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성북천 데스페라도(3)
"옵바! 달려여!"
"어허이, 빠르게 달리다가 윤슬이 떨어지면 크게 다치죠?"
"알게씀미다!"
출근하는 길부터 윤슬이는 들떠있다.
뒤쪽에서 내 허리춤을 잡은 손에도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있다. 이런 점에서부터 잘 느껴진다.
요 며칠 동안 계속 이런 느낌이다.
가게에서 자신을 쓸쓸히 기다릴 '붕붕이 3호'가 그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한다.
'3호한테 빨리 가바야지 댄다.'
라며 아침에는 심지어, 내가 깨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다. 윤슬이는 아침 잠에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초콜렛으로 유혹하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언제나 그렇듯 자전거를 앞에 세워두고는 가게를 오픈한다.
윤슬이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붕붕이 3호와 찐하게 인사를 나눈다.
온 몸으로 차체를 감싸안으며.
"으으... 3호... 윤스리가 와써여."
그렇게 3호와 부대끼고 있다가도 재미 있는 건, 내 점심 장사는 꼬박 도와주러 들어온다.
지금도 그렇다.
주방 안에 들어와 제육을 주무를 보울을 꺼내두자 윤슬이가 홀 쪽에서 "3호 이따가 보쟈! 윤스리는 옵바 도와줘이지 대."라며
뽈뽈뽈-
하고 주방 안까지 들어와 내 밑으로 쏙 들어온다.
그러니까 윤슬이는 3호보다 나를 택한 것이다.
잔잔한 우월감에 젖는다.
주물주물
조물조물
큰 손과 작은 손이 점심 장사의 밑작업을 끝내자 점심 장사 개시까지 시간이 얼마 간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3호를 타고 나가는 것은 점심과 저녁 사이의 브레이크 타임으로 정해져있다.
그래서 윤슬이는 실내에서 전동 바이크 위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중이다.
"뭐 볼 거 없나."
3호가 있기 전이었다면 윤슬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그쪽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마땅히 할만한 일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너튜브를 튼다.
[인기 급상승 동영상]
특별히 게임이나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까닭에 내게 알고리즘이 전해주는 것들은 대부분 요리나 육아에 관한 것들뿐이다.
그렇기에 킬링타임이 목적이라면 [탐색] 태그에 있는 [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이용한다.
"응?"
타성에 젖어 스크롤을 쭈욱- 쭉-
내리고 있는데.
이게 뭐냐.
"성북천 데스페라도?"
동영상의 한 장면이 썸네일로 지정돼있고, 그 화면엔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다.
자칭 말 꼬랑지. 게다가 붕붕이 3호.
그 뒤를 쪼그려 따라가는, 앞치마를 맨 성인 남성의 뒷모습까지.
동영상을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과 전개도 내가 잘 아는 그것이었다.
- 으. 악.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비명.
- 으아아악!
- 프흡.. 으억-
눈치를 보더니 잇달아 비명을 지르고, 산책로에서 쓰러지는 두 고등학생.
"옵바, 윤스리가 구하러 와써!"
용맹하고 귀여운 대사.
5월 5일의 성북천에서 우리가 놀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게 뭔 일이래?"
하나 확실한 것.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촬영 사실을 모르고 있단 것이다. 그런 얘기는 단 한 번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나마 얼굴은 모자이크로 잘 가려져서 천만 다행이긴 한데. 특히 윤슬이 얼굴이 나왔더라면 난 크게 분개했을지도.
- 우리 나라의 미래가 밝구나!
- 이대로만 자라다오.
와 같은 댓글이 달릴 가능성이 꽤 높다. 아니나 다를까, 동영상 하단부의 댓글엔 윤슬이에 대한 칭찬이 많이 적혀있었다.
[저 정도면 몇 살이지? 엄청 귀엽다.]
[모자이크 너머로 미모가 흘러나오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
정말 모자이크가 돼있어서 다행이다.
[엑스트라들 연기 무엇?]
[애기 오빠도 스윗한 듯. 잘 놀아주네.]
그밖에도 자잘한 코멘트들이 많이들 달려있는데, 지금 보니 동영상 조회수가.
"백삼십만?!"
기껏해봐야 나흘 전의 일인데, 이게 이렇게 조회수가 높아질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목 어그로가 잘 먹힌 것 같았다.
[성북천 데스페라도]
저번에 대식가 손님이 틀어준, 어제자로 박스오피스 예매 순위 1위를 달성한 흥행 영화.
그 영화의 제목을 카피하여 달았기에 어그로가 제대로 끌린 것 같다. 심지어 동영상의 내용마저도 그 영화 내용의 일부를 차용한 것이니 말이다.
원작 영화를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관 영상으로 상단에 이 짧은 동영상이 노출되고 있었다.
"이러니까 조회수가 늘지."
그런데 이 동영상이 얼마나 흥하고는 내게 그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문제는 이 영상의 댓글란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다.
[gotslal22 - 이분들 가게 운영하시는 분들 아닌가? 성북천 앞에 오누이 식당하시는 분들인 것 같던데.]
그 댓글란에는 '음식 뭐 파냐'부터 시작해서 '그 식당 가면 영상에 나오는 애기 만날 수 있는 거?'라는 질문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우선 가게 홍보가 되는 것 같긴 하니까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근데 애시당초 이게 얼만큼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댓글을 보고 실제로 가게로 올 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도 미지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겠다."
아마 가게에 들리셨던 손님 중 한 분이 댓글로 적으신 것 같다.
근데 이 동영상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궁금하다.
영상 전체를 보면 마치 가까이서 찍은 듯이 움직임을 세세하게 잘 잡고 있었다.
가까이서 그랬다면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눈치를 챘을 건데 말이다.
"대포 카메라라도 쓴 건가?"
누가 찍었는지 궁금해 영상 채널의 이름을 보니까.
[ekfslal11]이라고 돼있다.
무슨 영어지 싶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까지 해석해봤는데.
"달니미?"
한글을 영자 키보드로 바꿔치면 딱 저렇게 나온다.
놀라운 건 추천 제일 많이 받은 댓글의 닉네임도 자세히 보니까
"햇니미..."
골이 아파온다.
테이블 의자에 기대어 관자놀이를 붙잡고 있자니 윤슬이가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옵바 아파?"
"응? 아냐, 오빠 안 아파."
"아프믄 윤스리한테 말해믄 대."
"윤슬이한테 말하면 치료해줄 거예요?"
"응! 붕붕이 3호 타구 의사 선샌님 데리구 오께!"
가슴을 당당히 피는 꼴이 꽤 믿음직스럽다.
오누이한테 당장 연락해서 이것에 대해 얘기할까 싶다가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그쪽 남매 성격 상 나쁜 의도로 한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렇게 별 일 없이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손님들의 유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점심 장사를 시작하자 처음 보는 손님들이 띄엄띄엄 들어오는 게 눈에 띠었다.
자주 오는 손님들은 정해져있기 때문에 이름이나 직업은 몰라도, 복장 및 얼굴은 눈에 익은데 말이다.
아예 처음 보는 손님들만 세 테이블을 차지한다.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주문을 받고, 테이블에 가스 버너를 하나씩 올려드린다. 오늘 준비해온 메뉴는 햄두부짜글이인데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5월임에도 날씨가 초봄처럼 쌀쌀했다. 그래서 속을 덥히는 무언가를 드시고 싶은 게 아닐까.
- 사장님, 여기, 거기 맞죠?
"네?"
- 그, 동영상이요. 성북천에서...
"아, 네 맞습니다. 그렇다기보다는. 맞는 것 같아요. 저희가 직접 찍은 건 아니라서요."
애초 음식에 관한 동영상이 아니기에 먼저 말씀을 꺼내기 민망하셨던 것 같다.
- 아, 그랬구나? 애기 실제로 보니까 너무 귀엽네요! 그리고 사장님도 너무 미남이시고. 우리는 애기 볼라구 한 번 와봤지~.
중년의 여성 손님이 겸연쩍게 웃으시며 칭찬해주신다. 적당히 목례로 답을 대신했다.
- 아니, 동영상 봤는데. 애기가 너무 귀여운 거야! 여기가 우리 집에서 한 20분인가? 걸으면 나오는데, 댓글 보니까 호기심 생기더라고. 음식 맛있으면 가끔 올게요!
"아하... 넵! 감사합니다,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드릴게요."
다른 손님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 근처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적당히 머지 않은 위치에서 올만하다 싶은 분들이 찾아주신 것 같았다.
주방에서 들어와 두부와 스팸을 일정하게 썰어내며 미소 짓는다. 오누이가 괜한 짓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짜글이는 생각보다 간편한 음식이다. 특히 버너가 테이블에 놓여있으면 더욱이.
양파와 감자를 썰어 냄비의 밑바닥에 깔아버린다. 감자가 익으며 국물의 농도를 잡아줄 것이다.
"이놈들이 익는 게 중요하니까 밑에 깔아야 돼."
그 위에 같은 크기로 썰린 두부와 햄을 번갈아가며 켜켜이 쌓아 올린다. 고춧가루, 맛술, 다진 마늘, 멸치 액젓 등을 섞어 만든 육수를 붓는다.
끓어오르며 스팸과 두부에 다홍색으로 스민다.
그 위에 파를 뿌리면 곧바로 손님 상에 나갈 수 있다. 가스 버너로 끓이면 되니 말이다.
마침 드시는 손님들도 모두 호평이다.
- 어우, 너무 시원하다. 이런 거 딱 먹고 싶었는데.
- 적당히 칼칼한데 또 맵지는 않네? 두부가 완전 밥 도둑이야.
손님들의 호평을 보며 타이쿤 어플을 확인한다.
[요리의 길(LV. 3)- 숙련도 91%]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이런 기세로 손님이 와주신다면 5월 내로 재능이 레벨업할 것은 거의 확실했다.
그때가 되면 '오늘의 메뉴'를 우리 가게에서도 본격적으로 시행할 것인데 그걸 위해 미리 앉은뱅이 칠판을 가게 앞에 가져다두었다.
오늘 손님들이 햄두부짜글이를 시켜주신 것도 그런 이유다.
[오늘의 메뉴: 햄두부짜글이]
이렇게 써두었다.
"흠, 근데 오늘의 메뉴는 너무 흔한 느낌이긴 한데."
뭔가 새로운 이름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차차 생각하기로 하자.
식사를 마치고 나가시는 손님들은 의외의 행동을 하나씩, 약속이라도 하신 듯 똑같이 하셨다.
- 윤슬이?
"웅, 윤스리."
- 이거 초콜렛 먹을래?
"잉?! 그래두 대여?"
- 윤슬이가 초콜렛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줌마가 하나 가져왔어.
"오오!!"
이런 느낌의 대화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것 역시 그 영상이 원인인 것 같다.
'옵바, 윤스리 바이크 뽀밨따! 초코 머그러 가자.'
라는 대사에서 초콜렛을 좋아한다는 게 드러나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 하루만 초콜렛이 꽤 많이 쌓였다.
외제 비싼 초콜렛(아주머니들이 집에서 안 먹는다고 가져다주신 것)부터 편의점에서 파는 2+1 초콜렛(상대적으로 젊은 손님들이 사다주신 것)까지.
너무 감사하게도 윤슬이 초콜렛 사주는 비용이 굳었다.
주방 한 켠에 잔뜩 올려둔 초콜렛을 보며 윤슬이는 이렇게 말했다.
"옵바, 진짜야!"
"응? 뭐가 진짜야?"
"윤스리 소언 진쨔 들어조써! 초코 마니 먹구 십다구 그랬는데."
배실배실 웃던 윤슬이는 자기 볼따구를 만족스럽게 만지작거린다.
"그러믄 다른 소언들두 곧 이뤄지게따!"
그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