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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44화 (44/200)

44화: Foodie Question(2)

주방에 서면 자연스레 칼질이 능숙해지고, 식재료를 보면 레시피가 떠오르듯.

문제를 보니 답안이 술술 떠오른다.

난이도에 비해 빠른 시간 내에 답을 낼 수 있는 이유다.

MSG는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주로 치킨 스탁이나 라면 스프 같은 데 함유되어있다.

"2번 빼고 전부 단 맛이랑 관련 있는 애들인 것 같은데?"

"그러믄 저거 중에 초코도 이써?"

"그건 잘 모르겠다. 대신 초콜렛에 들어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디테일한 정보까지는 이 상태로는 알 수 없다. 혹시 다음번에 직접 초콜렛을 만들게 된다면 또 머리 속에 정보가 흘러들어올지도.

하지만 내가 알기로 MSG와 설탕의 단 맛 성분이 비슷하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15. 다음 중 라면을 끓일 때 함께 첨가하면 면발의 탄력을 유지하게끔 도와주는 것은?]

1. 포도주

2. 생 초콜렛

3. 그라나 파다노 치즈

4. 양파 껍질

이윽고 마지막 문제가 화면에 전시된다.

윤슬이는 문제를 다 읽지도 않고, 손가락을 두 개 편다. V자 모양을 그리며.

"초코!"

화학성분이라면 몰라도, 초콜렛이라는 글자만큼은 확실히 읽을 줄 아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아니야."

"히잉..."

정답지가 전부 수상해보인다.

라면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종류의 것들.

모짜렐라라면 모를까, 그라나 파다노는 파스타에나 넣는 것이기에 유탕면인 라면에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일단 맛은 차치하고, 결국 면발의 탄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라면 답은 하나뿐이다.

윤슬이 손을 조종하여 1번을 누르게 만든다.

콕.

[정답입니다!]

이번엔 큰 폭죽이 여러 번 터지는 듯한 효과와 함께 정답을 알린다.

포도주에는 유기산이 포함돼 있어, 조금 넣어주는 것으로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원리를 이용하여 면요리를 손님 상에 내놓는 업장이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일식집이라던가?

[마지막 문제까지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하단에 메일 주소를 기입하면, 해당 메일에 본선 온라인 회장의 링크를 전송합니다.]

"오오...?! 옵바, 쿠즤 끝나써."

"퀴즈?"

"쿠이즤."

"퀴, 즈?"

"쿠즈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메일을 확인하자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본선 퀴즈의 안내문과 함께 링크가 공지돼있다.

흔한 스트리밍처럼 한 방의 호스트로서 주최자인 셰프가 방송을 주도한다. 문제 제출을 셰프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주관식으로 답하고, 답안이 틀릴 경우 곧바로 방에서 퇴장된다고 한다.

"방식이 살짝 잔인하네."

그럼에도 경품에 돈도 걸려있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본선에 올라온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예상 접속자: 1,382]

"이만큼이나 본선에 올라오니까, 저러는 것도 당연한가."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에 저만큼의 생방 시청자가 있다면, 그건 꽤 성공한 방송인의 컨텐츠일 것이다.

저들 중에서도 몇 명을 추려 우승자를 가려야 하니, 룰이 가혹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저 많은 사람들 중 지식을 바탕으로 푼 사람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다른 기기를 이용해 검색 후 문제에 답을 했다면 본선에서는 금세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본선은 문제가 제시되고, 10초 안에 답을 해야 한다. 예선보다 훨씬 여유 시간이 적다.

[본선 회장 링크는...]

링크를 확인하고 우선 메일을 닫는다.

"윤슬아, 이따가 다시 한 번 쿠이즤~ 풀어야 될 것 같은데? 오빠랑."

"퀴즈?"

"응, 그래 퀴즈."

"히히힝."

눈매를 좁히며 윤슬이를 쳐다본다.

장난스레 웃으며 내 얼굴을 '말 꼬랑지'로 비비적거린다. "장난 즘 쳐봐써~."라며.

"그럼 오빠도 장난 좀 쳐봐야겠다."

간질간질간질-

간질간질-

"으히히힝!"

망아지가 우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자지러지는 윤슬이.

간지럼에 약한 편이라 가끔 아침에 너무 못 일어날 때는 이렇게 간지럼을 태워 깨우기도 한다.

옆구리 쪽을 찌르니까 침대에 쓰러지길래 이번엔 발을 잡고 쿡쿡쿡! 하고 쑤신다.

"흥흥항하하!"

웃음소리가 변화무쌍하다.

프헹-

프헹-

하고 기운 빠진 숨소리가 날 때쯤 간지럼을 멈추자 윤슬이는 몸에 힘을 축- 늘어뜨린다.

"으어- 윤스리 주거써..."

"윤슬이 죽었어? 그러면 오빠 혼자 윤슬이 초콜렛 다 먹어야겠다.

이제부터 다 오빠 꺼네?"

"으앙! 그거눈 안 대는데!"

윤슬이의 초콜렛을 담아둔 초코 봉투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자 쫄래쫄래 쫒아와선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초코 봉투를 꺼내는 시늉을 하다가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린다. 다섯 살짜리 총잡이가 양 손으로 제 볼을 움켜잡고 있다.

"어, 뭐야? 윤슬이 죽은 거 아니였어요?"

"우우.. 부하리야."

"부활이야? 살아난 거야?"

"살아나써여... 그니까 초코 나너머거야대여..."

"알겠어 알겠어. 미안해요."

결국 봉투에 있던 초콜렛을 하나씩 나눠먹으며 사태를 종결했다.

다시 침대에 앉아 윤슬이를 데리고 온다.

"윤슬이 같이 동화책 읽을까요?"

"아니에여."

"아니에요?"

"응, 오늘은 아니야."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완강히 거부한다.

평소에 책 읽자 그러면 좋다고 달려들며 무릎을 차지하는 데 별일이다.

"책 읽는 거 질렸어?"

"으응, 오늘은 옵바가 쫌 쉬는 날이니까 갠차나."

"오빠 쉬는 날이니까 오늘은 윤슬이 혼자서 놀 수 있어요?"

"네! 대신 책은 내일 일거주세여."

순간 감동 받아서 울 뻔했다.

내 컨디션까지 생각해서 책 읽는 걸 거절했던 거라니. 책 읽는 게 힘든 것은 아니지만 윤슬이는 날 배려해주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다.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여 TV를 틀어준다.

레이싱을 중개하는 해외 채널을 맞춰주곤 침대에 나자빠졌다.

힘을 빼고 누우니 노곤해진다.

이따 퀴즈 본선이 있을 때까진 푹 몸을 쉬게할 수 있겠다.

**

"셰프님."

"응?"

"곧 본선 방송 시작입니다."

"그래... 시작해야지."

단촐한 촬영 장비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어둡고 은은한 불빛을 비추는, 주홍빛의 고급 조명.

일렬로 정돈된 조리용 날붙이들. 각을 맞추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게끔 누군가가 정리해두었다.

음식 찌꺼기나 기름떼가 묻어나지 않는 화구.

검게 그을려있다.

오븐의 손잡이마저도 은색으로 깔끔하다.

김영춘이 오너로 일하는 개인 레스토랑이다.

그의 직속 부하로 일하는 또 하나의 셰프가 김영춘에게 다가와 방송의 시작을 알린다.

김영춘은 손목을 내려다본다.

R 사의 고급 손목 시계.

보통 레스토랑에서 업무를 볼 때는 사용하지 않으나, 오늘은 호스트로서 방송을 주최하기에 착용해보았다.

"20분 남았나."

"네, 이제 출연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여기까지만 보고."

김영춘은 SNS를 전전하며 구태여 확인 중이다.

본인이 주최한 퀴즈쇼가 얼만큼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는지.

스스로는 혁신적이라고 생각 중이다.

요리 프로그램이 최근 흥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을 온라인 플랫폼에 맞추어 상금까지 내걸고 대회를 여는 것은 자신 말고 아무도 시도한 적 없었으니.

그 건에 대해 인터넷에서도 꽤 화제가 되고 있긴 하다. 주최자가 직접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재밌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김영춘이 껄끄럽게 느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  Choonie's Foodie Question << ?? 이름 누가 지었? 구린디...

본인이 야심차게 작명한 프로그램의 이름이 까이는 것은 마음 아팠다.

-  예선 문제 풀어봤는데 난이도 에바임. 걍 자기 레스토랑 홍보하려고 쇼하는 거 같음. 솔직히 저 난이도를 일반인이 어떻게 품?

-  ?? 그냥 테블릿으로 문제 풀면서 핸드폰으로 답 검색하면 할만하던데.

제멋대로들 떠들고 있지만 본선은 더욱 녹록치 않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면 분명히 댓글처럼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 같았기에 본선에는 시간 제한을 아주 빠듯하게 두었다.

난이도 또한 쉽지 않다. 예선보다 어렵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일 테니.

"셰프님, 반응은... 그다지 신경쓰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영춘의 떨떠름한 표정을 본 젊은 셰프가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말을 건넨다.

허나 김영춘은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부정한다.

"흐흐하하! 아니 됐어. 어차피 이 사람들 얘기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니까.

이런 것들도 마음 넓게 받아들여야 일류 셰프가 될 수 있는 거다."

"읏..! 셰프님!"

은근히 감동 받은 젊은 셰프였다.

"그리고 우리 쪽 셰프를 새로 뽑는 면접 같은 자리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쇼맨십을 발휘해주면, 그 친구도 우리 식당에 더 애정을 가지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목적에 비해 크게 벌여진 온라인 퀴즈쇼.

오직 3등까지만 주어지는 경품은 이랬다.

1위 – 식당 '봄의 정원' 직원 정식 면접 + 500만원 상금

2위 – 강원도 강릉 K 리조트 복층형 객실 3박 4일 이용권 + 100만원 상금

3위 – 식당 '봄의 정원' 코스 메뉴 4인 이용 혜택

옆에 있던 젊은 셰프를 떠올린다.

본인이 김영춘이라는 대형 셰프 밑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간의 세월을.

국제적으로 유명한 셰프와 함께, 이런 큰 규모의 식당에서 일한다는 것은 요리인으로서 영광스런 자리다.

'솔직히 이런 장난스런 퀴즈 쇼로 새로운 셰프를 뽑는다는 게 썩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천재들이 하는 행동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김영춘은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이다. 그럼에도 요리에 대해서만큼은 늘 진심이다.

그런 인간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부하직원으로서 돕는 게 맞지 않을까.

마음 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린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다.

**

편안히 몸을 뉘이고 있는데 쪼매난 그림자가 눈 앞에 닥친다.

시야의 명도와 채도가 달라져 신경 쓰인다.

눈꺼풀이 떨린다.

"옵바, 옵바."

"으응?"

"그러케 자므는 쿠이즤~ 는?"

"쿠이즤?"

앗, 망했다.

"퀴즈...!"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젓는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계를 보았다.

[18:53]

"휴, 아직 7분 남았다."

"안 느저써?"

"윤슬이 덕분에 안 늦게 일어났다. 고마워요."

"히힝!"

똥배를 뽈록 내밀길래 토닥토닥 두들긴다.

똥똥-

작은 북처럼 울린다.

느지막이 점심 식사를 챙겨주고 다시 누우려는데 혹시 오래 잠들까 걱정됐다.

윤슬이한테 너무 오래자면 깨워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해두길 잘했다.

스마트폰을 키고 메일함에 들어가 본선 링크에 접속한다.

채팅창이 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우선 게스트들의 채팅은 금지되어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화면이 움직인다.

TV나 너튜브에서 종종 보이던 중년 셰프의 얼굴이 비친다.

-  고된 예선을 뚫고,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후로 장황한 인사말이 이어진다.

여러분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던가.

본인이 차린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요리에 대한 철학이라던가.

본인이 화면에 비추는 게 실물보다 늙어보인다며 아쉽다던가.

긴 얘기를 늘어놓는다.

"경품 받고 빨리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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