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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20화 (20/200)

20화: 단골을 만드는 방법(1)

조물조물

주물주물

슬슬 오전 아홉 시가 될 즈음.

윤슬이와 나는 점심 장사에 쓸 제육을 주무르는 중이다.

"죠물죠물~."

"조물조물이야?"

"네, 윤스리 잘하지?"

"제 동생답게 기가 막히십니다."

"옵바 동생, 기가 맥혀?"

"넵!"

"히히히."

배시시 웃는 동생.

쑥쓰러워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나와 함께 한 보울 안에 손을 넣고 고기를 주무르는 작업이 이어진다.

솔직히 윤슬이 덕에 작업이 빨라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도 혼자서하는 것보다야 힘도 나고 흥도 붙는다.

게임으로 치면 버프캐릭터라고나 할까?

원래는 이것도 같이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윤슬이가 하고 싶다고 계속 조르는 바람에 같이 하는 작업으로 굳어져버렸다.

-  이전부터 남매끼리 사이가 좋아서 보기 좋네요.

"옵바랑 사이 조아!"

"윤슬아, 좋아요! 그래야지."

"사이 조아요."

"옳지."

-  하하하하.

점잖게 웃으시는 어르신.

타이쿤 어플을 보니, 은퇴한 대학 교수라고 하신다.

국어를 연구하셨다고 하더니 교수님이셨구나.

왠지 이전부터 지적인 분이라고 느끼긴 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희가 점심 장사 준비를 원래 이 시간대에 해놔서요.

이렇게밖에 응대를 못해드리겠네요."

-  아뇨, 죄송하긴요. 제가 오히려 미안하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대학 교수님들이 다 이렇게 차분하고 점잖으신가? 공부를 오래하시다보니 교양도 몸에 갖추고 계신 듯하다.

-  지금 주무르는 양념육은 점심 장사용인가요?

"네, 원래 양념 고기는 2-3시간 정도만 재워두면 육질 안까지 잘 스미게 되거든요.

그래서 점심 장사 거는 아침에 와서 하구, 저녁 분량은 3시부터 있는 브레이크 타임에 해두는 편입니다."

-  부지런도 하셔라. 장사도 아무나 할게 못 되네요.

"장사 힘드러. 근데 우리 옵바는 할 쑤 이써여."

-  그러게, 사장님이 워낙 인물도 훤하고 성실해보이네요? 우리 꼬마 아가씨 말씀대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장윤슬임미다!"

왠 일로 '슬' 발음에서 혀 짧은 소리가 안 났다. 애가 그 사이에 혀가 자라났나. 애들은 금방 큰다고들 하니까.

-  이름이 되게 이쁘네? 눈망울이 정말로 윤슬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아아... 모르고 계셨나요? 윤슬은 굉장히 세련된 뜻을 담은 순우리말인데요.

"어?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윤스리도 첨 듣는 이야기예요."

우리 남매도 모르는 이름의 비밀을 알고 계시다니.

유식자는 다르다.

"윤슬이 무슨 뜻인가요?"

"윤스리가 무슨 뜨신가요?"

-  햇빛이나 달빛이 환하게 뜨면 냇물에 빛이 비추죠? 그 수면 위로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합니다.

"아..."

교수님께서 의미를 알려주시니 얼마 전에 윤슬이와 함께 성북천을 거닐었던 게 떠오른다.

그날도 구름이 얼마 없어 햇발이 기분 좋게 떨어졌던 것 같은데.

성북천의 흐르는 물에 햇빛이 반사되던 게 기억에 남는다. 따듯한 봄을 만끽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윤슬이가 그토록 아름답고 인상적인 현상의 이름을 받았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진다.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여태껏 모르고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오...?"

옆에서 윤슬이의 반응이 미묘하다.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  저야 말로 알려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옛날엔 강단에서 가르치는 일도 했었는데, 그 시절 기억도 나네요.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셨나요? 엄청 대단한 일 하셨네요."

-  아, 네 맞습니다. 저번에 국어를 연구했다고 해서 눈치채셨나봅니다?

"네, 그렇죠."

오누이 타이쿤 어플에 대한 걸 손님에게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어플엔 간략하게 나마 손님에 대한 신원 정보가 입력된다.

손질된 양념육을 모두 재우고 홀 쪽으로 나와앉는다.

윤슬이랑 보울 별 정량으로 나뉘어진 걸 하나씩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다.

그때 동생은 패밀리 밀로 준비해둔 새우를 보며 침을 스윽 흘리다가 스읍! 하고 다시 삼켰다.

먹고 싶은가보다.

이제 손님들이 오실 때까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픈 시간인 11시 반까지는 아직 1시간도 넘게 남았다.

보통 이럴 때는 윤슬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자동차 놀이를 하거나 하는데

오늘은 예외적으로 손님이 있으니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  장사하기 전에 쉬어야 하는데 정말 방해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 윤슬이도 여러 사람들이랑 얘기해보는 연습도 해야 돼서. 오히려 저희 입장에선 감사한 점도 있어요."

-  그렇게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지네요. 고맙습니다.

영국의 점잖은 노신사 같은 분이다.

일전에 동대문에서 봤던 크레페 트럭을 운영하던 사장님도 상당히 존중이 가득한 태도를 보이셨지만

이분은 행동에서도 젠틀함이 느껴진다.

가령 신문을 읽을 때에도 주위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작게 접어 읽거나, 페이지를 넘길 때 소란스럽지 않게 천천히 넘기는 점.

그런 부분에서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할부지, 신문 재미써요?"

-  그럼요.

"왜여?"

-  신문엔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많으니까요.

"움...?"

진중하게 대답해주시지만 윤슬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말씀인 것 같다.

-  저번에 성북천에서 만나고 시간이 꽤 지났던 것 같은데, 장사는 잘 되고 있나요?

"그냥 그렇죠. 장사 첫 날엔 가게 오픈 당일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꽤 많이 찾아주셨는데, 그 다음엔 이냥 저냥 찾아들 주세요."

-  그래도 다행입니다. 신문에서도 가끔 나오는 내용이지만 요식업 자영업자가 살아남기 쉬운 요즘 세상이 아니잖아요. 아마 사장님이 요리 솜씨도 좋고, 사람이 좋으니 손님들도 찾아주는 게 아닐까요?

"아직 요리는 대접도 못해드렸는데요, 뭐."

-  그건 그렇네요. 한 번 꼭 먹어보고 싶긴 합니다만. 아직 영업 시작 시간까지는 꽤 남지 않았나요?

"네,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때였다.

내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던 윤슬이가 가슴팍에 머리를 콩콩 부딪히기 시작한다.

콩콩콩- 탱탱볼이 가슴쪽에서 작게 튕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윤슬이 왜 그렇게 콩콩거릴까."

"옵바."

"네."

"윤스리 새우 먹고 십다."

"그거 이따가 윤슬이 점심 식사로 만들어줄 건데?"

"지금 먹고 십다... 할부지랑. 먹고 시플 때 못 머그면 배가 고파여. 윤스리랑 할부지 배고프면 안대는데."

설마 윤슬이가 이 손님이 가게 오픈 시간까지 기다리다가 시장하실 게 걱정돼서 이러는 건가?

그렇다기엔 자꾸 침을 스읍- 스읍-! 하고 삼키는 게 그냥 본인이 먹고 싶은 것 같다.

-  아이구, 윤슬이가 할아버지까지 챙겨주는 거예요?

"윤스리는 손님들 마니 챙겨여."

-  배려심이 깊네요?

"대다내?"

-  대단해요.

윤슬이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자 어르신도 따라서 올려주신다.

좋은 분이구나.

"혹시 어르신 괜찮으시면 지금 한 끼 하시겠어요?"

-  어, 근데 아직 정규 장사 시간도 아닌데 요리하게 하면 너무 미안한데요.

"아뇨 어차피 동생 먹고 싶다고 하니까 만드는 거구요. 지금 판매하는 정규 메뉴 아니고, 나중에 신 메뉴로 둘까 싶은 걸 미리 만들어보려고 한 겁니다.

한 번 의견이나 들려주세요. 맛이 어떤지."

-  그런 거라면 제대로 돈은 지불하고 먹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죠?

"제대로 맛있게 해드려야겠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방으로 향한다. 윤슬이는 어느새 어르신 옆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자하니 사진 기사를 보는 듯하다. 확실히 사진 정도라면 윤슬이도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겠지.

냉장고에서 검갈색을 띠는 생새우를 꺼낸다.

흔히 사용하는 중새우다.

두절탈각으로 손질도 필요 없는 터라 요리하기에 매우 편하다.

내장까지 다 제거돼있어 쓰기에도 편리하지만 일일이 새우 등에 칼집을 내어준다.

"이렇게 해야 간이 잘 스미거든."

기름을 넉넉히 두른 웍에 간생강과 간마늘을 때려넣는다. 츠으으-!

생물 속 수분과 기름이 만나며 격쟁.

마구 튀어오른다.

동시에 마늘과 생강의 생생한 향이 콧속 점막을 휘젓는다.

"기름 향부터가 맛있네."

건고추를 부셔 넣어서 매운 맛을 살려주고, 손질된 중새우를 투하. 차자작!

새우의 수분과 다시 만나며 기름과 물이 또 한 번 부딪힌다. 팔등에 툭툭 튀기지만 그럴 줄 알고 토시를 착용해둔 나의 선견지명.

아주 칭찬해.

소스는 가지 튀김에 사용하는 그 소스.

지향점은 칠리 새우 덮밥.

새우가 붉게 익어갈 때쯤, 소스를 한 국자 붓는다.

촤아아아-

소스와 기름이 눅진하게 섞이며 튀어오르던 기세가 잠잠해진다.

생강과 마늘 향이 폴폴 나던 기름

그리고 토마토 베이스의 칠리 소스가 어우러져 달큰 매큰한 향이 난다.

그 위에 파를 잘게 썰어 식감을 살리면 완성.

"대접에 올려야겠다."

밥을 2인분 분량으로 대접에 담고, 그 위에 칠리 새우를 얹는다.

녹색 파가 알알이 박힌 칠리 새우 덮밥 완성이다.

쟁반에 담아 홀 쪽으로 나가자 윤슬이가 박수로 맞이해준다.

짝짝짝-

"움! 마시써."

"아직 안 먹었잖아."

"안 머겄는데도 마시써!"

-  윤슬이 말대로 진짜 먹음직스러워보여요.

윤슬이와 손님이 앉아계신 바테이블 쪽에 각자의 앞그릇과 함께 세팅한다.

"저희 메뉴판 보시면 칠리 가지 튀김이 있거든요. 그런데 가지 제철 지나면 이제 식재료 맛이 떨어지니까, 그때 가서 새우로 주재료를 대체해볼까 생각했어요.

물론 여름이나 되고나서 있을 얘기지만요."

-  그래서 윤슬이한테 먼저 먹여보고 반응을 보려고 했던 거군요?

"네, 맞아요. 마침 어르신도 오신 김에 드시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된 셈이죠."

마른 침을 삼킨다.

여전히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는 긴장되곤 한다.

후- 후- 불더니 윤슬이가 숟가락 가득 밥, 새우를 올려 입에 쑥 떠넣는다.

얌얌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탱글하구먼."

"새우가 탱글해?"

"우물우물... 마시써. 탱탱해여."

윤슬이의 맛 표현법은 늘 미소를 자아낸다.

어휘가 애늙은이 같은데도 맛과 식감을 정확히 표현해낸다. 요리를 만든 보람이 있게 해준다.

윤슬이가 먹는 모습을 보고 못 참겠다는 듯이 그 점잖던 어르신이 숟가락을 황급히 들어올리신다.

그리고 꾸덕한 소스에 밥과 새우를 한껏 적셔 한 입 맛보시더니 본인 관자놀이를 꾸욱꾸욱 누르신다.

뭐지, 건고추를 넣어서 너무 매운가?

윤슬이가 잘 먹는 걸 보면 그렇게 맵게 만든 것 같진 않은데.

"매워서 머리 아프세요?"

-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어르신께서는 관자놀이를 한 손으로 꾹꾹 계속 누르시다가 머쓱하게 웃으신다.

-  미안합니다. 가끔 흥분이 되면 이렇게 해서 진정하는 게 버릇이 돼버려서요.

흥분이 됐다?

-  회춘할 것 같은 맛입니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음식 솜씨에 감탄합니다.]

[은퇴한 대학 교수: 식당 만족도가 20%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40%]

그건 대체 무슨 맛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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