가 있으니, 홀린 듯이 걷게 되더라.

이어폰을 꽂고 조깅하는 남학생.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

냇물 앞 벤치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평소의 윤슬이 같았으면 그런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며 고개를 기울일 법도 한데

오늘만큼은 다른 곳에 관심이 쏠린다.

성북천 가의 풀잎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들.

펄렁이는 날개짓에 윤슬이 흥미가 가는 것이다.

"옵바, 나비!"

"그러네, 나비네?"

"날개가 하양색."

"그치, 날개가 하얀색이지? 저건 모시나비라고 하는 거야."

"모시나비?"

꽤 전문적인 지식이지만 단지 운이 좋아서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다.

고등교육과정을 듣지 못했다고 아예 무식하거나 하진 않다. 강씨 아저씨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흥미가 돋는 책은 이따금씩 빌려 읽곤 했다.

사전에서 소설까지.

종류가 획일적이진 않으나, 그 덕에 넓고 얕은 지식이 두뇌에 자리잡았다.

"옵바, 근데 궁금한 거 이써."

"뭐가 궁금하실까요?"

"나비는 왜 나비라고 해여?"

"나비를 왜 나비라고 하느냐고?"

동생은 내게 철학자가 되기를 에둘러 권유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건 아니겠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어?"

"냥이도 나비라고 해여."

"어? 진짜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나비도 나비라고 하지만

고양이도 나비라고 한다.

후자는 보통 어르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어휘지만.

외할머니께서도 가끔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셨던 것 같다.

"오빠랑 한 번 같이 생각해볼까?"

"움, 모르게써."

나도 모르겠다.

윤슬이가 입술을 앙 다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 동생을 번쩍 안아다가 벤치에 앉히고는 나도 그 옆에 앉는다.

길가에 우뚝 서서 멍하니 있으면 통행객들한테 방해되니까.

-  동생이랑 나온 건가요?

그때였다.

옆에서 신문을 조용히 읽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신다.

"아! 네, 그렇죠. 산책 삼아서요."

-  사이가 좋은 게 보기 좋네요.

"옵바랑 사이 조아여."

윤슬이가 한 마디 거든다.

-  괜찮으면 남매 대화에 한 마디 끼어들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아... 네, 어쩐 일로?"

-  다름이 아니라, 제가 퇴직하기 전엔 국어를 조금 연구했었거든요. 그래서 나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얼마간 알고 있습니다.

"아하, 방금 저희가 대화한 거 듣고 말씀 주시는 거구나. 오히려 저희 쪽이 부탁드리고 싶죠.

동생이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알고 계신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알려주세여!"

-  후후, 늙은이가 말 거는 거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옛말으로 재빠른 동물을 이르는 게 '납'이었어요.

"납이요?"

-  네, 그게 이유입니다. 팔랑거리는 꼴이 꽤 빠르죠? 나비도. 고양이도 뛰는 꼴이 재빠르고요. '납이'가 말의 기원이 되고, 발음이 흘러 나비가 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아, 무슨 말씀인지 알 것도 같네요."

직관적이면서도 연구직이셨던 만큼 수준 있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윤슬이는 더욱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곤 할아버지께선 쓴웃음을 지으신다.

-  어이구, 제가 괜한 소리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머리가 더 아파졌으려나?

"아뇨, 알려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솔직히 그런데 동생한테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수준일 것 같긴 한데..."

-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그 나이대 아이에게는 많이 이른 것 같네요. 남매 두 분은 이 근처 사시나요?

"멀리 살지는 않는데, 그렇게 가깝진 않아요."

-  으음? 그럼 산책하러 이 근처까지 온 거예요?

"사실 저희가 저쪽에서 이제 밥 장사하게 됐거든요."

-  아아 장사? 요 성북천 근처면 자리 정말 잘 잡았네요.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고, 환경도 좋고.

"그쵸, 저도 자리 되게 잘 잡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옆에 윤슬이는 무얼 하는지 흘끗내려다봤더니 이번엔 나비에서 숫자로 관심사를 옮긴 모양이었다.

혼자서 "스물 하나... 스물 둘..."하고 수를 센다.

요새는 자기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본인이 몇까지 숫자를 세었는지 내게 자랑하곤 한다.

지난 번에는 삼백 몇까지 세었다고 했는데,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런 모습이 할아버지 눈에는 마냥 귀여워보이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신다.

-  그 식당 들르면 동생도 같이 있나요?

"네 그렇게 될 것 같네요. 유치원 가기를 무서워해서 일단은 저랑 같이 가게에서 지내기로 했거든요."

-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렇게 귀여운 동생이 있는 식당이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식당 이름이 어떻게 돼요?

"오누이 식당입니다."

-  하하하하! 이름 정말 이쁘게 잘 지었네요. 나중에 꼭 한 끼 식사하러 갈게요. 괜찮을까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와는 몇 마디를 나누다가 자리를 떴다. 우리 동생 덕분에 한 명의 예약 손님이 생긴 느낌이라 운이 좋다고 느꼈다.

또, 어르신께서 가게 이름을 칭찬해주시니 기분이 들떴다. 네이밍 센스라곤 전혀 없는 내가 받아 마땅한 칭찬은 아니었다.

온전히 윤슬이의 덕이다.

얼마 전에 낮잠을 재웠을 때, 악몽을 꾸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내게 식당 이름은 뭐로 할 건지 다짜고짜 묻는 게 아닌가.

'아직 정하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동생님.'

하고 설명하니 윤슬이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오누이 식당...'

이라고 권유했다.

처음엔 애가 웬 바람이 불어 식당 상호를 추천하는가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쁜 이름 같지 않았다.

윤슬이와 내가 가게에 함께 있을 예정이니, 우리 식당의 색을 잘 살린 이름이었다!

다만...

얼마 전에 동대문에서 윤슬이에 관한 메시지를 보낸 오누이라는 놈들이 신경 쓰였다.

그럼에도 어차피 윤슬이가 그놈들의 존재를 알고 내게 권유하는 것은 아닐 듯했다.

'윤슬이가 옛날 동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구나?'

'움... 마자여.'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윤슬이가 오누이라는 단어를 꺼낼 만한 건덕지는

고전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 최근 들어 곧잘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니까 말이다.

윤슬이에게 아이디어를 얻고, 한 번 호연 형님과 강씨 아저씨에게도 상담해보니 두 분 모두 호평이었다.

'오, 정감 있고 좋네. 원래 장사하는 집 이름이 너무 어렵고 있어보이면 좀 그래. 부담스러워서 못 들어오거든. 귀엽고 딱 좋네.'

'너랑 윤슬이 둘이서 가게에 같이 있을 거라며? 그런 상황이랑 잘 맞물려서 센스 있는 이름 같다.

송주현 식당도 좋았는데...'

차례대로 호연 형님과 강씨 아저씨의 평가다.

호연 형님은 역시 장사 선배답게 적확한 평가를 내려주었고.

강씨 아저씨는 아직 본인이 추천한 [송주현 식당]에 미련을 못 버린 듯했다.

그건 좀 버렸으면 좋겠다.

좌우지간 윤슬이 덕분에 가게 이름을 정하게 된 셈이다. 정말 복덩이다.

동생 아니었으면 아마 가게 이름도 한참 못 정해서 끙끙 혼자 앓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누이 식당으로 간판 주문 제작을 넣은 날엔 윤슬이가 먹고 싶은 만큼 초콜릿을 줬다.

그제야 본인이 잘한 행동이었다고 확신한 듯 들뜬 표정이었다. 아마 오누이 식당이란 이름을 내가 마음에 안 들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간판 주문 제작을 [오누이 식당]으로 맡기자마자 핸드폰이 울리는 것 아니겠는가.

왠지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었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울리는 핸드폰.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좋은 네이밍 센스에요! 내심 저희를 좋아하시는 군요? - 오누이]

그 오누이란 놈들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골때렸다.

딱히 녀석들을 의식하고 지은 이름은 아닌데, 왜 갑자기 자기네들을 좋아하니 마니 떠드는지.

물론 오누이가 나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게 봐줘도 수상한 놈들인 것은 틀림없다.

윤슬이에게 기묘한 능력을 부여한 것도 녀석들인 것 같고.

내 요리 능력을 향상시킨 것도 십중팔구 그 녀석들이다.

"나쁜 짓은 아니지만... 뭔가 찝찝하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 오누이에게서 오는 메시지는 주의하기로 한다.

성북천을 쭉 따라걷다보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가게다.

어느새 간판까지 뚝딱뚝딱 달고 있는 모습이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싶다.

"오누이 식당..."

"윤슬이랑 오빠가 같이 있는 식당이니까, 오누이 식당이지?"

"네! 옵바랑 가치."

윤슬이는 본인이 제안한 식당 이름을 또박또박 읽는다. 간판 모양은 너무 세련되진 않았지만 오래오래 쓸 수 있게끔 흰색 바탕에 소형 간판으로 해버렸다.

가게 규모도 테이블 4개 정도로 크지 않고.

공간도 얼마 넓지 않으니, 간판만 으리으리해봤자 좋을 게 뭐 있겠는가.

-  아이고, 젊은 사장님 오셨구먼.

"수고하십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캔커피 몇 개를 꺼내어 간판 공사 중이신 업체 직원분께 건넨다.

-  아이구, 뭐 이런 걸 다 주고 그러시나. 잘 마실게요!

"네, 별 건 아닌데 한 캔씩 드시면서들 하세요. 여기 업체에서 그래도 저희 가게 인테리어 공사부터 여러 모로 힘 써주셨는데.

캔커피 정도밖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  아이구, 이 정도면 됐지 뭘.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도 안 챙겨주는 업장 주인들이 많아요~. 반면에 우리 젊은 사장님은 사람이 참 좋으시네! 장사 잘 되시겠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공사 업체분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다 해봐야 5천원도 안 되는 캔커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사람 관계란 것이 신기하다.

부우웅-!

때마침 핸드폰이 울린다.

호연 형님인 줄 알고 들여다봤더니 오누이다.

[오누이: 장사 파이팅이에용! 저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친구라도 되냐구, 너희가."

윤슬이는 폴짝 뛰어 내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보더니 인상을 한껏 찌푸린다.

으르렁대는 게 아기 호랑이 같다.

"으으... 오누이...!"

뭐지, 왜 윤슬이가 오누이라는 말에 저렇게 험악하게 반응하는 걸까.

이때까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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