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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56화 (56/200)

56화: 영보스의 오른팔은 6살입니다(1)

아직 저녁 장사 타임에 돌입하기도 전인데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급하게 들어온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

낯익은 얼굴.

권수영이다.

손엔 무언가 길고 굵은, 초록색 방망이가 들려있다.

가게 바닥에서 혼자 놀고 있던 윤슬이.

누군지 확인하더니 씨익- 웃는다.

"우다다다다다다다-"

브레이크 타임에 멋대로 돌입한 침입자에겐 가차 없다. 곧바로 대응 사격을 갈겨버린다.

총성을 귀엽게 입으로 재현한다.

손에는 목재 게틀링건이 있다.

거의 윤슬이만한 크기다.

몸이 반동으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가장한다.

작은 손가락으로 게틀링건의 손잡이를 꼬옥 쥐고 있다.

-  게, 게틀링건?

호흡을 고르는 수영이.

수영이는 윤슬이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적극적으로 맞는 척하는 연기에 돌입한다.

어깨, 허리, 골반, 무릎이 탈골이라도 한 듯 센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달달달달- 떨린다.

"브아아아, 아아아아악!!"

현실감을 몰고 오는 연기였다.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전장의 한 가운데를 방불케 하는 현장감이다.

다행히도 가게엔 우리 세 사람밖엔 없다.

빨간 모자를 자주 쓰고 다니는 누구처럼 수치심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어허, 윤슬아. 그거 언니한테 그렇게 가누면 돼요? 안 되는데 그렇게 하면은."

"잉... 그치만 멋대루 드러와써. 지금 드러오므는 안 대자나."

"그럼 침입자라서 쏜 거야?"

"움! 윤스리가 옵바랑 가게 다 지켜."

가슴팍을 팡팡 내리치며 듬직한 대사를 뱉는다.

지킨다고 해봤자 이 모형 목재 게틀링건은 발사가 되지 않는, 말 그대로 모형품에 불과하다.

권총 모양의 목재 고무줄 총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그런 컨셉의 놀이 중인 것이다.

-  크흠, 웬 장난감 총이에요? 심지어 퀄리티 엄청 높네? 게틀링건 모양 엄청 잘 재현됐다.

"이거 우리 가게 손님이 저번에 윤슬이 선물로 주고 가신 거야."

-  이런 걸 선물로 줬다구요? 팔면 꽤 값 나갈 것 같은데.

"발사가 안 되는 샘플이라서 어차피 가게에 둬봤자 자리만 차지한다고 갖다주더라."

-  아아...

수영이는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에 있던 일이다.

이 목재 게틀링건은 혜원씨가 가져다주신 장난감이다. 진심으로 고마운 게 있다며 이런 것을 케이스에 담아서 갖고 오셨다.

우리 식당 덕분에 부부 금슬이 더욱 좋아졌다던가. 그 얘기를 듣고 짐작되는 바가 있어, 살짝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기도 했다.

아마 덮밥 재료를 조금 나눠드린 게 연우씨에게 큰 도움이 된 모양이다. 별 문제 없이 화해한 것 같았다.

-  이거 어차피 작업장에 있어도 자리만 차지하거든요. 윤슬이 이런 거 좋아하는 것 같던데, 선물해줘도 괜찮죠?

'네... 주시면 저희야 고맙긴 한데. 그냥 주셔도 되는 거예요?'

너무 비싸보였다. 연우씨와 혜원씨는 이런 목재 공예품을 판매한다고 하셨으니, 틀림 없이 상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는 모형 게틀링건이었다.

-  이거 그냥 시험 삼아 샘플로 만들어본 거라서 어차피 못 팔아요. 여기서 보완할 점도 있고 해서. 그러니까 작업장에 놔둬봤자 공간만 차지하거든요.

'그런 거라면... 저희야 감사하긴 한데.'

그때 윤슬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의 표정을 닮았다 싶어 곰곰이 떠올려보니, [황야의 데스페라도]에서 나온 어느 악당 배우의 그것을 따라하는가 싶었다.

거기서 나온 악당이 게틀링건으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연상한 것 같았다.

그런 표정을 한 채로

'옵바, 저거 디게 머시따.'

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매우 갖고 싶다는 뜻이었다.

'혜원씨, 감사히 받을게요. 연우씨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위와 같은 느낌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근데 수영아 넌 게틀링건은 어떻게 알아?"

-  응? 영화에서 나오던데요.

이 녀석도 박스 오피스를 점령했던 영화, [황야의 데스페라도]를 관람한 듯하다.

게틀링건이 그렇게 유명한 총기는 아닐 텐데 말이다.

대중 매체의 힘은 대단하다.

한숨 돌린 수영이는 땀을 닦으며 자연스레 바 테이블 쪽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저녁 타임 오픈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간이지만 나름 단골이므로 나무라진 않기로 했다.

"이제 곧 여름이라 덥지?"

물을 한 잔 건네주자 고개를 슬쩍 숙이며 냉큼 받아먹는 권수영.

꿀꺽꿀꺽- 프하...

그 모습을 보고 윤슬이도 목이 마른지 내 바지춤을 쿡쿡 땡긴다.

자기도 한 컵 달라는 것이다.

윤슬이의 신장은 가게에 있는 정수기에 닿긴 닿으나, 애석하게도 살짝 발을 뻗어야 한다.

윤슬이에게도 한 잔 건네주자 수영이가 그제야 입을 연다.

-  덥긴 하죠. 옛날엔 6월이면 그렇게 덥진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끽 하면 여름날씨 같다니까요? 리얼 지구 온난화 때문.

"그러게 땀 흘릴 정도로 덥긴 한데, 넌 그런 날씨에 왜 그렇게 뛰어다니고 그래? 그렇게 배가 고팠어?"

-  아뇨, 그 밥 먹으러 뛰어온 게 아니라.

권수영이 무얼 하나 내 앞으로 들이민다.

아까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올 때 들고있었던 것 같다. 초록색 긴, 방망이.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철철 흐른다.

위험한 냄새가 난다.

저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에 쓰이는지는 알 것만 같다.

중학교에 다닐 때 종종 봤던 것이다.

"그건 설마."

"움? 맴매?"

윤슬이도 감각만으로 정체를 파악했는지.

맴매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다.

방망이의 표면이 초록색인 이유는 촘촘하게 청색 테이프가 감겨 있기 때문이다.

마찰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악독한 선생들이 주로 채용하는 방법이다.

-  맞아. 맴매! 이름하야, 그레이트 제노사이더!

양 팔을 넓게 벌리며 과장하는 권수영.

이름 한 번 웅장하다.

전에 수영이 친구, 지아에게서 그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담임 선생님이 체육 담당이신데, 저걸 주무기로 사용하신다던가, 했던 것 같은데.

"그레이트 제노사이더? 그건 알겠는데, 왜 네가 그걸 갖고 있니?"

-  아! 제가 훔쳤어요. 교무실에서, 슬쩍.

"아! 그렇구나. 훔쳤구나? 슬쩍."

난 더 말을 섞지 않고, 수영이를 가게 밖으로 내쫒으려 등을 떠밀었다.

극도로 귀찮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훔친 그레이트 제노사이더를 들고, 이 날씨에, 뛰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면.

곧 그 체육 선생님이 우리 가게에 와서 따져들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수영아, 우리 가게에 자주 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해. 하지만 선생님과의 관계는 너 스스로 잘 해결해보자. 우리 가게랑 그 절도 건은 전혀 상관 없잖아."

-  앗, 잠깐만. 주현 오빠. 얘기만. 얘기만 들어봐요. 아악- 밀지 말구!! 그리고 절도라뇨, 사제 간의 물품 공유라고 해주세요.

밑창이 고무창으로 된 신발을 바닥에 최대한 밀착시켜 어떻게든 저항하는 권수영.

본인이 훔쳤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도 웃기다.

그래도 이렇게 내쫓는 모습 보이는 건 윤슬이 정서 발달 상에 안 좋을 것 같으니.

"일단 왜 여기까지 왔는지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  아싸! 역시 주현 오빠~!

파란의 예감이 들었다.

체육 선생님이란 존재는 그다지 내 기억 속에서도 온건하진 못하다.

그 시절엔 학생들의 궁댕이와 허벅지에 폭발적인 역량을 행사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고, 우리 중학교의 선생님도 대략 그러신 분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땐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또 내 기억이 맞다면, 조금 변태적이지만 은근히 그 '엉덩이 팡팡'을 즐기는 학생들이 있긴 했다.

우리 둘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윤슬이는 입을 열더니.

"데노쓰... 제노싸... 제노싸.. 이드? 그레트?"

그레이트 제노사이더를 열심히 발음 중이다.

"그래서 이걸 왜 훔쳤는데?"

-  굳이 말하자면 잔 다르크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이상하게 말 돌리면 내쫓을 건데? 그 대답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지 재고할 기회를 줄게."

당황스런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을 두 번한다.

나와 수영이 둘이서 대화하는 게 질투 났는지 윤슬이는 도도도- 하고 달려오더니 내 무릎을 차지했다.

-  헤헤... 사실 반 애들끼리 작당? 작전? 비슷한 걸 세워서 선생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기로 했거든요.

"무슨 서프라이즈인데?"

-  애용하는 무기를 없애버리는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아니고, 그냥 절도인 거 아니냐고."

-  어허이, 학생들의 귀여운 장난을 범죄로 매도하지 마시죠!

"장난이라기엔 온 힘을 다해 도망치던 것 같긴 한데, 그건 넘어가줄게. 그래서 그런 장난을 하기로 했는데. 그 다음엔?"

-  제가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 뭡니까.

"그거 갖고 도망치는 거?"

수영이는 여전히 그레이트 제노사이더를 손에 들고 있다. 몸체 곳곳에 테이프를 다시 감은 듯한, 회색 찌꺼기가 남아있는 걸 보아, 여러 번 손상된 녀석인 듯하다.

-  넵!

"그밖에 다른 역할을 맡은 친구들은 누가 있는데?"

-  없어요. 제 단독 무대입니다.

"이런 말 꺼내기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혹시 왕따를 당하는 거라면... 번호가 뭐더라?"

"움? 117?"

-  윤슬아! 네가 그 번호를 어떻게 아는데?

"티비에서 바써."

"원래 애들이 어른들보다 광고 내용은 더 잘 알잖아."

-  그건 그렇죠.

그런데 아직 중요한 걸 듣지 못했다.

그 범행, 아니 장난을 실행한 건 알겠는데.

"암튼 거기까진 알겠는데 왜 우리 가게로 도망쳐온 거야? 너희 학교에서 여기까지면... 열심히 뛰더라도 5분은 걸릴 텐데."

뛰어서 5분이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평소에 체력을 열심히 키워두지 않았더라면 2-3분만 질주하더라도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  후후, 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전략?"

"전냑?"

-  응! 왜냐면 우리 담임 선생님은.

이라고 말한 순간.

텅, 텅-

누군가가 우리 가게의 투명 유리문을 두드린다.

빠르게 텅텅-

이 아니라

텅, 텅-

이었기에 누가 왔는지 돌아보기에도 긴장되었다.

노크의 템포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낯선 소리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문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권수영의 얼굴에 사색이 돌았다는 것이다.

"오셨니?"

난 문쪽을 보지 않고, 물었고.

수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럼 빨리 널 넘기고, 오늘도 저녁 장사를 시작해야겠다."

-  배신자!

뒤를 돌아 곧장 가게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어드렸다.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기에 들어오기 망설이시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왠지 어딘가 익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어?"

-  뭐야.

'어?'와 '뭐야'가 두 입에서 거의 동시에 발음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말이다.

후줄근한 회색 져지 상하의에 목에 걸 수 있는 싸구려 선글라스.

앞쪽부터 쓸어올려 뒤로 바싹 묶은 머리카락.

틀림 없다.

이런 인상을 한 체육 선생을 난 본 적이 있다.

우리 중학교에서.

"김미정 쌤?"

-  뭐야? 너... 설마 송주현이냐?

거의 10년만에 사제는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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