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오누이 식당 개업!(3)
바쁘다, 바쁘다, 바쁘다.
이럴 수가.
개업 첫 날부터 바쁘다.
윤슬이가 있어서 대략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갑작스레 손님이 몰리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 사장님, 저희 저 애기가 먹는 걸루 2개 주시겠어요?
- 저희도요! 칠리 가지 튀김 3개만 주세요. 아, 콜라도요.
- 오, 여기 콜라 브랜드 근본 있네. 북극곰은 못 참지.
"네, 조리하는데 10분 정도 걸리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콜라는 셀프입니다."
고깃집에서 단련된 성량으로 손님들께 주문이 접수되었음을 알린다.
바 테이블을 제외하곤 4개 있는 홀 테이블 석이 모두 만석이다.
이게 다 윤슬이가 점심 식사를 시작한 지 10분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 동대문마냥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지역이 아닌지라 웨이팅까지 늘어서지는 않는 것 같다.
만약 줄까지 섰더라면 심적으로 살짝 버거웠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오히려 다행이다.
치이익- 보글보글-
가지를 정량만큼 나누어 담아 튀김기에 집어넣는다.
손님들의 대부분이 가지를 주문한 탓에 한꺼번에 가지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가지를 있는 대로 튀김기에 때려부어선 안 된다.
가지끼리 덕지덕지 붙으며 친목질을 다지다가 다신 떨어지지 않는다고 시위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붙어있는 가지끼리 떨어뜨릴 때 튀겨진 모양이 밉게 나와서 음식의 외적 호감도가 많이 떨어진다.
눈으로 먹는 음식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으와, 손님들 한꺼번에 엄청 많이 오셨네."
가지를 튀기다가 다찌석 너머로 홀 테이블 쪽을 흘끗 쳐다본다.
손님들이 웃고 떠들며 내가 음식을 대령하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대에 찬 눈빛.
기시감이 든다.
고깃집, 그러니까 호연 형님의 사업장에서 알바로서 일할 때나 봤던 눈빛이다.
예전엔 일개 아르바이트였기에 그저 일거리이자 짐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차린 사업장의 잠재적 단골이고, 소중한 고객님들이다. 이전에도 일할 때만큼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나 지금은 더욱 그래야 할 때이다.
"첫 손님들부터 좋은 인상 심어드려야지."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손을 더욱 바삐, 부단히 움직인다.
제육은 3인분.
가지 튀김은 7인분.
시간 안배만 잘 하면 아무리 손님이 몰렸다한들 늦어지지 않게 조리할 수 있다!
- 엄매, 저 양반 웍질 좀 치네. 제육 맛이 벌써부터 상상되는구먼.
- 냄새가 상큼하다? 가지 때문인가. 아니면 소스?
- 주방 열려있으니까 이게 좋은 듯.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지루한데, 사장님 요리하는 거 보니까 뭔가 멍 때리게 되고 시간 잘 가지 않냐?
- 인정 인정. 이런 가게 느낌 있고 좋아.
굳이 집중하지 않더라도 홀의 반응이 들려온다.
1인 사업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오픈형 주방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손님들은 음식 조리 과정의 향도 즐기고, 요리 만드는 모습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사실 그런 재미까지 노렸던 것은 아닌데, 좋아해주시니 다행이다.
"옵바."
"응? 윤슬이 다 먹었어? 그럼 저기 싱크대에다가 그릇 놔두고 주방 안쪽에서 책 조금만 읽고 있을까? 지금 손님들 오셔서 요리해야 돼요."
"우움... 그릇은 윤스리가 방금 갖다놔써."
"어이구, 아주 잘했네. 혼자서도 잘해요?"
어느새 식사를 마친 윤슬이가 주방 안까지 들어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몸을 배배 꼰다.
음... 윤슬이까지 상대해주기엔 지금 조금 바쁜데.
"윤슬이 오빠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지금 놀아줄 수가 없는데 어쩌지?"
"움... 그런 거 아닌데."
"응?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그러실까요."
"윤스리가 옵바 도와줄께."
"도와준다고?"
윤슬이는 내 바짓자락을 잡고 눈망울을 초롱초롱하게 뜬다. 아무래도 내 힘이 되어주고 싶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음...
서빙을 시키기엔 아무래도 아직 이르지 않나? 혹시 하고싶다고 하더래도 조금 나중에 부탁해야지.
"그럼 나가서 손님들 말동무 해드릴까?"
"말동무?"
"응, 말동무.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게 옆에서 같이 얘기 들어드리고, 윤슬이 얘기도 잔뜩 해드리고."
"그거는... 으응."
아무래도 손님들한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된다는 게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정도도 못한다면야 서빙을 도와주거나 하는 일도 결국 할 수 없을 것이다.
윤슬이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옵바, 윤스리가 손님들이랑 놀아주고 올께~!!"
하고 큰 소리를 치며 주방 밖으로 뛰쳐나간다.
동생아, 네 의도와 결심은 너무 좋아.
"적어도 목소리는 낮추는 게 어땠을까."
손님들이 윤슬이 말을 다 들어서 눈치가 보인다.
어색한 시선을 맞추며 목례를 주고 받는다.
첫 번째 주문 들어온 홀 테이블의 음식이 완성되어 갖다드리면서 윤슬이와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 어머, 우리 놀아주려고 온 거야?
"네..."
처음 향한 곳은 거의 내 또래의 커플.
중년의 손님들이나, 웬일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손님들도 있었으나 커플 손님들께 먼저 향했다.
- 어떻게 놀아줄 건데?
"움... 고민 좀 해야대여."
- 하하하, 음식 올 때까지 조금 남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커플 중 여성분이 윤슬이를 귀엽다는 듯이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맞춰주신다.
나만한 청년 알바생이 저랬다면 눈살을 찌푸렸겠지만 상대는 장윤슬, 다섯 살이다.
웬만한 어른들이라면 귀여워서 깜빡 죽는다.
특히 우리 윤슬이는 얼굴도 귀염상이라 매력적이고, 방금 가지 튀김 먹방으로 손님들의 주목을 한차례 끈 상태다.
가게 내부의 이목은 모두 윤슬이에게 쏠려있다.
"지금 빨리 요리를 끝내야겠군."
윤슬이가 열심히 손님들 주위를 끌어줄 때, 손을 바삐 움직여 요리를 후딱 만들어냈다.
먹음직스런 제육볶음과 칠리 가지 튀김이 완성되었고, 쟁반에 담아 각 테이블로 세팅했다.
마지막으로 커플 손님들의 음식이 서빙 되자 이번엔 손님들 쪽에서 나를 보고 반응하신다.
- 어머, 윤슬아! 오빠가 요리 가져다주셨네?
"응! 가지 마시써요."
- 제육은 어떤데? 제육도 맛있어?
"네, 제육도 마시 있눈데. 움, 오늘은 가지 기분이라 가지 머거써, 윤스리는."
평소와 다름 없이 곧잘 대화하고 있다.
이것도 윤슬이의 장점이다. 처음 만나면 쭈뼛거리다가도 상대방이 말 섞기 만만하다 싶으면 금세 적응하여 긴장을 풀어준다.
"오래 기다리셨죠? 가지 튀김 2인분 준비해드릴게요."
- 아뇨, 오래 기다리긴요. 보니까 손님들 한 번에 몰려서 그런 것 같던데요. 어차피 저희도 들어온지 15분밖에 안 됐구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머, 오빠분이 너무 미남이시다. 동생분이 괜히 귀여운 게 아니라 유전자가 좋네~.
"하하, 감사합니다."
뭐지.
젊은 커플이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말을 곧잘 붙여주시던 여성분이 이번엔 우리 남매의 외모를 칭찬해주신다.
흔한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남자친구 입장에서야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남자친구분 쪽으로 눈길을 스윽 돌리니 꽤 점잖은 표정으로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입을 여신다.
- 여보, 사장님도 이제 바쁘신데 우리도 식사하자고. 일 보셔야 할 거 아냐.
- 엥? 왜 그래, 이제 요리도 다 하신 것 같은데. 윤슬이도 너무 귀여운데 얘기 좀만 더하지.
아, 그런 거구나.
그냥 커플이 아니라 부부여서 조금 더 침착했던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두 분이 같이 맞추신 반지가 웬만한 커플링보다 더 비싸고 고급져 보이긴 한다.
"빨리 가지 머거봐여, 우리 옵바 요리 대따 잘하는데."
- 오빠가 요리까지 잘하셔? 윤슬이가 사장님을 정말 많이 따르는 것 같네요. 아까부터 오빠 자랑밖에 안 하던데.
"제 자랑이요?"
- 네, 지금 윤슬이가 입고 있는 옷도 오빠가 사주고, 초콜릿도 자주 주고, 잘 놀아주고 해서 너무 좋다고 그러던데.
"앗, 옵바한테 말하믄 안대눈데..."
- 아이구, 비밀이었어? 언니가 미안해.
- 언니라고 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 조용히 밥이나 먹어라.
보기보다 나이가 꽤 있으신가?
아무튼 금슬이 좋은 부부인 것 같다.
천년만년 행복하시겠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저희는 주방 쪽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 네! 잘 먹을게요.
윤슬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고 주방으로 복귀한다.
"윤스리가 손님들 노라줘써."
"손님들을 윤슬이가 놀아준 거야?"
"네!"
"음, 그건 아니구 손님들이랑 같이 놀았던 거야. 알겠죠?"
"움, 알게써."
앞으로도 가게에 있을 텐데 손님들한테 불손한 어휘를 쓰게 하는 건 좋지 못하겠지.
아직 애니까 괜찮다고 하기보다는 아이일 때부터 이런 부분은 잘 얘기해둬야 나중에 커서라도 탈이 없을 거다.
"옵바."
"왜 그러세요."
"윤스리 잘해써?"
"응, 윤슬이 덕분에 오빠가 요리할 시간 많이 벌었어. 그리고 손님들도 윤슬이랑 얘기하는 게 즐거웠대. 되게 대단하네? 우리 동생."
"나 대다내!"
아까 레이싱 카 승부를 이겼을 때마냥 배꼽을 불쑥 내밀고 의기양양함을 표현한다.
요즘 밀고 있는 포즈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만석이었다가 자리가 빈 걸 보고는 두 테이블이 더 들어왔다.
바 테이블에도 2명이 더 들어왔고 말이다.
첫 날에다가 점심 장사인데 이 정도면 꽤 성황인 셈이다.
윤슬이 덕분이지만.
- 사장님! 저희 계산이요.
"네, 금방 갑니다."
손님들이 나가신 식탁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닦은 후 주방 쪽에 붙은 포스기 쪽으로 향한다.
1인 업장이라 편의상 포스기를 주방 쪽에 붙여놓았다.
기다리던 건 아까 그 젊은 부부였다.
- 너무 잘 먹었어요. 윤슬이 말대로 가지가 정말로 맛있네요. 다음엔 제육도 한 번 먹으러 올게요.
- 저도 잘 먹었습니다. 빈말 아니고, 다음에도 한 번 더 들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1만 4천 원 나왔습니다."
- 으음, 이 정도면 가격도 괜찮네?
- 요즘 이 돈으로 밖에서 2인분 먹으면 저렴하게 먹은 거지. 맛도 괜찮았고.
"워낙에 1인 업장이다보니까 인건비가 안 들어서 그런 것 같네요."
- 어우, 저는 이런 맛집 대찬성. 장사 파이팅하세요!
"넵!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잘 가여!"
한 번 대화해본 손님이라 그런지, 윤슬이도 마중 나와서 손 흔들며 인사해준다.
붙임성 있던 여자 손님도 가게 밖으로 나갈 때까지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받아주신다.
"좋은 부모님 되시겠다."
혼자 작게 되뇌였는데 그때 다른 손님들이 포스기 쪽으로 다가오신다.
- 오빠, 저희 둘도 계산해주세요.
오빠.
그 말을 듣고 윤슬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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