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Foodie Question(3)
장황한 인사말이 끝나자 김영춘 셰프가 호흡을 가다듬는다.
시작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 자, 그럼 첫 번째 문제입니다.
모근이 검게 올라온 입가가 호형을 그린다.
-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음식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탈락자가 속출한다.
[G0412님이 강제 퇴장당하셨습니다.]
[G0971님이 강제 퇴장당하셨습니다.]
[G0008님이 강제 퇴장당하셨습니다.]
[....]
그걸 보고 김영춘 셰프가 코웃음을 친다.
- 크핫! 문제를 다 듣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답을 입력하시면 탈락 처리가 됩니다. 주의하세요!
저런 부류가 있긴 하지.
이런 퀴즈 대회에서 괜히 자기 안다고, 문제 다 듣지도 않고 까불었다가 틀리는 사람들.
셰프는 룰을 다시 한 번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메일 공지에 쓰여있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답란에 오답을 기입하면 강제퇴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 사이에 채팅방의 인원수가 찔끔찔끔 줄고 있다.
늘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버거웠던 것 같다.
- 흐흐, 그럼 첫 번째 문제 다시 부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음식은... 가다랑어포입니다. 일본말로 가쓰오부시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들 보는 그 모습은 날로 얇게 포를 뜬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말린 가다랑어의 경도는 웬만한 돌보다도 단단하다고 하죠. 자, 여기서 문제입니다!
"빌드업이 엄청 기네."
어떤 문제를 내려고 저런 정보를 나열하는 걸까.
- 그렇다면 그 요리의 원재료라고 볼 수 있는, 가다랑어! 가다랑어는 농어목의 '어떤' 과의 바닷물고기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어떤'에 해당하는 생선의 이름을 맞춰주시면 됩니다.
윤슬이는 옆에서 가만히 문제를 듣더니, 내 웃옷자락을 쿡쿡 땡긴다.
"옵바, 옵바."
"응?"
"윤스리는 몬 소린지 하나두 몰르게써."
솜털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본인도 답을 맞추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 발로 이불을 휘휘 저으며 아쉬움을 표한다.
"괜찮아. 대신 오빠가 맞춰볼게. 그리고 나서 경품 타면 윤슬이랑 자동차 사면 되겠다."
"오오...! 자동차!!"
물론 실물 말고, 장난감 얘기다.
자신감 있게 답안란에 정답을 기입한다.
[고등어]
5...
4...
3...
10초부터 세어지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정답이 공개된다.
- 정답은 고등어였습니다!
셰프가 정답을 공개하자마자 잠깐 버퍼링이 걸리더니 본선 채팅장의 인원수가
[현재 접속자 수: 682]
반절 이하로 줄었다.
천사백 명 가량 있었는데 말이다.
- 첫 문제부터 너무 난제였나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식당에 면접을 볼 정도의 요리인이라면 이 정도 지식은 갖추어야겠죠?
쉽지 않은 문제였다.
문제의 답을 생각하면 왜 셰프가 가다랑어포의 얘기까지 끌어냈는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고등어.
그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두 어절은
등푸른 생선.
마찬가지로 가다랑어 역시 등푸른 생선이다. 가다랑어를 포 뜨기 전에, 말린 모습을 보면 한 쪽 부분이 멍든 것처럼 파랗게 올라와있다.
그 모습을 연상한다면 고등어라는 답변을 못 낼 것도 없다만.
"확실히 어렵긴 하네."
그럼에도 긴장되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 문제.
"오, 옵바가 맞춰써!"
또 다음 문제.
"오오! 옵바가 또 맞춰써!!"
그리고 또...
"오오오...!!! 틀리미 옵써!"
"응? 뭐가?"
"옵바는 천재야!"
검지 손가락을 높게 들어올리며 엄숙하게 선언한다.
"윤슬아, 저기 가서 초콜렛 세 개만 먹고 있을까요?"
"응!"
주어지는 난제에 연전연승하기 때문인지 걸음이 경쾌하다. "울 옵바가~ 엄쳥 똑또캐~."라고 음을 붙여가며 흥얼거린다.
아까 꺼내둔 초코 봉투를 다시 찬장에 집어넣지 않았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나보다 다섯 배 정도는 정답을 기뻐하고 있다.
약간, 조금, 살짝, 미미하게 산만하므로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로 한다.
문제가 지속될수록 김영춘 셰프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 우아, 아직 준비한 문제의 반도 못 꺼냈는데, 어느새 참가자가 열두 분밖에 안 남았네요? 이거, 이거...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눈썹을 까딱이며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검게 뜬 모공이 순간 너무 잘 보였다.
꽤 좋은 카메라를 쓰나보다.
-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예선 문제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MSG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문제가 출제됐었는데요. 그걸 모두 맞추신 분들이 지금 살아남아 계실 테니까... 답은 아시죠?
"2버니에여~!"
윤슬이가 아까 함께 푼 답안을 기억하는지 초콜렛을 봉투에서 꺼내며 손가락을 두 개 편다.
- 예! 맞습니다. 감칠맛을 음식에 첨가하기 위한 재료로 주로 가정에서 쓰이죠.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입니다. 동량 대비 가장 많은 감칠맛을 내포한 식재료는 무엇일까요?
"이번 거는 의외로 간단한데?"
자신 있는 손놀림으로 정답을 기입한다.
[다시마]
5...
4...
3...
10초부터 세어지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정답이 공개된다.
- 정답은 다시마였습니다!
"역시."
다시마에는 실제로 감칠맛이 굉장히 많이 담겨있다고 한다. 온도가 낮은 물에서 끓이면 더욱 감칠맛을 많이 뿜어낸다더라.
그런 이유로 국내 어느 회사에서 출시한 라면에는 다시마가 동봉돼있기도 하다.
[현재 접속자 수: 5]
"우무우물... 엄? 옵바, 다섯 나마써."
"벌써 다섯밖에 안 남았네?"
한두 문제 정도면 경품의 주인이 정해질 것 같다.
- 훌륭하십니다! 최후의 다섯 명으로 살아남으시다니. 이제 두 명만 더 떨어지게 되면 순위권에 드시는 겁니다. 소감이라도 들어보고 싶지만... 온라인이라서 그럴 수가 없네요. 아쉽습니다.
그 대신이라며 김영춘 셰프는 경품들을 들고 와 카메라 앞에 들이밀며 소개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이제 이 방송을 보는 사람도 다섯 정도밖에 없는데 뭘 자랑할게 있는가 싶지만
대회가 끝난 후 본선은 채널 아카이브에 남아 대중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그쪽까지 의식한 행동인 것 같다.
- 지금부터는 한 번에 여러 사람이 강제 퇴장 당해서 수상자가 모자라지면. 그것대로 진행이 곤란해지니까, 답변이 틀렸다고 해서 강제로 퇴장시키진 않겠습니다.
다섯 중에 셋 이상이 탈락해버리면 3등을 정하기가 어려워지니까 그런 것 같다. 다 탈락해버리면 그야 말 할 것도 없고.
- 한 번에 여러 명이 탈락해 수상자가 모자라게 될 경우, 예를 들어 이번 문제에 셋이 탈락해버리면 그분들은 나가지 말고 잠시 대기해주세요. 1, 2등을 정하고 그 이후에 셋끼리 경쟁을 재개하겠습니다.
이후의 퀴즈 경쟁 룰을 설명하고는 다시 문제를 출제하는 김영춘 셰프.
- 이번에는 흘러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알맞은 답을 서술해주시면 됩니다. 서술해주신 답안은 제가 직접 확인해서 정답 처리하겠습니다.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더니 동영상이 재생된다.
해동된 생선이 도마 위에 올려져있다.
"조기인가?"
표면의 알갱이를 보니 소금에 절여진 듯하다. 그걸 밀가루를 입히곤 기름이 둘러진 펜에 넣고 굽는다.
- 자! 영상 속의 요리사가 생선에 밀가루를 두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짧은 시간 내에 끝나버린 동영상.
이런 걸 10초 안에 답하라고 하다니.
저 김영춘이라는 셰프는 악마인가?
요구하는 답변은 알 것 같았다.
3...
2...
1...
생존자들의 정답을 확인한 셰프는 쓴 웃음을 짓는다.
- 허허... 정말 제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돼버렸네요? 한 번에 셋이나 탈락하다니. 아쉽게 됐습니다.
곧이어 채팅창이 풀렸다.
[G1309님이 채팅 방에 참여합니다.]
[G0112님이 채팅 방에 참여합니다.]
나와 다른 한 사람이 생존했다. 1309가 내 번호다.
- 보통 흰 살 생선은 구웠을 때 기름기가 적어서 잘 부서지기 때문에 저런 방법을 이용해서 형태를 유지하면서 굽기도 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상식의 일종이죠.
이어서 김영춘 셰프는 수상권에 들어온 소감 등을 채팅으로 묻거나, 요리인으로서 어떤 경력을 갖고 있냐던가.
그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대답해드렸고, 그 다음 문제를 셰프가 읊는다.
**
"힝... 아십다. 옵바."
"아쉬워?"
"응... 옵바가 다 이길 쑤 이썻는데."
윤슬이 말대로 마음만 먹으면 1등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신 2등도 대단한 건데? 이거면 윤슬이랑 같이 자동차 장난감 잔뜩 살 수 있는데?"
"히익!"
말랑한 두 볼을 손으로 누르는 윤슬이.
"얼마나?"
"많이 많이. 가게 벽면에 찬장 달아서 자동차 종류 별로 세워두면 멋있겠다. 그치?"
"종류 별루?"
"응, 포스터도 좀 붙여두고."
"그러믄 손님드리 조아해?"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윤슬이랑 오빠는 좋잖아. 가게에 자동차 많으니까."
"그건 맞찌!"
동생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 입장에서는 바쁘게, 하루만에 진행되었던 온라인 요리 퀴즈 대회는 아쉬운? 결과로 끝나게 되었다.
2등.
툭 까놓자면 아쉽진 않다.
애초 1등을 할 생각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차지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좋은 레스토랑이라도 남의 가게에서 일할 생각은 없거든."
그 가게에서 일하는 게 요리인으로서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굳이 찾아가고 싶진 않다. 윤슬이랑 같이 내 가게를 꾸리는 게 당면한 목표니까 말이다.
다른 무엇보다 누군가에겐 틀림 없이 소중한 기회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운 좋게 본인 가게를 잘 꾸려나가고 있는 나와 달리 누군가에겐 꿈의 발판일 수 있을 기회일 텐데, 그걸 내가 훽 낚아채는 것도 꺼림직하다.
"꽁돈 백만 원이랑 리조트 이용권이면 이미 충분히 이득이지."
백만 원으로는 가게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어차피 운 좋게 얻게 된 목돈이니 말이다.
지금 가게는 내부가 휑한 느낌이 없잖아 있으니까.
타이쿤 어플에 따르면 가게 인테리어가 더 화사해지면 가게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또, 리조트 이용권 하나 얻으면 성수기 때 피서 비용을 더는 셈이다.
윤슬이랑 같이 8월쯤 되면 강릉에 가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겠다.
"윤슬이 오빠랑 8월 되면 같이 바다 갈 건데, 어떻게 생각해?"
"움? 바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가보다. 이제야 다섯 살이니까 바다에서 재미있게 놀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바다 가면 맛있는 것도 많고, 할머니도 계신데."
"함모니!"
대신 할머니 얘기를 꺼내니까 만세를 부른다.
"윤슬아, 이리 와봐. 같이 모형 자동차나 한 번 찾아보자."
"자동차!"
남매는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장난감 사이트를 전전한다. 크기를 하나씩 확인하며 장바구니에 과감히 담는다.
곧 들어올 상금을 미리 쓴다는 생각으로 마음껏 자동차 덕질에 투자했다.
"보람찬 휴일이구만."
"그러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