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무주의 맹시(3)
가까이서 강씨 아저씨를 직접 뵙자니 표정이 말이 아니다. 동공에 힘이 풀리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몸에선 지독한 담배냄새가 난다.
그걸 한 차례 뚫고, 들어가자 술 냄새까지 겹쳐서 코를 찌른다.
윤슬이도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내 다리 뒤편에 숨어버렸다.
"윤슬아."
"웅, 왜여?"
"잠깐만 가게에 들리자."
"움..?"
"아저씨, 저희 잠깐 가게로 가요."
이런 길 한복판에 아저씨를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씨 아저씨가 이토록 심적으로 무너져있다면 어떤 일 때문인지 알 것 같았다.
아저씨는 우릴 번갈아 보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 일어나신다.
그리곤 묵묵히 우리의 뒤를 따르신다.
가게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 자전거는 근처 가로등에 자물쇠로 묶어두었다.
윤슬이는 어린 마음에 강씨 아저씨가 걱정되는지 나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흘끗거린다.
움-
움-
하는 특유의 추임새를 섞으며.
그런 윤슬이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는다.
잠겨있던 가게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간다.
강씨 아저씨는 힘 없는 걸음으로 다찌석에 자리 잡는다.
"윤슬아, 사이다 한 캔만 가져다주세요."
"움, 알게씀미다."
윤슬이가 잽싸게 가져온 사이다를 컵에 따라 강씨 아저씨 앞에 한 잔 올려드린다.
"고맙다, 주현아."
"책 값입니다."
"으응?"
"그동안 빌린 책 값이에요. 턱도 없지만 그런 걸로 생각하세요. 고마우실 것 없어요."
실소지만 그제야 강씨 아저씨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조금 안심되었다.
하지만 금방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떻게 말문을 터야 할까.
아니면 먼저 입을 여시는 걸 기다리는 게 맞을까.
그런 고민들로.
"아내가 다시 입원했어."
고민이 무색해지게 강씨 아저씨가 대화의 물꼬를 튼다.
"아... 다시요?"
"응, 다시. 재발이래, 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강씨 아저씨의 아내분은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가벼운 재활을 마치신 뒤, 책방에 들리셨기 때문이다.
좋은 분이셨다.
특히 암 투병을 한 차례 겪으셨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셨다. 강씨 아저씨와 장난 삼아 팔씨름을 자주 하실 정도로 기운 차셨으니.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할 스킨십이라 핑계대며 하루에도 몇 번씩은 하셨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늘 일방적이었다.
또, 아저씨를 여보나 당신이 아니라 "야, 강필중!" 하고 부르는 게 인상적인 분이었다.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보니,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안 좋아졌다.
강씨 아저씨의 아내분이니, 더욱.
"또 싸우셨죠?"
"그렇지, 뭐."
"아저씨 매일 아내분이랑 싸우고 나서 술 드시거나 담배 피시잖아요. 한참 전에 끊어놓고선."
"그렇지, 뭐."
두 번째 그렇지 뭐는 조금 더 여린 소리였다.
그저 아내분의 암이 재발했기 때문에 이렇게 무너진 건 아니다.
왜 싸우신 건지 신경 쓰이던 도중, 윤슬이가 낑낑거리며 아저씨 옆의 좌석에 기어올라간다.
힘에 부쳐보여서 아저씨가 윤슬이를 손으로 바쳐주신다.
"초코 아저씨."
"응? 왜 그래요, 윤슬이."
"안아죠."
양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윤슬이.
나 아니면 저렇게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는 강씨 아저씨 정도다.
"아저씨 지금 냄새 나서 안 돼요. 다음에 해줄게."
"안아조여."
윤슬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웬일로 떼를 쓰기에 아저씨는 혀를 내두르신다.
그러다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밴 자켓을 훌렁 벗고, 윤슬이를 무릎에 앉히신다.
그 정도로 타협을 보겠다는 듯 윤슬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한 마디.
"아저찌, 싸우믄 안 대는데여."
"미안하다, 윤슬아."
아무튼 장윤슬, 남의 기분을 귀신 같이 알아챌 때가 있다. 특히 지금의 아저씨는 평소와 달리 죽을상이다.
다섯 살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윤슬이는 강씨 아저씨가 아내분과 싸움을 해서 이토록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윤슬이를 무릎에 앉히시곤 작게 심호흡하신다.
"아내한테는 미안하다고 그랬어."
"싸우고 나서요?"
"아니, 미안하다고 해서 싸웠다."
대관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본인도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몇 번 입술을 짓씹는다.
"그러니까... 사실 내가 책방 차린 건 와이프 챙기려고 그랬던 건데."
"네, 그건 알아요."
"그런데도 내가 잘 못해준 건가 싶더라."
"재발한 게 아저씨 탓은 아니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야. 혹이 나있었어."
"혹이요?"
"그래, 갑상선 암은 다른 것들이랑은 달라. 목 주위에 볼록 튀어나오거든.
전번에도 그랬어.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큰 수술까지 하게 된 거지."
"이번에도 혹이 나있었던 거예요?"
"응, 전번보다 훨씬 작아서 잘 안 보였거든. 아내도 몰랐더라고. 또, 암이 같은 위치에 재발할 거라곤... 둘 다 생각 못했던 거지. 그것도 몇 년만에."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했다.
강씨 아저씨는 외관은 저래도 섬세한 분이다.
아무리 작은 혹이더라도 아내의 목에 나있던, 그것을 본인이 먼저 발견해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할 수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닐까.
퇴사의 이유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럴 듯했다.
"그래서 아내분한테 사과하신 거예요? 못 발견해서 미안하다고?"
"응 그랬더니 화 내더라고, 엄청.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라고.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자기 몸이니까 자기 책임이라고."
군침을 삼키며 말을 잇는다.
훨씬 괴로운 목소리로.
"그런데 있잖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화내면서 날 평소처럼 때리더라고. 장난스럽게 그리고 엄청 쎄게. 근데...
근데...
멍이 안 들더라. 손 자국도 안 남더라. 아프지가 않더라, 하나도. 힘이 없더라.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까진 한 대라도 맞으면 진짜 싸우자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지금은 아니더라.
많이 아픈가봐.
영현이가 많이 아픈가봐..."
점점 울먹인다.
아저씨가 울먹인다.
윤슬이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볼을 만져드리고. 이내 감정이 복받친 아저씨는 윤슬이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도와드리고 싶다.
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초능력자가 아니니까, 병을 낫게 할 능력따위 없다.
위로해드리는 것이 최선일지도.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헌책방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도와드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기적적인 존재가 내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으니.
조용히, 자연스레 주방으로 들어간다.
[달님: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 다 보고 있었구나. 부탁하고 싶은데, 혹시 강씨 아저씨를 너희가 어떻게든 도와줄 수 없을까?]
[달님: 확실히... 마음 아픈 사정이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나: 우리 남매의 일이 아니니까?]
[달님: 그렇죠, 조금 잔혹한 말이지만 저 부부의 팔자를 어떻게 고쳐준다고 해서 저희에게 득 되는 게 없으니까요. 주현윤슬 남매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입니다.]
잔인한 변론이었다.
동시에 논리적이었다.
강씨 아저씨는 내 가까운 지인이라고는 하나 달님과는 거의 상관 없는 인물이다.
호의를 베풀려하더라도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나: 그럼 만약 저 두 분을 도와드리는 게 너희의 이익이 된다면?]
[달님: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이는데요.]
[나: 아니, 그럴 가능성은 꽤 높아. 나한테 강씨 아저씨의 매개 음식을 보여줘.]
[달님: 매개 음식은 또 어떻게 아셨죠?]
거창한 이름에 비해 간단한 개념이다.
기억을 끌어내는 음식.
추억이 담긴 음식.
하나쯤은 있을 법하지 않은가? 누구에게든.
그런 것을 매개 음식이라고 오누이가 멋대로 규정한 것뿐이다.
다만 그 추억이 되살아나는 정도가 조금 거세다.
가령 내가 간장 국수를 먹었을 때처럼.
아빠와 친모를 떠올렸을 때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렸을 때처럼.
[나: 어플 뒤지다 알아냈지.]
[달님: 그거 비밀 폴더에 넣어놨는데. 굳이 알려드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나: 넌 비밀 폴더를 숨겨두는 기능을 만들던가, 이름만 '비밀 폴더'라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 잠궈두지도 않고.]
[달님: 비밀을 엿보시다니, 엉큼한 구석이 있으시군요.]
[나: 지금 장난칠 때 아니잖아.]
[달님: 알겠습니다, 우선 분부대로 하죠.]
지이잉-
한 번 더 진동이 울리더니 강씨 아저씨의 정보가 전시된다.
[오누이 타이쿤!]
[헌책방 주인 강필중]
[매개 음식: 계란볶음밥]
[종합 만족도: 30%]
"계란볶음밥이면... 마침 재료가 준비돼있네. 운이 좋다."
[달님: 그런데 매개 음식을 요리해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나: 그건 잠깐만 기다려봐.]
[달님: 힝, 궁금해.]
다시 주방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윤슬이를 껴안더니 한풀 진정된 듯 보였다.
"아저씨, 배 안 고프세요?"
"배..? 하하, 배가 조금 비긴 했는데. 뭘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네."
술을 드신 것도 깡소주로 드셨나보다.
독한 양반.
"그럼 한 끼 드시고 가세요."
"뭐 만들어주려고? 됐어, 시간도 늦었는데."
"아저씨 저희 가게 아직 한 번도 안 들리셨잖아요. 언제 한 번 온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약속 안 지킨 거니까 드시고 가세요."
"자, 잠깐만 주현아."
아저씨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냥 주방으로 다시 훽 들어와버렸다.
차려드리는데 먹지 않을 정도로 매몰찬 사람은 아니다. 마침 윤슬이도 거들어준다.
"오늘 보끔밥 짱 마시써. 아저찌 먹고 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며 "어휴, 알겠다."라고 하신다.
원래는 새우 볶음밥에 같이 넣을 생각으로 계란을 잔뜩 쟁여놓았다.
근데 새우가 먼저 다 떨어지고야 말았다.
계란과 새우의 비율을 정확히 계산하여 구매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웠던 것이다.
"마침 잘 됐지, 뭐."
계란을 세 알 꺼내어 기름을 잔뜩 두른 펜에 깨어서 넣는다.
지글지글지글-
파, 마늘과 기름에 끓는 계란.
후라이가 되기 전에 마구 뒤적인다.
그 위에 내일 먹을 생각으로 남겨두었던 밥을 붓는다. 고슬밥이라 볶기에 딱 좋은 느낌이다.
금방 완성되었다.
계란만 넣는 볶음밥은 순서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5분 안에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이게 매개 음식인 건 조금 의외인데."
물론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
나는 간장 국수였으니.
둘 다 만들기 아주 간단한 축에 속하는 음식들이다.
아저씨가 앉으신 자리에 올려드리니 표정에서부터 반응이 온다.
앙 다문 입술이 미세하게 떨린다.
"볶음밥이네. 계란 넣은 거."
"네, 재료가 남아있는 게 많이 없거든요. 괜찮으시죠?"
"주는 대로 먹지."
입술에 침을 바르고, 사이다를 한 모금 들이키는 아저씨. 수저를 들고 한 움큼 볶음밥을 뜬다.
그리고 입에 넣자.
아저씨는 눈을 지긋이 감으신다.
기억을 더듬는 노인처럼.
매개 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음식이 관련된 기억을 되살리는.
현실감 있고, 더욱 생생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