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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65화 (65/200)

65화: 남자사람형제(4)

-  송주현! 너 정말 이러기야?

"다짜고짜 무슨 소리에요?"

-  아무리 선생님이랑 친하다고야 하지만. 가게로 밥 먹으러 오라고 그렇게 협박하듯이 부르면. 선생님이 꼬박꼬박 찾아올 것 같니?

"협박이 아니라 거래였잖아요. 제 옆에 있는 윤슬이부터 보고 말씀하시죠."

-  합격.

-  응, 최고.

선생님의 반응은 합격이고, 유민이의 반응은 최고였다. 윤슬이의 복장 때문이다.

"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윤슬이. 저번에 백화점에서 미정 쌤의 픽으로 고른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있다.

얇고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위에 달린 검은 프릴이 윤슬이의 귀여운 외모에 단정한 분위기를 섞는다.

과장 보태서 우주에서 제일 귀엽다.

소행성 B-612호에서 누군가가 망원경과 대포카메라로 덕질할 수준이다.

선생님을 가게까지 와달라고 하며 내건 조건이었다.

저번에 구입한 옷을 윤슬이에게 입혀두겠다는 것.

[나: 선생님, 내일 저희 가게에 저녁 들러 오세요.]

[김미정: 가끔 우리 유민이 집 밥도 멕여야지. 이러다 엄마 음식 솜씨 다 까먹겠다.]

[나: 저번에 유민이랑 얘기해보니까, 자기 엄마보다 제 요리가 더 맛있다고 그러던데. 저 보고 선생님한테 요리 가르쳐주면 안 되겠냐던데요? 유민이 입장도 들어보죠.]

[김미정: ?? 그랬다는 말이지? 우리 아들이랑 진솔한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네.]

의도치 않은 밀고를 해버렸다.

윤슬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지능적으로 안티를 해보려는 심산은 절대 아니었다.

[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한 번만요.]

[김미정: 안 돼. 나 아들이랑 진솔하게 대화할 시간이 필요해졌어.]

[나: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시구요. 대신 저번에 같이 사서 샀던 블라우스랑 스커트, 윤슬이한테 입혀둘게요. 그거 구경하러 오는 걸로?]

[김미정: 예전부터 넌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구나.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어떻게 안 가니?!]

이렇게 내게 설득당해 오게 된 것이다.

그랬던 터라 오늘은 윤슬이가 그런 복장을 입게 됐다. 아침에 입힐 때 약간 불평하기도 했다.

'잉, 이거눈 쪼꿈 불펴내... 옵바.'

'그래? 근데 그거 입을 때 윤슬이 완전 최종보스 같던데?'

'체종보쓰? 그게 몬데.'

'보스 중에 제일 쌔고 멋있는 거. 이 세상에서 제일 쎄고, 아무도 못 이겨.'

'제일... 쎄구 머시써??! 아무도 몬 이겨?! 그러믄 어쩔 쑤 업찌. 입어야지!'

호칭, '최종보스'의 효과는 굉장했다.

윤슬이는 평소보다 2배 빠르게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최종보스 옷을 입은 상태로 부하 1호를 만나자 자랑하려는 듯 뽈뽈뽈- 하고 달려간다.

그걸 본 유민이는 복잡한 심경인 것 같다.

왜냐면 윤슬이와 의도치 않게 커플로 맞춘 빨간색 티를 오늘 입고왔기 때문이다.

같은 티셔츠를 입는 것도 좋지만 윤슬이가 저렇게 이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너무 좋아!

라는 문장이 이마에 쓰인 듯한 표정이다.

"유미니, 이거 바바. 윤스리 체종보쓰가 대써."

-  최종보쓰?

"응, 젤루 쎄구, 젤루 머시써. 옵바가 그래써."

-  응. 최고로 머시써 지금.

"히힝- 그치?"

유민이는 띄워주려는지 마구 칭찬한다.

최종보스라기엔 다소 위압감이 떨어지는 복장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꿈보다 해몽이니까.

선생님은 지정석처럼 앉던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두 꼬마는 언제나 그렇듯 붕붕이 3호 앞에 모여 앉아 의미 모를, 열띤 토론을 진행 중이다.

-  그래서 물어보려고 한 게 뭔데?

"저번에 골목에서 수영이랑 같이 지나가던 사람 말인데요."

-  어허잇, 나를 뭘로 보고. 이 선생님은 제자 사생활을 제일로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참 된 스승인지 너도 알잖아? 옛날엔 나한테 몇 번 신세도 졌으면서.

"일단 얘기 좀 끝까지 들어보세요. 그분 며칠 전에 저희 가게에서 밥 먹고 가셨거든요."

-  진짜? 어쩌다가?

"우연히 가게 앞에서 만나게 돼서요."

굳이 그때 얘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이름이 권수안씨? 였던 것 같은데. 여러 얘기도 해봤는데. 되게 괜찮은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  흐응, 그래? 난 그 사람은 어떤지 잘 몰라.

"아무튼. 그렇게 식사하고 가시려던 와중에 수영이도 가게에 들어오게 돼서요."

-  그때 알았겠구나. 수영이 오빠라고.

"네, 근데 수영이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훨씬 침착하다고 해야 되나? 묘하게 기 죽은 것 같기도 하고."

-  으음...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언가를 알고 계신 것은 분명하다.

-  수영이가 별 말 안 하디?

"수안씨한테요? 아니, 뭐 그냥."

많이 핀잔을 주긴 했다.

"자기 오빠니까 걱정은 조금 하더라고요. 강아지 산책 데려갈 때는 자기도 같이 가는 게 좋겠다면서."

-  아니, 너한테 아무 말도 안 했냐고.

"저한테는 딱히."

무언가 고백할 만한 일이라도 있다는 말투다.

선생님은 물 한 잔을 홀짝 들이키더니 그 일에 대해 설명한다.

권수영의 학교 생활에 대해.

-  어차피 수영이 오빠가 앞을 못 본다는 것까지 알고 있으면 적당히 설명해줘도 될 것 같긴 하네. 내가 봤을 땐 수영이는 말로는 표현 안 해도 너희 남매한테 되게 애정 많이 쏟고 있거든.

"그런가요."

-  응 확실해. 왜냐면 수영이 반에서랑 여기에서랑 완전 이미지가 다르거든. 반에서는 거의 지아랑밖에 안 다녀. 나머지 애들이랑 사이가 소원한 건 아닌데. 벽을 친다고 해야 되나, 거리를 둔다고 해야 되나. 말은 섞는데, 친해지려고 하진 않는 느낌?

"수영이가 그렇다는 건 의외긴 하네요."

우리 가게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이었다.

장난끼도 많고, 붙임성도 좋고.

우리 가게가 조금 더 커지면 수영이 같은 알바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  그치? 근데 그게 이유가 좀 있어. 학기 초에 수영이가 같이 오빠랑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반 애들이랑 그때 마주쳤나봐. 그때 반응이 영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

"그랬구나."

-  응, 그래서 그때 애들한테 실망을 좀 했나봐. 수영이는 자기 오빠를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다른 애들은 그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죠. 제가 수영이라도 기분 나쁠 것 같은데."

내 말씀을 듣더니 선생님은 코웃음 친다.

-  흐흥, 지금 그 말 들으면 수영이가 되게 좋아하겠다. 지아랑 수영이가 친한 것도 그런 이유야. 지아는 수영이 오빠랑도 얼굴 트고, 친하게 지내거든.

역시 수영이도, 지아도 너무 좋은 애들이다.

학교를 자주 빼먹는 것이랑은 별개로.

어쩌면 수영이가 그렇게 학교를 자주 도망쳐나오는 것도 그런 분위기에 속해있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든다.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그럼 수영이도 그런 걸 걱정한 거겠네요. 저도 반 애들처럼 자기 오빠한테 편견 갖고 이상하게 쳐다볼까봐."

-  그럴 가능성이 높지. 워낙 이 식당에 정도 든 것 같던데. 너가 안 그러길 속으로 바라고 있을 거야. 또 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

그럼에도 생각과 마음은 이따금씩 따로 놀기 마련이다. 특히 트라우마가 조금이라도 관련돼있다면 감정은 논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경험은 이성을 압도하니까.

"다시 식당에 들리기만 하면 그런 오해도 풀 수 있을 텐데. 되게 안타깝네요."

-  응? 요즘 안 오고 있니?

"네, 지아랑 수영이 둘 다요."

-  아, 그럴 만도 하네.

"왜죠?"

-  내가 걔들 둘 남겨서 시험 공부 시키고 있거든. 야간자율학습.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이야.

학창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맘 때가 딱 시험 기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  걔들이 성격은 참 좋고, 사람은 됐는데. 성적이 한~참 안 됐어! 암튼 걔네들 성적으로 내 실적도 들어가는 거니까 나도 절박하다고.

내 기억이 맞다면 미정 쌤은 성적에 관해서는 관대했던 것 같은데. 오죽하면 이 사람이 이럴까.

-  오늘은 특별히 네 얼굴 봐서 이 식당에서 저녁 먹으라고 해둘게. 수영이한테. 이제 내 밥 차려줘. 아들 거랑 같이.

"특별히 곱빼기로 드릴게요. 고기 잔뜩 얹어서."

-  그럼! 김미정은 고기심으로 살거든. 차유민도.

-  응?

유민이는 자기 이름이 들렸는지 이쪽을 훽하고 돌아본다.

"유미니 고기 조아해?"

-  응. 고기가 조아.

"우리 옵바가 해주는 고기가 제일 마시써. 너두 알지?"

-  응, 마시써. 아... 맞따!

유민이는 차분한 걸음으로 제 엄마 앞에 다가선다.

-  엄마.

-  왜 그래 아들?

-  저기 윤슬이 옵바한테 가서 요리 배우자. 음식 엄청 맛있떠라.

-  아들...

김미정 선생님의 동공이 흔들린다.

-  엄마 음식은 별로 맛이 없다는 거니?

-  으응... 아니! 엄마 꺼도 맛있는데, 이 가게 음식이 더 맛있어. 윤슬이 옵바가 요리를 엄청 잘하는 거 같애.

-  흐응, 그래.

나이에 맞지 않게 볼을 부풀리는 30대 체육교사였다.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  주현아, 선생님한테 요리를 가르쳐줄 수 있겠니?

"레시피 정도라면 알려드릴게요."

결국 선생님한테 제육 볶음의 간단 레시피를 문자로 보내드렸다. 보내드려봤자 어차피 내 맛은 흉내 못할 것 같아서 별로 이것 때문에 우리 가게에 안 들릴 것 같진 않았다.

**

저녁 시간이 되자 수영이가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손님은 드문드문 찾아주시는 정도였다.

저녁에 오실 손님들이 점심에 몰아서오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 오랜마니다! 수영이 언니."

-  응! 윤슬이 안녕. 언니 왔어.

웬일로 착실하게 교복을 입고 있는 데다가 뚱뚱한 가방도 어깨에 메고 있어 학생처럼 보인다.

"뭐야, 권수영. 너 오랫동안 안 오길래 우리 가게에 발 끊은 줄 알았다."

-  제가 어떻게 그래요! 이미 전 주현 오빠 손맛에 길들여져버렸다고요. 시험기간이라서 선생님 눈치 보여서 공부하느라 못 온 거거든요?

"그럼 지아도?"

-  그렇죠. 지아는 저랑 달리 꿈도 있는 몸이라 열심히 해야 돼요.

"그렇구만. 암튼 다시 와줘서 고맙다. 금방 밥 차려줄게."

-  아싸! 오랜만에 주현 오빠 밥 먹는다.

저번에 권수안씨 앞에서와는 또 달라졌다.

잘 알고 있던 권수영의 모습이다.

밝고 명랑하다.

오늘은 늘 먹던 맛을 차려주기 위해 가지튀김과 함께 밥을 내어준다. 수영이가 지금껏 가장 많이 주문한 음식이다.

-  오우, 가지튀김! 이거지... 이걸 못 끊어서 이 가게 맨날 온다니까.

"무슨 40대 아저씨가 포장마차에서 뱉는 대사 같다. 그리고 이거 미정 쌤이 결제하고 가신 거니까 맘 놓고 먹어도 돼."

-  엥? 쌤이 돈 내고 갔다고요?

"응, 아까 우리 식당 들르셨거든."

-  아아! 왠지 우리 냅두고 먼저 퇴근하더라니. 주현 오빠 밥 먹으려고 그랬구나. 그건 인정이긴 하지.

내가 불렀다는 건 비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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