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70화 (70/200)

70화: 마법

"그런 거 아닌데. 전 굳이 따지자면 연상 취향이거든요."

-  그렇군요. 그럼 다행이구요. 수영이가 주현씨를 과하게 따르는 느낌이 있어서 걱정됐는데. 연상 취향이라서 진심 다행이에요.

"그 마음, 이해 못 할 것도 없죠."

수안씨와 거칠게 악수한다.

입가엔 눈부신 미소!

'오빠 연대'가 결성되었다.

마침 서로 나이대도 비슷하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암튼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요. 수안씨랑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거 여쭤보기 찜찜하긴 한데요."

-  뭔데 그래요? 괜찮으니까 물어보세요.

마른 침을 삼키고 담담히 묻는다.

장난스럽게 들리진 않도록.

"마법을 믿으세요?"

-  신흥 종교 권유군요. 죄송하지만 저는 무신론자라서 종교 안 믿거든요. 그런 거라면 다른 손님 알아보시는 게.

"아뇨, 그런 거 아니고요."

오늘따라 계속 변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식으로라도 빌드업을 쌓아두지 않으면, 곧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오히려 수안씨가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냥 여쭤보는 거예요. 근데 무신론자라 하시면 신도 안 믿으시는 거니까. 마법도 안 믿으시겠네요?"

-  믿진 않죠. 오히려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마법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그럴 듯하네요."

-  그런 점에서 마법이든 신이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많아요. 상상력도 자극하고, 재미는 있잖아요.

"재미라. 그렇죠. 재미있죠."

철학적인 얘기였다.

마법이나 신 같은 환상적인 주제에 흥미는 있는 편인 것 같다. 운이 좋다.

"그럼 만약에 실제로 수안씨한테 마법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실래요?"

-  마법이 일어난다? 아... 뭐 그런 건가요? 여러 가지 상상해보면서 꿈을 키우는 놀이 같은 거.

"대충 그렇죠."

-  어떤 마법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건 수안씨가 정해요."

-  몇 개까지 가능한데요?

"딱 하나만."

-  딱 하나.

수안씨는 턱을 괴곤 생각에 잠긴다.

물컵을 들어 한두 모금 연달아 삼키거나 선글라스의 콧받침 부분을 치켜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조용히 웃는다.

-  정했어요.

"어떤 마법인데요?"

-  그건 비밀.

그걸 말해주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지만.

적어도 수안씨에 한해서 어떤 마법인지 알 것만 같다. 수안씨는 마법에 대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규정했으니.

"좋아요. 그럼 마법이 일어나게 되면 수안씨는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할래요?"

-  으아, 그건 좀 어렵긴 한데. 잠깐만요 조금 현실적으로 생각해볼게요. .... 아!

꽤 빠르게 떠올렸다.

-  그림.

"그림이요?"

-  네, 저는 그림 그릴게요.

"좋네요. 적당히 현실적이고. 너무 튀지도 않고. 그럼 그 그림에 윤슬이도 넣어주세요."

-  좋아요. 수영이가 그러던데, 윤슬이가 그렇게 귀엽다면서요? 한 번 그려보고 싶긴 하네요.

"제 동생이니까 당연하죠."

-  하하. 저 중학생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화가가 꿈이었거든요. 시 대회에서 상도 받고 그랬는데. 그때 그림 아직도 집에 남아있을 걸요?

"실력이 대단하신가보네요."

-  이젠 그 실력도 다 녹슬었겠죠.

그 말을 잇는 수안씨의 입가엔 쓸쓸한 웃음이 돌았다.

그럼 이제 세 가지를 약속할 때다.

"수안씨는 그런 마법이 실제로 일어나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  안 돼요? 평서문이네요.

"안 되죠. 왜냐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본인 입으로. 누구한테 말했다간 엄청 나게 놀랄 거 아니에요?"

-  그야 그렇죠.

"그리고 그 마법을 걸어준 마법사가 누군지도 절대 말 하면 안 돼요."

-  그건 또 왜요?

"그랬다간 마법사가 서운해서 마법을 취소해버릴지도 모르거든요."

-  그건 위험하네요. 서운하게 하면 안 되죠. 은인인데.

"마지막으로 마법사한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  그러게요. 마법이란 게 일어나기만 한다면, 그 마법사한텐 늘 감사하며 살게 되겠죠.

수안씨 앞에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권씨 남매가 곧잘 하는 행동이다.

"저랑 약속하죠."

-  네?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자고요. 그 세 가지만 딱 지켜주세요."

-  뭐예요. 놀이 컨셉에 엄청 충실하시네.

"그럼요, 저희 집 5세는 컨셉에 많이 구애받는 편이거든요. 악당부터 히어로, 그리고 총잡이까지. 이 정도는 돼야 장단에 맞춰줄 수 있어요."

-  그런 거구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새끼 손가락을 거는 권수안씨.

이로써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다.

새끼 손가락을 거느라 몸이 약간 앞으로 쏠린 수안씨의 목에 완성된 펜던트를 걸어드린다.

루이의 얼굴을 닮은.

목각 펜던트.

그리고 핸드폰이 진동한다.

[오누이 타이쿤!]

[공감각 – 전이율 50% / 타자에게 정말로 양도합니까?]

[예 / 아니오]

망설임 없이 예를 누른다.

그러자.

-  어...?

멍청할 정도로 얼빠진 소리.

권수안씨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  이게 뭐야?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메만진다.

-  어, 이게?

손이 떨린다.

입술이 떨린다.

손가락을 깊게 넣어 앞머리를 쓸어넘긴다.

고개를 흠칫 돌리다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리가 무너진다.

쿠궁-

뭉-!

가게 저편에서 루이가 깜짝 놀라 달려온다.

그리곤 수안씨의 볼을 마구 핥는다.

뭉-

멍-

-  루, 루이...

맹인이 안내견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

아득히 오래 전의 일.

권수안은 빛을 잃었다.

화가를 꿈꾸던 권수안에게 빛은 색이었다.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권수안은 세상을 잃었다.

하지만 지켜낸 것도 있었다.

동생의 세상.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자신의 삶도 소중하지만 동생도 소중하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동생을 구해낸 것에 대해.

허나 빛을 잃었다는 사실 앞에, 마음은 낡은 돌담처럼 곧잘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날 마법이 찾아왔다.

그 마법의 이름은 루이.

내가 볼 수 없는 세상을 밝혀주던, 등대 같은.

살아있는 마법.

새로운 세상.

새로운 빛.

그 아이는 여지껏 긴 시간 동안 권수안의 세상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그럴 예정이다.

지금 권수안의 목에 걸린 펜던트의 이름도 '루이'니까.

"후..."

뻐근하게 조이는 손목을 좌우로 움직인다.

역시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 어렵게 느껴지는 것마저도 권수안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팔레트와 붓.

방문을 걸어잠그고 그것들을 손에 쥐곤 선을 긋는다.

색을 칠한다.

화폭 안에 새로운 세상을 담는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온다.

가슴이 뛴다.

오랜만에 받는, 살아있는 느낌.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

모두 마법사 덕분이었다.

"근데 비밀이라고 했지. 세 가지."

앞을 보게 되었단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

앞을 보게 해준 게 누구인지도 발설하지 말 것.

그리고 마법사에겐 늘 감사할 것.

모두 지키는 중이다.

일례로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방문을 걸어잠근다.

근 10년 간 방문을 잠근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유사시에 위험하지 않은가.

"근데 마법사가... 루이라니."

뭉-!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루이가 반응한다.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린다.

송주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권수안.

'주현씨가 해준 거예요? 이거. 왜 저... 지금 눈앞이 보이죠?'

'쉿,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마법사는 제가 아니에요. 마법사 이름은 그 펜던트 뒤편에 적혀있어요.'

펜던트.

송주현이 목에 걸어준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는데 펜던트의 뒤편을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권수안의 시야는 펜던트의 시야와 일치했으니까.

즉.

"시야가 새롭게 바뀌니까 적응하기 힘들긴 하네."

루이의 얼굴을 본따서 만든 펜던트의 눈이 새로이 권수안의 눈이 된 것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권수안은 알 수 없었다.

그야 말로 마법,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누가 벌인 일인지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송주현에게 물은 것이었는데, 그 작자는 마법사의 이름을 '루이'라고 답한 셈이다.

이후에 스마트폰 사진기를 이용해 가까스로 펜던트의 뒷면을 찍었더니 루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지껏 루이는 권수안의 두 눈이 되어 삶을 함께 해주었으니.

그리고 지금부터도 쭉 그럴 것이고.

어찌 되었건.

"정말로 마법이 일어났네."

주인장이나 식당이나 신기했다.

기적 같았다.

지금 이렇게 눈 앞이 보이는 순간도.

모든 것이 마법이었다.

뻐근해진 손목을 몇 번 더 돌리다가 다시 붓을 잡는다. 채색을 이어간다.

나쁘지 않은 완성도였다.

옛날엔 이것보다 더 선도 이쁘고, 색 감각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런 걸 따질 기분은 아니었다.

화폭에 담긴 모델은 단 둘.

루이와 장윤슬.

엎드린 채로 혀를 헥헥- 내밀고 있는 루이.

그 옆에 어색하게 얼어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장윤슬.

모델이 둘 다 귀여우니 그릴 맛이 나는 그림이었다.

암튼 마법을 부린, 허나 마법사는 아닌 그 작자가 부탁한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그림에 윤슬이도 넣어주세요.'

라고.

그래서 그린다.

화가를 꿈꾼다면 주문받은 그림은 최대한 완성도 있게 완성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직업정신.

그리고 이 한 폭의 이름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첫 터치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정해져있었다.

"마법."

그 두 글자 외에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우와, 윤슬아 여기 와서 이거 봐볼까요?"

"몬데여?"

"저번에 수안 아저씨가 그려주겠다고 한 그림이 벌써 도착했네?"

"움?! 바바. 윤스리 나온 거지?"

"기억하네. 여기."

그림을 든 채로 허리를 숙여 윤슬이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루이와 함께 나란히 서있는 그림.

프로 작가가 그린 것만큼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럼에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봄철의 햇발 같은 그림이었다. 그 존재 의미도 굉장히 크다. 누가 뭐래도 맹인 화가가 그린 그림이니까.

"윤스리 엄청 마음에 들어!"

"그래? 다행이네."

"응!!"

윤슬이도 너무 좋아한다.

가게 벽면에 있던 공간을 활용해 걸어두기로 했다.

자동차 포스터가 없는 벽면에 붙이니까 우리 가게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잉여 능력을 활용한 것치곤 좋은 결말이다."

[공감각]

권수안씨의 시각을 되살리기 위해 내가 희생한 능력이다. 이전에도 판단했던 대로 완전히 [요리사의 촉]의 하위 호환 능력이기에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윤슬이가 매개 음식을 통해 기억에 간섭하게 될 때, 일부 활용될 뿐이다.

그러니까 내겐 필수적이지 않은, 잉여 능력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고스란히 수안씨에게 양도했다.

펜던트와 공감각을 이룰 수 있게끔.

그리하여 시야가 공유될 수 있던 것이다.

공감각을 발휘 하기 위해서는 일정 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상대와 감각을 공유하기 위해선 그 대상에게 강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윤슬이처럼 친밀한 가족 관계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펜던트 같은 무생물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루이의 외관을 빌린 것이다.

조금이라도 수안씨가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렇기에 루이와 지금껏 지내왔던 추억이 없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둘의 유대감이 마법을 이루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그러고보니."

한 가지 잊은 게 있었다.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간다.

문 앞에 서서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 [오늘의 메뉴]가 적힌 앉은뱅이 칠판의 밑공간에 끄적끄적- 적어나간다.

[안내견은 출입 가능합니다! 부담 없이 들어와서 편히 식사하고 가세요.]

"이거 적어두는 걸 잊고 있었네."

이렇게 적어두는 이유는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멀쩡히 앞을 볼 수 있는 손님들 때문이다.

가끔 안내견이 가게에 들어와있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손님들이 계신다. 그런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행동이다.

핸드폰이 진동한다.

[오누이 타이쿤!]

[가게 분위기가 '훈훈함'에서 '정감이 넘침!'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이후 고객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타이쿤 어플은 내 선택을 강하게 긍정하는 것 같다.

가게밖에서 아직 안에 남아있는 윤슬이를 바라보았다. 가게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배실배실 웃고 있다.

아직 키가 작아 고개를 한참 올려야한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무심코 사진을 찍고 말았다.

우리 가게가 점점 행복이 넘치는 장소가 되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해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