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Foodie Question(1)
모처럼 쉬는 날이다.
매주 찾아오지만 요근래 휴일을 휴일답게 보낸 적은 잘 없다.
윤슬이랑 이곳저곳 놀러다니느라 몸이 피곤했다.
정신적으로는 힐링이 되고, 무엇보다 동생이랑 노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기에 좋아서 한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쉬어줘야지."
오늘은 집에 있기로 했다.
푹 쉬기로 했다.
고로롱- 고롱-
오늘 아무 곳도 나가지 않기로 어젯밤 윤슬이와 합의를 보았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
벌써 10시가 넘었는데도 꿈나라를 헤메고 계시는 동생님이다.
"우부브... 약, 쏙..."
언제나 그렇듯 잠꼬대를 하는 동생.
배를 약하게 토닥이자 웃는 얼굴로 우물거린다.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괜히 깰 것 같아서 냅두기로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탕화면이 열리자 습관적으로 우측 하단의 어플을 보게 된다.
오누이 타이쿤.
가게에 있을 땐 신경 쓰게 되지만 적어도 집에 있을 때만큼은 다른 어플을 이용하기로 한다.
너튜브를 열자 가장 상단에 뜨는 동영상.
[미슐랭 3스타 셰프의 목살이 까맣게 타버린 건에 대하여]
심지어 썸네일이 까맣게 탄 고기를 보며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셰프의 얼굴이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지.
"궁금하네."
3스타나 받은 업장의 셰프라면 저명한 분일 건데, 목살을 다 태워버린다니. 무슨 이유인지 요리인으로서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올라오는 영상들의 제목 어그로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제목이 자극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으려 할 테니.
"호연 형님 매개 음식도 목살 소금구이였지."
누가 돼지고기 파는 사람 아니랄까봐.
어제 형님이 가게에 찾아오셨을 때 문득 궁금해져서 어플로 확인해보았다.
안 그래도 저번에 달님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으니.
[나: 매개 음식을 어플에서 내가 직접 볼 수 있게 인터페이스 좀 바꿔주라.]
[달님: 좋은 생각이네요! 마침 저희도 매개 음식을 적극 활용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저희가 일일이 보여드리는 것보다는 그러는 편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의견은 일치했다.
강씨 아저씨의 만족도가 한 번에 100까지 오른 건 오누이조차 예상 못할 만큼의 사건이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다.
가게 만족도는 올라갈수록 더 높이기 어려워진다.
0점인 학생의 시험점수를 50점까지 끌어올리기보다 50점인 학생의 점수를 100점까지 높이기가 더 어려운 법 아니겠는가.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매개음식을 대접하니까 100까지 올랐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단순히 음식 대접과 서비스로 메우기 어려운 부분을 단번에 채워주었다는 의미다.
호연 형님이 여유가 되실 때 가게로 불러 다시 한 번 시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가게의 일반 손님보다는 그래도 음식 대접해드리기 편한 구석이 있으니.
손가락을 위로 슥슥 넘기며 동영상을 찾는다.
결국 손이 가는 것은 요리 관련 동영상이다.
"어차피 뜨는 것도 다 이런 종류밖에 없네."
이따금씩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영상이 뜨기도 하지만 요리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충 유명 너튜버와 셰프가 인터뷰한 것 같은 내용의 영상을 누르자 광고가 뜬다.
정액제 결제는 안 했다. 차라리 광고를 견디자는 주의다. 어차피 장사 및 육아로 바빠 자주 보는 것도 아니니.
그런데 영상 본편보다 광고가 흥미로운 건 무슨 경우인가?
[Choonie's Foodie Question]
"추니쓰 푸디 퀘스쳔?"
흘러나오는 광고 영상의 내용은 국내 유명 셰프, 김영춘씨가 요리 지식에 관련된 온라인 퀴즈쇼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 진출 후 끝까지 살아남으면 경품이 있다는데.
흥미가 생겨 광고를 터치하고, 상세 설명을 확인한다.
"뭐야, 본선이 오늘이라고?"
심지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덕에 참가 자격이 비교적 자유롭다. 본선 시작 전까지 예선 문제를 모두 통과하면 본선이 진행되는 방송의 링크를 보내준다고 한다.
그런데 경품이 나쁘지 않다.
"한 번 해볼까?"
**
꿈 속의 세계.
기시감이 드는 풍경.
흰 바닥의 광야에 나앉은 윤슬이.
하늘 위에 부유하는 두 개의 광원을 노려본다.
"달니미... 햇니미..."
꿈에서 깨어나면 오누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다. 인상적인 부분만 드문드문 남아있는 정도.
반면 이곳에 오게 되면 다시금 선명해진다.
지난 번의 그 만남을 회상한다.
앞으로 같이 놀기라도 할 것처럼 친근하게 굴더니 금세 밧줄을 붙잡고 하늘로 되돌아간 것.
'윤스리랑 칭구도 안 해주고..!'
단단히 삐진 5세였다.
하늘에선 다시 한 번 동앗줄이 내려온다.
오누이가 밧줄을 탄다.
양 발을 꼬아 그 사이에 줄을 끼우며 속도를 조절하는, 제법 능숙한 기술을 사용하며.
""윤슬이 안녕!""
바닥에 멋들어지게 착지한 오누이는 아이의 주의를 끌어보고자 놀이공원의 직원들이나 할 것 같은 포즈를 지어본다.
양 팔을 높이 들고 넓게 벌려 과격하게 인사하는 것.
흥-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은 거친 콧바람뿐이다.
이 5세의 얼어붙은 마음을 달래기엔 그 온도가 역부족이었다.
"윤슬아, 왜 그래..."
"움... 너네가 잘 생각해바."
달님이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봤으나, 언짢은 반응이었다.
다섯 살 치고는 고도의 대화 전략을 개시했다.
- 그쪽이 잘 생각해봐라.
종종 마음 속에 화가 쌓여있는 화자가 채택하곤 하는 대화 전략으로, 이것을 시전당한 대상은
최소 당황함
최대 패닉에 이른다.
허나 달님이도 나름 오랜 세월 동안 자아를 유지해온 존재다. 이런 위기 상황을 어떻게 파훼해야 할지, 본인만의 팁이 있는 것이다.
침착하고, 현명하게 사태를 헤쳐나가기로 했다.
"햇님아, 너가 생각해볼래?"
동생한테 던지는 것.
즉, 회피다.
"음... 윤슬이가 화가 난 건, 저번에 우리가 말을 끝까지 안 들어줘서 그런 것 같은데?"
"어?"
"우리가 돌아가기 전에 뭐라고 말하고 싶던 게 아니었어?"
"마저..."
"근데 오라버니랑 내가 다 듣지도 않고 다시 올라가버려서 서운했구나?"
"응! 마저! 어떠케 알았찌?!"
본인이 물어보고도 너무 마음을 잘 알아줘서 신기했다. 마치 '옵바' 같았다.
달님이에 비해 햇님이는 말이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우리 옵바가 그래써, 누구가 말하므는 끝까지 들어주라구 그래써. 그니까 둘이가 나빠써..."
"듣고보니까 그렇네. 미안해."
아무리 윤슬이가 다섯 살이라도 하는 말만큼은 옳았다. 그땐 명백히 대화 도중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누이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멋대로 대화를 끊은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윤슬이도 화날 만하네. 그치만 우리도 사정이 있었어."
"움... 몬데."
"여기서 너랑 너무 오래 대화할 수는 없거든. 제한 시간이 있어서 금방 돌아가야 돼."
금방 돌아가야 돼.
그 말을 듣고 장윤슬은 생각한다.
그럼 얘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겠구나.
탓할 것도 없었다.
"움, 그랬구나!"
오누이를 보며 머쓱하게 웃는다.
나이에 맞지 않게.
그건 송주현에게도 가끔 보이던, 무언가를 사양하거나 포기할 때 짓는 웃음이었다.
늘 남매를 지켜보는 오누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허나 윤슬이를 실망시키기 위해 이렇게 꿈 속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에."
"응?"
"조금 시간이 지나서, 가게가 더 잘 되면 그땐 진짜로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더 잘 대믄?"
"응, 오누이 식당이 조금 더 유명해지면 그땐 주현이 형이랑 윤슬이랑 우리 둘. 이렇게 실제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달님이의 말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 가게의 지명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곧, 오누이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말이었다.
무언가 매개를 빌려서라면, 현실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로.
"오오...!"
윤슬이는 돌연 기운이 났다.
"그러믄 윤스리가 옵바 더 열씨미 도아줄께! 가치 장사 열씨미 할께! 그러믄 나중에 볼 쑤 이써?"
"응! 만날 수 있어. 그때가 되면 같이 성북천에서 붕붕이 타고 놀자."
햇님이가 거들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윤슬이는 양 손을 내밀어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약쏙이야. 약쏙 어기므는 안 대. 알지?"
세 사람은 손가락을 걸고
꼭꼭 걸고 약속한다.
언젠가 가게 앞 성북천을 함께 거닐 것을 기약한다.
그런 약속을 나누고서 다시 밧줄을 잡고 영차- 영차- 오누이는 하늘 위로 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이번엔 손을 흔들어주는 윤슬이.
지난 번에 못 다 한 말을 전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윤슬이와 멀어졌을 때쯤.
달님이가 입을 연다.
"햇님아, 구했어?"
"당연하죠."
밧줄을 타고 열심히 길을 오르는 햇님이의 손 안엔 길다란 체모가 들려있다.
장윤슬의 것이다.
**
"우우웅."
옆에서 낮은 신음이 들린다.
윤슬이가 일어난 것 같다.
제자리에서 뒤척이다가 팔다리를 뻗으며 작게 기지개를 켠다.
"윤슬이 일어났어?"
"응, 인나써!"
방금 자다 일어난 것치곤 기운 차게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와 양팔을 벌린다.
토닥토닥-
안아준다.
"자고 일어나니까 기분이 좋아요?"
"네!"
오늘따라 텐션이 높다.
윤슬이에게도 이렇게 휴식이 필요했는가보다.
"옵바, 이거 모야?"
"응? 아, 지금 하고 있는 거. 퀴즈 맞추기야."
"키즈?"
"퀴즈."
"쿠이즤?"
'퀴' 발음이 어려워 점점 프랑스어 같은 소리가 나고 있다. 그런데 '퀴' 발음보단 '즤' 발음이 명백히 더 어려워보이는데, 그건 어떻게 한 거지?
윤슬이는 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예선 문제]
라는 문구 아래로 요리에 관한 상식이 문제 형식으로 쭉 나열돼 있다.
OX 퀴즈부터 객관식까지.
예선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거라고 생각했는지, 주관식은 없다.
이 퀴즈를 전부 풀면 본선에 진출할 자격이 생긴다던데 문제는 본선까지 '9시간' 정도 남았다.
온라인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하는, 본선. 일정이 하루만 밀리거나 앞당겨졌다면 참가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시공간의 제약을 줄이고자 본선 시작 직전까지 예선의 참가를 허락하는 것 같은데, 심심풀이로 좋을 것 같다.
"옵바가 이거 마추는 거야?"
"응, 한 번 해볼려구. 윤슬이도 같이 할까요?"
"네!"
엎드린 자세를 고쳐 앉고, 윤슬이를 무릎에 앉힌다.
동생을 데리고 한다고 해도 놀면서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째각-
째각-
스마트폰의 스피커 쪽에서 들리는, 제한 시간을 알리는 효과음.
인터넷으로 예선을 치른다고 해서 간단한 수준은 아니다. 제법 난이도 있는 문제를, 제한 시간 내에 풀어야만 본선에 오를 자격이 생긴다.
"검색해서 푸는 것 때문에 제한 시간을 걸어둔 모양이네?"
그래봤자 기기를 두 대 돌려 한 대로는 검색하고, 나머지 한 대로 퀴즈를 풀면 돼서 허술한 예방 장치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스릴 있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다.
[14. MSG는 '이것'의 약어입니다. '이것'을 한국말로 풀어낸 것 중 옳은 것은?]
1. 아스파탐
2. 글루탐산 일나트륨
3. 사카린나트륨
4. 에리스리톨
풀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두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제한 시간은 아직 5분이 남아 넉넉한 상황.
"아.. 아시..."
움- 움-
"다음 꺼가... 기... 글리... 글루?"
움- 움-
희박한 한글 지식으로 어떻게든 보기의 어구들을 읽어내려는 윤슬이.
하지만 읽어내더라도 의미는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식품에 쓰이는 성분들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박아놓은 것이니.
"윤슬아, 저거 2번 터치해주세요."
"2번?"
윤슬이는 손가락을 두 개 피며 재차 확인한다.
"응, 그거 이름 제일 긴 거."
콕.
[정답입니다!]
작은 폭죽이 터지는 듯한 효과와 함께 정답을 알린다. 그걸 보고 윤슬이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짝-
"오빠랑 윤슬이가 같이 맞췄네?"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