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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75화 (75/200)

75화: 악당다워지는 방법(5)

요리를 내어드리곤 사정을 설명했다.

윤슬이의 신규 개인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

다만 조건은.

-  윤슬이가 멋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된다는 거죠?

"그게 핵심이죠."

이미 귀엽다는 소리는 차고 넘칠 정도로 윤슬이 귀에 박혔을 것이다.

멋지고 와일드해지고 싶은 5세다.

필살기를 선보였는데 또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다간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왕이면 윤슬이 자존감 좀 높여주게 멋들어져보이는 개인기가 좋겠다.

어제 본의 아니게 보게 된 백수인씨의 운동 영상은 꽤 절도 있었다. 자타공인 빌런 덕후인 이 사람이라면 분명 윤슬이에게 멋들어지는 개인기 하나쯤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백수인씨는 묵묵히 밥을 떠먹으며 생각에 잠긴다.

눈을 좌우로 굴리거나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는 게 익살 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  내가 해볼게요.

"오! 정말요?"

-  윤슬이 좋아하니까.

백수인씨도 내심 윤슬이의 멋있는 개인기 시연을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우리 가게 단골 특징 중 하나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윤슬이 덕질에 진심이다.

-  대신 조건 하나.

"뭐 서비스라도 얹어드려요?"

-  아니, 그런 거 말구요. 이따가 말할게요.

"그러시지요."

어차피 음식 추가할 때 고기를 더 얹어달라거나 그런 정도의 부탁이지 않을까 싶었다.

먹성이 대단한 인간이니까.

식사를 마친 백수인씨는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윤슬이 앞에 서서 당차게 한 마디를 건넨다.

-  내가 널 악당으로 만들어줄게.

윤슬이는 전율이라도 느끼듯 몸을 흠칫 떤다.

그리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가게 밖으로 나가 작전 회의를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서로 죽이 참 잘 맞는다.

질투가 난다.

**

두 사람이 약 1시간 동안 밖에서 피나는 연습을 마치고 돌아왔다.

5세, 장윤슬은 엄청난 포스를 보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발걸음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압도된 가게의 손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이번엔 또 무슨 컨셉이지?'

밥 먹다 말고 큐티한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오누이 식당을 이용 중인 여러 손님들은 이미 장윤슬에게 수차례 공격당해본 바 있다.

5세의 손가락 총기 난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을 보인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잘 조준하여 빵- 하고 입으로 소리내며 사격하는데.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며 이 식당을 자꾸자꾸 찾게 만드는 극적인 효과가 있다.

꿀떡-

여럿이 단숨에 마른 침을 삼킨다.

가게 안의 분위기가 차게 식는다.

잠자코 요리를 하던 사장, 송주현도 절로 5세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과연 어떤 개인기를 배워온 것인가.

그게 궁금했다.

도도한 발걸음으로 붕붕이 3호에 걸터앉은 장윤슬.

뒤로 느슨히 묶여있던 머리를 풀어헤친다.

앞으로 쓸려내리는 머리카락.

뿌리까지 깊게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뒤로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긴다.

유난히 좋은 유전 덕에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더라도 턱선이 명백히 드러났다.

눈매를 좁힌 터라 가벼운 곁눈질인데도 사납게 느껴진다.

'작은 맹수?'

송주현은 제 동생을 그렇게 느낀다.

멋짐이 뿜뿜 터져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귀여운 것은 변함 없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장윤슬이 이은 대사는.

"옵빠. 윤스리 쪼코 우유 한 잔.

제 딴에 말투는 꽤 도도하지만.

그 내용이 초코 우유다.

손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매우 곤란하다.

귀엽다.

그것만큼은 변함 없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5세는 5세였다.

하지만 장윤슬이 힘주어서 멋짐을 뿜어내보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했다.

그 노력을 무시하고 귀엽다는 듯이 반응하는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송주현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제 동생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초코우유 한 잔을 대령한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우리 아가씨 너무 멋있어지셨네요? 어떻게 된 거예요?"

"움! 이니 언니랑 공부 마니마니 하구 와써여."

"수인이 언니랑 공부를 하구 와서 더 멋있어졌어요? 원래도 엄청 멋있었는데?"

"그러타구 볼 쑤 이찌!"

한껏 의기양양해진 5세였다.

가슴팍을 넓게 피며 똥배를 내민다.

역시 귀엽다.

아무리 폼을 잡아도 5세는 5세였다.

자기 오빠가 달려와서 칭찬해주니까 금방 배실배실댄다.

가게 손님들 입에서는 웃음꽃이 핀다.

"와~! 우리 윤슬이 너무 멋있어졌다! 그쵸?"

손님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묻는 송주현.

거의 엎드려 절받기였지만, 다행히 점심시간대에는 근처에서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이 많은 편이었고.

5세 동생을 둔 젊은 사장이 무얼 원하는지 대략 눈치를 챘다.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짝짝짝짝짝-!

-  그르네! 우리 윤슬이가 이제 다 컸네?

-  깜짝 놀랐어~ 우리 윤슬이가 언제 저렇게 멋있어졌다냐?

제법 나이대가 많은 직장인들도 있었기에 아이들한테 무한한 칭찬을 주는 데 능한 손님들도 꽤 있다.

그 덕에 장윤슬의 콧대는 더욱 높아진다.

"옵바, 이러믄 윤스리가 옵바 지켜줄 쑤 있께따! 그치? 윤스리 이제 머찌구 쌔자나."

"그러게요. 우리 윤슬이가 오빠 지켜주면 되겠다."

송주현이 동생을 번쩍 들어올리자 목을 덥썩 안으며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을 보며 손님들은 흐뭇하게 미소짓는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대리 만족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손님 전반의 식당 만족도가 26% 상승했습니다.]

장윤슬 육성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만족도는 올랐고.

5세는 조금 더 악당다워졌다고 한다.

**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독 기분이 좋아보이는 윤슬이와 손을 잡고 성북천을 산책한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조금 걷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처럼 텐션이 높은 날엔 밤 산책을 하여 기운을 빼놔야 재울 때 편하다.

드러누우면 보통 자긴 하는데, 우리 윤슬이는 한 번 못 자면 계속 뒤척이는 스타일이다.

"히히힝-"

콧노래를 부르는 윤슬이.

아까 손님들한테 멋지단 말을 들었던 게 장사 끝날 때까지 쭉 기분 좋을 일이었나보다.

아까 전 점심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텐션이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

"움! 윤스리 인정 바다써."

누구에게든 인정 받으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엎드려 절받기였던 감도 없지 않아 있다.

훗날 윤슬이가 이 순간을 떠올리면 어떻게 느끼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불킥을 하게 될지.

아니면 오래도록 잊히는 기억이 될지.

한편으로 백수인씨가 신경 쓰이기도 한다.

-  제 부탁은 나중에 들어주는 걸로 해요.

볼장 다 봤다는 듯 윤슬이의 개인기가 끝나자 그대로 바이크를 타고 되돌아가버렸다.

뭘 부탁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진다.

"근데 윤슬이는 왜 오빠를 그렇게 지켜주려고 하는 거예요?"

"옵바니까여."

"오빠니까 윤슬이가 지켜줘야 되는 거야?"

"그거눈 당연한 거자나."

콧방귀를 뀌는 윤슬이.

"그래서 보스도 하는 거고. 악당도 하는 거야?"

"그러타구 볼 쑤 이찌."

마냥 납득 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냥 놀이나 컨셉질이라기엔 집념의 정도가 과하게 느껴진다.

윤슬이는 기본적으로 자동차도 좋아한다.

모형 자동차들에도 여전히 흥미가 많다.

그럼에도 모형 자동차들을 대하는 자세는 저토록 진심이 가득 담기진 않는다.

자동차를 좋아하긴 하나, 그것들을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해서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기색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윤슬이는 본인이 멋있지 않고,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두곤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긴다.

맥락 상 귀여우면 날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악당이 되려는 것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오빠가 위험해?"

"움?"

"오빠가 위험해서, 우리 윤슬이는 오빠 지켜줘야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움..."

망설이는 윤슬이.

맞잡은 손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쥔다.

미약한 장력이 손가락을 타고 오른다.

"윤스리눈 옵바가 께속 옆에 있어조쓰므는 조케써."

"당연히 오빠가 옆에 있지, 어디를 가겠어."

"그거눈 몰루는 거자나."

"왜 그렇게 생각했어?"

"왜냐므는 다른 사람들, 다 윤스리 떠나가써."

"윤슬아..."

"윤스리 다 알어. 엄마두 압빠두 함모니두. 다 사라져써. 함모니는 그래두 전화하므는 대는데. 엄마랑 압빠는 어디 멀리루 가써. 전화두 안 대자나. 그래서 못 본다는 마리야..."

생각해보면 그랬다.

윤슬이는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만남만큼이나 이별이 많았던 삶이었다.

친모와 친부는 사고로 잃었고, 할머니는 내게 자신을 맡기고 고향으로 돌아가셨으니까.

유치원도 그렇다.

좋지 못한 계기로 다니지 않게 되었다.

또,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맡아 키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다섯 살이 되어 나와 함께 서울에 살게 된 것이다.

그 짧은 인생 동안 누군가와, 또 어딘가와 여러 번 헤어져야만 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운명에 이끌려다닌 것이다.

"그니까 옵바는 윤스리 옆에 이써조쓰므는 조케따. 딴 데 안 가구. 윤스리는 그래서 더 쌔져야 대. 아무한테두 옵바 안 뺐기구 가치 살 거야. 오래오래. 윤스리는 옵바가 젤루 조으니까. 옵바는 어디 가므는 안대."

윤슬이가 내 손을 쥐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

너무도 가볍지만.

그 가벼운만큼 윤슬이가 뱉은 말의 무게가 꾹꾹 손 안에 눌러담기는 것만 같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시야도 몽글몽글해진다.

눈물이 맺혔다.

그 동안 윤슬이가 그토록 가게를 지키고, 오빠를 지키겠다고 말해왔던 것이 단순한 컨셉 장난이 아니었다는 게 마음 아프다.

이토록 가까이 있었는데도 난 윤슬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몰라줬던 것이다.

참 나쁜 오빠다.

"미안해, 윤슬아. 내가 몰라줘서."

"옵바는 윤스리 안 떠나가지?"

"절대, 절대, 절대로 안 떠나갈게. 윤슬이 옆에 있을게. 오래오래 같이 있을게."

"그거눈 윤스리 덕분에 이미 가능한 일이거둔!"

"응? 우리 아가씨가 어떻게 해줬는데 그런 말씀을 자신만만하게 하실까요?"

"히힝- 왜냐므는 윤스리가 생일에 소언 비러써. 옵바랑 오래오래 행보카게 살구 싶따구. 그니까 꼭꼭 이러질 거야."

"그런 소원을 빌었어?"

"웅! 근데 이짜나 소언 다 이러져써. 윤스리가 몰래 3개 비렀는데. 초코두 마니 생기고, 새로 칭구도 생겨써. 유미니랑 루이! 그니까. 옵바랑두... 오래 가치 살 쑤 있으믄 조켔다. 윤스리가 더 쌔지믄 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윤슬이를 껴안고 얼굴을 그 작은 어깨에 묻는다.

들키지 않을 만큼만.

아주 작게 흐느낀다.

움- 움-

고민하는 소리를 내다가 윤슬이도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터벅터벅

성큼성큼

주위를 지나치는 행인들의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것들을 신경쓸 틈도, 여유도 없다.

"옵바, 사람들이 다 쳐다바."

"미안 윤슬아.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아라써."

킁킁-

킁킁...

윤슬이는 기다리는 게 지루했는지 내 목에다 코를 박곤 냄새를 맡는다.

숨결이 간지럽다.

너무도 작고 소중하다.

절대로 이 아이를 어딘가에 두고 떠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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