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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66화 (66/200)

66화: 남자사람형제(5)

식사를 마친 수영이.

치마의 버클을 슬쩍 풀고는 배를 두드린다.

-  으어... 배부르다. 오늘 평소보다 양이 좀 많던데요?

"내가 좀 많이 담았다. 너 시험기간이라길래."

-  뭐야, 감동쓰!

"이고 옛날에 윤스리가 마싯다구 알려준 거 기억하지?"

-  그럼 기억하지. 윤슬이 덕분에 언니가 이 가게 단골됐잖아.

"히히히..."

손님이 얼마 없자 수영이 옆에 앉아서 말을 거는 윤슬이. 이전에 첫 개업하던 날 윤슬이가 가지 튀김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게 떠오른다.

수영이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자주 와주고 있으니 우리 가게 입장에선 참 고마운 손님이다.

-  아우, 배불러서 못 움직이겠다. 좀 앉아있다 가도 괜찮죠?

"언제는 물어보고 앉아있었냐? 좀 놀다가 들어가. 겸사겸사 지금 떡볶이도 끓이고 있는데. 몇 입 같이 먹던지."

-  떡볶이? 환장하겠네. 시험 기간에 떡볶이는 못 참는데.

"잉? 수영이 언니 배부르다메."

윤슬이가 딴지를 건다.

치마 버클까지 풀고 있는 주제에 떡볶이란 말에 눈을 빛내니 한 마디 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  윤슬아. 네가 고등학생만 돼봐도 아는데. 간식 배랑 밥 배는 따로야.

"움?"

윤슬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다가 손가락으로 수영이 배를 뽁- 뽁- 하고 눌러본다.

"이고는 밥 배?"

-  응... 맞아.

"그러믄 여기서 떡보끼까지 머그므는...! 빵- 터져버려?"

-  언니는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아. 멀쩡하단다.

의외로 먹부심이 있다.

버클이 풀린 배 위를 손으로 텅텅 두들긴다.

그 소리를 듣고 뒤쪽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두 명의 손님이 흘깃 쳐다보기도 한다.

딱히 개의치 않는 권수영이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수영이 기분이 좋아보였다.

"다음에 너희 오빠, 수안씨랑 같이 와."

-  아... 오빠랑은, 됐어요. 개도 있는데 괜히 식당 들어왔다가 다른 손님들 방해될 수도 있고.

"우리 가게는 안내견 출입 가능 가게야. 그리고 루이는 그냥 강아지 아니고, 윤슬이 친구라서 괜찮아."

"움! 마자, 윤스리랑 루이랑 친해지기루 했거둔. 그래서 루이가 또 오므는 조켔따."

윤슬이가 옆에서 거든다.

-  그래도 쫌 그런데.

"수영아."

망설이는 수영이에게 꼭 필요한 말.

그게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김미정 선생님한테 사정을 전부 들었으니까.

-  응? 왜 그래 갑자기.

"나랑 윤슬이는 누가 어떤 단점이 있건 나쁘게 생각 안 해. 누구든 단점은 있는 거니까. 예를 들어 나는 가끔 감상적이라서 별 거 아닌 거에도 센치해지거나 복잡해지는 게 단점이거든."

"움... 윤스리는 너무 매운 거는 못 머거. 그거가 윤스리 단쩜이거둔."

"너한테 어떤 단점이 있고, 수안씨한테 어떤 단점이 있어도 우리 가게 소중한 손님이고. 또 너는 내 친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런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 언제든 우리 가게 와. 그리고 맛있는 밥 먹고. 좋은 기억만 쌓아가줘."

-  치이.

수영이는 작게 혀를 차더니 눈시울을 붉히다가 눈가를 마구 비빈다.

-  주현 오빠가 낯간지러운 소리 하니까, 눈까지 가려워지잖아요!

"그래? 떡볶이 줄 테니까 기분 풀어."

"옵바가 마싯는 떡보끼 준대. 수영 언니 기분 푸러. 울 옵바 요리가 젤 마싯는 거 알지?"

-  알지. 그래, 그럼 기분 풀게. 대신 많이 많이 줘야돼요.

"치마 버클이나 채우고 얘기해."

수영이는 떡볶이 먹기 전에 손 한 번 씻겠다며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간다.

왜 황급히 손을 씻겠다는지는 뻔히 알 것 같다.

화구 쪽으로 돌아 조리되고 있는 떡볶이를 쳐다본다.

진홍색으로 끓어오르는 국물.

양념에 떡이 자작하게 잠겨있다.

그 옆엔 또 다른 떡볶이가 하나 더 끓고 있는데 이쪽은 주홍색이며, 곳곳이 희게 떠오른다.

크림을 넣어 로제 떡볶이로 만들어봤다.

"한쪽은 수영이 꺼, 한쪽은 윤슬이 꺼."

크림을 넣어 맵기를 중화시킨 쪽이 5세의 혓바닥에는 더 자상할 것이다.

"아가씨, 이쪽으로 잠시만 와보실까요?"

"움? 보쓰가 감미다."

내 부름을 듣고 5세 보스가 쫄래쫄래 주방으로 달려온다. 허리맡에서 눈을 감고 입을 아- 하고 벌리고 있다. 아직 먹어보라고도 안 했는데 성급한 아가씨다.

후-

후-

방금까지 끓던 거라 불어준다.

그리고 입에 쏘옥.

"움... 우물우물."

"어때요? 매워?"

절레절레.

"웁..."

윤슬이는 두 손으로 입을 꽉 막아버린다.

그 다음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슨 반응이야 그건?"

절레절레.

절레절레.

한사코 말을 안 하겠단 뜻이다.

맵거나 맛없었다기엔 윤슬이의 눈매가 옆으로 쳐져 웃는 듯 보였다.

맛있었던 것 같긴 하다.

"오빠가 너무 궁금해서 지금 죽으려고 그러는데? 알려주실까요?"

"앗, 옵바가 주그므는 안 대는데. 알려주께. 근데 윤스리가 입을 마근 이유가 이써."

"뭔데?"

"말두 안 나오게 마시써!!"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너무 귀여운 이유라서 몇 개를 연달아 윤슬이 입에 넣어주고 말았다.

옴뇸뇸.

잘도 받아먹는다.

어느새 윤슬이 뒤편엔 수영이가 입을 벌리고 서있다.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킨다.

-  여기도 너어조.

윤슬이를 따라하는 것 같다.

"손님, 주방에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곤난함미다."

-  칫.

포기하고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수영이에게 내줄 만큼의 떡볶이를 그릇에 퍼담는다.

이걸 수영이가 먹으면 어떤 기억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기억만큼은 아니겠지.

떡볶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음식이니까.

수영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있을 때 남아계시던 손님들이 모두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떠나셨는데 그분들께도 종이컵에 담아나눠드렸다.

모두 거절하지 않았다. 그만큼 떡볶이는 대중적으로 호감인 간식이다.

[오누이 타이쿤!]

[J 고등학교 2학년생 권수영]

[매개 음식: 떡볶이]

[종합 만족도: 82%]

수영이 앞에 떡볶이 그릇을 두었다.

일반 떡볶이와 로제 떡볶이.

반반씩.

입이 떡 벌어진다.

듬성이 박힌 쪽파와 큼직한 어묵, 고춧가루가 틈틈이 붙은 떡볶이의 조화는 비주얼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  우와... 주현 오빠는 대체 할 수 있는 요리가 몇 개에요?

"세상에 레시피가 존재하는 음식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요리할 수 있어. 아직 파인 다이닝처럼은 못할  수도 있지만."

-  동네 음식점에 요리계 최종보스가 사는 격이네.

"움? 윤스리 말하는 건가?"

최종보스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윤슬이였다.

입고 있던 옷을 보며 한 바퀴 뱅글- 돈다.

내가 구슬리려고 입에 담았던 '최종보스'라는 단어가 윤슬이 마음에 쏙 든 것 같다.

이윽고 수영이 손엔 젓가락이 들린다.

먼저 손이 가는 쪽은 역시나 오리지널.

아마 저것을 먹으면 떡볶이와 관련된 기억이 재생될 것이다.

아주 생생하게.

현실처럼.

-  옛날에... 오빠랑 떡볶이 자주 먹었는데. 되게 자주.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 말이 귀에 들린 나는 한 가지 추론이 가능했다.

그 기억에 나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이겠구나.

단 지금까지와 달라지는 것은 윤슬이만이 저 기억에 접하는 게 아니라, 나까지도 그 풍경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공감각: 대면한 고객이 무얼 먹고 싶은지 곧바로 이해합니다!]

[유용하게 써주세용! Represented by 오누이]

이전에 요리 레벨이 오르면서 얻게 된 능력은 [요리사의 촉]만이 아니다. [공감각]이란 것도 얻게 되었는데 문제는 [요리사의 촉] 능력의 완전한 하위호환이다.

그날 하루의 수요를 미리 알고 있다면 굳이 손님 개개인의 수요에 귀기울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의 또 다른 활용 방안을 오누이가 제시했다. 윤슬이와 함께 매개음식이 불러낸 기억에 접촉하는 방향으로.

[달님: 저희가 공감각 능력을 잘 개조하면 윤슬이와 주현이 형이 시야를 공유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그럼 윤슬이가 보는 풍경을 나도 그대로 보게 되는 거란 말이지?]

[햇님: 네 맞아요. 그거랑 더해서 기억 자체엔 주현 오라버니가 접촉할 수 없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윤슬이를 거쳐서 풍경을 보게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 위험에 처하거나 했을 땐 오직 윤슬이한테만 개입할 수 있어요.]

제약은 다소 있었다.

그럼에도 당초 원하던 목적은 완벽하게 이뤄낸 것이다. 결국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윤슬이의 안전이니까.

물론 음식과 관련된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위험할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말이다.

햇님이의 말처럼 '만에 하나'를 대비한 일이다.

수영이가 젓가락으로 푹 찍어 떡볶이를 입에 넣는다.

뜨거울까봐 반 베어문다.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는다.

"시작됐다."

우리 식당에 다시 한 번 기억의 바다가 범람한다.

**

"아...?"

지금이 언제쯤일까.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포장마차라는 것은 확실했는데, 시선이 훨씬 키 작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오뎅에 바를 간장 붓은 먼발치에 있는 듯 느껴진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주머니는 묵묵히 떡볶이를 젓는다.

그 풍경을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건 권수영.

"8살?"

그 정도였다.

"으휴, 수영아. 너 또 흘렸어. 엄마한테 혼나겠다."

"응? 흘렸어?"

오빠의 말에 따라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목 시보리 근처에 빨갛게 국물이 튀었다.

떡볶이 국물이다.

그런데.

오빠.

오빠?

권수영만 낮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권수안도 한참 낮아졌다.

그야 7살 터울이니 어느 정도 키 차이는 나지만 원래 오빠가 이 정도 키가 아니란 것을 권수영은 알고 있다.

'원래 이 정도 키가 아니란 것은 무슨 소리지? 우리 오빠 15살 맞는데.'

기억이 혼재되었다.

아무튼 확실한 건 지금 오빠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나왔다는 것이다.

"이거 다 먹구 집에 가자. 오빠가 빨아서 몰래 널어둘게. 그럼 안 들키겠지?"

"우아... 오빠 고마워."

"괜찮아. 대신 너도 오빠가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을 때 꼭 도와줘야 돼. 알았지?"

"응! 나도 오빠 도와줄게."

15살 권수안과 8살 권수영은 새끼 손가락을 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두 남매 사이의 작은 규칙 같은 것이다.

이렇게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기지 않는다. 서로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한다. 오빠는 동생을 돌봐야했으며, 동생은 그런 오빠를 한 발 더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권씨 남매는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다.

7살 터울인 만큼 다툴 일도 적다.

무언가 하나뿐인 물건을 남매끼리 나누어야 할 땐 권수안이 양보했으며, 그런 오빠를 권수영은 좋아했다. 믿고 따랐다.

이때까지만해도 권수안의 양안은 멀쩡했다.

선글라스는 고사하고 안경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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