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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61화 (61/200)

61화: 최고의 보물(2)

검은색 유성 매직을 손에 든 장윤슬은 목표를 포착했다. 발사 위치는 '옵바'의 오른쪽 뺨 위.

진솔해지자면 글씨를 쓰는 것에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자기 이름 정도는 어떻게든 쓸 줄 알고.

방금 그림책을 읽으며 '보물'이라는 단어를 외웠으니까.

"우움... 간드앗!"

뽕-

유성 매직의 뚜껑을 딴다.

그리고 팔을 직각으로 내리꽂으며 돌진한다.

뾱-

목표한 위치에 꽂혔다.

송주현의 오른쪽 볼이 검게 물든다.

스삭-

스스삭-

스삭삭-

피부 위에 글씨를 쓰는 소리가 은근히 날카롭다.

"윤스... 리 보... 물... 댔다!"

명필이다!

라고 스스로 납득한 장윤슬.

허나 곳곳이 허물어지고 삐뚤빼뚤했다.

애초 글씨를 제대로 쓰기엔 이른 나이인데 심지어 쓰려고 한 곳이 볼따구의 위다.

울퉁불퉁한 면 위에 정갈한 글씨를 쓰기란 한석봉도 고전할 일이다.

"움?"

자신이 써내린 글씨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

만족스럽게 쓰긴 했는데.

'이거룰... 옵바가 알므는... 조아할까?'

뭔가 아닐 것 같았다.

갑자기 위기감이 엄습했다.

지워야 한다.

오빠가 일어나기 전에 이걸 지우지 않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런 육감이 장윤슬을 움직이게 시켰다.

"이거 어케 업쌔지?"

문제는 지우는 방법을 몰랐다.

심지어 유성 매직을 지우려면 고생 깨나 해야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욕망에 충실한, 이 유아는 고작 5세다.

첫 번째 시도.

"움!"

손바닥으로 문지르기!

쑥- 싹-

"엇...!"

완벽히 실패.

게다가 사태가 악화됐다.

장윤슬의 손바닥에 묻어있던 땀이 유성 매직의 잉크를 살짝 녹여 번지게 해버렸다.

글씨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옵바'의 오른쪽 뺨이 초코 아저씨의 수염처럼 검어졌다.

두 번재 시도.

"핥짝."

볼 핥기!

그 다음에 손바닥으로 문지르기!

미- 끌-

"움..."

또 실패.

"잉? 옵바눈 이러케 해서 지우든데."

언젠가 한 번 송주현이 무얼 지우려고 할 때 손가락에 침을 바르는 것을 목격했기에 시도해보았다.

이번엔 다행히 사태가 악화되진 않았지만.

좀 짜다. 근데 맛있게 짜다. 강아지들이 왜 이렇게 인간 볼을 핥는지 알 것도 같다.

한 번 더 핥아볼까 3초 정도 고민한다.

글씨는 번진 채로 바뀐 게 없다.

"어뜨케 하지."

이렇게 된 이상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시도.

"모르눈 척 해야게따."

방치!

**

"백수인씨, 뭐가 그렇게 재미 있습니까?"

-  아, 아뇨. 내가 언제 웃었다고... 크흡.

"지금 실시간으로 웃참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 눈이 이상한 건가요?"

-  네 그럴 걸요.

"그럼 그런 걸로 하죠."

드물게도 백수인씨(우리 가게에서 최대 12그릇까지 주문해서 싹싹 긁어먹은 인간.)가 식사 내내 웃음을 짓고 있다.

원래 밥 먹을 때는 윤슬이 상대하는 것 아니면 핸드폰을 보는 게 일반적인 손님인데 말이다.

계속 내 얼굴을 보며 웃는다.

그 옆에서 윤슬이는 백수인씨가 좋은지 자꾸

"언니야, 윤스리 쪽 바이지 대. 옵바 그만 바."

라며 주의를 돌리려 한다.

-  알았어 윤슬아.

윤슬이에게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다섯 그릇째 제육을 비우고 있는, 대식의 양을 빼곤 평소와 다르게 느껴져 수상한데.

신경 쓸 틈도 없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손님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신다.

분명 [요리사의 촉]을 사용했기에 오늘 주요 메뉴는 얼만큼 팔릴지 예상할 수 있었다.

평이한 수준이었고, 저녁에도 평소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매출을 예상했었는데.

변수는 오늘의 메뉴였다.

불티나게 팔리는 탓에 역대급으로 바쁘다.

-  저희 오늘의 메뉴, 우동 두 그릇 주세요!

"우동 두 개요!"

파닭우동.

라멘의 차슈처럼 정육된 닭다리를 썰어넣고, 구운 파와 함께 시원한 국물의 우동을 내면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메뉴인데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6월이라 저녁이 되어도 그다지 선선하지 않은데, 그 덕에 손님들은 파의 청량감을 원하게 된 것 같다.

요리주와 쯔유를 넣은 멸치 육수와 우동 면발의 조합도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 위에 볶은 파와 닭고기를 올리니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의 우동이 완성된 것이다.

심지어 이 우동 메뉴를 낸 덕에 윤슬이의 귀여운 모션도 볼 수 있었다.

"파닥 파닥~!"

이라며 조류의 날개처럼 팔을 벌려 가게를 활보하는 것이다. 메뉴의 이름인 파닭우동에서 착안한 듯하다.

이십대 정도 되는 사람이 저런 행동을 했더라면 누군가 아재 개그를 치지 말라며 제지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가게의 다섯 살 짜리 마스코트가 해준 덕에 가게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  윤슬이 오늘도 너무 귀엽네~.

-  눈을 밥에다 둬야될지 윤슬이에 둬야될지 모르겠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손님은 이내 내 쪽을 흘끗거리기도 한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있으니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의 수가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느낌이다.

또,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얼굴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빈 자리가 하나 날까 말까 할 정도로 손님들이 자주 드나드는 상황이다. 면요리인 우동이 많이 팔리는 덕에 회전율 또한 좋아졌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다.

요리도 해야 되고, 계산도 해드려야 되니.

"어쩔 수 없지."

그래봤자 파 쪼가리가 머리에 얹힌 정도 아닐까 싶다. 가게를 활보 중인 한 마리 파닭한테 물어봐야겠다.

"윤슬아."

"움?"

"혹시 오빠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러면 떼어주세요."

"움... 움..."

갑자기 눈을 돌린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뭐지?

"뭐 안 묻었어?"

"움... 안 무더써."

"그럼 뭐가 났어? 뾰루지 같은 거."

"움... 안 나써."

"그래?"

근데 왜 이렇게 망설일까.

별 일이다.

....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장장 4시간 동안.

나는 윤슬이의 보물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결국 오늘의 장사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세면대 위에 걸어둔 거울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굳이 필적 검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브레이크 타임까지 얼굴엔 아무 것도 써있지 않았으니 내가 잠들었을 때 5세 파닭씨가 이렇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윤슬씨?"

"윤스리임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윤스리는... 구냥..."

"네. 그냥?"

"표시할라구 해쓸 뿐임미다."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서로 비벼대며 입술을 비죽 내민다.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지도 못한 채 시선은 땅을 향한다.

그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지만 이런 장난을 자주 쳐도 곤란하므로 몇 마디 해주기로 했다.

"무슨 표시를 하려고 했는데."

"보물 표시임미다."

"오빠 얼굴에 보물 표시를 하려구 했어? 왜 그랬어요?"

"옵바가 윤스리 보물이라서 그래씀미다. 아무도 가져가므는 안 대서. 그래씀미다..."

"그랬습니다? 오빠를 누가 가져가?"

"움... 나뿐 산적."

"산적이 오빠를 가져갈까봐 그랬어? 아까 그림책처럼?"

"웅... 미아내여. 윤스리가 잘못 핸 거 가태. 그래두 옵바 얼굴에 그러므는 안 대는데."

큰 일 났다.

혼내려고 했는데.

너무 귀엽다.

입꼬리가 풀어진다.

최대한 정색하려고 했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크흠, 윤슬이가 무슨 잘못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알고 이써여."

"다시 그럴 거예요?"

"으응, 아니야."

내가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얘기한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윤슬이가 바짝 쫄아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마음이 점점 아파진다.

슬슬 용서해주려던 찰나에 윤슬이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내 코앞까지 다가온다.

그리고 머리를 내 가슴팍에 콩- 하고 부딪힌다.

쪼그려 앉아서 윤슬이와 눈 높이를 맞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콩- 콩-

콩- 콩...

"윤슬이 왜 오빠한테 머리를 콩콩- 하고 부딪히는 거야?"

"용서해주므는 조케써서."

"이렇게 하면 오빠가 용서를 해줘?"

"그러믄 조케따."

어떻게 알았지.

이미 마음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꼬옥.

안아줬다. 그대로.

너무 귀여워서 이젠 못 참는다.

"우부부."

내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있다가 그대로 내 품에 안겨버린 윤슬이. 겸연쩍은지 입만 우물거린다.

"오빠가 혼내서 윤슬이가 섭섭할 뻔했어?"

"섭섭해여."

"그럼 오빠도 잘못했네. 윤슬이 섭섭하게 했으니까? 그치?"

"움... 마자! 옵바두 나빠써!"

히힝-

하고 내 품에서 웃는 동생.

기분이 금방 풀렸다.

"그럼 오빠도 나쁘니까 윤슬이한테 장난 쳐야겠다."

"장난?"

"윤슬이 잠깐 눈 감고 있어봐."

"아라써."

윤슬이는 그대로 눈을 감는다.

눈 앞에 손을 두어번 흔들어 실눈을 떴는지 확인하고 계산대 쪽으로 향한다.

매직을 손에 넣었다.

"이제 대써?"

"아니, 잠깐만."

뽕-

매직 뚜껑을 따고.

쓱삭-

볼에 긋는다.

"읏, 차거."

슥사삭-

스삭

"이제 됐어."

"움! 옵바!"

"왜 그러세요?"

"옵바두 윤스리 볼에다가 글씨 써찌?"

"들켰네?"

"모라구 써써?"

"보여줄까?"

"보여조."

스마트폰을 꺼내어 셀카 모드로 전환한다.

그리고 윤슬이를 내 앞쪽에 세우고 같이 확인한다.

"엇!"

"읽어볼까?."

"주혀... 니 보물?"

"윤슬이도 오빠 보물이니까 똑같이 볼에다가 썼어."

"잉? 옵바도 윤스리랑 똑가치 해써."

"혹시 산적이 윤슬이 훔쳐갈 수도 있으니까 표시해둬야 되잖아."

"그럴 일은 업써여."

"왜?"

"왜냐믄 윤스리가 산적보다 더 쌔! 물리칠 쑤가 있짜나."

이런.

내가 영보스를 못 알아볼 뻔했다.

심지어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조직원까지 거느리고 계시니 말이다.

산적쯤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될 것이다.

찰칵-

찰칵-

셀카 모드로 우리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각자의 얼굴에 서로의 이름을 쓰곤 그 뒤에 보물이라고 덧붙였다.

주현이 보물.

윤슬이 보물.

삐뚤빼뚤하게 서로의 얼굴에 쓰인 글씨.

그게 사진으로 남자 굉장히 의미 있단 생각이 들었다.

"추억이 되겠구만."

"움? 대겠구만."

"오늘은 이대로 집 가자."

"잉, 그러믄 사람들이 다 쳐다바."

"감수하는 거지."

"아라써!"

실제로 귀가하는 길엔 사람들이 힐끗거리긴 했다.

아무리 밤이더라도 도시의 밤은 밝고, 얼굴에 글씨가 쓰였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래도 재미 있었다.

윤슬이는 본인만은 어떻게든 수치를 회피해보려고 내 등에 바짝 붙어있었다.

자전거로 귀가했던지라 대부분 앞자리에 있는 내 얼굴만을 쳐다봤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집에 귀가해서.

윤슬이랑 같이 씻는데.

"응?"

"움?"

"윤슬아."

"왜여?"

"설마 너 내 얼굴에 칠한 거 유성이니?"

"유성이 몬데?"

약간 번져있길래 당연히 수성인 줄 알았는데 유성으로 그었나보다.

이러면 오늘 저녁에 세수를 몇 번씩 반복해도 안 지워질 수도 있는데.

"흐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덧붙이자면 윤슬이 얼굴 위에 그은 건 수성이라 거품끼를 닦아내자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내 얼굴 위의 '윤슬이 보물'이란 글씨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깨끗하게 지우는데까지 깨나 고생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2번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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