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레종 데트르(5)
6월의 첫 휴일.
한산한 거리를 걷는다.
근처 카페에서 노래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어느 배우에 대한 추모 헌정곡.
"이 노래 제목이 뭐더라."
"애나 씌 유 어게-"
윤슬이는 마냥 노래가 좋은지 주변에서 흘끗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흥얼거린다.
귀에 박히는 대로 뱉는 것 같은데, 제법 발음이 비슷해 영어 조기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0.7초 정도 고민하게 되었다.
"근디 옵바, 우리 얼루 가여?"
"책방으루 가지요."
"초코 아저씨?"
"아니, 아저씨는 지금 안 계셔."
"그러믄 왜 가?"
"책 빌리러 가지요. 그리고 한 번 청소나 해드리려고."
"청소?"
청소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본인 '말 꼬랑지'를 만지작거리는 윤슬이.
저걸로 먼지 쌓인 책장을 쓸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막아야 할 것 같다.
미리 염두에 둔다.
귓가에 맴돌던 팝송이 멀어져갈 때쯤 호연 형님이 떠오른다.
"길은 맞게 잘 가고 계시겠지."
본인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거니까.
[달님: 돌아가신 분을 찾아달라구요?]
[나: 내 앞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은 아닌데. 어디에 묻히셨나 해서.]
[달님: 무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 응. 내가 직접 찾기에는 정보력이 모자라서 너희한테 부탁하려고.]
지난 번, 호연 형님이 가게에 들리셨을 때 나누던 대화.
그토록 찾으시던 할머니의 무덤을 찾는 일을 도와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매개 음식, 목살 소금구이를 드셨을 때 표정을 보았다. 괴로운 얼굴은 결코 아니었으나 아쉬움이 은근히 묻어나왔다.
그 할머니와의 일에 대해 아직도 깊게 마음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 멋대로 그 기억을 짙게 되살렸으니 어느 정도 도와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월세 건이나 가게 오픈 때에 은혜를 입기도 했으니.
그러나 달님이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달님: 거절합니다.]
단호했다.
[달님: 너무하시네요! 저희도 사생활이 있다구요. 안 그래도 오늘 등 제대로 안 먹어서 우울한데. 안 해드릴 거예요, 흥.]
저, '흥'을 텍스트로 보는 것은 썩 불쾌하다.
[나: 그래? 너네 우리한테 하나 잘못한 거 있잖아.]
[달님: ???]
[나: 멋대로 너튜브에 동영상 업로드한 거.]
너튜브 동영상으로 잠시간 인기몰이했던 [성북천 데스페라도]를 말하는 거다.
[달님: 그건 그것대로 가게에 이익이 되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요?]
[나: 가게에 도움된 건 인정할게. 근데 그렇다고 우리 허락도 안 받고 너튜브에 영상 올린 게 잘한 일은 아니잖아?]
[햇님: 그럴 줄 알았어요.]
햇님이가 가세한다.
[햇님: 왠지 저도 찜찜하더라고요. 제가 말렸어야 됐는데. 죄송합니다. 암튼 요즘 세상엔 초상권이란 개념도 있으니까요. 얼굴 모자이크 처리했다고 해도 그렇게 주역처럼 찍어놓으면, 허락을 받는 게 일반적이긴 하죠.]
[나: 달님이가 독단적으로 행동했는가봐?]
[햇님: 저희 둘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번만큼은 그렇다고 해야될 것 같네요.]
[달님: ....]
마침표 4개에서 달님이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달님: 어느 분을 찾으면 되는 거죠?]
결국 체념했다.
그 대화가 있던 다음날 오전.
달님이는 어느 주소지를 타이쿤 어플에 전송했다.
[달님: 이곳인 것 같네요.]
[나: 땡큐, 수고했어.]
[달님: 별 말씀을요. 동업자니까 이 정도는 도와드려야죠.]
[나: 어제랑 태도가 다른데.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니? 풀다운 기계 수리라도 끝난 거야?]
[달님: 아뇨. 오늘 아침 등에 새로운 자극을 먹이는 운동법을 너튜브에서 발견했어서요! 그걸 오늘 루틴에 포함시켜볼 계획입니다. 기대하세요!]
뭘 기대하라는 걸까.
좌우지간 그렇게 해서 그 집주인 할머니로 추정되는 분의 무덤 주소를 알게 되었다.
그걸 받아 형님께 문자로 보내드렸다.
그러자 그 주소지가 형님과 정민구씨의 고향에 있는 무덤이라는 사실을 말씀해주셨다.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은 동향이었던 것이다.
"이만큼 도와드렸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은혜를 갚은 거겠지?"
"으네?"
"은혜. 음... 그러니까 받은 만큼 돌려드렸다는 뜻이야."
"누구한테?"
"호연이 삼촌."
"호여니 삼촌? 윤스리도 으네 해써!"
"은혜를 했다고?"
"움! 삼초니가 윤스리한테 고맙다구 막 그래써!"
자랑스럽게 가슴팍을 툭툭 두들기는 윤슬이.
내가 목살을 구울 때 두 사람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사고가 난반사한다.
과거의 몇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설마."
**
최근 들어 가게를 자주 비운다는 이모들의 비아냥을 무릅쓰고 자차를 꺼냈다.
진호연은 이모들에게 늘 감사한다며 능청을 떨고는 식당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암튼 이모들 없으면 식당 안 돌아간다니까."
알바생들도 열심히 가르쳐놓긴 했으나, 주방에서 요리를 책임져줄 경험 많은 이모님들이 가장 의지되었다.
오늘 가게를 비우는 것은 마음이 시켰다.
옛날에 살던, 그 옥탑방 집주인 할머니의 묘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그토록 오래 수소문했었는데, 결국 의외의 경위로 알게 되었다.
"설마 주현이가 위치를 알려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4년 정도 전이었던가.
한 번 푸념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다.
워낙 젊은데도 어른스러운 녀석이기도 하고 마음에 들었던 놈이라.
가족들에게도 숨겼던 과거에 대해 청승맞게 늘어놨던 적이 단 한 번 있긴 한데.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 그 할머니의 묘가 어딘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 투성이였다.
[진호연: 이걸 어디서 얻었니?]
[송주현: 비밀이죠^^.]
신경 쓰이지만 묻어주기로 했다.
송주현이 보내주었던 묘 주인의 성함은 분명 진호연이 기억하던 그 할머님의 이름이 맞았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고 어떤 오류가 있을 수도 있었으나 이제야 실마리를 잡았다.
하루쯤 장사를 거르더라도 반드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평일인지라 도로 상황도 원활했다.
드물지만 광활한 8차선 도로에 진호연의 차량만 유유히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넓은 곳에 본인 혼자만 존재하는 듯해 기분이 센치해진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라디오라도 틀기로 한다.
DJ가 주절거린다.
사연을 소개한다.
오래 전 은혜를 입은 어르신이 한 분 계신데, 이번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공허해 한 곡만 틀어달라고.
그런 사연이었다.
"흔한 일인가."
무심코 감정을 이입해버린다.
- 어휴, 저런.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하지만 ....님 사망하신 분들께 우리나라 말로는 돌아가셨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러니까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하늘 높이 어딘가에서 ....님을 지켜보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DJ의 감상적인 얘기를 들으니, 진호연은 은은하게 힐링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 그런 의미에서 꼭 그분과 언젠가 다시 만나실 수 있으리라 믿고 노래 한 곡 틀어드리겠습니다.
음악, 팝송이 흐른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노래.
또 다시 만나면 그때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의 가사.
귀를 기울이면 드물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멜로디와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
"노래 좋네."
속도를 위반해 괜히 벌금 물지 않게끔 조심하며 운전을 지속한다.
그 와중에도 DJ가 선곡했던 그 곡의 멜로디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명곡이라고 진호연은 생각한다.
"라디오 이름이 뭐지."
나중에 찾아서 한 번 청취해볼까 싶다.
라디오를 듣다 정신을 차려보니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 산 중에 있던 묘지까지 차를 끌고 갈 순 없었으므로 인근 비포장 도로 갓길에 어떻게든 세워둔다.
딱지가 떼이진 않을까 내심 걱정되지만 오래도록 있을 것도 아니니 과감히 주차한다.
차에서 내린 진호연.
트렁크 쪽으로 향한다.
그곳을 열고 집어든 것은 검은 봉투로 둘둘 싸매어진 고깃덩어리.
이곳까지 오는 동안 트렁크에 방치되었기에 식어있지만 모양새만큼은 고기임을 주장하고 있다.
"다행히 찌부러지지 않았네."
할머니께 드릴 목살이다.
고기를 챙겨 산길을 뚫고 들어간다.
인적이 드물지는 않은지 포장도로는 아니더라도 통행에 불편함은 없었다.
불룩 불룩 튀어나온 자그마한 언덕이 눈길을 끈다.
저 밑에 사람이 죽어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생각해 묘지를 두려워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바보 같았다고 진호연은 생각한다.
도착했다.
목표한 것을 찾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썰미가 좋은 편인지라 그 사람의 이름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짐을 뒤에 내려두고 두 번 절한다.
다시 짐을 풀어 헤쳐 고기를 꺼낸다.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무덤 앞에 내려둔다.
"오랜만입니다."
아주 최근에 한 번 뵌 것도 같은, 근거 없는 기분에 휩싸였지만 실로 오랜만이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 ....
무덤은 대답이 없다.
"살아계셨을 적에 한 번 대접했어야 됐던 건데. 제가 도리를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 ....
무덤은 잠잠하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괜찮게 벌고 있습니다. 고기 구워서요. 그때 할머니께서 구워주신 고기 먹으면서 자극 받았나봐요. 장사에 이상한 고집 같은 것도 생기고, 노력하다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 ....
무덤은 침묵한다.
"이 접시에 있는 거 저희 가게에서 파는 목살이에요. 여기까지 오느라 살짝 식긴 했는데. 그래도 먹을 만할 겁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 ....
여전히 무덤은 소름끼칠 정도로 조용하다.
이 밑에 사람이 죽어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산 사람은 진호연뿐이다.
그럴 터인데.
- 그러게. 이 고기가 조금 더 나은 것도 같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치는 않으나 그립던 목소리.
꼭 다시 한 번 듣고 싶던.
"어?"
진호연은 이게 누구 목소리인지 확실히 알 것만 같았으나,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진호연이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시간을 주진 않고, 그 목소리는 이어졌다.
여승 같은 차분하고 심심한 목소리.
- 살아보니까 살만하더냐?
"네."
- 다시 죽어버리는 게 낫겠더냐?
"아뇨, 다행입니다. 살 수 있어서."
- 그래? 거 다행이구나.
"네, 다행입니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 ....
다시 무덤은 고요해진다.
이 밑에 사람이 죽어있다.
그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환청일까.
드디어 정신병이라도 걸린 걸까.
아니면 꿈일까.
오만 생각이 뇌리를 재빠르게 교차하는데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적어도 꿈은 아니겠지."
진호연은 지금 이 사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두뇌가 비상한 인간은 아니었고, 본인 스스로 그것을 인정한다.
이곳에 이르러, 그녀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는 감각.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
그런 감사 인사를 셀 수 없을 만큼, 연신 전한다.
중년 남자의 마른 볼엔 축축한 한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표정은 홀가분해보인다.
무덤가에 들어설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그간 자신의 생애에 대해 웃으며 털어놓는다.
무엇이 행복했는지.
또 무엇이 힘들었는지, 전부.
그리고 떠들 만큼 떠들었다 싶을 때쯤 가방과 접시를 챙기고, 자리를 뜬다.
"다음에 또 올게요."
라는 말을 남기며.
'see you again.'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반복되던, 라디오에서 흐르던 추모곡을 흥얼거리며 산중의 공동묘지를 유유히 떠난다.
다음 번에 송주현에게 맛있는 걸 하나 대접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세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아니, 두 명의 신격 존재와 한 명의 인간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