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악당다워지는 방법(4)
오늘따라 여러번 마음이 아팠다.
동생이 나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게 되다니. 굳이 따지자면 윤슬이는 내성적인 편이다.
다른 사람과 금방 친해지고, 친밀한 사람과는 곧잘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에서 소극적인 면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본인 기준에서는 여러 모로 내외하는 부분이 세부적으로 나뉘어져있다. MBTI 검사로 따져보자면 분명 E(외향적)에 가까운 I(내향적)가 나올 것이다.
가령 생리현상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놀랍게도 나 이외에 아직 방귀를 튼 사람은 외할머니 정도다. 요 몇 달간 윤슬이를 돌봐온 나로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우... 윤스리 드러갈래."
많이 부끄러움을 타는 윤슬이가 내 앞치마로 들어오더니 기어코 바지에 넣어입은 반팔을 들추었다. 그리곤 반팔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나를 껴안는다.
짧은 다리를 꼿꼿이 뻗어 어떻게든 내 옷 속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운가보다.
윤슬이의 진입을 허락하기 위해 뒤로 묶은 앞치마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윤슬이가 많이 쑥쓰러웠어요?"
"우우..."
대답도 없이 내 맨 뱃살에 부비부비거리는 윤슬이의 엉덩이를 받혀 올려 그대로 들어버렸다.
앞치마가 캥거루 주머니처럼 부풀어올라버렸다.
그 주머니 안에 내용물이 장윤슬이다.
- 윤슬아, 언니 아무 것도 못 들었는데...
"이잉!"
지아가 애써 위로해보려지만 이미 윤슬이의 마음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고개를 젓는 게 배쪽 부근에서 느껴진다.
이잉!은 좀처럼 보기 힘든 앙탈이다.
이건 귀하다.
이런 윤슬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를 택하자면.
"윤슬아, 오빠랑 지아 언니랑 같이 초콜렛 하나씩 먹을까요?"
"이잉."
싫다고 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방법.
"그럼 윤슬이 오빠랑 같이 붕붕이 타구 산책 다녀올까?"
"이이잉!"
이것 역시 거절.
방금 저녁 식사 시간이 막 시작되었기에 애초 불가능한 얘기긴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밖에 없다.
이 방법을 써서 넘어오지 않은 경우는 없다.
"아이구!"
윤슬이를 안은 채로 그대로 뒤로 드러누워버린다.
리얼리티를 위해 기세 좋게 쓰러진다.
동생이 다치지 않게 잘 끌어안고서.
"이이... 잉?"
"아이구! 윤슬아, 오빠 지금 아프다! 아파!"
"이잉?"
뒤로 벌렁 누워버린 내 상태가 걱정되었는지 윤슬이는 꼼지락거리며 상반신을 타고 오른다.
그리고 반팔티의 목구멍 쪽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어버린다. 시보리가 팽팽하게 목덜미를 당겨온다.
아주 가까이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잦아드는 숨결이 느껴지도록 가깝다.
"잉? 옵바 아퍼?"
"윤슬이가 계속 풀이 죽어있으면 오빠가 마음이 아픈데?"
"모야... 마으미 아픈 거여써."
"오빠 아프면 윤슬이가 고쳐줘야 되는데요? 윤슬이 말고는 고쳐줄 사람이 없는데."
"움... 그거는 마찌. 어뜨케 하므는 고쳐지는대여?"
"오빠 옷 밖으로 나와서 건강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오빠가 다 낫지요?"
"움- 알게써. 옵바가 아프므는 안 대."
다시 꼼지락거려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낑낑.
앞치마를 느슨히 들어올려 뒤뚱거리는 궁뎅이를 받혀주자 그제서야 온전히 빠져나온다.
"윤스리 부할!"
윤슬이 부활.
두 손을 높게 들어올리며 부활을 선언한다.
방긋 웃는 미소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되어 벌떡 일어나려는데, 윤슬이가 내 눈치를 보더니 슬슬 다가온다.
무언가 말하려는가 싶어 지긋이 눈을 마주치고 있었는데...
쪽!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깐 이해가 되지 않다가 입을 틀어막은 지아의 표정을 보고서야 사태가 파악되었다.
이럴 수가.
이런 타이밍에 윤슬이가 볼 뽀뽀를 해주다니!
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윤슬이를 보니까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
"옵바가 윤스리 기분 푸러조서 해주는 거야. 옵바한테만... 해주눈 거야."
"기분이 너무 좋다, 우리 윤슬이가 볼 뽀뽀 해줘서. 어쩌다가 이런 걸 할 생각이 드셨어요?"
"아까 이니 언니가 옵바한테 해주무는 조아한다구 그래써서! 한 번 해본 거야. 두 버는 안 해줄 거거둔..."
5세의 볼 뽀뽀는 명품 못지 않게 비싼 듯하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
너무 남발해도 심장에 무리가 온다.
그나저나 백수인씨가 귀띔을 해둔 것이란 사실은 놀랍다. 애를 잠깐 봐달라고 맡겨놓았더니 이런 순기능이 되돌아올 줄이야.
행복에 젖는다.
동시에 앞치마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대리 만족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J 고등학교 2학년생 송지아: 식당 만족도가 12%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82%]
[J 고등학교 2학년생 송지아 – 단골로 등록됩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지아가 대리 만족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80%의 만족도를 넘어 단골 등급으로 등록되었다.
종합 만족도가 높아지면 좀처럼 그 수치를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12%나 높아졌다는 건 꽤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방금 무언가에 대해 대리만족감을 느꼈다는 것인데. 입을 막고 숨을 죽인 지아의 표정을 보면 그 만족감의 출처는 명확했다
"지아야, 침 닦을까?"
- 아아... 네. 쓰읍.
윤슬이의 볼 뽀뽀가 어지간히 탐 났는지 입가에 침이 고여 흐르는 지아였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우리 윤슬이는 우주에서 제일 귀여우니까.
하지만.
"지아야, 윤슬이 볼 뽀뽀는 내게 배타적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네가 결코 점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명확히 인지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네가 우리 가게 단골이라도 함부로 탐 냈다가는 법적 분쟁에 들어가게 될 수 있다는 점 알아줘."
- 칫. 쩨쩨하다.
쩨쩨해도 어쩔 수 없다.
인생은 실전이다.
상황이 일단락되고는 우선 지아 밥을 챙겨주기로 했다. 시험 기간이라면 집에 돌아가서 무얼 복습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니 여기서 너무 놀게 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빠르게 제육볶음을 만들어주려고 화구에 불을 지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아가 기회를 틈타 윤슬이에게 질문한다.
- 윤슬아, 혹시 언니한테두 볼 뽀뽀 한 번만 해주면 안 돼?
"안대거둔."
5세는 단호했다.
손바닥을 들어올리며 지아에게 향한다.
더더욱 단호해보인다.
- 왜... 사장님한테는 그냥 해줬잖아.
"그거눈 옵바한테만 해주는 거거둔. 그래서 안대거둔
! 그만 무러바쓰믄 조케따."
- 히잉...
5세는 당돌했다.
매몰차게 거절당한 지아.
결국 밥은 맛있게 먹고 돌아갔지만 윤슬이의 볼 뽀뽀를 받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없다. 누구의 볼에 뽀뽀하건 윤슬이의 자유니까.
지아가 돌아가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슬이의 귀여운 모습은 손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만족을 주고 있다.
윤슬이가 손가락 총을 빵! 빵! 쏴주면 손님들은 자지러진다. 내게 응석을 부리는 모습도 손님들의 호평을 얻곤 한다.
방금의 지아처럼 만족도가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는 건 즉.
"윤슬이가 귀여울수록 이득이라는 얘기!"
한 가지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빵집에 들러 식빵을 샀다.
어제 먹었던 밤식빵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윤슬이의 픽이었다.
이 빵집의 밤식빵 안에 박혀있는 밤은 부드럽고 달다. 그게 윤슬이 마음에 쏙 드는 것 같다.
다만 손으로 찢기 힘들어해서 내가 직접 찢어 멕이는 중이다.
옴뇸뇸-
입을 작게 벌려 쏙쏙 받아먹는 게 족제비나 토끼 같은 소형 포유류처럼 느껴진다.
말을 꺼내곤 싶은데 망설여지기도 한다.
시장에서의 여파 탓이다.
어제 시장 한복판에서 패션쇼를 당당히 보인 바람에 수치심을 느끼게 된 윤슬이였다.
가게에서 한 번만 해달라고 했다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하게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윤슬이, 빵 맛있어요?"
"우물우물... 마시써여... 꿀떡- 옵바가 찌저서 먹여조서 더 마시써."
어쩜 말하는 것도 이렇게 이쁘다.
"그래요? 그건 참 다행이네, 우리 아가씨."
"웅! 하나 더 조."
다시 한 번 식빵을 조금 뜯어서 돌돌 말아 윤슬이 입에 쏙 넣어준다. 그런데 입에 넣는다는 게 내 손가락까지 깨물어버렸다.
"웁바, 미아내. 윤스리가 우물우물... 웁바 손까지 묵을 뻔해쪄."
"괜찮아, 괜찮아."
쪼꼬미가 깨물어봤자 아프지도 않았다.
어떻게 나를 공격해오더라도 타격감이 0인 게 참 신기하다.
빵을 꿀떡- 삼킨 윤슬이.
나에게 한 입 더 달라는 제스쳐로 입을 아- 하고 벌려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너무 귀엽다.
나 자신은 아직 한 입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윤슬이 입에 하나 더 넣어주며 넌지시 말을 꺼내어본다.
"윤슬아, 혹시 가게 안에서 필살기 보여주는 거 어떻게 생각해?"
"우무... 필쌀기?"
필살기란 말을 곱씹다가 식빵을 입에 담은 채로 입술을 비죽인다.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패쎤쑈 안 할 거에여. 그거 별루야!"
"별로야?"
"웅... 옵바가 머찌다구 그랜는데. 사람들이 다 귀엽따구 그러자나!"
분한 듯이 식탁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른다.
다리가 허공을 휘휘 젓는다.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오빠가 보기에는 되게 되게 멋있었는데요?"
"그거눈 옵바가 윤스리를 마니마니 조아해서 구래. 따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귀엽기만 하거둔."
흥-
하고 콧바람을 낀 뒤 다시 입을 벌려 식빵을 달라는 제스쳐를 보인다.
쏙-
쏙- 하고 입에 넣어주니 여전히 잘 받아먹는다.
잘 먹어서 보기 좋다.
결국 패션쇼를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포기해야할 듯하다.
어쩔 수 없다.
윤슬이가 싫어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면서까지 가게 만족도를 높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포기한 것도 아니다.
아직 구원 투수 한 명이 남아있다.
"오늘도 오겠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점심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선은 계속해서 가게 출입문 쪽에 머문다.
평소에도 그렇다.
손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장사의 기본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붉은 머리의 대식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터더더더덩 부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에 비해 요란한 배기음이 가게 앞을 스친다.
백수인씨의 바이크 소리란 것은 명확했다.
윤슬이도 알아챘는지 가게의 투명문 앞에 얼굴을 딱붙이고 가게 안까지 들어오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다.
"왔어요?"
가게 안으로 들어와 윤슬이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곤 나와 눈을 맞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똑같은 주문.
- 오늘의 메뉴로.
"4인분씩 두 번?"
- 더 시킬 수도 있긴 한데, 그건 이따가요.
"주문은 받았고. 오늘은 나도 수인씨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