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단골을 만드는 방법(3)
집에 도착해서는 늘 같은 루틴이다.
씻고 잘 준비.
다만 아침에 미처 못한 설거지가 남아있거나 방에 먼지가 많으면 윤슬이를 혼자 씻게 하고.
그 사이에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곤 한다.
오늘은 그나마 집 상태가 양호했다.
"오랜만에 옵바랑 가치 씻어써."
"씻고 나니까 시원하지?"
"움!"
윤슬이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손으로 훌훌 털어낸다. 내 쪽으로 물기가 다 튄다.
물 알갱이를 굵게 설정한 분무기로 분사당하는 느낌이다.
"어쭈? 장윤슬. 오빠한테 공격하는 거야?"
"아니야."
"음? 아니라고?"
"옵바가 말려주라는 뜨시에여."
"드라이기로 말려달라는 거야?"
"응!"
조금 더 온건하게 부탁하면 좋을 뻔했다.
그래도 탈탈 터는 거 귀엽더라.
요즘 들어 윤슬이가 막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보다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처음 보았던 3월엔 어딘가 밑지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사양하는 게 아이답지 않다고 느꼈다.
어른스런 구석이 있는 애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안일한 감상이었다.
그저 나와 지내는 게 익숙지 않고, 송주현이란 인간에 대해 조금 더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 매일 같이 붙어있다보니 이 집에서 사는 것도 편안해지고
내 존재도 친숙해지니 본모습을 더 드러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마워."
"응? 방금 옵바 모라구 해써?"
웅우우우우-!
드라이기 소리에 묻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귀에 물 드러갔나바!"
"내가 털어줄게!"
"조아여!"
드라이기 끄고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목청을 울리며 대화하는 남매였다.
침대 맡에서 머리를 뽀송뽀송하게 말리자 윤슬이는 그대로 뒤로 자빠져 눕는다. 꼬물꼬물 기어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우우... 옵바, 이제 잘 시간이다."
"불 끌까?"
"윤스리 졸려여."
"알겠쓰."
졸리다 = 불 꺼달라
그렇게 들린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윤슬이가 꼼지락대더니 내 팔을 붙든다.
슬쩍 쳐다보니 이내 볼근육이 풀리며 점차 얼굴이 늘어진다.
고로롱-
"참 잠 드는 것도 빠르세요."
그만큼 요근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잠든 얼굴을 보고 나도 눈을 부치려는데
부우웅-
스마트폰이 울린다.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우선 답장은 성실하게 하기로 했다.
[오누이 타이쿤!]
[햇님: 주현 오라버니,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나: 응, 고맙다. 그런데 주현 오라버니는 살짝 오그라드는 것 같애.]
[햇님: 어쩔 수 없어요. 말 버릇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 그건 맞지. 그래서, 수고했다고 말하려고 연락한 건 아니지?]
달님은 그렇지 않은데 햇님은 별난 어휘를 사용한다.
오라버니.
구세대의 인물이라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기엔 현대의 어휘들도 곧잘 사용한다.
그냥 컨셉충인 것 같다.
[햇님: 그 말씀 드리려고 연락한 것도 있죠. 그 정도 인사는 주고 받는 게 정이잖아요?]
[나: 그럼 나머지는 뭔데? 옆에 윤슬이 자니까 너무 오랫동안 스마트폰 불빛 켜두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아서. 얘기는 되도록 빨리 마치자.]
[햇님: 그것도 그렇네요. 우선 우수 고객 처음으로 만든 것 축하드려요.]
[나: 고마워. 솔직히 아직 식당 만족도가 오르면 얼만큼 우리 식당에 이익이 되는지 크게 체감되진 않지만.]
햇님과 달님이 내게 전해준 어플, 오누이 타이쿤.
이 어플을 사용하면 손님들이 우리 오누이 식당에 대해 얼만큼 만족하는지를 수치로 파악할 수 있다.
지난번에 달님이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달님: 만족도가 오를수록 공복 상태에서 오누이 식당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아져요!]
라고 하던데, 그건 내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닌지라 다소 추상적인 얘기였다.
[햇님: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전에 오셨던 그 할아버지께선 꽤 만족하셔서 앞으로도 종종 들리실 생각이니까.]
[나: 너가 말하면 맞겠지. 그런데 단골 만드는 기준은 조금 빡세긴 하네. 일주일 돼서야 우수 고객 하나라니.]
[햇님: 괜히 장사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죠. 그리고 장사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아직 단골 못 만들었다고 아쉬워할 시점도 아니잖아요?]
[나: 그건 네 말이 맞지.]
오히려 장사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로 고정적으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다.
덕분에 휴일에 윤슬이랑 나들이 갈 생각도 하고 말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으면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햇님: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조금 의외인 점도 있네요.]
[나: 뭔데?]
[햇님: 저희가 윤슬이한테 준 재능을 곧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나: 그 '식신'인가? 먹으면 손님 많이 들어오게 해주는 그 능력 말이지?]
[햇님: 네, 만약 윤슬이한테 계속 가게 음식을 먹이면 조금 더 손님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텐데요.]
[나: 그게 마음에 안 들었구나?]
[햇님: 아니,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나: 아닌가? 어차피 너희도 손님을 빨리, 많이 모으는 편이 더 좋을 거 아냐?]
[햇님: 그렇긴 하죠.]
[나: 미안한데 윤슬이한테 우리 가게 메뉴만 먹일 생각은 없어. 어떻게 가게 손님 모아보겠다고 윤슬이한테 맨날 같은 음식만 멕여. 내 동생인데.]
햇님이가 하는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윤슬이한테 가게 메뉴판에 있는 음식만 계속 먹이다보면 분명 매출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첫 날을 제외하곤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 마트에서 다른 식재료를 사들고 와 다른 음식을 요리해주었다.
때마다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와
- 그 애가 먹고 있는 음식 파는 거죠? 엄청 맛있어보이네요.
라고 물어보셨다.
하지만 아니라고 했다.
친동생이라 가게 음식 말고 패밀리 밀로 만들어주는 거라고 설명드렸다.
그럴 때마다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 오우, 사장님이 음식 솜씨가 좋으신가보네? 그럼 앉아서 메뉴판 한 번 볼게요.
- 아... 그렇구나. 그럼 다음에 올게요.
이런 느낌.
그러니까 윤슬이가 패밀리 밀을 먹었을 때 그 '식신' 능력의 효과가 아예 소실되는 것은 아니다.
반감되는 정도?
햇님이의 말대로 제육 볶음이나 가지 튀김을 먹어달라고 윤슬이한테 차려주면 아마 투정 없이 잘 먹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나는 그런 식으로 손님을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윤슬이에게 우리 가게 음식만을 먹여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마치 내가 동생을 돈 벌어다주는 기계처럼 여기는 꼴 같지 않은가?
윤슬이는 내 가족이지, 돈을 빨리 모으게 해주는 수단 같은 게 아니다.
[나: 윤슬이는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됐잖아? 나는 내 동생이 조금 더 많은 요리도 맛 보면서 즐겼으면 좋겠어. 그리고 윤슬이가 패밀리 밀을 먹는 게 효과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잖아? 가게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 해도 충분해.]
[햇님: 그런가요.. 주현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이견은 없어요.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다른 무엇보다 윤슬이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나 스스로 견딜 수가 없다.
나도 가족에게 이용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친모한테.
물론 그것과 이건 아예 별개의 문제다. 그쪽이 훨씬 악질이긴 하지만 꺼림직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곤 한다.
내 가족은 온 힘을 다해 아껴줄 거다.
[나: 그리고 햇님이 너도 봤잖아? 윤슬이 덕분에 손님들 만족도가 은근히 많이 오르는 거.]
[햇님: 그건 맞죠. 여기 어플 기록에도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윤슬이의 존재만으로도 손님들의 만족도는 오른다.
낯을 가리기는 하지만 손님들께서 먼저 말을 걸어오거나 살갑게 대해주시면 윤슬이도 그에 맞춰서 쭈뼛거리면서도 대화를 이어간다.
그럴 때마다 윤슬이가 귀엽다면서 만족도가 오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오늘만해도 그렇다.
결국 할아버지의 호감도를 가장 많이 올렸던 것은 나의 음식도, 오픈 시간 전부터 들어오게끔 해드린 친절도 아니었다.
윤슬이가 마지막에 건넨 또 와달라는 인사였다.
그 인사 덕에 어르신의 만족도가 60 이상이 되어 우수 고객으로 등록됐으니 말이다.
[나: 윤슬이는 이미 충분히 우리 가게에 기여해주고 있잖아. 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햇님: 알겠습니다. 저도 특별히 불만이 있던 건 아니니까요!]
[나: 대신 윤슬이 재능을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고안해볼게.]
[햇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음, 일단 이 얘기는 일단락된 것 같고.
햇님이가 먼저 말 걸어준 김에 그 얘기를 꺼내볼까.
[나: 그럼 이제 내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전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
[햇님: 뭐죠? 어플에 관한 건가요?]
[나: 아니, 그건 아니고 윤슬이에 관한 건데.]
[햇님: 음? 윤슬이요? 저희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되게 적을 텐데. 매일 같이 계신 건 주현 오라버니인데. 훨씬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나: 그런 얘기는 아니고. 우리 가게 이름을 지어준 게 윤슬이잖아?]
[햇님: 아... 네, 그렇ㅈ.]
갑자기 오타?
[나: 기억을 잘 더듬어보니까, 우리 가게 간판 달던 날에 윤슬이가 너희한테서 온 메시지를 보고 기분이 언짢아보이더라고.]
[햇님: 어이구,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리액션이 과격해진다. 점점 수상하다.
[나: 그래서 혹시 나 몰래 너희가 윤슬이한테 접촉한 게 아닌가 싶어서. 식당 이름을 '오누이 식당'으로 짓게끔 수를 썼다던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햇님: 에이... 저희가 윤슬이를 언제 만나요? 매일 같이 주현 오라버니랑 붙어 있는데.]
[나: 예를 들어 꿈 속에서? 너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윤슬이가 워낙 꿈을 다이내믹하게 꾸는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겠더라고.]
[햇님: 그럴 리가]
[나: 그럴 리가?]
[햇님: 있을 수도 있죠! 전 오라버니가 불러서 들어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뚝-
어플에서 튕겼다.
"아니라고 잡아떼도 모를 텐데, 저렇게 티나게 반응해버리면 인정하는 꼴밖에 더 되냐?"
착한 건지 순진한 건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딱히 탓할 생각은 아니었다.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본 거였는데 찔리는 구석이 있는가보다.
"우우웅..."
옆에서 잠들어있던 윤슬이가 작게 신음하며 뒤척인다.
너무 소란스러웠나.
"으무, 옵바랑... 버꼿."
"너는 자면서도 내 생각밖에 안 하냐."
벚꽃.
보러가야지.
동생이 이렇게 기대 중인데.
같이 사진이나 잔뜩 찍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들었는데, 왠 걸?
나들이에 가서 식당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