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54화 (54/200)

54화: 5세, 낭만을 쏘다(2)

"오오...!"

윤슬이에게 저 감탄사를 뱉게 했다는 것은 분명 연우씨로서는 대단한 전과다.

어제 혜원씨는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전적이 있다.

연우씨의 손에 들려있는 건 윤슬이뿐만 아니라 내 흥미도 자극한다.

잘 마감된 반질거리는 목재 표면.

그 목재가 마치 프라모델처럼 하나의 총 모양을 이루고 있다.

방아쇠까지 꽤 리얼하게 재현된 게 실제로 발사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웬 나무총이에요?"

-  이, 이쁘죠?

"아니야, 안 이뻐!"

-  엇...

윤슬이는 대담하게 부정하고는 다시 홀쪽으로 도도도- 하고 달려가 연우씨 앞에 우뚝 멈춘다.

"머시써!!!"

그리고 눈을 똘망하게 빛내며 목재 권총에 격렬히 호응한다.

그 말을 듣고 왠지 연우씨는 안심한 듯 가슴을 작은 손짓으로 쓸어내린다.

-  윤슬이. 하, 한 번 만져볼래?

"그래두 대여?!!"

-  응...

뺨을 느슨히 늘어뜨리며 윤슬이에게 목재 권총을 건넨다. 윤슬이는 받아들더니 얼마 전 흥행한 영화, [황야의 데스페라도]의 총잡이들을 따라한다.

최근 손님들에게도 손가락 총을 빵빵- 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만큼 총기류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내 허리춤까지 오는 꼬맹이가 장난감 총으로 이곳 저곳을 겨누며 천진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더 귀엽다.

"우선 덮밥부터 만들어드릴까."

윤슬이와 연우씨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누그러진 것 같으니 마음 놓고 요리에 집중해야겠다.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내어둔 목살을 꺼내어 팬에 먼저 굽는다. 삼겹살에 비해 기름이 적어서 팬에는 약간의 기름을 둘러주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 옆엔 샬롯을 볶는다.

소스와 고기 굽기를 따로하는 것이다.

"재료에서 단 맛을 최대한 뽑아야지."

기름에 샬롯을 볶다가 간장과 굴소스, 황설탕을 섞은 소스를 투하하고 소스에 맛을 배게 한다.

목살이 익은 것을 확인하고, 그 위에 농도가 짙은 소스를 덮어준다.

칼집의 틈 사이로 소스가 스민다.

그 위에 맛술을 떨어뜨리고 웍질을 한다.

느슨해진 고기에 긴장감을 주며 알콜을 날리면.

"완성."

그대로 고봉밥 위에 얹어 상으로 내어간다.

간단한 레시피지만 재료의 맛이 잘 살아나는 음식이다.

"덮밥 나왔습니다."

-  아, 잘 먹겠습니다.

꾸벅-

하고 반사적으로 인사하는 연우씨.

윤슬이는 아예 목재 총을 붕붕이 3호 쪽으로 가져가서 전동 바이크 위에서 사격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작은 목소리로

빵-

빵-

하는 게 여기까지 들린다.

실제로 총알이 나가거나 하진 않는다.

"웬 총이에요?"

-  아... 저거 사실 저희가 만드는 거예요.

"연우씨 저런 거 만들어요? 직접?"

-  네, 직접. 좀 괜찮아보이나요?

"엄청 멋있고 좋은데요? 저는 플라스틱으로 실물 따라 만든 것보다 저쪽이 더 감성적이라 좋은 것 같애요."

-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혜원씨와 연우씨 부부가 우리 식당에 오는 시간대가 늘 신경쓰이긴 했다.

회사원이라기엔 다소 불규칙적으로 식사하러오셨고, 주로 점심 시간에 들렀다.

또, 부부가 거의 매일 같이 왔다.

이십대 후반인 두 사람의 연령대를 미루어보아 흔한 일은 아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할 텐데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저런 목재 공예품을 만드는 게 직업이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요기 이거 돌려주께. 윤스리 잘 가지구 노라써여."

윤슬이는 잠시 붕붕이 3호 쪽에서 생각하다가 다시 연우씨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나무 총을 돌려드린다.

-  벌써? 재미 없어...?

"으응, 재미써. 근데 윤스리만 가지구 놀므는 안 대. 윤스리 꺼두 아니자나. 아저씨 꺼자나."

-  아, 아저씨...

혜원씨는 언니라고 부르는데, 연우씨는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하지만 금세 체념한다.

연우씨는 지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살짝 거뭇하게 올라온 상태다. 아저씨가 아니라고 항변하기엔 외형적으로 근거가 모자라다.

-  아저씨 꺼긴 한데. 아저씨네 집에는 이거 많아서, 윤슬이 가져도 돼.

"잉! 윤스리 주는 거야?!"

-  응, 윤슬이 주려고 가지고 온 거야.

연우씨가 다시 윤슬이에게 돌려준다.

소중한 것이라도 받은 듯 가슴팍에 꼭 안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바닥에 내려둔다.

그리고

포옥-

-  어...

윤슬이는 저번에 그랬듯 앉아있던 연우씨의 다리를 한 번 안아준다.

저번엔 실수였는데 이번엔 감사의 표시로, 그러니까 일부러다.

이어지는 한 마디.

"고마오..."

다시 땅에 놓인 목재 총을 품에 안고는 붕붕이 쪽으로 달려간다.

도도도-

흥겨운 표정으로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사격 연습 중이다.

빵- 빵-

연우씨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혼수상태다.

"정신 차리시죠. 아직 임종까지 가시기엔 젊습니다."

-  아, 아... 네. 잠깐 정신을 잃을 뻔했네요.

실제로 잃은 듯 보였다.

"식사부터 하실래요? 덮밥 식기 전에 드셔요."

-  그쵸. 먹어야죠. 진정 좀 하구요.

후욱-

후우...

심호흡을 하고는 조용히 식사하는 연우씨.

성격이 내성적이라 앞에 내가 있으면 체할까 일부러 자리를 비켜드렸다.

냉장고 앞에서 재고 정리를 하는 척하는데, 연우씨가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린 것 같이 들렸다.

-  첫째는 딸로 하자고 할까... 혜원이한테.

오늘 부부 간에 은밀한 대화가 오고갈 예정인가보다.

못들은 걸로 해드려야겠다.

-  자, 잘 먹었습니다.

딴청을 피우고 있었는데, 주방 안쪽으로 연우씨가 그릇을 밀어넣어주셨다.

그릇을 제 자리에 두시는 손님도 있는 반면 그릇에 수저와 물컵, 휴지 등을 넣어 이쁘게 정리해주시는 손님들도 계시다.

혼자 일하는 입장에선 후자의 손님들이 단연 호감이다.

"맛있게 드셨어요?"

-  네, 혜원이가 엄청 맛있다고 그랬는데. 오늘도 덮밥 파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집 가서 맛있게 먹었다고 얘기해야겠어요.

두 부부는 신혼이라 그런지 무얼 먹었고, 얼만큼 맛있었는지 공유하는 것 같다.

사이가 좋다.

"오늘 그냥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  네?

"그냥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아서요. 사실 윤슬이한테 저거 주려고 오신 거 아니에요?"

-  아.

외마디 탄식.

내 말이 맞는가보다.

그래보였다.

오자마자 주문하기보다는 윤슬이한테 먼저 신경 쓰는 게 평소의 연우씨답진 않았다.

머쓱한 얼굴로 잠깐 고민하다가 사정을 털어놓는다.

-  혜원이 기분 풀어주고 싶어서요.

"혜원씨요?"

-  네, 혜원이가 시킨 건 아니구요. 그냥 어제 제가 조금 서운하게 해서. 기분 풀어주고 싶었거든요.

"윤슬이한테 저걸 주면 혜원씨 기분이 풀려요?"

혜원씨가 윤슬이를 유독 좋아하는 손님 중 한 분인 것은 맞지만 다소 어색한 인과관계였다.

-  아, 제가 설명을 잘못했네요. 그게 아니라.

불과 두 시간 전.

오늘 아침에 있던 일을 연우씨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천연우는 긴장됐다.

그래서 도어락의 버튼을 살살 눌렀다.

조용히 들어가기 위해.

띡!

띡!

"으헛! 왜케 소리 커?"

잘 생각해보니 도어락을 살살 누른다고 해서 소리가 줄어들 리가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거실에서 혼자 묵묵히 밥을 먹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친정에서 보내준 열무 김치에다가 보리밥만을 꺼내어 먹는 신혜원의 모습이 애잔했다.

"혜원~ 나 와써..."

"응."

단답.

이렇게 될 것을 천연우도 알고 있었다.

어젠 고향 친구 집에서 자고, 새벽 같이 차로 달려서 아침에 귀가했다.

저녁에 맥주 한 잔 정도 마셨기에 취기도 없어서 가능했다.

"왜 그것만 갖고 먹어? 내가 뭐라도 더 차려줄까?"

"아니."

화가 단단히 난 신혜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천연우가 잘못했다.

원래 외박까지 할 생각은 없었고, 분명 어제 집에서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밤이 되면 돌아올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약속을 어긴 셈이다.

그럼에도 어제 고향으로 굳이 내려간 이유는 친구가 모처럼 취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달아올라 음주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정신이라도 유지하고, 새벽 같이 달려오기 위해 맥주 한 잔으로 어떻게든 분위기만 맞춰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침에 돌아왔지만.

아무튼 천연우는 약속을 어긴 것이다.

신혜원은 거짓말을 싫어하고, 천연우는 이를 알고 있다.

차라리 진즉 자고 온다고 얘기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거다.

"미안."

그래서 솔직히 사과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로 미안해?"

거짓말 같이 밝은 뉘앙스의 목소리로 바뀌며 몸을 천연우 쪽으로 기울인다.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돈다.

그리고 정말로 미안하냐고 묻는다.

평소의 신혜원 같았다.

정확히는 그보다 더 밝고 천진난만했다.

"응 미안하지. 약속은 약속인데, 내가 못 지킨 거니까."

"그럼 내 소원 하나 들어줄 거지?"

소원 하나 들어줄 거지?

가 아니라 소원 하나 들어줘라.

였다.

의문문이 아니라 거의 명령문이었다.

"말씀만 하십쇼."

거역할 수 없었다.

온건한 부부관계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러면 나 보고 싶은 거 있어."

"영화? 표 살까?"

"아니."

"그림? 어디 전시회 열렸어?"

"아니, 들어봐."

"응."

"나 윤슬이가 좋아하는 거 보고싶어."

"윤슬이...?"

최근 자주 들르던, 오누이 식당의 아이였다.

그 식당 사장의 여동생인데, 아내가 그 아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쯤은 천연우도 알고 있었다.

"그 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거야?"

"응!"

어려운 주문이었다.

적어도 천연우에겐 그랬다.

그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에 더해 천연우가 아이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하지만.

"알았어."

"어?"

"그러면 윤슬이가 좋아하는 모습 사진 찍어서 오면 돼?"

"어...? 어, 그래주면 되긴 하는데. 되겠어?"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네가 그게 보고 싶다는데."

신혜원은 놀랐다.

왜냐면 장난삼아 해본 말에 불과했다.

천연우를 골려주고 싶었다.

어제 윤슬이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해서 살짝 침울했던 것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진 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내성적인 천연우가 혼자서 식당에 가서 윤슬이가 좋아할 만한 일을 벌일 거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야! 연우, 너 진짜로 가게?"

"응,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천연우는 귀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섰고, 자택 근처에 있는 작업실에 들렀다.

그리고 부부가 상품으로 팔던 장난감 목재 권총, 완성본을 가방에 넣었다.

그 정도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다섯 살 난 아이가 무얼 좋아하는지 전혀 감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목재 총을 챙길 때까지만 해도

'윤슬이는 여자애인데 이런 걸 좋아하려나. 보통 남자들이 많이 사가긴 하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오누이 식당에 상주하는 5세는 평범한 5세와는 다소 차별되는 가치관의 소유자였다.

**

"그럼 그 얘기에 따르면 윤슬이 사진을 찍어서 혜원씨한테 보여드려야 된다는 얘기네요?"

-  그렇죠. 죄송해요. 멋대로 정해버려서.

기분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달님이처럼 멋대로 너튜브에 올리는 게 아니라면야.

"대신 중요한 건 제 의사가 아니라 윤슬이 의사에요. 윤슬이가 찍기 싫다고 하면 안 됩니다."

-  아, 네! 당연하죠. 제가 직접 물어볼게요...

직접 물어본다면서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적어도 윤슬이는 장난감 목재 총을 맘에 들어하고 있다. 그건 명백했다.

-  윤슬아.

살얼음처럼 애매하게 굳은 표정으로 붕붕이에 앉은 윤슬이 앞에 선다.

"움?"

윤슬이는 얼굴에 ?를 띄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