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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51화 (51/200)

51화: 레종 데트르(6)

"할머니 이제 돌아가시죠. 더 늦었다간 염라대왕한테 엉덩이 맞게 생겼어요."

"그려 엉덩이는 잘 간수해야지."

이해심이 많은 할머니였다.

달님이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본인도 깨나 나이를 먹었는데 엉덩이를 맞고 싶진 않았다.

왜냐면 그랬다가는 스쿼트할 때 엉덩이 자극점을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깔끔하게 저승으로 돌아기로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오누이였다. 영혼이 너무 현계에 오래 있다가는 원념이 되어 향간을 떠돌 수도 있다.

그러다가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나 심령 사진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다행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할 만큼 배짱 좋은 원념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관심을 필요로 하는 관심종자일 뿐이다.

허나 그 관심종자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면 염라가 극도로 불쾌해한다.

그건 위험하다.

할머니를 바래다드리기 위해 동앗줄을 불러들인다.

"오라버니가 이번엔 할머님 들고 오를 차례에요"

햇님이가 퉁명스럽게 선고한다.

당황하는 달님이.

"뭐?!"

"당연하죠, 제가 이쪽까지 올 때는 들고 내려왔잖아요."

"읏, 그건 그렇네."

달님이는 아까 했던 행동을 후회한다.

왠지 햇님이가 자연스레 할머님을 한 팔로 들어올리며 "제가 모시고 내려갈게요."라고 하더라.

꿀을 빨겠다는 마인드로 흔쾌히 수락했는데, 설마 그 말에 '올라갈 때는 네가 들고 올라라.'라는 문장이 생략됐을 줄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들고 내려가는 것보다 들고 올라가는 게 몇 배는 더 힘들다.

"운동하는 셈 치시죠."

"으휴, 그래야지."

운동하는 셈 치라는 햇님이의 말이 더욱 얄미웠다.

그런 노동적인 행위로 근육을 쓰면 근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육을 지치게 해, 본격적으로 운동할 때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근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사실을 오랜 헬스 파트너인 햇님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 업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냥 동생의 말을 듣고, 할머님을 안전하게 올려드리기로 했다.

등에 노인을 업고 동앗줄을 오른다.

그 옆줄에서 햇님이는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오누이의 전완근은 줄을 타는 내내 불끈불끈했다.

비교하자면 달님이의 것이 조금 더 그랬다.

할머니의 영혼을 다시 저승으로 인계하고, 귀가하는 길. 햇님이가 입을 열었다.

"주현 오라버니 부탁 들어드리겠다고 설마 저승까지 가려고 할 줄은 몰랐네요."

"그게 효율적이잖아."

"흠, 그런가요."

대한민국 전체 땅에서 한 사람의 무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더 편한, 다른 방법이 몇 가지 떠오른 햇님이었다. 달님이는 평소엔 장난스러워도 머리가 나쁘진 않다. 오히려 햇님이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도 많다.

그럼에도 제 오빠가 이런, 다소 원시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동생이었다.

"너도 느꼈잖아?"

"뭐를요?"

"우리 영향력이 조금 더 강해졌어."

영향력.

그 말을 듣고서야 햇님이는 오빠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한다.

아까 할머니가 앞에서 진호연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 것.

그건 영혼 상태의 할머니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오누이의 힘이 할머니의 목소리와 진호연을 연결시킨 셈이다.

즉, 향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강해진 것.

"지명도가 올라간 덕일까요?"

"그렇다고 봐야지. 이번에 진호연 아저씨한테 매개 음식을 먹이면서 만족도가 또 100까지 올랐잖아.

그 덕에 지명도가 2레벨 직전이야."

[지명도 Lv.1 – 87%]

"정말 그렇네요."

오누이 식당은 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되고 있었다. 4월에 시작했던 가게가 2달 정도 된 시점에서 이만큼의 지명도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식당 쪽 남매가 잘해주고 계신 덕이죠."

사장을 맡은 송주현은 부지런했으며, 장윤슬의 존재감도 컸다.

"그러게, 정말 그건 다행이긴 한데."

그럼에도 오누이의 마음 속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매개 음식이 가게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왜 이렇게 지대한지 규명하지 못했다.

"응? 오라버니."

"어."

"주현 오라버니한테서 연락 왔어요."

오누이가 집에 도착하여 먼저 연락망을 확인하니, 송주현으로부터 연락이 와있었다.

[송주현: 너희 윤슬이한테 뭔 짓을 한 거야?]

**

헌책방에 도착했다.

강씨 아저씨로부터 맡아둔 열쇠를 꺼내어 가게 문을 연다. 전등 스위치의 위치는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그곳으로 가서 불을 켠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지 그리 오래진 않은 것 같은데, 오래 방치된 것처럼도 느껴진다.

바닥부터 책장까지 먼지가 희미하게 떠있다.

"윤슬이 마스크 똑바로 썼어?"

"이거 보시오."

윤슬이는 거의 눈밑까지 올려쓴 마스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얼굴이 너무 작아서 소형으로 샀는데도 저 지경이다.

"먼지 먹으면 안 되니까 바닥 청소할 때까지만 쓰고 있어주세요."

"응! 이거 조아."

마스크가 들썩이는 걸 보니까, 저 밑에서 탱글한 볼따구가 빵실빵실 웃고 있는 게 상상된다.

윤슬이는 내심 마스크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얼굴에 무얼 걸치는 게 폼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혹시나 먼지를 들이마실까봐 윤슬이한테는 마스크를 씌워두었다.

카운터 쪽에 있는 작은 비를 꺼내어 책장을 털자 그리 많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분명히 쓸려나간다.

스윽-

스윽-

사악-

책장 위의 먼지를 쓸고, 바닥까지 쓸어버린다.

넓은 책방은 아니기에 청소하는 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먼지를 쓸어내리며 윤슬이를 흘끗거렸는데, 계속 머리 뒤쪽의 '말 꼬랑지'를 만지작거리며 신경쓰더라.

본인도 도와서 청소해야 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청소 대신에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찾아두라고 말했다.

"옵바, 이거 바바."

"어디 볼까요? 뭘 가져왔어?"

바닥을 거의 쓸고 문 밖으로 먼지덩어리들을 밀어냈을 즈음에 윤슬이가 내 앞으로 책 두 권을 들고 온다.

두 권은 얇은 그림책.

그리고 다른 한 권은 꽤 두껍다.

"그거 읽고 싶어?"

"응!"

그림책은 조금 연식이 된 것이지만 적당히 읽기 좋아보였다.

그런데 두꺼운 책은 제목이...

"알기 쉬운 프랑스 철학?"

"움?"

바닥을 발로 슥슥 긁으며 땅을 쳐다보는 윤슬이.

행동이 어색하다.

"진짜 이거 읽고 싶어서 갖고 온 거야?"

"아니야."

"이거 책 표지가 이쁘게 생겨서 갖고 온 거지?"

"히힝, 들켜써. 옵바는 윤스리 맘 다 알어..."

배시시 웃으며 몸을 비비 꼰다.

확실히 책 표지의 배색이 우아하면서도 그 위에 러프하게 그려진 인물화가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철학책을 윤슬이가 읽기에는 못해도 10년 이르다. 책 속엔 삽화가 드물게 한 장씩 포함되어있을 뿐 깨알만한 글씨들이 빼곡하다.

제목에 반하여 전혀 쉬워보이지 않는다.

윤슬이도 나와 함께 책의 내용물을 훑더니 눈을 꿈뻑거린다. 그러더니 뒤통수를 긁는다.

"윤스리는 그리미 조아."

"그림책이나 읽을까요? 오빠가 읽어드릴게요."

"응!"

대답하면서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강씨 아저씨가 자주 앉아계시던 3인용 소파의 표면을 툭툭 두들긴다.

그쪽에 앉으라는 것 같다.

시키는 대로 소파 위에 앉자 그 옆 공간을 낑낑거리며 올라오더니 내 무릎에 안착한다.

"책 일그자!"

"여기서 읽고 갈 거예요?"

"응!"

우렁차게 답하는 윤슬이를 무릎에 앉힌 채로 책을 읽어준다.

원래 내 독서 속도로 읽는다면 5분도 채 걸리지 않겠지만 윤슬이가 온전히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중간 중간에

"옵바,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옵바 옵바, 쟤는 이르미 루피야? 싱기하다."

이렇게 묻기도 한다.

그런 것들에도 일일이 답을 하다보면 그림책 읽기란 꽤 능동적인 행동으로 변한다.

두 번째 그림책을 다 읽어갈 때쯤 윤슬이가 무릎에서 꾸벅꾸벅 조는 게 눈에 띠었다.

완독할 때까지 그대로 냅두었더니 한 번 소파 아래로 고꾸라질 뻔해서 잘 잡아 소파 옆 공간에 눕혀버렸다.

"아직 애라서 그런지 진짜 많이 자네."

한 번은 걱정돼서 인터넷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다섯 살밖에 안 되어서 잠이 많은 걸 수도 있지만 주변에 육아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게 평범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찾아보니 만 4세 기준 수면 시간이 평균 11시간이라고 한다.

하루에 반은 자는 것이다.

그러니 밤에 자는 것을 제외하고, 낮잠을 2-3시간 정도 더 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건강하다는 증거지."

새근새근 잠든 윤슬이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리곤 아까 내게 가져다준, 두꺼운 책을 펼친다.

"이거는 오빠가 읽고 나서 내용 알려줄게."

윤슬이가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떼울 생각이다.

....

젠장 5분만에 난관에 봉착했다.

용어가 너무 어렵다!

데카르트?

스콜라?

계몽사상?

다시 한 번 책의 제목을 확인한다.

"전혀 알기 쉬운 철학이 아닌 것 같은데."

한 마디 불평을 읊조린다.

그런데 그 어려운 내용 중에서도 은근히 눈길을 끄는 내용이 단 하나 있었다.

레종 데트르.

낭만적인 표현이었다.

그 의미는

-  존재의 이유.

라고 한다.

어느 정도의 의역이겠지만 상세한 의미는 이러하다.

모든 사물과 존재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런 개념을 만들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그 할머니의 무덤에 도착했을 호연 형님이 떠올랐다. 분명 형님이 아직까지 살아서 가게를 운영하고, 우리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엔 그 할머니의 덕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가 구해주신 행동이 '진호연'이란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미로 쓰인 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낭만적이지 않은가.

멋있는 표현을 찾았다고, 자신이 대견해질 때쯤.

부우우웅-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진동한다.

[햇님: 무슨 말씀이시죠?]

오누이에게서 회신이 돌아왔다.

약간 긴장되었다.

[나: 너희 윤슬이한테 뭔 짓을 한 거야?]

내 입장에선 합리적인 추론에 의하여 그렇게 물었던 것이지만 저 녀석들 입장에선 대뜸 따지고 드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

우선 진정하고 차근차근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겠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까지만 입력하고 약간 머뭇거린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과 한 번 논의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른 침을 삼키고 전송 버튼을 마저 누른다.

[나: 윤슬이가 다른 사람 기억에 개입할 수 있는 것 같아. 매개 음식으로 과거를 회상할 때 말이야.]

오누이도 고민하는지 평소보다 답변하는 속도가 늦어졌다.

....

그리고

[달님: 형이 저희보다 빠르게 그 결론에 도달하셨네요.]

[나: 뭐?]

[햇님: 저희도 지금 주현 오라버니와 비슷한 생각이에요. 미리 양해를 구하진 않았지만 윤슬이의 체모를 얻어서 그걸 검증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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