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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32화 (32/200)

32화: 무주의 맹시(1)

폴짝 뛰며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드는 윤슬이.

입이 귀에 걸려있다.

"옵바 거울! 거우리 피료해!"

"잠시만 기다려보시라."

집에 따로 거울을 사두진 않았던 터라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를 띄워준다.

화면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고개를 비스듬이 돌린다.

주목하는 쪽은 뒷머리.

묶음 머리가 완성돼있다!

"말 꼬랑지!"

윤슬 어록: 뒤로 묶은 머리 = 말 꼬랑지

모처럼 머리를 끈으로 묶어주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밸런스 좋게 머리카락을 잘 정리한 것 같다.

삐져나온 곳도 없이 단정하다.

"옵바가 해조써!"

"이러면 머리카락 안 날리겠지?"

"마자여, 휠리리리~."

휠릴리리- 입으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머리가 끈에 고정돼 있기에 꼬랑지만 달랑거릴 뿐 걸치적거리진 않는다.

이제 마음 편히 자전거 라이딩을 나갈 수 있겠다.

머리를 묶어준 이유는 단순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면 고민했던 부분인데, 윤슬이 머리카락이 마구 흩날렸던 것이다.

자전거에 타면 특히 심했다.

'우어억... 옵바, 윤스리 머리가 날려...'

'눈 찔러?'

"느에... 막 입에 드러가여."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헌데 당장에 머리가 날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우리 집에 머리끈이 있기야 하겠는가?

그래서 어제 출근할 때 멸종 위기 직전인 문구점에 잠깐 들려 몇 개 구매했다.

그리고 휴일인 오늘, 이렇게 윤슬이 머리를 묶어주는 것은 외출하기 위해서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한참 자전거로 돌아다닐 건데, 머리를 안 묶었다가는 윤슬이 입에 머리카락이 한 뭉탱이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동네 구경하러."

"윤스리는 준비 다 돼써."

"그럼 갑시다."

"앗! 잠깐이에여."

내 바지춤을 잡아댕긴다.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것 같은데.

고개를 숙여 윤슬이와 눈을 마주친다.

갑자기 씨익 웃더니 뒤로 훽 돈다.

그리고 '말 꼬랑지'를 내 허벅지 쪽에 마구 비빈다.

슥사악- 슥사악-

"...? 뭐하는 거야?"

"옵바 청소."

"오빠 청소해주는 거야?"

"네! 빗짜루야. 슥삭슥삭."

자전거 타고 놀러나가서 좋은 건지.

아니면 묶은 머리가 심히 마음에 드는 건지.

장난을 빙자한 애교를 부려온다.

이 맛에 딸 키우지.

아, 동생이다.

집 밖으로 나오자 어제와 공기가 사뭇 다르다.

거의 기분 탓이지만.

"음, 벌써 오월이구만."

"오어리구만."

어느새 5월 1일이 되었다.

윤슬이 생일도 나흘 남은 셈이다.

가로수의 녹음이 무던히 올라온다.

곧 여름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휴일에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것도 그런 이유다.

여름은 아무래도 밖에서 활동적으로 굴기 껄끄럽지 않은가.

한국의 여름.

습도에 녹아든, 땀과 물방울 사이의 어떤 것이 맨 피부와 반팔 셔츠를 끈적하게 적시는 시기.

도무지 좋은 감각은 아니다.

"윤슬이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업써여."

"그럼 오빠가 적당히 돌아다니면 돼요?"

"그러면 대."

워낙 동네 근처에서 윤슬이를 데리고 돌아다닌 적도 많지 않다.

기껏해야 마트에 나가거나 출근하는 정도?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동네를 적당히 보여줄 생각이다.

덜컥, 찌르르르르르-

뒤쪽 의자에 동생을 태우고 페달을 밟는다.

기름 먹은 체인이 링과 맞물리며 얇은 마찰음이 들린다.

"쮸르르르.."

내 등에 말랑한 볼을 붙이고 그 소리를 입으로 따라한다.

신이 난 모양이다.

보통 윤슬이가 저렇게 기계음 등을 입으로 따라하는 건 기분이 좋을 때다.

쮸르르르

쮸르르르

쮸르르르르-

페달을 느슨하게 밟으며 정신줄을 반쯤 놔버린다.

목적 없는 운행을 그저 즐기기 위해.

윤슬이 입에서 그 소리가 얼마간 반복되었을 즈음.

내 맨투맨 옆구리를 쿡쿡 땡긴다.

"왜 그래 윤슬이?"

"요기."

무언가 보고 싶은 게 생겼는지 멈춰달라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옆에 세운다.

"언제 여기까지 왔대?"

"옵바가 와짜나여."

"그건 그렇죠."

J 고등학교다. 권수영과 송지아가 다니는 학교.

우리 집에선 꽤 거리가 된다. 자전거로 20분 정도이니 말이다.

운동장에선 두 개 학급이 체육 수업을 진행 중이다.

체육 선생님처럼 보이는 인물이 둘 나와있고, 두 집단이 양쪽으로 찢어져있다.

이내 선생이 무어라 설명하더니 뿔뿔이 흩어진다.

대부분이 그늘을 찾아 떠나는 피난민들이다.

나도 여기 학생일 뻔했지.

윤슬이는 말 없이 한참 학교의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운을 뗀다.

"옵바."

"응?"

"옵바는 어디 학교야?"

"오빠가 나온 학교?"

"여기에여?"

고등학교는 안 다녔고, 중학교는 여기서부터 조금 더 가야 된다.

순수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겠지.

윤슬이는 내가 중졸이란 사실을 모른다.

"아니, 오빠는 어디 학교 나왔는지 벌써 까먹어버렸는데요."

"까머거여?"

"응."

내 답을 듣고 윤슬이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등에 얼굴을 폭 묻어버린다.

그리곤 뭉개지는 발음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윤스리두 유치언 까머거써."

"오빠랑 똑같네?"

"응, 똑가태."

남매는 그렇게 건망증을 합의했다.

학교의 풍경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윤슬이가 다시 출발하자고 했다.

내 뒤에 있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친구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관찰하던 것 같다.

조금 더 크면 학교는 꼭 보내야겠다.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페달을 밟는다, 느슨히.

내게 기댄 채로 동생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  옵바랑 이쓰니까 갠차나.

못 들은 척하며 나도 작게 중얼거린다.

"나도 너랑 있으니까 괜찮아."

바람이 목소리를 뭉개어준다.

학교따위.

유치원따위.

인생 사는데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25년 살아봤는데, 여지껏 그렇다.

근데 관계는 다르다.

가족이든 친구든 마음 터놓을 사람 하나쯤은 있는 게 좋더라.

쉬어가자는 의미에서 공원에 자전거를 세운다.

뒷자석에서 내려주자 윤슬이가 벤치를 찾아 달려가 앉는다.

언제나처럼 손을 붕붕 위아래로 휘저으며 "옵바! 일리루!"

이리 오란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이 눈을 반짝이더니 벤치 의자를 자기 말 꼬랑지로 쓱싹쓱싹 닦기 시작한다.

"옵바! 빗짜루!"

"어허이... 윤슬아, 그렇게 하면 머리카락 지저분해지는데?"

"이따 씨스면 대자나."

"음..? 그렇긴 하지."

어차피 자전거 타고 꽤나 나돌아다녔다.

집에 가서 샤워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벤치로 다가오자 본인이 닦아놓은 자리를 두 손으로 팡팡 두드린다.

"윤스리가 닦아나써."

"거기 앉으면 돼요?"

"응!"

"그럼 윤슬이 앉을 자리는 오빠가 닦아드릴까요?"

"그러케 해주세여."

씻으면 되지 않냐는 동생의 말에 나까지 장난치고 싶어졌다. 동심이 전염되었다.

머리카락으로 벤치를 닦아버렸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장감이라 머리를 거의 의자에 박듯이 숙여야만 했다.

쓱싹쓱싹!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다.

다행이다. 이번엔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했다.

"윤슬이는 여기 앉으세요."

"응!"

낑낑 거리며 벤치 의자에 걸터앉는 데 성공한다.

그때였다.

부웅-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한다.

"뭐지?"

타이쿤 어플이 배너로 떠있다.

옆으로 밀어넘겨 접속하자

[달님: ㅋㅋ]

이렇게 와있다.

무심코 험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침착히 머리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낸다.

폴싹-

윤슬이가 벤치 옆자리에 앉아있다가 스스륵 힘 없이 쓰러진다.

무릎을 베고 드러눕는다.

"피곤해?"

"아니야."

"잠깐만 이러고 있는 거예요?"

"마자여."

동생이 잠잠해진다.

말은 잠깐 이러고 있는 거라 해도 잠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번에 신혼 부부 손님들이 가게에 왔었을 때도 의자에 잠깐 눕겠다고 해놓곤 그대로 잠들어버렸으니.

누워있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드문드문 붙어있는 흙먼지를 떼어준다.

이러고 앉아있으니, 7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그 주정뱅이 아재를 여기서 만났었지.

'거기 학생, 이런 시간에 여기서 뭐하나?'

맞은 편 벤치에서 술 취한 듯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저씨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무시해야지 싶었다.

주정뱅이와 엮여서 좋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 몇 가지, 신경 쓰이는 포인트가 있었다.

만취한 것치곤 복장이 단정한 검회색 양복이었다.

군데군데 구겨진 곳이 있긴 했으나, 척 보기에도 값이 꽤 나가보였다.

머리도 깔끔하게 왁스 발라 뒤로 넘겼다.

말할 때 혀가 꼬이지 않았으며, 시비조도 아니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시간 떼우는 셈치고 대화에 응해주기로 했다.

'아저씨는 여기서 뭐하시는데요?'

'그냥 앉아있지.'

'저도 그냥 앉아있는데요.'

'학생 아니야? 지금 아직 열한 시밖에 안됐는데.'

낮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각이었다.

고등학생 혹은 그런 양복을 입고 있을 만한 회사원이 한가하게 공원에 앉아있을 만한, 그런 때는 아니었다.

'아저씨도 회사원 아니세요? 열한 시밖에 안 됐어요.'

'프흐, 그러게 말이다. 난 오늘부터 아니거든.'

'혹시 구조 조정...?'

'아니, 차라리 그런 거라면 더 나을 뻔했지. 암튼 난 대답했어. 회사원 아니라고. 넌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여기서 뭐하니?'

'저도 고등학생 아니에요.'

'그래? 그럼 피차 갈 데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네.'

'그러게요.'

그게 강필중,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저씨와 처음 만난 순간이다.

아저씨와 나는 3미터가 안 될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화를 이었다.

공원 산책로 벤치의 맞은 편에서.

술기운을 빌려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K 기업의 차장급이었다더라.

믿어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내가 갑상선 암 환자 선고 받았다더라.

일이 너무 바빠서 야근을 일삼고, 가족에게 신경쓰지 못하던 시간이 길어졌는데.

그렇게 집에 들어가지 않던 도중 아내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통보 받은 것이다.

'바빴다는 거 다 핑계지, 그냥 내가 옆에서 한 번만 그 사람 이상한 거 확인해줬더라면.

목에 혹이 나있는 것 같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조금 더 일찍 발견했을 텐데.'

중년의 나이로.

눈물을 머금으며, 내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자리에서 처음 마주친 내게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처음 보았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되었다.

수술로 대부분 완치되긴 하지만 자신이 밉다고, 아저씨는 자책하셨다.

사람은 종종 자기 병세에 무뎌지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가족의 관찰이 필요한 것이라며.

'그럼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아저씨.'

'회사 그만두고 나오는 길이다.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 그래서 한 잔 했던 거지, 뭐.'

'그게 아니라요.'

'뭐야.'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아내분 옆에 계셔야죠. 지금이라도.'

'청승 맞게 직장 그만두고 술 처먹은 다음에 무슨 낮짝으로 보러 간다니?

그 여편네는 어차피 낫는다면서, 자기 신경 쓰지 말고 회사일이나 챙기라더라. 도저히 못 그러겠어서 그만 두었지마는.'

'그럼 혼나러 가세요.'

'와이프한테?'

'네, 혼나러라도 가세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부인 챙기려고, 회사 그만뒀다고. 멋대로 결정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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