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오누이 식당 개업!(3)
적적하고 고요한 오전이 느긋하게 흘러간다.
개업 첫날인 만큼 분발하여 고기도 재워두고, 튀김 세팅까지 마쳐두었으나
정작 손님이 없다.
오픈형 주방 앞 다찌석 4개 자리부터 테이블석까지
텅텅-
"부우웅! 부우웅!"
윤슬이는 처음 마트에서 사주었던 장난감 자동차를 가게 바닥에서 굴리며 열심히 놀고 있다.
음... 다음엔 트랙까지 갖춰진 세트 장난감을 하나 선물해줘볼까.
나도 같이 놀고 싶다.
무심코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한가한 시간이 흐른다.
예상 못한 사태는 아니다.
개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야 이런 골목에서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힘들다고 했다.
호연 형님이 말이다.
'아마 가게 열고 초반에는 조금 힘들 걸..? 뭐, 화환 몇 개 걸어서 개업 축하 분위기 내놔도 사람들이 그다지 흥미를 갖진 않을 거야.
손님 하나둘 모으는 것부터가 단골 만드는 장사의 기본이니까. 분발해라!'
그 말을 듣고 화환도 그냥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차피 의미도 없을 거라면 무엇하러 돈을 쓰는가.
강씨 아저씨랑 호연 형님은 한사코 보내겠다고 박박 우기셨으나
반대로 나도 철저히 거절했다.
어차피 여기 일꾼이라곤 나 혼자다.
1인 업장 하나 개업한 게 무슨 대수라고 화환까지 보내겠는가?
아무튼 그 두 아재들은 나를 챙겨주고 싶어해서 안달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지나칠 정도로 한가한데?"
이 상황이 만화로 표현되었다면 파리가 윙윙 날리고 있을 것이다.
개업 첫날쯤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가게 안에 익숙치 않은 적막이 감도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제육을 재워두고, 가지를 손질해두고 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춘기 소년이라도 되는 양.
뭐든지 시작은 두근거리는 법이다.
특히 그게 내가 그동안 꿈꾸어왔던 일이라면 더욱이.
헌데 지금의 허무함은 그 난로처럼 따듯하던 두근거림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섭섭하다.
"옵바."
"왜 그러시나요? 동생님."
"심시매여?"
윤슬이는 바닥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쫄래쫄래 다가온다. 그리고 덥석 자기가 갖고 놀던 자동차를 내민다.
본인이 아끼는 건데, 내가 심심해하는 것 같다며 이렇게 선뜻 내미는 내 동생.
누구 닮아서 이렇게 착한지.
"그러게, 손님 안 와서 심심하니까 윤슬이랑 자동차루 조금 놀까?"
"움... 조아!"
그래, 꿀꿀한데 윤슬이랑 놀면서 기분이나 풀어야겠다. 혼자서 장사했으면 조금 많이 우울했을 수도 있겠다. 동생이 있어줘서 다행이다.
"윤슬아 그럼 여기 주방 문턱부터 가게 문앞까지 경주인 걸로 할까요?"
"윤스리도 그게 조은 거 가타여."
"오케이. 오빠가 그럼 선 그을 테니까 윤슬이부터 먼저 차 굴릴까?"
"움!"
윤슬이는 장난감을 높이 들어올리며 결의를 다진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집에서 자주 노는 방식이다.
현재 윤슬이의 최애 장난감, 레이싱 카는 무려 뒤로 바퀴를 쭈욱 땡겨 차지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성능의 장난감을 우리 자동차 덕후들이 그냥 냅둘 리가 없었고.
남매는 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놀이를 생각해냈다.
출발점과 끝 지점을 이용한 경주다.
출발 지점에서 쭈욱 차지하여 끝지점에 최대한 가깝게 가는 사람이 우승자인데, 만약 끝으로 정한 지점에 충돌할 경우 리타이어다.
즉, 마냥 차지를 빡세게 한다고 해서 이득이 아니라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셈이다.
"흠! 감니다..."
윤슬이는 콧방귀를 한 번 크게 뀌더니 자세를 잡고 자동차 장난감을 주욱 땡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킨다.
윤슬이와 이 놀이를 하면 열에 아홉은 내 패배로 끝나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휴, 스무 살 차이 나는 동생 이겨먹어서 뭐하나? 그냥 져줘야지.'
하는 안일한 마인드였다.
헌데 말 그대로 안일했다.
내 동생 장윤슬, 거리 계산의 장인이다.
내가 머리를 굴려 레이싱 카의 동력을 계산한들 윤슬이의 거리 감각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도 진지하게 임해야 했다.
이건 단순 놀이보다 승부에 가깝다.
"에잇."
윤슬이가 한껏 뒤로 당긴 레이싱 카를 놓자 진동음을 퍼뜨리며 차체가 나아간다.
부우으으-! 툴툴툴툴, 끼익
"이럴 수가..?! 거기서 멈춘다고?"
끝 지점으로 정해두었던 가게의 문앞.
딱 바퀴 하나의 간격을 두고 그 앞에 멈춰섰다.
그걸 보고 윤슬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날 게슴츠레 쳐다보며 똥배를 불쑥하고 내밀어보인다.
"후후후, 어때여?"
"크흣... 아직 내가 진 게 아니잖아."
윤슬이는 이미 자신만만하다. 내가 윤슬이의 피니쉬 위치를 표시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똥배 내밀기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나와 함께 지내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저렇게 가벼운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동생아, 우리 사회에선 그걸 도발이라 부르기로 약속했단다.
이걸 이긴다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다고 무언가를 잃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 속의 불꽃이 타오르는 느낌이다.
이게 바로, 라이더의 혼인가?
이 승부, 반드시 이겨주겠어!
"흐아아앗!"
기압을 넣고, 자동차를 뒤로 땡긴다.
발진!
....
졌다.
그것도 전패다.
대략 15번 정도 했던가.
기억도 잘 안 난다.
우린 놀이의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진지하게 임했고, 더욱 몰입했다.
때마다 윤슬이가 기가 막힌 거리조절 솜씨를 보이며 승부에서 승리했으나
그리 분한 기분은 아니었다.
애초에 스무 살 차이 나는 동생이기도 하고.
시간 때우려 노는 일에 진심으로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동생이 저리도 실력적으로 우세에 있으니, 나까지 놀이에 몰입하게 되어 좋았다.
괜히 내가 애매하게 져주거나 하는 승부가 계속 되어봤자 흥미와 재미가 떨어질 뿐이다.
"윤슬이! 다음엔 오빠가 이길 거에요! 알겠지?"
"움! 조아, 그럼 다음에 또 노는 거야!"
"그럼요, 오빠랑 매일매일 같이 있는데, 시간이 나면 같이 놀아야지."
"웅!"
배실배실 웃는 윤슬이.
본인이 많이도 이겼다는 사실보다 나랑 다시 이렇게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동생.
안 이뻐할 수가 없다.
꼬로록-
"우우... 노랐더니 배고파여."
윤슬이의 배꼽시계가 또 울려주신다.
스마트폰의 시계는 어느새 [13:11]을 가리킨다.
시간이 오래 지나긴 했네.
그 동안 손님이 단 한 명도 안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아까보단 기분이 한결 나았다.
윤슬이와 함께 놀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동생이 고마워서, 맛있는 밥을 만들어줘야겠다.
"윤슬아, 오늘은 패밀리 밀로 쟁여둔 재료가 없어서 그런데 제육볶음이나 가지 먹을까요?"
어차피 오늘 준비해둔 분량은 남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소모해야지.
"윤스리는 가지가 더 조아. 오늘은 가지 기분."
"오늘은 가지를 먹고 싶은 기분이야? 그럼 쪼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해줄게."
"윤스리 뱃까죽 찢어져여~ 금방 해조여~."
"아직 그 정도는 아니잖아..."
뱃가죽이 찢어진다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주방으로 되돌아가 가지에 노르스름한 반죽을 묻히고 열이 오른 튀김기에 쏙 집어넣는다.
튀김가루 하나 흘러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기름.
연노란색을 띤 투명한 기름이 이뻐보인다.
이걸 사용하는 게 패밀리 밀을 위해서란 게 다소 아쉽다.
그래도 윤슬이가 그 만큼 맛있게 먹어주겠지.
딱 알맞게 튀겨지자 연꽃처럼 퐁퐁 떠오르는 가지를 건져낸다.
그 위에 이른 아침에 만들어둔 붉은 빛깔 칠리 소스를 부어주면 금세 가지 튀김이 완성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 메뉴 선정인데?"
맛을 떠나, 조리 과정이 어렵지 않다.
윤슬이가 해달라고 한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낸다.
이거랑 밥 한 공기 나가면 1인분 뚝딱이다.
손님만 들어온다면 금방 요리해드릴 자신이 있는데.
"문제는 손님들이 안 오신다는 거죠."
내가 주방에 들어오자 바깥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기도 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 성북천 쪽으로 발을 옮긴다.
한 명쯤 들어와주실 법도 한데 말야.
가게 출구 쪽의 통유리로 행인들의 걸음을 지켜보다가 그보다 훨씬 가까이에 앉은 윤슬이와 눈이 마주친다.
양 손으로 턱을 괴고 내가 금방 만들어낸 가지 튀김을 응시하고 있다.
얼굴에 다 써있네요.
맛있겠다!
라고.
그런데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왜냐면 경험적으로 미래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윤슬이가 이 가지 튀김을 먹으면. 분명 손님들이야 많이 오시겠지만.
아니, 일단 애 좀 먹이고 생각하자.
배고프겠다.
윤슬이는 짤막한 다리를 동동 구르며 내가 칠리 가지 튀김을 갖다주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동동 구르는 게 바 테이블 앞쪽 벽에 툭툭 부딪혀 느껴진다.
"윤슬이, 방금 튀겨서 뜨거운데 어떻게 해서 먹어야 돼?"
"후후 불어서."
"저번에 그냥 입에 잔뜩 집어넣었다가 입천장 다 까질 뻔했죠?"
"한 번 실수해쓰니까, 이제 안 그래."
윤슬이는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새침하게 돌린다.
도도하기도 하셔라.
"옵바."
"왜 부르셔요."
"옵바는 왜 안 머거여?"
"오빠는 지금 입 맛이 없어서 조금 이따 먹으려구요."
"그럼 윤스리만 머거?"
"배고프다면서? 이따가 오빠는 제육 먹을 건데, 그때 윤슬이도 조금 나눠줄게."
"우움..."
윤슬이는 아무래도 내가 걱정인 모양이었다.
손님이 안 들어와서 내가 의기소침한 게 아닐지.
그래서 밥을 안 먹는 게 아닐지.
그런 걱정을 내심 해주는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정말 내 동생은 신기하리만큼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거다.
"오빠두 이따가 밥 챙겨먹을 거니까 걱정 말구 윤슬이부터 먹어. 혹시 손님 들어오면 어떻게 해.
윤슬이도 밥 먹구 오빠두 밥 먹으면 아무도 손님 응대를 못해드리잖아요."
"어... 생각해보니까 옵바 말이 마자여. 그러믄 손님이가 당황해."
그제야 윤슬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윤슬이 용으로 구비해둔 에디슨 젓가락에 손가락을 꽂는다.
나는 이따가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에 먹어야지.
앞으로 장사할 거면 식사 시간은 일정하게 브레이크 타임에 먹는 거로 생체 리듬을 맞추어두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아움!"
윤슬이는 평소와 같이 크게 한 입 가지를 베어문다. 우물거리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반면 나는 긴장되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윤슬이가 가지 튀김을 입에 쏘옥 넣은 그 순간.
가게의 통유리 바깥으로 행인과 눈이 맞았기 때문이다.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내 또래의 남자였는데, 기웃거리지도 않고 홀린 듯이 우리 가게 안으로 곧장 들어온다.
우리 가게 첫 손님이다.
"어서오세요! 편하신 자리 앉으세요."
그는 망설임 없이 바 테이블 석 쪽의 의자를 뒤로 끌어빼며 착석하곤
- 혹시 옆에 꼬마애가 먹는 걸로 주문 가능한가요?
라고 묻는다.
"네, 그럼요. 칠리 가지 튀김으로 괜찮으시겠어요?"
- 아~ 이게 가지구나. 맛있어보이네. 하나만 주시겠어요? 아직 식사를 못했거든요.
"아이구 배고프시겠다, 금방 만들어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미소로 응대하고, 곧장 가지 튀김 조리에 들어갔다. 첫 손님이었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았고, 외려 능숙한 손놀림으로 요리했다.
속으로는 약간 들뜨기도 했다. 드디어 첫 손님이구나, 하는 마음에.
근데 이게 왠 걸.
첫 손님이라는 기분 좋은 만남을 만끽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가게 문이 열렸다.
덜컥-
덜커덕-
덜컥-
한 번이 아니다.
계속 들어온다?
"어, 어서오세요! 편하신 자리 앉으세요!"
윤슬이는 누구 덕분에 이런 줄도 모르고 오물오물 맛있게 식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