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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37화 (37/200)

37화: 성북천 데스페라도(1)

숟가락에 봉긋 오르게 뜬 밥 한술.

그 위에 소스가 찐덕하게 묻은 가지 튀김 한 점.

아아암-

우적우적..

그 일련의 과정을 무한반복 중이다.

바 테이블에 앉아 고독히 식사 중이신 한 분.

오늘도 찾아온 대식가.

그 옆에선 윤슬이가 실시간으로 먹방을 구경 중이다.

이쯤 되면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질릴 법도 한데, 끝없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게 신기한가보다.

동생은 저 손님이 오면 꼭 옆에 앉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준다.

"언니야, 언니야."

-  음?

"왜 머리가 빨개? 피 나여?"

-  으음, 색칠한 거야.

"색칠? 크레파스루?"

-  으, 응. 크레파스.

"그럼, 비 마즈믄 안 대겠네? 다 녹으겠따. 윤스리두 그 정도는 알어."

-  응 맞아, 그래서 이거 쓰고 다니잖아.

대식가 손님은 바이크 헬맷을 들고 윤슬이에게 보여준다. 뭐 대단한 거라도 본 것마냥 입을 떡 벌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경한다.

덕후 기질은 못 버린다.

"그럼 어제는 뿌리 쪽에 크레파스 칠하느라 못 오셨나보네요?"

-  읏.

신경쓰였는지 손님은 정수리 쪽을 매만진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과는 다르게 뿌리 쪽까지 빨갛게 물들어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엊그제 왔을 때에는 뿌리가 검게 올라와있었다.

-  어떻게 알았어요?

"원래 자주 오는 손님들은 잘 기억해요. 윤슬이도 워낙 손님 좋아하는 것 같고."

-  흠흠.

쑥쓰러운 듯 작게 헛기침하고, 윤슬이 볼을 콕콕- 찔러본다. 탄력적으로 튀어나온다.

포잉-

어느새 브레이크 타임까지 15분밖에 안 남았다. 이 손님의 장점이자 단점이 이거다.

방문 시간이 평균에 비해 늦어진다.

보통 1시쯤 되면 점심 손님은 뜸해지기 시작하는데, 이 손님은 그럴 때 딱 들어오신다.

저녁에 올 때도 거의 8시 돼서 오신다던가.

고등학생 2인방이랑 정반대다.

"손님 더 드실 거예요?"

-  으음...

"언니야, 더 머글 쑤 이써?"

-  아직 세 그릇 더.

"그러믄 더 머거바! 더!"

윤슬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더 먹을 것을 요구한다.

음식을 더 팔아주려는 목적보다는 손님이 많이 먹는 게 신기해서, 그 한계를 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커보인다.

손님도 더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이는 양 나를 애처롭게 쳐다본다. 느지막이 와서는 브레이크 타임은 꼬박 신경 써준다.

특이한 분이다.

"이번 음식까지 내어드리고, 저도 쉴 거니까 주문 빨리 하시면 괜찮아요."

-  그래도 쉬는데, 여기서 밥 먹으면...

"어차피 브레이크 타임에도 저녁 장사 준비해야 돼서 한참 이따가 쉬어요. 괜찮으니까 드세요."

보통 손님 같았으면 진상이라고 내심 욕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손님은 단독으로 우리 가게에 제일 큰 매상을 올려준 VIP다.

매출 공헌도만 보면 '패밀리 등급'인 강씨 아저씨 이상이란 얘기다.

이런 손님을 위해선 브레이크 타임 일부 정도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다.

-  가지 튀김 3인분 더 주세요.

"접수했습니다."

"언니야가 머글 쭐 아는구먼."

또 어디서 주워들은 표현을 남발한다.

손님은 그게 귀여웠는지 윤슬이의 말랑한 볼을 살살 어루만진다.

칠리 가지 튀김을 내어드리고, 가게 문패를 [Break Time – 14:30 ~ 17:30]으로 바꾸어놓는다.

문패를 바꾸고는 곧장 저녁 장사 밑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되돌아왔다.

"우우움!"

윤슬이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크나큰 고민에 빠진다. 나와 저 손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윤슬아, 괜찮으니까 손님 옆에 있어드려. 혼자서 드시면 심심하시잖아."

"그치만! 옵바랑 졔육 조물조물 해야대!"

"그건 내일도 할 수 있죠?"

"힝, 알게써여."

보통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가면 내 밑으로 쏙 기어들어온다. 주방에서 함께 제육을 주무르는 밑작업을 도와주는 것이다.

진정 도움이 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거의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마음의 문제다.

마음만큼은 담요로 덥힌 듯 땃땃해진다.

충분히 기특한 동생, 오늘은 저 손님이랑 시간 보내렴.

-  잘 먹었습니다.

제법 빠른 시간 내에 3인분을 먹어치운 손님.

시계를 보니 3시도 안 됐는데 말이다.

그릇과 수저를 차곡차곡 쌓아 주방 안쪽까지 밀어넣어주신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  계산할게요.

"넵!"

보통 한 테이블에 4명이 꽉꽉 채워앉아도 잘 안 나올 만한 금액을, 이 손님 혼자서 몇 번이고 계산하시니 적응이 안 된다.

뭐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비가 깨나 많이 나오실 듯하다.

"히잉... 언니야 간다."

"또 오세요~ 해야지, 윤슬이."

유독 보내주기 싫은지 윤슬이는 내 바지춤을 잡고 늘어지면서도 눈을 손님에게서 떼지 않는다.

그 손님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  그럼 쫌만 더 있을까?

라고 하신다. 어르듯 자상한 목소리.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윤슬이가 눈을 빛낸다.

나를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빛 광선으로 녹여버릴 기세다.

점심 장사하느라 살짝 피로가 쌓여있긴 했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지 생각해보면 이건 오히려 기회다.

이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니 부담 없이 이용해주기로 하자.

"조금 더 있으셔도 돼요."

-  어, 진짜요?

얼굴에 화색이 돈다.

윤슬이랑 노는 게 저 손님도 좋으신가보다.

"대신 이쪽으로 잠깐만."

손님의 귀를 빌려

속닥속닥.

윤슬이는 '언니야'가 조금 더 가게에 있어준다는 사실에 기뻐 제자리서 빙글빙글 도는 중이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신경도 안 쓰고 있다.

-  아, 그런 거라면... 도와줄게요.

"넵 그럼 적당히 거기서 윤슬이 좀 봐주세요. 저는 저녁 준비해야 돼서."

-  네.

나는 주방에서 고기 손질 등의 밑작업 중.

바 테이블에 윤슬이와 손님은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무얼 보는지 신경 쓰여서 귀를 기울여, 영상물의 내용을 들어보니 알 것도 같았다.

[황야의 데스페라도!]

미국 서부극에 영향을 받은 B급 영화인데,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다. 흔히들 카우보이라고 불리는 인간들이 총싸움을 하는 내용의 영화. 근데 특이한 점은 그 카우보이들이 바이크를 타고 다닌다는 점이다.

바이크의 속도감을 잘 살려냈으며, 그 속도감을 계산하여 예측 샷을 날리는 총잡이들의 액션 활극이 일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토리나 개연성이 많이 무너지고, 개그 요소가 다분해 B급이라고.

그럼에도 상업적으로 성공해 박스 오피스 2위를 달성했다.

"오오오오...!"

윤슬이에게는 그 영상미와 활극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평소에도 연발하는 미묘한 감탄사를 뱉는다.

다섯 살인 걸 배려해 더빙으로 틀어주신 것 같다.

재밌는 건 옆에 계신 손님도 몰입해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매 같았다.

화가 난다.

윤슬이의 손위 형제 포지션은 내 건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에 판매할 식재료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었을 때쯤.

홀 쪽으로 나왔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손님.

둘이서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분이다.

-  마이크, 나 바이크 뽑았다. 이제 조지러 가자.

가난했던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바이크를 구매, 악당들을 물리치러 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재생되는 중. 그걸 본 윤슬이는 바싹 마른 입술을 핥고, 마른 침을 삼킨다.

황야의 데스페라도, 하이라이트 장면에 정신이 팔린 윤슬이 몰래 가게를 나선다.

목적지는 10분 거리의 케이크 가게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했다.

슬쩍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휴, 눈치 못 챘다."

**

송주현이 주문 제작 홀 케이크를 손에 들고 오누이 식당 앞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  주현 오빠.

-  저희 왔슴다.

권수영과 송지아였다.

두 사람에겐 지난 번에 한 가지 부탁 겸 거래를 해두었다.

윤슬이의 생일 파티를 도와주면 한 끼 무료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고 송지아는 벌컥 화를 냈다.

-  아니, 사장님! 윤슬이 생일 파티면 그런 조건 없어도 당연히 도와드리죠. 서운하게 왜 그래요?

-  맞아 주현 오빠, 그런 거 당연히 도와주지. 근데 밥 공짜로 주시겠다고 하면 잘 먹을게요.

-  주시면 먹긴 하죠.

오늘도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송주현은 여태껀 누구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으므로 정보가 필요했다. 특히 케이크.

어차피 가게 브레이크 타임 때 챙겨줄 생각이었으니, 성의를 담을 수 있는 건 케이크 정도였다.

근데 그마저도 프랜차이즈에서 아무 거나 사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  한 번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서 줘보는 건 어때요?

라고 수영이와 지아가 제안한 것이었다.

송주현은 두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은 가게 앞에서 신호를 하면 일제히 들어가 생일 축하송을 불러주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기다리던 차가 한 대 식당 앞에 멈춰섰다.

C 사의 택배를 배달하는 탑차였다.

기사 한 명이 내려 세 사람 쪽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  여기 식당 맞죠?

"네, 오누이 식당입니다."

-  직원 분이세요?

"아, 제가 점줍니다."

-  그러시구나. 여기 주소로 택배 하나 큰 게 왔는데 맞으시죠?

"네 맞을 거예요. 마침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쩜, 타이밍이 딱 좋다.

송주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생일 케이크를 먼저 건네주고, 선물까지 주는 것.

입이 떡 벌어지며 좋아할 윤슬이의 모습이 벌써부터 상상됐다.

제대로 된 상품이 배달됐는지 확인하고, 배달 기사는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커다란 택배 박스가 신경 쓰이는지 두 고등학생은 뭐가 들었는지 보려 기웃거린다.

-  주현 오빠, 이거 뭔데 이렇게 커요? 윤슬이 선물 아니에요?

"응, 맞어. 어떻게 알았어?"

-  그냥 타이밍이 딱 맞잖아.

-  거대 곰인형인가?

송지아가 무난한 추측을 던졌으나 아예 빗겨나갔다.

그보다 더 와일드하고, 장윤슬의 취향을 저격하는 물건이다.

세 사람은 가게의 투명벽 너머로 윤슬이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마침 가게에 남아있던 대식가와 이야기하는데 정신 팔려 바깥의 상황을 못 본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돌입과 동시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윤슬이!!

생일 축하합니다-

짝짝짝짝짝.

꽤 돌발적으로 들어왔는데 윤슬이를 데리고 놀던 손님도 눈치를 보더니 함께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장윤슬은 이게 무슨 일인지 동공을 굴리다가 본인을 축하해준다는 것을 깨닫고 입이 귀에 걸린다.

"우아..."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생일을 축하해주는 건.

'함모니'가 미역국을 끓여준 적은 있었고, 그건 기억이 나지만.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을 둘러싸고 주인공처럼 대접해주는 건

정말로 생에 처음이었다.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 불쑥 튀어올랐다.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의 생일 잔치.

이렇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선생님들 몇몇 친구들에게.

-  ...아 생일 축하해.

-  우어! 케이크!

-  다들 ...이 생일 축하해주세요! 모두들 박수!

-  케이크는 다 같이 나눠먹자?

짝짝짝짝짝-

생일 추카해-!

미미한 간격을 두고 겹치는 여럿의 어린 목소리들.

그날 생일이었던 아이의 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다.

몇 마디 나눴을 뿐인, 친하지도 않은 녀석이었다.

그 풍경은 어지간히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장윤슬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생일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축복 받을 수 있는 날이라는 걸.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날이라는 걸.

'생일? 추카도 해주는 거구나... 몰라써.'

장윤슬의 생일 관념에 '축하'란 항목은 기입돼있지 않았다. 무관 항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조금이나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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