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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67화 (67/200)

67화: 남자사람형제(6)

이날도 떡볶이가 남아버렸다.

일부러 넉넉하게 주문하는 편이다.

조금 남겨서 집에 돌아가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을 수도 있고, 부모님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두 사람이 퇴근하여 귀가할 때쯤엔 식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그래서 남매 간에 모두 처리하지 못할 만큼 넉넉히 주문한다.

"아주머니 이거 싸주세요."

"그려."

기다렸다는 듯이 포장마차의 아주머니는 떡볶이를 투명 비닐에 담고, 흰색 플라스틱 용기에 넣는다. 그리곤 검은 봉투에 싸매어 권수안에게 건네준다.

"고맙습니다, 또 올게요!"

"또 올께요!"

"추우니까 조심히 가."

따듯한 인사를 나누고 포장마차에서 나오자 주인장 아주머니의 말씀대로다.

공기가 차다. 볼이 아리다.

권수안은 동생의 꼬마 패딩 지퍼를 끝까지 채워올린다. 그러자 볼이 덜 아렸다. 텁텁한 훈기가 얼굴을 감싼다.

그대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야! 수안!"

집으로 향하는 골목어귀.

뒤에서 누군가가 권수안을 부른다.

아직 떡볶이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 권수안의 얼굴은 밝게 핀다.

친구였다.

같은 학교, 같은 반.

지금에 와서야 서로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저번에 너가 빌려줬던 게임팩 다시 들고 가."

"응? 나 지금 동생이랑 같이 있는데, 학교에서 주면 안 되나?"

"학교에서 또 담임한테 들키고 싶음?"

"맞네, 잠깐만."

친구의 제안을 15세 권수안은 가볍게 승낙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친구의 집은 현재 위치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위치였으니.

"수영아, 오빠랑 같이 저 친구 집 잠깐만 들리면 안돼?"

"음... 알겠어."

알겠어.

라고 답했지만 권수영의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치 이 뒤의 일을 어렴풋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허나 낯선 사람의 집에 가게 되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있을 수야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권수안의 친구 집 앞에 도착하자 가슴이 몽글몽글하게 답답했다.

명치 언저리에 거품이 잔뜩 낀 듯했다. 모르는 사람 집에 함부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특히 그 친구의 얼굴엔 청소년기 특유 호르몬에 의한 여드름이 가득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어린 권수영의 시선엔 그게 퍽 무서워보였다.

"오빠 가서 게임팩 받아와. 나 여기서 기다릴게."

"그래? 밖에 춥잖아?"

"아냐, 나 괜찮으니까. 빨리 갔다와. 이거 떡볶이 내가 들고 있을께."

"그럼 오빠 금방 다녀올게! 쫌만 기다려줘."

그렇게.

괜찮으니까 빨리 다녀오라고.

답해버렸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는데 그래버렸다.

예정된 미래다.

누구에게도 바꿀 수 없다.

권수안이 친구 집에 들어가자.

어느 남자가 다가온다.

부모님 뻘의 사내.

검은 모자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

겨울인 까닭일까. 수상할 정도로 얼굴을 꽁꽁 싸매었다.

권수영은 그 남자의 시선을 회피한다.

심장이 뛴다.

떡볶이의 온기는 식지 않았다.

"너... 수영이지?"

"네?"

"맞잖아? 권수영."

"아... 응? 맞아요."

"어휴, 날씨 추운데 아저씨가 너 엄청 찾았어."

"나를? 요?"

"그래. 너희 아버지가 지금 이 근처에 있거든. 저기 뒤에 차에 계신데, 지금 빨리 수영이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라."

"거짓말."

그 정도론 속지 않았다.

뻔하디 뻔한 수법.

부모를 들먹이며 아이를 꿰어내는 나쁜 어른들이 몇몇 있더라고.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교육하는 법이다.

여기까진 속지 않았다.

"거짓말 아닌데? 권. 지. 인. 너희 아빠 성함 맞지?"

"어?!"

허나 아빠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뒤로는 권수영을 필사적으로 설득하려는 듯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장된 핸드폰 번호나 명함 같은 것을 늘어놓는다.

번호와 명함, 모두 진짜다.

본인을 회사의 부하 직원이라고 소개한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멋대로 따라가는 것만큼, 함부로 의심하는 것도 나쁜 행동이며.

권수영은 이때 8살이었다.

그리하여 비극은 불현듯 그리고 철저하게 남매의 목을 조여온다.

떡볶이가 슬슬 미지근해진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한편에 시동이 걸린 채 세워진 회색 승합차.

그곳까지 권수영은 인도되었다.

"저기에 아빠 있어요?"

"응, 너희 아빠 저기 계셔. 잠깐 타서 그거 떡볶이도 가져다드려. 부모님이랑 같이 먹으려고 포장했다며?"

"응! 맞아요. 엄마는 쫌 아쉽겠지만 아빠 먼저 주지 뭐."

기쁜 듯이 부모님에게 떡볶이를 드릴 것이라 말하는 권수영의 입가에 들이닥치는 큰 손.

얼굴을 뒤덮고, 그 위엔 흰색 천.

졸음을 유발하는 약품에 적셔진 것.

이때부턴 경황도

저항할 힘도

이성도

사라진다.

심이 모두 타버린 촛불처럼 전소되었다.

기절한 권수영.

승합차 뒷칸에 짐짝처럼 실리려는 때.

"당신 뭐예요?"

떨리는 목소리.

겁에 질린 두 눈.

절름거리는, 멀쩡하고 얇은 두 다리.

15살짜리 소년이 후드를 뒤집어쓴 중년 사내의 팔뚝을 부여잡는다.

명백히 당황한 듯 커지는 눈동자.

사내는 이를 악문다.

그리고 그때부턴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누구시냐니까요?

신고할 거예요.

제 동생한테 그러지 마세요.

내려놓으시라구요.

....

퍽. 퍽. 퍽. 쿵.

데려가지 말라고.

내 동생.

퍽.

쿠궁.

그만.

제발.

제발 부탁이야.

수영이 내버려둬.

....

어느새 떡볶이는 차게 식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쯤 상황은 적어도 최악은 아니었다.

15세 오빠는 동생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새끼 손가락을 걸었던, 그 약속은 어찌 됐건 지킨 셈이다. 공포의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제3자였으나.

잃은 것도 있다.

15세 소년은 소중한 동생을 지키고 빛을 잃었다.

**

어느새 배경은 병원으로 변해있다.

결국 그날 권수영이 옷에 빨간 물을 들였다며 혼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옷에 물든, 빨간 것은 오직 떡볶이 국물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권수영의 부모님은 시보리에 묻은 그 빨간 것이 원래는 맛있는 양념이란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무서운 일을 경험했을 딸을 꼬옥 안아주며 펑펑 울었다.

펑펑-

애처럼.

어린 아들과 딸을 방치한 자신들을 탓한다.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권수영은 머리가 어지러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다친 데 하나 없이 말짱했다.

하지만 기절했다가 일어났기에 정신을 차려야했고,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 속에선 기절했을지라도 그 사건의 전말은 의식 속에서 재생되었다.

다만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수술을 마친 아들.

그 경과를 들으려 부모가 자리를 떠났을 때.

권수영의 눈에 따듯한 것이 차오른다.

포장마차에서 펄펄 끓고 있는 오뎅 국물보다

훨씬- 훨씬-

뜨겁게 느껴진다.

"오빠."

미안.

미안해.

내가 미안해.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오빠가 왜 시력을 잃었는지 여지껏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 당시엔 옆에 있었으면서도 기절해 있었으니까.

알 턱이 없었다.

허나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빠가, 나 때문에!!"

병원에 울음소리가 울린다.

비명에 가깝게.

이제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 기억 속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비극의 종막이다.

언젠가 마주했어야 할.

그리고 어차피 이미 확정된 과거.

그것을 뒤늦게 알고서야 오열한다.

너무도 작은 몸으로.

손등과 허벅지가 젖을 때까지.

어느새 그 옆엔 8살 권수영보다 더 어린, 또 한 명의 여자아이가 앉아있다.

머리를 뒤로 길게 묶은, 이름이 예쁜 아이가.

"수영이 언니 잘못 아니야."

라며 품에 안는다.

그 작은 품에 권수영의 머리가 안긴다.

이 여자아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독할 만큼 따뜻하게 느껴진다.

자신은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었다.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이런 품에 안겨서 울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우리 오빠 인생 망쳤단 말야! 근데도... 근데도! 오빠가 왜 그랬는지도 여태껏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오빠가 사람들한테 이상한 시선 받는다고, 예민하게 행동하고!! 정말. 난... 진짜... 쓰레기야. 그러면서 난, 내가 오빠를 지키는 줄 알았어. 근데 그딴 게 아니잖아. 오히려."

오빠가, 권수안이 권수영을 지킨 것이었다.

고개를 마구 휘젓는 권수영.

몸을 떤다. 춥지 않은데도, 그날 겨울만큼 추운 것처럼.

그러나 머리를 뒤로 묶은 아이는 권수영을 놓치지 않으려 꼭 껴안는다.

마치 옵바가 안아줄 때 느낀 온기를 전해주려는 듯.

"수영이 언니."

"...."

"언니는 아무런 잘못두 업따."

"아냐."

"옵바가 그래써. 언니는 아무런 잘못두 업따."

"아니라고. 나 때문에."

"으응, 언니 때문 아니라구 그래써. 우리 옵바가. 그리구 윤스리두 언니 잘못 업따구 생가캐."

"...."

"언니가 그러케 한 거 아니자나."

"뭐?"

"나쁜 거눈 언니 옵바를 그러케 만든 사라미 나쁜 거라구 우리 옵바가 그래써. 그러니까 울지 마러."

필사적으로.

불안정한 발음으로.

한참 모자란 어휘로.

위로해주려는 것 같은데.

왜 그게 더 마음에 와닿는지.

권수영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납득하게 될 것만 같다.

"수영이 언니가 울므는 윤스리두 슬퍼여."

"그래도 내 책임이 있는 거 같아."

"우움, 대신 언니는 언니 옵바를 지켜주자나?"

"응?"

"수영이 언니눈 그래두 언니 옵바를 께속 챙겨주고 여페 이써주자나. 그거가 대단한 거라구 우리 옵바가 그래써. 그리구 이짜나."

아이는 권수영의 얼굴을 가슴에서 떼어 눈을 마주친다. 언젠가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이 '윤슬'이란 단어의 의미를 수업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 같다.

햇빛이나 달빛이 물가에 비쳐 이는 잔물결.

그런, 윤슬 같은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 자그마한 아이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그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윤스리두 우리 옵바를 지켜주거둔!! 그니까 윤스리랑 수영이 언니랑은 똑가태. 똑가치 대다내. 우리 옵바가 대단한 거라구 그래써. 그니까."

울지마.

네 잘못 아니니까.

과거를 마주하느라 너무너무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자.

돌아가서 수안씨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여러 번, 질리도록 말해줘.

그거면 충분해.

또 다시.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겹쳐들리는 것만 같았다.

포근한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의 주인이라면 분명 요리도 잘하고, 밥도 잘 챙겨주고, 시덥잖은 장난도 잘 받아주는 사람일 거라고.

권수영은 생각한다.

"진짜...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이 식당에 오는 걸 못 끊잖아요."

그럼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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