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오누이 식당 개업!(4)
식사를 느지막히 마친 고등학생이었다.
여학생 둘.
이 근처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던 것 같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인 것 같다.
평일에다가 이 시간대에 왜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밖에서 식사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싶다.
"분할 결제하시죠?"
- 분할이요? 아, 따로따로 하냐는 뜻? 아뇨. 이걸루 한 번에 해주세요.
페이 어플이 켜진 상태인 스마트폰을 내게 내민다.
- 권수영 뭔 일이야? 너가 사게?
- 당연히 아니지. 이따 보내라.
- 까비.
"1만 4천원 나왔습니다. 영수증..."
- 아뇨, 영수증은 괜찮아요.
다시 스마트폰을 돌려주는데 학생이 주방 내 등 너머로 주방 안쪽을 들여다보며 기웃거린다.
오픈형 주방이 신기한가보다.
- 오빠, 여기 언제 오픈했어요?
"오늘부터 장사 시작했어요."
- 왠지 첨 보는 식당이 있더라. 이름 뭐예요?
"오누이 식당입니다."
- 아니, 오빠 이름.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어본다.
갑자기 무슨 영문인가 싶어 당황스럽지만 침착하게 받아넘긴다.
"다음에 또 우리 가게 들리면 알려드릴게요."
- 오케이, 그럼 그런 걸로 해요.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냥 음식 너무 맛있게 먹어서 자주 오려는데, 그런 김에 친해지면 좋잖아요.
"또 와주면 저야 감사하죠."
- 다음에 또 올게요! 오늘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친구들 더 많이 데리고 올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는 친구의 말본새는 꽤 거칠다.
- 야, 니가 나 말고 친구가 어디 있어. 같이 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서로 정말 친한 친구인 것 같다.
나도 평범한 학창생활을 보냈다면 저렇게 친한 친구 하나쯤 있었을까.
"우우..."
불만 가득한 소리를 내길래 아래를 내려다보니 윤슬이가 웬 나라 잃은 표정이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응? 왜 그래 윤슬이."
"옵바는 윤스리 옵바인데. 저 사람이..."
"오빠는 윤슬이 오빠야?"
"네..."
"근데 저 언니가 오빠보고 오빠라고 그랬어요?"
"네, 그러믄 안 대여..."
"아이구 그래서 화가 났어? 윤슬이 일루와."
동생이 제딴에 질투가 났나보다. 얼굴을 호떡처럼 빵빵하게 부풀린 윤슬이를 안아서 들어올린다.
참 다섯 살답게 귀여운 질투다.
"그럼 오빠랑 주방에서 같이 놀자, 다음 손님 올 때까지 책 읽어줄게."
"움... 특별히 용서해주께."
뭐야.
내가 잘못해서 용서 받아야하는 입장이었던 건가.
- 흐흐, 저 애 너무 귀엽다.
- 그러게, 자기 오빠가 그렇게 좋은가봐? 우리 애들도 저렇게 사이 좋게 좀 지냈으면 좋겠다.
그런 윤슬이를 보고 몇몇 남아계시던 손님들도 즐거워하신다. 역시 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장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물론 가장 큰 행운은 윤슬이가 내 가족이 되어준 거지만.
**
이런 느낌으로 하루 장사가 마무리되었다.
윤슬이는 생각보다 가게에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은 듯 주방에서나 홀에서나 잘 적응하는 모습이었고.
나 역시도 오늘 처음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실수 없이 잘 해냈다.
그간 고깃집에서 여러 일을 배운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요리에 관한 능력을 얻은 터라 조리 과정에 능숙했다.
요리 과정만 무난히 넘어가면 딱히 실수할 만한 건덕지도 없었다.
"옵바, 수고해써."
"윤슬이도 수고했어."
가게를 닫고, 집에 도착하자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가게 마감 시간에 여유가 있어, 돌아오는 길에도 성북천을 밤산책 했다. 평소보다 느긋한 귀갓길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윤슬이도 쉬엄쉬엄이지만 손님들 상대하랴 책 읽으랴 바빴다. 심지어 산책까지 하고 싶다고 졸라, 실컷 걸었으니 지쳤을 거다.
"옵바, 가치 씨서?"
"아니, 오늘은 윤슬이 먼저 씻어. 지금 호연 형님한테 전화해야 될 것 같애."
"으으... 또 빨모 삼촌."
으휴-
하고 한숨을 쉬며 윤슬이는 뽈뽈뽈 욕실로 향한다.
샤워하다가 무슨 일 생기면 부르겠지.
기본적으로 혼자 씻는 걸 선호하는 윤슬이기에 별로 걱정이 되진 않는다.
뚜루루-
뚜룻
- 어, 송주혀니. 수고했다.
"형님도 수고하셨어요. 아직 가게시죠?"
- 그치, 이제 슬슬 마감 중. 근데 내 할 일은 다 끝냈으니까 통화하는 건 문제 없어.
"다행이네요."
- 그래서 오늘 하루 어땠냐? 처참해?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 오, 그래? 손님들이 꽤 모인 모양이네? 역시 우리 송주혀니 잘 생긴 얼굴 보고 손님들 몰려든 거 아냐? 묵은지 장사는 안 해도 되겠구먼.
"그건 아니구, 윤슬이 덕이죠 뭐."
- 동생? 하긴, 너희 동생이 복스럽게 잘 먹긴 하드라. 걔한테 밥 채려주니까 먹는 모습 보고 들어오디?
"대충 그런 느낌이죠."
- 흐응, 그래서 쫌 팔았어?
"어... 그러니까.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 뭐야, 뭔데 그렇게 뜸 들여? 많이 팔았냐?
"오늘 준비해둔 재료 소진돼서 장사 조기 마감했어요."
- 뭐? 조기 마감?!
삑사리까지 내며 값진 리액션을 보여주시는 호연 형님. 장사 첫 날부터, 심지어 개업식도 안 했는데 이 정도로 장사가 됐다고 하면 놀라는 게 당연하다.
조기 마감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저녁 메뉴로 윤슬이한테 제육을 차려줬는데, 점심 때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렸다.
이번에야 말로 웨이팅이 2-3팀 생길 정도.
원래 점심 장사보다야 저녁 장사가 매출이 높고, 손님이 몰리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경우이기에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워낙 골목 장사인 까닭에 손님들이 첫 날부터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정말로 예상 못했다.
윤슬이의 능력을 체감하긴 했으나 이 인근 골목의 손님 유입량을 예측 못한 것이다.
그래서 첫 날인 만큼 식재료의 양을 조절하여 기존에 염두에 둔 것보다 소량으로 준비해두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제육볶음과 가지 튀김.
두 종류 모두 매진되어버렸고, 8시가 될 때쯤에도 손님들이 짬짬이 들어와주셨지만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재고 전부 소진돼서 괜찮으시면 다음에 방문해주시겠어요?'
- 뭐야, 여기 오늘 처음 생긴 집이라 와봤더니. 맛집인가? 어떻게 벌써 재고가 다 떨어졌대?
-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네.
이와 같은 대화를 주고 받게 되었다.
방문해주신 손님들한텐 죄송하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넉넉하게 준비해두었겠지만
설마 재고가 전부 소진될 정도로 첫 날부터 손님이 몰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 이야, 그렇게 많은 손님들이 너네 동생 먹는 거 보고 들어왔단 말야? 너희 가게 간판이나 다름 없네?
"그쵸, 완전 자랑거리죠. 우리 윤슬이."
- 담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게요. 다음주 월요일쯤에 애 맛있는 거 멕이러 가려구요. 월요일은 가게 휴일로 정했거든요."
- 좋은 생각이네, 그렇게 가족이랑도 시간 자꾸 보내줘야 장사도 할 맛 나지.
이렇게 말해도 워낙 재료를 많이 준비해두진 않았던 까닭에 수입이 말도 안 되는 정도로 나온 것은 아니다. 다만 기대치보다 훨씬 높게 나온 것뿐.
앞으로 이 수입을 조금 늘리거나 유지하는 선에서 장사를 이어나가는 게 관건이다.
- 첫날부터 스타트가 좋구만 주혀니? 이제 인생에 꽃 피는 건가?
"아직 그렇게 말씀 드릴 정도는 아니죠. 가게 보전하고, 윤슬이 학교 보낼 때까지는 적어도 긴장 늦추지 말고 장사 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 그건 맞는 말이고, 좋은 결심인데. 힘은 좀 빼면서 해. 너무 긴장하면서 해도 오래 못 간다?
"그 말씀은 새겨들을게요."
- 그려, 그래도 첫날 그렇게 잘 됐다는 말 들으니까 마음이 놓인다. 오늘 수고했고, 알바 애들이 마감 다 끝냈대니까 나도 들어가봐야겠다.
"옙, 고생하셨어요.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 그려~ 수고.
뚝-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슬이가 씻고 나왔다.
"옵바, 윤스리 혼자 씨서써."
"잘했네, 머리 말려드릴까요?"
"네, 축축해."
"잠시만 기다리세요."
윤슬이는 침대에 앉아 기다린다.
침대 아래 쪽 벽면에 콘센트가 붙어있기에 보통 윤슬이 머리 말려줄 때는 침대에 앉히고 말리곤 한다.
물기랑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떨어지긴 하는데.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드라이기 쓰는 건 감전 걱정 때문에 안 되겠다.
우리 윤슬이 다치면 안 되니까.
우우웅-
동생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머리가 손가락에 걸리고 결이 흩날린다.
너무 뜨거운 바람으로 하면 머릿결 상하니까 시원한 바람에다가 바람 세기도 중약 정도로 조절.
"바람 괜찮아? 윤슬이."
"음... 딱 조쏘. 시언하오."
딱 좋소 시원하오.
뭐야, 그 말투는.
사극이냐고.
"그런 대사는 또 어디서 들었대?"
"움? 함모니 보던 드라마."
"주워들은 건 다 따라하시는구만, 우리 동생님이."
"대다내?"
"그렇진 않고."
"푸우우.."
이렇게 밤 늦은 시간에 가게 마치고 돌아와서 윤슬이 머리 말려주는 일.
이것도 아이를 돌보는 누구에겐 의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난 전혀 고단하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순간마저도 힐링되는 것 같다.
윤슬이가 침대 받침에 발을 동동 부딪히는 것도.
얇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코끝을 스치는 것도.
짖궂게 말을 듣고 윤슬이가 볼을 부풀리거나 입술을 비죽대는 것도.
점점 내 일상에 녹아들어, 이젠 없어지면 허전할 지경이다.
"머리 깔끔하게 다 말랐네?"
"하암... 옵바 씨서야 돼."
"응, 씻고 올 테니까 동생 먼저 누워 있으세요."
"안 자고 기다릴 거야."
"그래, 기다리고 있으세요."
크게 하품하는 윤슬이.
기다릴 거라면서 침대 중앙을 차지하고 이불을 가슴팍까지 폭 덮어버린다.
장담컨대 샤워하고 나오면 이미 곯아떨어져있다.
씻는 소리가 동생 잠드는 데 방해되지 않게 빠르게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침대 쪽에서 고롱- 고롱-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기다린다고 큰 소리 치던 윤슬이는 어디 갔을까요?"
"고로롱-!"
대답이라도 하듯 코고는 소리가 커진다.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이구야, 피곤하다."
작게 신음하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윤슬이는 어느새 내 자리라도 내주듯 벽 쪽에 찰싹 들러붙어있다.
벽이 시원하다보니 자면서 저절로 저쪽에 붙어주신다. 덕분에 나도 한결 편하게 침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밤에 가끔씩 몸 위로 올라오는 것만 참아주면 좋을 텐데.
침대에 눕자 게으름이 몰려온다.
타성에 젖어 스마트폰을 들었다.
[22:42]
잠금화면의 전자 시계다.
"벌써 11시야?"
잠금 화면을 풀려는데 웬 이상한 알림이 떠있다.
[진행률 100%]
[어플 다운로드 완료]
"뭐지? 내가 뭐 다운 받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첫 영업이라 긴장해서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건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잠금 화면을 넘겼더니 처음 보는 어플이 익숙한 이름을 달고 바탕 화면에 자리잡아 있다.
[오누이 타이쿤!]
"이게 뭐야, 오누이?"
....
"삭제할까?"
오누이 타이쿤이라고 적힌 어플을 꾸욱 누른다. 삭제를 가리키는 가위표가 나타나기 직전.
부웅-
알람이 울리는 모양이 다급하다.
[달님: 잠깐만 기다려요! 그렇게 매정하게 삭제하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