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성북천 데스페라도(2)
그 생일 잔치는 아이의 부모가 특별히 유치원에 부탁하여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
시골의 소규모 유치원이었던 터라, 행사를 벌일 만한 여력이 없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의 안전만을 책임지는, 옛된 탁아소 느낌에 가까웠다.
이걸 기회로 다른 아이들도 생일 잔치를 해주자는 의견이 나와, 결국 그런 쪽으로 바뀌었지만
장윤슬의 차례가 돌진 않았다.
그리하여 마음 속엔 규정되지 않은 체념이 자리 잡았다.
'어짜피 윤스리 일은 아니니깐...'
자신에겐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으리라고 자연스레 믿게 되었다.
여태껏 그렇게 해준 사람이 없었으니.
이성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였다.
자신의 생일도 축하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할 수 있어도, 그런 '경험'이 없으니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쭉- 다른 친구들의 생일 잔치가 계속되었지만 자신의 차례가 돌지 않을 때 유치원을 나오게 되었다.
결국 생일 잔치는 세 글자로 정리되었다.
남의 일.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식당에서 장윤슬을 둘러싼 것은 따스한 시선과 축복을 바라는 노래 소리였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기분 좋은 목소리와 다정한 눈빛들.
그리하여 차가운 체념은 얼음장처럼 깨진다.
그 자리에 따듯하고 뭉근한, 새로운 감정이 자리잡는다.
"푸흥, 힝...."
예쁘게 디자인된 케이크를 보여주려던 순간.
송주현은 크게 놀랐다.
동생이 울먹이고 있었다.
그토록 밝고 씩씩하던 동생이.
- 으얽.
- 으어얽.
두 고등학생이 아포칼립스물의 엑스트라 좀비가 죽는 것만 같은 소리를 내며 당황한다.
대식가 손님도 마찬가지다.
송주현도 자기 동생이 이토록 울먹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허나 당황하지 않았다. 눈물을 쓱쓱 손등으로 닦아내면서도 입가는 호형을 그렸기 때문이다.
'감동해서 우는 거구나...'
혈육인 까닭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쉽게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도 했다. 강필중에게서 배웠다.
"윤슬이, 울면 안 되는데? 울면은 어떻게 될까요?"
"힝... 몰라여."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시는데?"
"으엇...!"
고전적인 방법이 제일 잘 먹힌다.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눈물은 나는데, 선물은 받아야겠는지 고개를 뒤로 젖혀 어떻게든 삼켜낸다.
코피가 났을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권수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케이크 생각이 나서 송주현에게 신호한다.
- 주현 오빠, 이거.
윤슬이가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는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분명 이 주문제작 케이크를 보면 윤슬이는 좋아할 것이라, 송주현은 확신한다.
덜커덕- 찌익
케이크 박스를 바 테이블에 내려두고 포장용 테이프를 뗀다. 상자가 열리자 그곳엔 흰색 바탕에 무난한 생크림 케이크가 있다.
"어? 이거!"
헌데 윗면은 평범치 않다.
[윤슬아, 생일 축하해!]
라는 초콜렛으로 새겨진 갈색 문구와 함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누가 보더라도 장윤슬이다.
"윤스리다!"
캐리커쳐되었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눈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윤슬이 알아본 이유는 본 적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벚꽃 구경을 가던 그날 아침에 찍은 사진.
그러니까 얼굴에 초콜렛을 덕지덕지 묻히고 찍힌, 그 사진이다.
지금도 '옵바'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등록돼있는 그 사진을 장윤슬이 잊을 리가 없었다.
문구와 이쁘게 그려진 윤슬이 그림을 피해 권수영과 송지아가 다섯 개의 초를 꽂는다.
그리고 일회용 성냥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치이익-
가게의 불을 끄자 초가 따땃한 조명이 되어 실내를 밝힌다. 송주현은 케이크를 두 손으로 들고 동생 앞에 가져간다.
"윤슬이 소원 빌 준비됐어?"
"움? 소언?"
"응, 원래 케이크에 있는 촛불 불 때는 소원 비는 거야. 딱 한 번 후- 하고 불 때만 소원 빌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둬."
"앗...! 잠깐. 아직 생각 못해써!"
여태껏 그런 문화따위 접해본 적이 없으니, 미리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촛대의 촛농이 열에 녹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자기 얼굴이 들어간 케이크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장윤슬은 결국 조금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옵바가 하나만 빌라구는 안 했짜나.'
하앗...
후우-!
입바람을 불며 머리 속으로 바라는 것을 떠올린다.
간단하고도 소중한 소원 세 가지.
옵바랑 오래오래 행보카게 해주세여.
유치언은 실치만 칭구가 생겨쓰면 조케써여.
초코 마니 먹구 십당!
**
다시 불을 켜자 빛에 적응하느라 눈이 아리다.
윤슬이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껌뻑거린다.
대식가 손님이 그때 가게 입구 쪽에 놓아둔 큰 택배 박스를 가리킨다.
- 저거 뭐예요?
"흐흐... 저게 오늘 하이라이트입니다."
- 으응?
수영이와 지아도 호기심을 갖는 것처럼 시선을 모은다. 박스만 보면 윤슬이보다 큰 부피였으니 궁금할 만도하다.
"윤슬아, 이거 뭐게?"
"움... 빡스!"
질문이 이상했다.
박스를 가리키며 뭐냐고 물으면, 그야 박스라고 대답하겠지.
"아니, 그러니까 박스는 박스인데. 안에 뭐가 들어있을 것 같아?"
"움... 초코?"
"땡, 아니 그보다 이만큼 큰 초콜렛 있으면 나도 좀 보고 싶다."
"그러문... 윤스리 칭구."
"음, 그것도 살짝 다른 것 같애."
"부우우- 모야, 소언 안 이러지자나..."
입을 삐죽거리는 윤슬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보다 이 상자 안에 윤슬이 친구가 있다면, 그야말로 경찰이 출동할 일이다.
영 감을 못 잡길래 열어서 보여주기로 했다.
꼼꼼히 포장돼있는 박스를 커터칼로 뜯어내자 완충제가 등장한다.
"엄청 꼼꼼하게 포장해주셨네?"
완충제를 뜯어내자 이번엔 고정용 스티로폼이 등장했다.
"진짜 엄청 꼼꼼하네."
귀찮을 정도로 많은 부속품들을 거둬내자 비로소 자태를 보이기 시작한 이것.
석촌호수에서 윤슬이가 갖고 싶은 것처럼 보이던 전동차!
였으면 좋을 뻔했지만 가격이 예상보다 너무 비싸서 한 단계 그레이드를 낮추었다.
직접 운행 가능한 유아용 전동 바이크!
나 때는 세 발 자전거였지만 요즘 애들은 이 정도는 타줘야된다고 한다.
윤슬이 앞에 고이 대령한다.
"어! 이거!"
"윤슬이 생일 선물이야."
"윤스리 꺼?"
"응, 윤슬이 꺼야. 이거 가게에 놔둔 다음에 가끔씩 오빠랑 같이 요 앞에 성북천 가서 타고 다니면 재미있겠지?"
"헤엑! 응! 응! 응!"
까무러치며 좋아하는 윤슬이.
반응은 예상대로다.
내 바지맡으로 뽈뽈뽈 걸어오더니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강아지 같다.
- 그러면 지금 갈까?
대식가 손님이 먼저 제안하신다.
아직 저녁 장사 개시까지 한 시간은 남아있었다.
"그러게요, 어차피 시간 좀 남았으니까 오늘 배달온 김에 바로 사용해볼까?"
"조아여!"
원래는 내가 성북천까지 끌고 내려가줄 생각이었는데,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동생이 직접 손잡이를 잡고 끌고 나간다.
무겁지 않을 테니 괜찮겠지.
가게를 나서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사진이 오늘 새로 찍혔다.
윤슬이가 케이크의 초를 후- 하고 부는 모습.
입술이 오리처럼 배쭉 튀어나와 귀엽다.
"이 사진이면 둘 다 담을 수 있는 거잖아?"
윤슬이가 초콜렛을 얼굴에 덕지덕지 묻힌 그림과 초를 부는 모습.
두 개 다 한 사진에 담긴 셈이다.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배경화면을 이 사진으로 갱신한다.
"이제 손가락으로 숫자 세는 건 못 보겠네."
칠천까지 세면 배경화면 바꿔주기로 약속했는데 말이다. 새로 찍은 이 사진이 조금 더 기념할 만해서 바꿔야겠다.
그럼에도 괜히 아쉬워서 한 마디 뱉는다.
성북천으로 내려오자 사람이 꽤 많았다.
학생들이나 어르신들이면 몰라도 직장을 다닐 법한 연령대의 사람들까지 산책로를 거닐고 있다.
"오늘 사람이 왜 이렇게 많대?"
- 공휴일이니까 그렇죠, 주현 오빠.
"아아..!"
윤슬이 생일이 5월 5일, 어린이날과 겹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날이 휴일이란 사실을 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5월 5일에 쉬어본 적이 없다. 지금껏 늘 식당 일을 해왔으니.
식당은 공휴일에 바쁘면 바쁘지, 특혜가 없다.
자영업이니 말이다.
"왠지... 오늘 정장 입고 오신 손님이 하나도 없더라니."
동생 생일 준비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어떤 손님들이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송지아와 권수영도 평소와 달리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학교 끝나고 집에 들른 줄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야, 언니야!"
- 응?
"윤스리도 바이크 생겨써."
- 그렇네. 엄청 이쁘다.
"그치? 옵바가 사조써."
- 좋은 오빠네?
"당연해! 옵바가 체고야."
윤슬이가 전동 바이크에 폴싹- 하고 승차했다.
조작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알아볼 작정인지 여러 가지를 눌러보기 시작한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핸들도 꺾어보고...
끼익-
멈춰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짝짝짝- 친다.
산책로 주변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으나 애초 유아용 전동차의 속도로는 다른 사람들의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윤슬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지나치는 분들이 대다수다.
"움..."
그러다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진다.
전동 바이크에서 내려 손님에게 다가간다.
"언니야."
- 응.
"윤스리도 총자비야."
앙증맞은 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더니
손님을 향해 빵-
쏜다.
연기를 후- 하고 불어낸다.
손님은 0.5초 간 고민하다가
- 으. 악.
스타카토로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 인간이 이상한 스타트를 끊어버렸다.
윤슬이는 눈썹을 까딱이며, '이거 먹히는데?' 하는 표정을 짓더니 수영이와 지아에게 차례로 총구를 겨누고
빵- 빵- 쏜다.
- 으아아악!
- 프흡.. 으억-
수영이는 영화 조연급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제자리에서 발작하다가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동참한다.
다시 한 번 윤슬이는 손가락 총구의 김을 불어내고는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나도 죽어줘야 되는 줄 알았는데.
내게 손을 내민다?
"옵바, 윤스리가 구하러 와써!"
이 상황극에서 난 인질이었던 모양이다.
"오빠 구하러 와준 거예요?"
"움! 윤스리만 미더여!"
자기 가슴을 팡팡 내리친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선 칭찬 일색이다.
- 저 애기 너무 귀엽다!
- 자기만 믿으래, 쪼꼬매 가지구. SD 만화 캐릭터 같지 않냐?
- 검지 손가락에 입김 후- 하고 부는 게 리얼 킬링포인트인데?
주변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지 윤슬이는 상황극에 줄곧 몰입한다.
전동차 쪽으로 나를 끌고 오더니 영화에서 주워들은 하이라이트 장면의 명대사를 뱉는다.
본인 상황에 어울리게 각색해서.
"옵바, 윤스리 바이크 뽀밨따! 초코 머그러 가자."
[마이크, 나 바이크 뽑았다. 이제 조지러 가자.]
애석하게도 유아용 바이크인지라 내가 뒤에 올라 탈 만큼 넉넉한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바이크를 몰고 가는 윤슬이 뒤에 쪼그려 앉아 따라가는 척을 해줬다.
"오호우! 빠르다! 빨라!"
소위 현자타임이라고 하는 녀석이 내 정신력을 갉아먹었으나, 동생이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견뎌내었다.
오늘은 윤슬이 생일이니까 최대한 즐겁게 놀아주고 싶다.
....
그렇게 즐거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났다. 대식가 손님은 다음에도 또 들리겠다는 말과 함께 본인 바이크를 타고 가게를 떠났다.
그걸 우리 남매는 배웅했고
언젠가 저기에도 타보고 싶다는 윤슬이의 열망이 옆에서 은은하게 느껴졌다.
또, 지아와 수영이는 저녁까지 먹고 귀가했다. 약속대로 제육을 맛있게 볶아줬고, 저번에 윤슬이한테 한 점 양보했던 것이 떠올라 고기를 넉넉하게 챙겨줬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J 고등학교 2학년생 권수영: 식당 만족도가 5%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65%]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J 고등학교 2학년생 송지아: 식당 만족도가 5%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55%]
그렇게 윤슬이의 생일은 즐겁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공공장소에서 너무 주목받은 탓일까. 누군가 우리 남매의 모습을 촬영하여, SNS에 업로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