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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55화 (55/200)

55화: 5세, 낭만을 쏘다(3)

-  혹시 아저씨랑 사진 한 장만 찍어줄래?

"으엥?"

절레절레.

절레절레.

고개를 네 번이나 옆으로 젓는다.

그리곤 붕붕이에서 하차해 쫄래쫄래 달려서는 주방까지 들어온다.

그리고 내 바지를 붙잡는다.

"우우..."

척 봐도 싫어보인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명백한 거절 의사였다.

-  흑...

연우씨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윤슬이 사진 찍는 거는 싫어요?"

"시러요."

절레절레.

다시 한 번 고개를 젓는다.

내가 묻는데도 싫다는 거면 진짜 싫다는 거다.

"연우씨, 이건 안 되겠는데요?"

-  그러게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불쌍해보일 정도로.

연우씨의 사정을 들었으니 더 그랬다.

혜원씨와 연우씨는 가게에도 자주 들러주니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윤슬이한테 억지로 사진 찍게 할 수는 없다. 혜원씨가 주문한 것도 윤슬이가 좋아하는 모습일 거다.

사진을 억지로 찍게 해봤자 기쁜 모습이 찍힐 리가 없을뿐더러 윤슬이한테도 실례다.

또, 윤슬이가 굳이 그쪽 부부 사정을 들어줘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저 장난감 목재 총 역시 일방적인 선물이었으니.

-  포기해야겠네요. 어쩔 수 없죠.

연우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는다.

그런 모습이 누굴 닮았다 싶었는데.

윤슬이가 무엇을 사양할 때 딱 저런 표정을 짓는다.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

되도록 내 동생이 안 지었으면 좋겠는, 그런 얼굴.

"...."

그 모습을 보니까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 딴에 기지를 발휘해보기로 했다.

-  아, 저 이제 계산하고 돌아가볼게요! 그 총은 윤슬이 선물이니까. 갖고 놀게 해주세요.

"잠시만요."

-  네?

"잠깐만 기다려봐요."

고개를 윤슬이 쪽으로 돌린다.

"윤슬아, 사진 말구 동영상은 어때요?"

"잉? 동영상?"

"응, 뭐 찍을 건 줄 알아요?"

"몬데여?"

"윤슬이가 되게되게 멋있게 나오는 동영상 찍어줄 건데?"

"대게... 머시써?"

윤슬이의 표정이 심오하게 변한다.

눈매에 힘이 들어가며 입을 굳게 다문다.

또 다시 무언가를 상상하는 듯한다.

그러더니 샐쭉이며

"모가 머싯는데?"

하고 묻는다.

새침한 만화 캐릭터 같은 얼굴이다.

"윤슬이가 아까 저 연우 아저씨한테 멋있는 총 받았잖아요?"

"네 바다써여. 머시써여."

"그러면 붕붕이 타서 그걸로 빵빵 쏘면은 멋이 있을까 없을까?"

"그거야 당여니 머시찌. 엄청 머시찌."

"동영상으로 찍어서 남겨두면은 계속 멋있는 거 볼 수 있는데?"

"엇...!"

윤슬이는 멋들어지게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옵바."

"응?"

"찌거야게써!"

"결정하셨군요, 아가씨?"

"결정임미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연우씨에게 윤슬이랑 똑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환하게 웃는 천연우씨.

나보다 분명 연상일 텐데 이렇게 보니 동생 같다.

재빠르게 영상의 개요를 기획한다. 다른 손님들 오기 전에 얼른 해치울 계획이다.

목재 총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골자다.

이 목재 총은 그냥 관상용 프라모델이 아니라 무려 발사까지 가능하다.

총구에 고무줄을 걸어 뒤통수 부분에 걸치고, 방아쇠를 누르면 발사되는 방식.

그 기능을 활용해 윤슬이한테 고무줄 총 사격을 시켜볼 생각이다.

안전이 걱정돼서 반동이 심하거나 고무줄이 뒤로 튕길 가능성이 없느냐고 물어보니까.

-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제작자의 이름을 걸고 책임 집니다.

제작자가 직접 옆에 있는데 걱정할 건 없어보였다.

여차하면 나도 옆에 있고.

"그러니까 윤슬이는 오빠가 액션!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우움... 빵! 빵! 쏘므는 대."

"쏴서 테이블 위에 있는 애호박 맞추면 되는 거야. 오케이?"

"알겠쏘. 미드시오."

말투가 사극투로 변하며 엄중한 표정으로 바뀐다.

윤슬이에게 주어진 표적은 바 테이블 위에 세로로 세워진 애호박.

밑동을 칼로 깎아 사다리꼴로 만들어놨다.

바닥과 맞닿는 면적이 적으니, 똑바로 서긴 서되 고무줄에 맞으면 벌렁 넘어질 것이다.

"준비됐지?"

"움!"

마른 침을 삼키며 표적을 노리는 윤슬이.

기세가 5세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아니다.

그냥 귀엽다.

매섭게 노려보는데도 눈매에 젖살이 빠지지 않아 그냥 아기 리트리버처럼 보인다.

촬영은 일부러 연우씨에게 맡겼다.

원하는 구도로 잘 찍어보라고.

"액션!"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을 발사하는 윤슬이.

촉!

촉!

촉!

-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덜커덩덩-

세 개의 애호박이 볼링장의 핀처럼 차례로 쓰러진다!

윤슬이가 모두 명중시킨 것이다.

"오, 옵바. 윤스리가..."

"다 맞췄네요? 대단한 아가씨인데?"

본인이 해놓고도 신기한지 두 손을 내려다보며 몸을 흠칫 떤다.

"재, 재능잉가?!"

재능이란 말은 어디서 또 배웠는지 스스로가 스스로를 두렵단 듯이 몸을 계속 떤다.

하여튼 엉뚱한 건 알아줘야 된다.

"옵바! 윤스리 또 해보고 시퍼."

"그래 윤슬이 내킬 때까지 해봐."

촉! 촉! 촉! 촉! 촉!

그 뒤로 다음 손님이 오실 때까지 윤슬이의 사격 타임이 이어졌다.

처음 세 발이 전부 맞은 건 행운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 불리는,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명중률은 50%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본인의 사격 솜씨에 윤슬이도 내심 만족한 듯했다.

연우씨가 찍은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무줄 사격을 지속하는 윤슬이가 이쁘게 찍혔다.

이 정도면 혜원씨도 불만 없을 거다.

-  주현씨 어떻게 해요. 고마워서.

"고맙다고는 윤슬이한테 그러세요."

연달아 손님 네 분 정도가 들어와 각각 음식을 내어드리는 동안 연우씨는 장윤슬 배우에게 영상을 검수받았다.

사격할 때만큼이나 집중하여 영상을 지켜보는 게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것 같아보였다.

음식을 다 내어드릴 때쯤 내 쪽으로 다가와 바지춤을 쿡쿡 땡긴다.

"옵바, 옵바."

"응?"

"윤스리 엄청 머시써. 저기 머시께 나와써."

"윤슬이가 멋있게 나왔어? 사격하는 게?"

"응! 푝푝! 하구 맞추는 거 찌거써."

"다행이네? 저기 아저씨가 윤슬이 영상이 너무 멋있게 나와서 혼자 갖고 있다가 보고 싶대. 그리고 혜원이 언니한테도 보여줄 거라는데 그래도 돼요?"

"윤스리가 보구 시프대?"

"응."

잠시 움- 움- 하면서 고민할 시간을 갖는다.

"그치만 그러믄 가게 와서 윤스리 보므는 대자나."

"그렇네, 그럼 이렇게 할까? 가게 자주 와주는 대신 저거 동영상도 가져도 되는 걸로?"

"아저씨랑 언니 자주 와?"

"응, 자주 온대."

"그러믄 특별히 허락해여."

그 말을 듣고서야 연우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윤슬이도 두 사람이 좋은지, 가게에 자주 들렀으면 하나보다.

그렇게 촬영 사건이 일단락되고, 연우씨가 계산을 마친 뒤 귀가하려는 찰나.

"연우씨!"

-  네?

주방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작게 손짓했다.

다른 손님들이 호명하는 소리에 힐끗 연우씨를 쳐다본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종종걸음으로 주방까지 들어온다.

다른 손님들께 보이지 않게 몰래 목살과 샬롯 1인분씩을 건네어준다.

-  어, 이거.

'조용히 듣기만 해요.'

끄덕이는 천연우씨.

다른 손님들께 보이면 곤란해서 귓속말 수준으로 목소리를 낮춘다.

'혜원씨가 화났다면서요? 이걸로 덮밥 한 번 만들어주면서 기분 풀어줘요.'

-  주현씨...!

'레시피는 연우씨한테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제가 가르쳐줬다곤 하지 말고. 그냥 만들어주기만 해요.'

대답이 없길래 얼굴을 보니까 거의 울기 직전이다.

'대신 우리 가게 더 자주 오셔야 돼요?'

-  네, 약속할게요. 너무 고마워요.

연우씨는 내 손을 덜컥 잡는다.

남자끼리 이러는 건 좀 부담스러워서 금방 쑥 빼버렸다. 본인 아내한테 이렇게 해주시면 되겠다고 얼버무렸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신혼부부 천연우: 식당 만족도가 24%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64%]

[신혼부부 천연우 – 우수 고객으로 등록됩니다!]

대충 장난감 목재 총 값이라 생각하고 음식 재료 좀 나눠주려는데 만족도가 대폭 상승한다.

일의 자리가 4% 올랐는데, 인테리어를 바꾸고서부터 이런 식이다. 원래 같았으면 20% 오를 게 4% 더준다는 느낌이다.

"모형 자동차를 잔뜩 산 보람이 있긴 하네."

**

귀가한 천연우.

일부러 뾰루퉁한 척을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다가간다. 기분이 다 풀렸다는 걸, 아니 애초에 그다지 화가 나지도 않았다는 걸 모르고 있다.

핸드폰을 내밀어 아까 그 영상을 보여준다.

촉! 촉! 촉!

뛰어난 사격 솜씨로 애호박을 쓰러뜨리는 윤슬이.

그리곤 서부의 총잡이처럼 총구에 후- 하고 바람을 분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말려올라가는 게 누가 봐도 기분 좋은 아동의 모습이다.

"뭐야, 이거 우리가 파는 거잖아."

"응... 너가 윤슬이 좋아하는 거 보고 싶다고 그래서 하나 갖다주고 놀라고 했어. 좋아하더라."

멋대로 상품을 갖다준 것은 둘째 치고, 감동 받은 신혜원이었다.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진짜 그 식당까지 가서 이런 귀여운 영상까지 찍어준 것이니 말이다.

장난이 심했던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다.

"여보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어? 응, 아직 안 먹었지."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주방으로 달려가는 천연우.

슬쩍 들여다보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무얼 요리하고 있다. 달달한 향과 고기 냄새가 순식 간에 코로 들어온다.

천연우가 사용하는 식재는 작은 보라색 양파 모양이었다.

"샬롯...?"

어제 오누이 식당 사장, 송주현에게 전해들은 식재료였다. 그걸 갖고 요리를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그 식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상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주현씨가 조금 나눠주시더라고. 이거 요리 만들어서 너 기분 풀어주래."

천연우는 그 사실을 곧장 고백한다.

분명 송주현이 자기한테 받았다는 소리는 하지 말랬는데도 말이다.

허나 연우의 성미는 원래 그렇듯 진솔하다.

완성된 덮밥은 송주현이 만든 것에 비해 못했다.

신혜원은 그렇게 느꼈지만

"너무 맛있게 잘 됐다."라며 칭찬한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볼멘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로 깊게 생각한다.

'천연우랑 결혼해서 다행이다.'

라고.

서툴고 어리숙한 면이 있지만, 누구보다 신혜원을 위해주는 것만큼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이윽고 그날 밤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고 짙기로 했다. 두 사람은 그런 기분이었고, 그래야할 기분이었다.

그 길고 짙던 밤에 천연우는 또 시덥잖은 소리를 하나 지껄이긴 했다.

"나 나중에 주현씨 같은 아빠가 돼보려고! 그리고 첫째는 딸이 좋겠어."

송주현은 오빠인 적은 있어도 아빠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밤의 분위기가 무르익었기에 그냥 웃으며 넘긴 신혜원이었다.

그럼에도 천연우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오누이 식당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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