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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72화 (72/200)

72화: 악당다워지는 방법(2)

옆에서 다른 손님들이 우리 윤슬이 편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  윤슬이 화가 많이 났어?

사장님이 부르니까 내 품에 안겨 곁눈질하다가 다시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고개를 흔든다.

대답하기조차 싫다는 의미다.

이 정도면 단단히 삐진 거다.

"우리 윤슬이가 화가 많이 났대요."

-  헉! 이러다가 시장에서 가게 빼게 생겼네.

"그러니까요. 장사 더 오래하셔야죠. 빨리 윤슬이 기분 풀어주세요. 안 그러면 저짝에 계신 정육점 할아버지한테 이를 거예요."

"정육쩜 할부지는 윤스리 편이라서 이 가게 오므는 혼나여. 아줌마 마니 혼나!"

여전히 내 품에 안긴 채로 웅얼거린다.

정육점 할아버님이라면 분명 시장에서 제일 연장자 중에 한 분이다. 성래 시장에서 차용할 수 있는 빽 중에선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철저하게 우리 남매의 편인 것도 사실이다.

-  그럼 어쩔 수가 없지. 윤슬이가 기분 풀고 내려와주면 이거 쿠키랑 같이 초콜렛 얹어줘야겠네?

"쵸코?"

-  응, 초콜렛. 이거 봐봐.

사장님 손에 들린 것은 금박지가 둘러싼 고급 초콜렛. 저번에 강씨 아저씨가 한 번 선물해준 적도 있는 건데 꽤 비싸다.

그걸 보더니 윤슬이는

"추릅."

입맛을 다신다.

그리고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내 볼을 손으로 슥삭 만진다.

"옵바, 옵바."

"응?"

"윤스리 기분을 풀므는 저거 받을 쑤 있눈 거지?"

"그렇지?"

"그러믄 기분 푸러야게써. 내려주므는 조켔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가씨."

바닥에 내려주자 어정쩡한 걸음으로 사장님 앞에 나선다.

그리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내민다.

"그거 주므는 조케써."

-  이거 초콜렛 좋아?

"조아."

-  그럼 주세요. 라고 해보세요.

"그러믄 주세여."

-  아니. 그럼 빼고.

"주세여."

-  오냐.

윤슬이는 초콜렛을 받자마자 줄행랑을 친다.

다시 내 뒤로 쏙 숨는다.

그리고 히힝- 웃더니 "작전 성공"이라고 좋아한다.

기분이 풀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윤슬이를 데리고 빵을 고른다.

먼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빵 중 하나인 단팥이 들어간 찹쌀 도넛을 담는다. 그걸 보고 "이거 음청 마시써, 옵바."라며 만세를 부른다.

윤슬이가 찹쌀 도넛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몇몇 손님들은 놀란다.

-  애기가 찹쌀 도넛을 좋아하네? 이 가게에서 만든 게 딴 데보다 쫀득거려서 맛있긴 하지.

-  이 양반이 뭘 모르네. 윤슬이가 원래 맛잘알이야. 주현이네가 식당하잖아, 저쪽 성북천 앞에서. 요리가 워낙 맛있어야지.

-  그래? 그건 몰랐네. 이따가 저녁 때 한 번 들러야겠어.

의외의 타이밍에 손님을 하나 확보해버렸다.

그밖에도 적당히 찢어먹을 수 있는, 밤 식빵과 소세지빵을 구매했다.

그렇게 포장해달라고 하는데, 사장님이 아까 그 철옹성 같은 이름의 쿠키를 얹어주신다.

"움!"

누구보다 놀래는 윤슬이.

보통 저걸 받기 위해선 이름을 성공적으로 읊어야만 한다. 그런데 분명 아까 항복했었다.

"그거 윤스리... 항복했눈데."

-  괜찮아. 사장님이 지금 윤슬이 덕분에 너무 행복해져서 서비스로 주는 거야.

"오오! 조은 사람?"

윤슬이는 두 눈을 빛낸다.

그 쿠키가 맛있어보여서인지 먹어보고 싶었나보다.

-  대신 조건 있어.

"조껀?"

-  응, 스폴리아띠네 글라사떼. 한 번만 더 말해주라.

스폴리...

스폴라...

이이익!!!

폭발한 5세는 발을 동동 굴렀고, 우리 식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받았던 금박지 초콜렛을 입에 넣어주자 금세 풀려버렸다.

우리 보스는 꽤 단순하다.

**

"웁바... 우물우물."

"응? 우물우물."

"윤스리... 우물우물... 화가 나써."

"꿀떡- 왜?"

아침밥 대용으로 구매한 빵을 뜯어먹으며 대화하는 남매. 맛있게 먹으면서도 윤슬이는 무언가 불만을 피력한다.

"꿀떡- 윤스리 아까 깨다라써."

"뭘 깨달았는데?"

"윤스리는 아직 너무 애기야. 이대루는 안 대게써."

큰 깨달음을 얻으신 5세였다.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있으나 빵은 맛있는지 입가를 혀로 핥고 있어서, 하나도 안 심각해보인다.

"그런데 왜 화가 나셨을까요? 우리 아가씨께서.""이익! 윤스리는 아직 자겨기 업써!"

"무슨 자격이 없어?"

"윤스리는 보쓰 할 자겨기 업써!"

충격 발언.

본인이 보스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까 빵집에서 스폴리아띠네 글라사떼에게 격침당한 것이 크게 영향을 준 모양이다.

마음이 애절해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움... 움... 왜냐므는 윤스리가 말뚜 제대루 못해는데. 어뜨케 보쓰를 해. 윤스리는 실맹이 커여."

얼마나 실망이 크면 실망을 실맹이라고 발음할까.

마음이 더더욱 애절해진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빠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윤스리는 더 필쌀기를 연마해야게써."

갑자기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시선이 올곧은 게 진심이 느껴진다.

내가 먹고 있던 밤 식빵이 맛있어보였는지 자기 그릇에 놓인 찹쌀 빵은 내비두고, 이쪽으로 손을 가져댄다.

뜯기 힘들까봐 내 손으로 쭈욱 찢어 입에 넣어준다.

우물우물-

"필쌀기를... 우물우물. 연마!"

계속 우물거리면서 주먹을 허공으로 휙! 휙! 뻗어댄다.

짧다.

"그럼 그걸 오빠가 도와드리면 되겠어요?"

"움... 아니야. 옵바는 갠차나. 윤스리가 해보께."

주먹을 굳게 쥐며 다짐하는 윤슬이.

결의에 찬 눈빛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아기 늑대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점심 장사를 끝내는 동안 진척된 게 없어보였다.

몇몇 단골 손님들이 윤슬이가 붕붕이 3호에 앉아 우수에 찬 눈빛을 띠고 있자 걱정이 되어 묻기도 했다.

-  오늘 윤슬이 뭔 일 있었어요?

-  그러게 표정이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사장님이 혼 한 번 낸 건가?

"아뇨, 사춘기에요."

-  사춘기? 지금 몇 살인데요?

"5살이요."

-  다섯 살이 사춘기?

가게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손님은 변함 없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 올 것이 왔다.

문 밖에서부터 들리는 거대한 배기음

터텅텅텅텅- 부우웅.

그 소리만 들어도 어떤 바이크를 타고 누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가게 대표 대식가, 백수인씨였다.

들어오자마자 거의 지정석처럼 비워진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아 새침하게 한 마디.

-  오늘의 메뉴로.

"4인분씩 두 번?"

-  네. 혹시 더 추가할 수도 있긴 한데.

"그때 재료 있으면 해드릴게요."

-  확인.

짧게 의사소통을 마친다.

4인분씩 두 번?이라고 물은 것은 도합 8인분을 의미한다. 8인분 정도는 기본적으로 먹는 인간인데, 한 번에 8인분 전부 내어드리면 상 위에 공간이 모자라다.

그래서 4인분씩 두 번 나눠서 드리겠다는 의미다.

그런 데다가 더 추가할 수도 있다고 하니, 참 한결 같이 많이 먹는 손님이다.

오늘의 메뉴는 쭈꾸미 볶음에 계란말이 세트다.

한 번 세트로 만들어보았다.

쭈꾸미 볶음의 매운맛을 계란말이가 잡아주는 조합이다. 각종 채소와 함께 손질된 채로 맵게 달아오르는 쭈꾸미.

맛술로 비린 향을 잡았다. 맛술과 설탕의 단맛이 매운맛과 어우러져 젓가락을 강탈하는 맛을 부른다.

"밥도둑이거든."

또, 계란말이는 한국식보다 일식으로 만들어보았다.

둘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깔끔하고 단 맛이 섞인 일식을 선호하기에.

달걀물에 미림과 물을 조금씩 섞어 농도를 맞추고 팬에 올리면 만드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상에 올려드리자 백수인씨는 옅은 미소를 띤다.

-  너무 맛있겠다. 냄새 죽이네.

반응도 한결같다.

몇 마디 요리에 대한 감상평을 남긴 뒤 식사에 돌입한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을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점이 되는 게 백수인씨다.

외모도 꽤 특이한 손님인 데다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드시니까, 이분이 이렇게 먹는 걸 보면서 놀라지 않으면 단골이다.

그렇지 않고 백수인씨의 식사량을 보고 놀라면 가게에 출입한 빈도수가 낮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 정도로 이 손님은 우리 가게에 자주 올뿐더러 굉장히 특징적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전혀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팔을 입어 살갗이 드러나자 선명히 팔 근육이 보인다. 상완근이 선명하다.

식사량을 고려해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운동을 꽤 오래하신 것 같다.

-  주현씨, 오늘 윤슬이 무슨 일 있어요?

"저희 동생도 슬슬 사춘기라서요."

-  다섯 살이 무슨 사춘기람.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요."

밥을 먹다말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지 내게 말을 걸어온다.

-  무슨 일?

마침 들어오던 주문도 끊기던 찰나라 이야기해준다.

빵집에서 있었던 5세의 굴욕사에 대해.

강적 스폴리아띠네 글라사떼에게 장렬히 패배했던 것에 대해.

-  그랬구나.

윤슬이를 보며 가볍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나서 식사를 재개하는데 속도가 이전보다 약간 빨라졌다.

곧 8인분의 식사를 마친 백수인씨.

식기를 가지런히 모아 내게 넘겨주고 윤슬이에게로 곧장 향한다.

"움? 이니 언니."

이름이 백수인이라서 '인이' 언니가 된 것이다.

이름을 몰랐을 땐 그냥 언니야! 하고 부르던 게 저렇게 정착되었다.

-  오늘 윤슬이는 언니한테 인사도 안 해주고.

"앗, 온 지 몰라써."

-  윤슬이 무슨 일 있었구나. 표정도 별로 안 좋네?

"웅, 윤스리 고민 중이야."

윤슬이는 워낙 백수인씨를 잘 따른다.

나나 강씨 아저씨를 따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같은 여자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멋있는 무드를 풍기는 사람인 점이 큰 이유다.

붉게 염색한 머리에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몸엔 근육이 제법 붙어있다. 악당과 보스를 꿈꾸는 윤슬이에겐 그야 말로 스승님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본업이 뭔지도 궁금하다.

수인씨는 한참을 윤슬이 앞에 쭈구려 앉아 고민을 들어준다.

응.

응.

그랬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결론을 낸다.

-  그럼 윤슬이, 언니가 도와줄까?

"움?"

-  윤슬이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언니가 도와줄게.

그 제안은 윤슬이에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부류였고, 난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냐면 근래 파악한 백수인씨의 성향 탓이다.

우리 동생에겐 무한히 잘해주지만 이 사람의 취향도 누구 못지 않게 독특하다.

지독한 빌런 덕후인 것이다.

백수인이란 인간의 모든 행동이 빌런스러움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묵한 성격.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여 몸을 만들고, 밥을 잘 먹는다.

배기음과 통이 큰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것.

벌써 7월인데도 망설임 없이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악당의 외형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그런 백수인씨와 윤슬이의 케미란

"어떻게 될는지."

오빠로서 걱정된다.

우리 집 5세가 또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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