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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24화 (24/200)

24화: 분홍색 맛 났어!(2)

윤슬이는 순순히 내게로 쫄래쫄래 다가와 자신 있게 손가락으로 V를 그린다.

나도 싱크대 앞에 그대로 주저 앉아 윤슬이를 무릎에 앉히곤 셀카를 찍는다.

찰칵-

"..... 앗!"

"이제야 아셨어요? 장윤슬씨."

셀카 사진을 확대하여 윤슬이의 입가를 보여준다.

확대된 사진에는 초코가 진하게 묻은 입이 확연히 보인다.

도둑이 제발 저리듯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이건 생각 몬 했눈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우리 윤슬이 초콜렛 먹었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양치해여..."

"어젯밤에 이거 먹고 양치했어?"

"안 해써여..."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돼?"

"양치를 해야 대여!"

"옳지, 다음엔 초코 먹으면 바로바로 양치하기야?"

"응!"

윤슬이는 당차게 대답하면서 화장실로 뽈뽈뽈 달려간다. 큰 잘못도 아니니까 스스로 양치하는 걸로 퉁 쳐주자.

"자, 그럼 도시락 싸야지."

밥솥을 열어 밥을 확인한다.

찰기가 많지 않고, 꼬들꼬들한 느낌. 김밥 싸기에 적절한 수준이다.

"너무 찰밥이면, 또 김밥 쌀 때 맛이 없어요."

밥을 적당량 퍼 보울에 담고, 깨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참기름까지 한 숟가락 뿌려주자 고소한 향이 솔솔 퍼진다.

이대로 잠시 식혀두면서 달궈진 팬에 계란을 부친다.

계란물에는 맛술과 물을 약간씩 첨가해 농도를 맞추고 설탕도 조금 넣었다.

"밥이랑 계란에도 간을 해줘야 심심하지 않지."

김밥은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서 나오는 맛도 있지만, 그런 맛을 내기 위해선 각각의 재료에도 간을 약간씩 해주는 게 좋다.

김발에 김을 얹고 그 위에 밥을 곱게 펴누른다.

그 위에 볶음 어묵과 폭신한 계란 지단을 쌓고.

"당근도 좀 넣어야지."

윤슬이는 편식 안 하니까 괜찮겠지. 당근을 넣으면 색감도 이뻐지고, 식이섬유도 들어가니까 소화도 잘 된다.

그밖에 김밥용 햄이나 단무지는 생략. 굳이 김밥 싸려고 그런 재료들 남겨둬봤자 냉장고만 차지한다.

이 정도만 넣어도 충분히 맛있어.

꾸욱꾸욱 약간의 힘을 주면서 눌러 말아주면!

"김빱이당."

뒤에서 윤슬이가 목을 빼더니 오늘 나들이 도시락의 정체를 알아본다.

얼굴을 수건으로 문질문질 닦아내며 윤슬이가 주방 쪽으로 다가온다. 양치하는 김에 세수까지 마친 모양이다. 입가에 있는 초콜렛을 닦기 위해 세수를 했는가보다.

그런데..

"윤슬이 나한테 와보세요."

"웅."

뽈뽈뽈-

오늘도 어김 없이 덜 씻겼다. 거품기는 잘 닦아낸 것 같은데, 입가에 치약 찌꺼기가 묻어있다.

수건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닦아준다.

다 닦아내자 실실 웃는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요?"

"옵바가 닦아조써."

별 게 다 좋으시군요.

"윤스리는 도와줄 거 없어여?"

"김밥은 이미 다 말았으니까, 한 번 윤슬이가 간을 봐줄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옵바가 만드는 거는 다 마시써."

"그럼 이쁘게 말하니까 우리 윤슬이 꼭따리 줘야겠다? 제일 맛있는 부분."

말아진 김밥의 양 끝부분을 잘라낸다. 재료의 첨단이 불규칙하게 튀어나와 동충하초처럼 생기기도 했지만

못생긴 외모에 비해 제일 맛이 풍부하다.

특히 계란이 왕창 튀어나온 게 식감마저 부들부들할 것만 같다.

"아아-"

쏘옥.

넣어달라고 크게 입 벌린 윤슬이 입에 김밥 꼭다리를 젓가락으로 먹여준다.

우물우물.

근데 표정이 모호하다?

눈썹을 위아래로 막 움직이다가 미간이 찌푸려진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마시 업따."

"엥, 왜 맛이 없지?"

충격.

맛이 없다고?

그럴 리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요리했던 것 같은데.

손님들도 다 맛있다고 해줬는데.

심지어 김밥은 이쁘게 만들긴 어려워도 맛있게 만들기는 쉬운 음식이다.

간이 너무 짠가?

아니야, 재료 배합은 완벽했다. 그 정도는 길게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

"치약 맛이 나?"

"느에..."

"양치를 방금 했는데, 김밥을 먹어서 그렇게 됐나보다. 그치?"

"으브브... 조금 이따가 머글 걸."

"그래두 윤슬이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

"몬데?"

"꼭따리는 두 개니까, 입에서 치약 맛 다 가시면 그때 하나 더 먹어볼까?"

"옵바는?"

"오빠는 김밥 꼭따리를 별로 안 좋아해서 윤슬이가 먹어줬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믄 어쩔 수가 없어여! 음식 남기믄 안대."

말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얼굴은 묘하게 들떠보인다. 먹고 싶은데 나한테 양보할 생각이었나보다.

하지만 어른들에겐 최고의 양보 스킬 '별로 안 좋아하는데.'가 있기 때문에 넌 내게 양보할 수 없다, 장윤슬. 순순히 먹어라.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그 어머님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김밥을 차곡차곡 도시락통에 쌓고는 외출 준비를 마친다. 출근할 때보다 한결 마음가짐이 가볍다.

놀러가는 거니까 어쩔 수 없나.

"옵바랑 오랜마네 놀러가여."

"요즘엔 많이 놀러 못 갔지? 미안해."

"갠차나. 어짜피 가게서 노는 거두 재미써."

"아마 벚꽃 보러 가보면 훨씬 더 재밌을 거야."

"응!"

윤슬이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탄다. 오늘 처음 데리고 타본 것인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역무원분께 여쭤보았는데.

"윤슬아, 너 무료래!"

"윤스리는 공짜 아닌데."

"아니, 너가 공짜라는 게 아니라 지하철 탈 때 돈 안 내셔도 된다구요."

만으로 여섯 살 미만이라 어린이 요금 대상도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 동생이 진짜 어리긴 어리다.

그런 주제에 의외로 말은 잘 통하는 게 재밌는 포인트이긴 하다.

"지하처리 비싸여?"

"아니, 돈 내도 별로 비싸지는 않은데 뭔가 이득 본 기분이잖아?"

"움?"

윤슬이야 잘 이해 못하겠지만 이런 데서 돈 나가는 게 은근히 신경 쓰이는 건 나뿐일까?

뭐랄까.

윤슬이한테 십만 원 가까이 되는 자켓을 사주는 데 돈을 아끼고 싶진 않은데, 기껏해야 천원 내외일 지하철 요금은 절약하고 싶은 마음.

선택적 수전노 정신?

윤슬이를 데리고 지하철 승강장 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별 관심 없는 듯 땅만 보고 있다가

-  지금 열차가 들어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에 유의하여 열차와 거리를 두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돌진하는 열차에 시선을 빼앗긴다.

"우아! 빨르다!"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지?"

"응, 디게 빨르다. 나중에 윤스리 크면 옵바한테 저거 사주께!"

"그래, 고맙다."

이럴 땐 알았다고 해야지 괜히 부정해서 어디다 쓰랴. 하지만 네가 우리나라의 수장이 되더라도 저걸 나한테 사줄 수는 없을 거야.

지하철에 탑승한다.

월요일의 정오에 가까운 시간, 차량 내에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조금만 일찍 출발했어도 러시 아워의 행렬에 휩쓸려다녀야했겠지만.

이 칸에 한 자리뿐이지만 앉을 자리도 있다.

"윤슬아, 저기 자리 있으니까 앉으세요."

"잉, 옵바는? 옆에 자리가 업써."

"오빠는 서서 가는 게 더 편해. 그 대신 윤슬이가 앉을 때, 이거 김밥 들어주면 되지?"

"움... 네!"

윤슬이는 내 손에서 김밥을 빼앗아들곤 자리까지 두두두- 달려가 풀썩 앉는다.

다행히 몸집이 작아 주변 승객들한테 피해를 준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윤슬이 옆에 앉은, 양복 입은 아저씨가 유독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신다.

너무 시끄럽게 했나?

윤슬이 앞까지 다가서자 갑자기 말을 걸어오신다.

음? 조금 눈에 익은 외모인 것 같기도.

-  평소처럼 들쳐안고 앉으면 되는데 뭘 사양하는가?

"... 네?"

"어! 지팡이 집는 아저찌다."

-  어이구~ 윤슬이가 아저씨를 기억해주네? 고마워.

아아, 기억났다.

우리 가게 오픈 날에 방문해주셨던 손님 같다.

윤슬이가 가지 튀김 먹고 들어왔던 손님 중 하나다.

생각해보면 그땐 등산복을 입고계셨던 것 같은데, 오늘은 멀끔한 정장 차림이다.

지팡이는 등산용 스틱을 말하는 것 같다.

"아하 안녕하세요. 업무 중이신가보네요?"

-  그렇지, 잠깐 거래처에서 불러서 가는 중이거든. 사장님은 오늘 쉬는 날인가보네?

"네, 오늘은 휴일이라서 동생이랑 꽃 보러 가려구요. 어영부영 시간 지나면 벚꽃 다 지잖아요?"

-  그렇지... 동생 좋은 곳 데려가줘, 어디로 가나?

"잠실에 석촌호수요."

-  이야~ 거기도 기가 막히지. 사람들 많은 것만 빼면 참 좋은데.

"사람들 사이에서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아요."

무릎에 김밥을 올려둔 윤슬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호수..?"

호수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반응이 탐탁지 않다.

-  윤슬아, 부럽다. 너는 좋은 곳도 데려다줄 오빠도 있네?

"옵바는 마싯는 것도 마니 조여."

-  헤에? 엄청 좋은 오빠다. 그치?

"네, 아저찌도 다음에 가게 또 와여. 옵바가 요리 만드러주자나."

-  그래야겠네? 윤슬이 오빠가 음식을 맛있게 잘하더라고. 아저씨가 맛 없는 음식점은 잘 안 가는데, 오누이 식당은 다시 갈 거야. 윤슬이도 보고, 이번엔 제육 먹으러.

"조은 생각."

[오누이 타이쿤!]

[우연히 만난 고객이 식당을 호평합니다.]

[등산 매니아: 식당 만족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15%]

뭐야, 윤슬이가 적극적으로 말 걸어줘서 만족도 올랐네? 이런 경우도 있구나.

동생 덕분에 득 봤다.

환승역이 되자 '등산 매니아'라고 표시된 중년 남자는 친근하게 손을 흔들며 지하철에서 내린다.

내리자마자 곧장 전화가 오늘 걸 허둥지둥 받는 모습이 회사원의 전형이다.

잠실역 2번 출구를 따라 쭉 내려가면 석촌호수가 나온다. 석촌호수 앞에 있는 자본주의적 건축물, 백화점. 그리고 놀이동산이 윤슬이의 호기심을 끈다.

그 건물들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둘레길을 따라 벚꽃이 이쁘게 피어있고, 월요일 오전인 터라 주말에 비해서 사람이 많지 않다.

점심을 싸와서 먹는 직장인들로 추정되는 양복쟁이들이 몇 보이고, 젊은 사람들도 꽤 있다. 대학생들인 것 같다.

"사람 많이 없어서 구경하기 딱 좋겠네? 윤슬이 같이 꽃 보러 갈까요?"

물어봤는데, 웬일로 대답이 없다.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표정이 가관이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어깨를 흠칫 떤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옵바, 요기는."

"으응?"

"개물 나오는데?"

...?

"혹시 한강에서 나오는 그 친구랑 헷갈린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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