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오늘의 입맛(3)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남의 집 매출을 훽훽 보고 그르냐..."
손사레를 치며 사양하는 호연 형님.
"못 보여드릴 건 또 뭐예요? 어차피 형님 가게에서 일할 때 저도 포스기 자주 두들겼는데.
월간 매출 같은 거 보면서 와! 나도 나중에 이만큼 벌어야지... 생각했는데."
묵음으로 웃는다.
굳이 따지자면 호연 형님 의견이 정론이었다.
과거가 어쨌건 지금은 서로 한 업장을 책임지는 사장인 것이다.
저런 부담을 갖는 것은 관계 이전에 예의의 문제다.
"안 보실 거면 상관은 없는데, 암튼 저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죠."
"됐어, 그러면 맛으로 보여줘."
"흐흐, 그래요 그럼."
결국 밥 한 끼 얻어먹으러 오신 셈이다.
그쪽 업장에서 알바일 동안 대접받았던 밥 생각하면 열 그릇쯤 갖다드려도 안 아깝다.
주방에 들어와 손님들에게 나가던 그대로, 고추장 삼겹살을 다시 만든다.
그러면서도 홀 쪽에 귀를 기울인다.
윤슬이는 기웃기웃 눈치를 보다가 호연 형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붕붕이 3호를 자랑하기 시작한다.
"삼쵼."
"응?"
"저거 옵바가 사죠써."
"우와! 저거 주현 오빠가 사줬어? 윤슬이 꺼야?"
"응! 저거 타구 악땅 잡아여."
"악당? 악당이 어디에 있어?"
윤슬이는 망설임 없이 호연 형님을 가리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형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장사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형님에게 조언도 듣고, 업체 선정 과정에서 도움도 받다보니 여러번 불려나갔다.
윤슬이 입장에서는 '오빠를 자주 빼앗아가는 사람' 정도로 남은 게 아닐까.
"빠방! 빵! 빠바방!"
보통 손님들한테는 많아봐야 빵! 빵!으로 끝나는데, 이번만큼은 리볼버에 들어있는 총알을 모두 소모할 생각인 것 같다.
"으어어어억!"
엄청난 리액션!
의자 뒤로 발랑 넘어지는, 마흔 살이 넘은, 호연 형님이었다.
허리 생각하셔야 할 텐데.
나중에 권수영이 나이먹으면 저런 느낌으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0분 내외로 고추장 삼겹이 완성되어 상에 나간다.
그걸 보며 입맛을 다지는 형님.
"어우, 냄새 죽이네."
"저희 매장엔 술 없으니까 찾으시면 안 돼요."
"술이 없어?! 이거 소주 각인데."
"윤슬이랑 같이 장사하는데, 술 팔기는 힘들죠."
"윤스리랑 가치!"
바지 맡의 꼬맹이가 '같이'라는 단어에 배실배실 웃으며 좋아한다.
"그건 그렇지. 애 클 때까지는 조금 무리겠다. 그래도 진상은 없어서 좋겠네."
"그게 장점이에요."
술을 팔면 그걸 파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진상 손님이 늘어나는 게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취해서 자제력을 잃는 손님이 늘다보니 가게 직원들에게 폭언을 뱉는 경우도 이따금씩 생기는 것이다.
나는 상관 없다.
근데 윤슬이한테 누가 그랬다가는, 그 인간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저는 괜히 스트레스 받을 일 없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장사도 나름 괜찮게 되고 있고."
"그래, 각자 상황에 맞게 파는 거지. 잘 선택했다."
굳이 주류 매출에 기댈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이 벌리고 있다.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술을 안 파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인 것 같다고 자신한다.
호연 형님은 젓가락으로 양파와 파를 듬뿍 올려, 삼겹살을 한 입에 넣어버린다.
흐- 흐-
하고 입 안에서 열을 식히면서도 밥도 한 술 크게 떠, 고기가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합석시킨다.
두세 번 씹고 삼키고, 또 한 술, 한 젓가락.
이걸 수어번 반복하면서 양이 점점 줄어간다.
"천천히 드셔도 되는데."
"나 원래 이러잖아. 이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에요."
호연 형님은 밥 먹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장사 초기에는 손님을 하나라도 끌어모으기 위해 브레이크 타임 없이 장사하셨다더라.
그때 밥을 먹기 위해선 주방에서 짬이 날 때마다 한 입씩 허겁지겁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성공한 업장의 주인이라도 처음부터 잘 되셨던 것은 아니다. 밥도 제때 챙기지 못할 만큼 부단하고 치열한 노력이 있던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나는 꽤 속 편하게 장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 무릎에 앉히고 책 읽어주거나, 같이 성북천에 붕붕이를 운전하러가거나 하니 말이다.
"야, 주현아."
"어... 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 호연 형님이 주방에 관심을 보인다. 고추장 삼겹을 담은 대접과 밥 그릇은 비어있고, 형님은 일어나서 바 테이블 앞쪽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고개를 들이밀어 주방의 안 쪽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야, 너!"
"네?"
무섭게 인상을 쓰더니 하는 말씀이.
"너 주방 관리 엄청 신경 쓴다?"
칭찬이다.
그것도 꽤 디테일한 칭찬.
"야~ 바닥에 때가 하나도 안 탔네?"
"어! 어! 윤스리가 알아여."
윤슬이는 잠자코 있다가도 주방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더니
바닥을 닦는 시늉을 한다.
"옵바가 맨날 이케- 이케- 닦으거둔."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 청소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레이싱 영상이나 만화를 틀어주는데.
내가 청소하는 걸 다 보고 있었구나.
"오빠가 그걸 그렇게 열심히 닦는단 말야?"
"응! 윤스리가 다 바써."
자기 자랑하듯 똥배를 불룩 내미는 윤슬이.
"그냥, 오픈형 주방이니까... 신경쓰여서 그렇죠."
"그렇다기엔 냉장고 손잡이까지 번쩍거리는데?"
다시 한 번 짬의 차이를 느꼈다.
얼버무리기엔 호연 형님의 장사 경력이 너무 길다.
장사한 지 그리 오래진 않았지만 청소는 여러 모로 손이 가는 문제다.
우리 식당에선 기본적으로 튀김이나 고기를 다루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기름이 이곳저곳으로 튀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화구 주변의 바닥은 3일만 관리하지 않아도 기름이 누렇게 떠오른다.
또, 냉장고의 손잡이나 싱크대 서랍 같은 데도 일주일 정도면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끈적해진다.
그런 곳을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주방의 청결은 손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또, 중요한 건 윤슬이였다.
"윤슬이가 보는데, 장사 대충하고 싶진 않아서 그랬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테이블 의자에 앉아 윤슬이를 불러들인다.
슬쩍 들어올려 무릎에 앉히곤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무튼... 얘랑 같이 여기서 오랫동안 지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조금이라도 대충하는 모습 보이면 그대로 보고 배울 테니까.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줘야죠, 항상."
쑥쓰럼을 숨기려 웃는다.
그런 내게 호연 형님은 윤슬이가 자주 하는 행동인, 엄지 따봉을 날려주신다.
"전에도 말했지만 넌 정말 잘 돼야 하는 놈이다."
"됐어요, 뭘 오랜 만에 오셔서 그렇게 칭찬만 늘어놓으세요."
"내가 허투루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아닌 거 알잖아? 솔직히 오늘 와서 좀 놀랐어."
"...."
"주방 관리도 잘 돼있고, 요리 솜씨도 늘은 것 같애. 특히 돼지 고기, 내가 파는 입장이니까 알거든. 어디까지 얼만큼 구워야 되는지. 거기다 입힌 고추장 양념까지 부담 없이 맛있게 맵더라."
그리고 형님은 주방을 가리키신다.
"원래 장사 잘 못하는 애들이, 주방 관리를 또 더럽게 못하거든. 근데 넌 지금 정리해놓은 위생 상태만 봐도 알아. 원래부터 꼼꼼한 녀석이긴 했지만, 냉장고 안까지 깨끗하겠지."
"그건 형님이 맨날 강조하시던 거잖아요."
"누구한테 들어서 그걸 그대로 실천하는 것만 해도 이미 자격 있는 거야."
"감사해요."
손님들께서 음식을 맛보고 미소 짓는 순간.
맛있었다고 말씀해주시는 순간.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시는 순간.
그런 크고 작은 인정을,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받아왔다.
그 또한 때마다 기쁜 일이지만, 호연 형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시는 건 무게가 달랐다.
어떤 식으로 장사하며 얼마만큼의 내공이 있는지 알기 때문일까.
내 노력이 인정 받은 것 같아, 더욱 뿌듯하다.
"원래 장사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 한 마디 해줄려고 들렀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잉?"
윤슬이가 형님 앞에 나선다.
"옵바 혼내므는, 윤스리가 총 쏘는데?"
빠방-
빵! 빵!
아직 내 보디가드 역할에 충실한 윤슬이는 두 자루의 손가락 권총으로 호연 형님을 난사한다.
이 중년 남자는 또 성실하게 일일이 맞는 척을 하며 몸을 격렬히 흔들어제낀다.
내가 과거에 알바처 사장님 하나는 잘 만났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
저녁 장사를 마치고, 청소를 마무리했다.
업장을 깨끗이 관리한다는 인정을 받은 까닭인지, 바닥과 식기들을 더욱 청결하게 관리하고 싶어졌다.
"윤스리두 도와주까?"하고 묻는 걸 겨우 말렸다. 세제를 수세미에 묻혀 닦는, 나름 고된 작업인지라 동생한테 부탁할 수는 없었다.
대신 사이다를 냉장고 안에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스를 열어 바닥에 놔두면 하나씩 차곡차곡 넣는 것이다.
직접 가서 보니, 삐뚤빼뚤 삐져나온 구석이 있지만 나름 선방했다. 쭈그려 앉아 오와 열에 맞추어 다시 정돈하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윤슬이가 오빠를 또 도와줬네? 고마워서 어떡해야 하나?"
"그러믄 초코 입에 너어조."
아아-
하고 크게 입을 벌리는 윤슬이.
얼마 전 손님들께서 가져다주신 초콜렛을 입에 넣어주자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포스기 마감을 하면 오늘 마감 작업은 끝나는 셈이다.
[월간 매출]
[8,953,000원]
호연 형님과 낮에 그런 대화를 했었기에 괜히 눈에 띠는, 이번 달 매출.
5월 말이긴 했으나 굉장히 준수한 매출이라고 생각한다.
"알바할 때보다 수입이 거의 두 배 늘겠는데?"
가게 음식의 원가율이 결코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1인 업장인 걸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매출이다.
평생 이만큼만 나와도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오누이가 동영상 올려준 게 도움됐던 것 같기도 하고."
지난 며칠 간은 [성북천 데스페라도] 영상으로 손님이 제법 모였으니까.
다음달엔 매출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원래 장사란 그런 것이다.
만족스런 이 달 매출을 보며 가게를 나서려는데 윤슬이가 붕붕이 3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3호... 내일 내일 올께."
"윤슬아, 내일 내일이면 모레라고 하는데."
"응, 모레 올께, 3호야."
내일은 휴일이기에 3호와는 이틀 동안 못 보게 된다.
근데 왜 3호인가.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윤슬이를 자전거 뒷자석에 앉히며 묻는다.
"윤슬아, 근데 왜 3호는 3호인 거야?"
"움... 세 번째야. 그래서 3호."
"첫 번째는 뭔데?"
"옵바 자전거."
"그럼 두 번째는?"
"언니야 꺼. 바이크."
그런 세심한 이유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허나 1호에게는 애석하게도 엔진 대신 페달과 기어가 있는 까닭에 붕붕- 거리지는 못하는데 말이다.
우선 그 사실은 묻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