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21화 (21/200)

21화: 단골을 만드는 방법(2)

-  하하하!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너무 재미 없어서 당황했나보네요.

반대로 너무 웃겨서 당황했습니다.

"할부지, 해추니 모야?"

-  회춘은 다시 젊어지는 걸 말하지요.

"다시 절머져써여?"

-  그런 기분이 드네요?

"우리 가게 와서 이득 봐써여, 할부지. 또 와야게따."

-  그래도 될지 모르겠네요.

냠냠

으적으적-

오늘도 바닥을 드러내는 음식.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의 만족스런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가지 튀김에 사용하던 소스를 응용하여 그대로 덮밥에도 사용해보았는데,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요리 솜씨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간과 식감, 그리고 음식의 만족도에 항상 자신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시험 삼아 만들어보는 요리라면 더욱 그렇다.

"옵바, 마시써!"

"맛있어? 다행이네."

-  저도 회춘할 만큼 맛있게 먹었습니다.

회춘할 만큼 맛있는 게 대체 어느 정도 맛있는 건지 감이 안 온다.

그래도 칭찬인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표정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말로 맛있게 드셨다는 걸.

손님의 지적여보이던 눈매가 주름져 살짝 늘어져있다. 음식을 맛보며 웃음지었다는 증거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  그런데 이게 메인 메뉴가 아니란 점은 놀랍네요. 메뉴판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정말 시험 삼아 만들어본 거라서요. 나중에 한 9월쯤 되면 정식으로 판매할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일단 새우를 어디서 공수해와야할지도 안 정했고요.

섣불리 메뉴에 올리고 싶진 않네요."

-  신중한 선택은 늘 좋은 결과를 부르는 법이죠.

윤슬이는 어느새 다찌 석에서 내려와 자기가 먹었던 접시와 손님이 드셨던 것까지 모두 챙겨 주방 쪽으로 향한다.

내가 대신 들어주려고 하니까 손을 훽 비켜 도망치듯 도도도- 달려간다.

"윤스리가 할 쑤 이써!"

"어이쿠! 알겠으니까 윤슬이 주방에선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지?"

"네! 조심조심~."

그제야 발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도도도-

에서 뽈뽈뽈 정도로.

보폭의 넓이 차이가 생겼다.

"으휴, 저러다 한 번 얻다가 쾅 받치면 어쩔려구."

-  오빠가 잘 보살펴주면 되지 않나요?

"... 그렇죠. 제가 잘 보살펴야죠. 다치지 않고, 흉지지 않게."

싱크대에 접시를 가져다둔 윤슬이가 다시 주방에서 걸어나온다. 이번엔 훨씬 천천히.

"옵바 말 드러써. 조심조심이야."

"그려그려, 잘했어."

-  윤슬이 때문에 싱크대 앞에 발디딤대를 따로 두었나보네요?

"네, 애 크기 전까지는 제가 다 해주고 싶었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윤슬이가 워낙 저를 도와주고 싶어해서요."

"옵바만 혼자 하믄 힘드러여."

"대신 윤슬이가 안 다치는 게 중요하죠?"

"윤스리 안 다쳐. 옵바가 가치 있짜나."

"으이구, 그래 내가 윤슬이 안 다치게 잘 해야지. 대신 오빠가 옆에 없을 때는 조심히 행동하기?"

"응!"

대답은 또 이쁘장하게 잘 해요.

-  저는 식사 마쳤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곧 장사 시작할 시간인데 조금이라도 쉬어야죠.

"더 계셔도 괜찮긴 한데, 편하신 대로 하세요."

"잉? 할부지 가여?"

-  네, 식당에서 너무 오래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도 미안하니까요.

어르신께선 신문을 담았던 가방을 들어 어깨에 매신다. 이제 일어날 생각이신 것 같다.

그리곤 내게로 서서히 다가오신다.

-  이거 받아요.

내 손을 잡아끄시더니 억지로 무언가를 쥐어주신다.

현찰 3만원이다.

그리고선 손을 다시 훽 빼서 뒤를 도시는 게, 차액만큼 거슬러달라는 마음도 없어보인다.

"음식 값이 이 정도는 아닌데요. 너무 많이 주셨어요!"

음식 원재료 값만 따져보아도 5천원 이하 정도다.

그래서 그냥 5천원만 받고 말려고 했다.

맛있게 드시는 것 같길래, 내 기분도 좋았고.

또, 식당 만족도도 40이나 높였으니 다시 찾아주실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 값을 3만원이나 주시다니. 덥석 받기 부담스러울 정도다.

-  제가 이 가게에 음식 값만 빚 진 것 같진 않아서요. 휴식하는 데 방해하기도 했고. 또, 메뉴 판에 없는 메뉴를 얻어먹기도 했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주시면... 최소한 2장은 도로 가져가세요, 어르신."

-  됐습니다. 이 나이 먹으면 돈 쓸 곳도 별로 없어요.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추시더니 다리맡에서 가만가만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윤슬이의 볼살을 조심스레 만지신다.

-  사실 요즘 세상에 이런 노인네랑 살갑게 말 섞어주는 아이들은 잘 없거든요. 대학에 있을 때나 학생들이 말 붙여주지. 일 그만두면 생판 남이에요.

"아..."

무언가 느끼시는 바가 있는 것 같다.

-  그런데 제 삶에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도 모르잖아요?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으니. 그래서 산책이나 다니는 거죠. 산책(散策). 흩을 산(散)에 꾀 책(策). 아무런 생각 없이 풍경이나 즐기느라고. 흐흐, 원래 산책이 한자어거든요.

"할부지는 생각 이써여."

-  으응?

"할부지는 신문 일그자나여. 윤스리는 신문 어려워서 몬 일거."

윤슬이의 순진한 위로에 어르신께서는 그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신다.

-  아무튼 그래서, 이 가게에서 반갑게 맞이해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젊은 사장님, 그 돈으로 윤슬이 맛있는 거나 다음에 한 번 사주세요. 그거면 됐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가게를 떠나려, 문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였다.

그때 윤슬이가 어르신의 후줄근한 바짓자락을 붙잡고 꾹꾹 땡긴다.

"할부지! 또 와여."

-  할아버지가 또 와도 괜찮겠어요?

"또 와야 조아여. 담에는 옵바가 만든 제육 머거바. 마시써여."

-  윤슬이가 그렇게 말하면, 다음엔 메뉴판에 있는 메뉴 먹으러 와야겠네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와 눈을 맞추신다.

어느 손님이든 당연히 다시 찾아주신다면 환영할 일이었고, 특히 윤슬이가 좋아하는 손님이 찾아오는 거라면 더욱 기쁜 일이다.

"시간 괜찮으면 언제든지 와주세요. 저희 월요일 빼고 매일 가게 오픈하니까요."

-  그럼... 가끔 실례 좀 하겠습니다.

"가끔이 아니어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은퇴한 대학 교수: 식당 만족도가 30%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70%]

[은퇴한 대학 교수 – 우수 고객으로 등록됩니다!]

그 길로 돌아간 어르신께선 우리 가게에 처음으로 우수 고객으로 등록되었고.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내가 느끼기엔 훨씬 가벼워보였다. 윤슬이가 바지를 붙잡고 또 오라는 말을 하기 전보다 말이다.

"윤슬아, 손님 나가실 때 인사를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또 오세요'로 바꿀까?"

-  움? 모가 다른데?

"지금 보니까 차이가 큰 것 같애."

윤슬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오늘 장사는 꽤 번창했다.

윤슬이가 제육이나 가지 튀김을 먹어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일주일 사이에 이 일대에서 약간의 입소문이 퍼졌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갈 회(回)에 봄 춘(春).

회춘(回春)할 것만 같이 맛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다.

다시 젊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

그건 노년의 위기와 정면으로 맞서고 계신, 어르신께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

달무리가 희끗한 밤. 미세먼지도 얼마 없는 듯 하늘이 맑다.

밤산책하기에 너무도 좋은 날이다.

마침 윤슬이가 오늘 밤은 성북천을 따라 걷다 귀가하자고 꼬시는 바람에 그렇게 하는 중이다.

'옵바.'

'너 뭐 원하는 거 있지?'

척 들으면 착이다.

'들켜따.'

'말해보세요.'

'꼬치 이뿌게 피어써여.'

'아까 자전거로 달리다가 봤어?'

'네, 오늘 구경하다가 집 가쓰면 조켔다.'

'윤슬이만 안 피곤하면 그렇게 할까?'

'그러케 해여!'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산책하고 집에 돌아가면 윤슬이가 눕자마자 골아떯어지는 지라 나름 편하기도 하다.

가끔 기운이 남아도는 날에는 밤 중에 티비를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일찍 재우는 게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이게 여러 모로 낫다.

자전거를 끌며 성북천을 가에 두고 걸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벚꽃이 밤길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잎들이 드물게 공중을 방황한다.

"꽃이 정말 이쁘네, 그치 윤슬아?"

"부농색."

"분홍색이야? 저거 벚꽃이라고 하는데."

"버꼿?"

"첨 들어봤어요?"

"움... 몰라."

모른다는 건 처음 들어봤단 거겠지?

레이싱은 알면서도 벚꽃은 모른다는 게 의외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깥을 돌아다닌 적이 적다는 거 아닐까 싶다.

"윤슬이 내일모레 같이 벚꽃 구경하러 갈까?"

"버꼿? 놀러가여?"

"그렇지. 놀러가는 거지. 꽃구경 가는 거니까."

"꼬치가 많아?"

"응, 꽃이 많아. 이것보다 훨씬 많아. 사람들도 많고."

"움! 가볼래!"

"그럼 결정됐네? 내일까지만 오빠랑 출근하고, 그 다음날은 벚꽃 보러가는 걸루 약속?"

"약쏙!"

이렇게 귀갓길에 보는 것도 낭만 있고 좋지만, 꽃 보는 걸 목적으로 나들이 가는 것도 좋다.

벚꽃은 비만 와도 금방 져버리고.

4월은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두고 떠나가버린다.

올해의 4월은 윤슬이와 처음 보내는 시간이니 무언가 추억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동생과 벚꽃 나들이를 약속하곤 짧지 않은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조용한, 짧지 않던 순간이 왠지 안심되었다. 머리가 텅 비고, 마음은 차분해지는 느낌.

윤슬이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어색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주고 받을 때보다 더욱 편안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 덕에 오전에 오셨던 어르신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이래서 산책 다니셨던 거구나."

윤슬이 덕분에 밤 길 걸으면서 이런 값진 공감을 했다는 게 고마워져서 윤슬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시선은 성북천으로 향해있다.

"옵바."

"응?"

"저거 바바, 윤스리."

윤슬이의 손가락은 성북천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곳엔 정말로 윤슬이가 있었다.

강가에 윤슬이가 비쳤다는 것은 아니고.

허옇고 밝은 달빛이 흐르는 물에 어려 잔물결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순수하게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윤슬도.

윤슬이라는 단어도.

"정말 윤슬이네."

"웅, 이뻐여."

"진짜 이쁘다. 우리 윤슬이도 이쁜데?"

"옵바도 이뿐데?"

"나도 이쁘다고?"

"네!"

그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 길로 한참을 걷다가 귀가했다.

종아리는 저려왔지만 그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 견딜만했다.

집에 도착해 밤이 더욱 깊어질 때쯤 오누이 타이쿤의 알림이 울렸다.

햇님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