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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76화 (76/200)

76화: 휴가는 내 맘대로 가는 게 아니다(1)

부우웅-

부우웅-

"뭐냐?"

목소리가 거칠고 무겁다.

핸드폰 소리에 일어나버렸다.

오늘은 가게 휴일이라서 오래 뒹굴어보려고 했더니, 누가 이렇게 연락을 해오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찾으려 머리맡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윽! 눈갱."

직접 공격당해버렸다.

효과는 굉장했다.

잠이 다 달아났다.

고롱- 고롱-

정신을 차리니까 이쁘게 자고 있는 동생의 발가락이 보인다.

잠꼬대하다가 위아래가 뒤집혔다.

종종 있는 일이다.

우리 동생은 평소에도 활발한만큼 잠잘 때도 공간장악력이 대단하다.

스마트폰을 보기 전에 일단 눈을 부드럽게 비빈다.

눈두덩이에 손을 대어보니까.

"퉁퉁 부었네."

어제 밤에 길가에서 한참을 울었더니 눈이 부었다.

오늘이 휴일이라 다행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손으로 잠깐 만져본 것만으로도 눈가의 팽창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무무... 웁, 바."

윤슬이가 잠꼬대를 시전한다.

"울믄, 엉덩... 이 털... 나."

할머니한테 들은 얘기일까.

적어도 난 저런 말을 가르친 적은 없다.

그리고 울면 엉덩이에 털나는 게 아니라.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나는 게 아닐까?

어디서 반만 주워들은 것 같다.

울어서 엉덩이에 털이 난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미량의 머리털과 함께 엉덩이 털을 공동 보유해야만 한다.

헛된 논리에서 비롯된 망상을 털어내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오누이 타이쿤!]

알림이 들어온 것은 타이쿤 어플이었다.

아침부터 연락해온 것은 오누이였다.

[10:32]

스마트폰의 시계를 보니까, 그렇게까지 이른 시각은 아니었다. 한층 짜증을 누그러뜨린다.

[햇님: 모닝콜입니다!]

[나: 굳이 휴일 아침부터 모닝콜을 해야 했던 정당한 이유를 논하시오.]

[햇님: 우선 첫 번째 이유. 자랑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나: 뭔데?]

[햇님: 저랑 오라버니랑 내기를 했는데 제가 이겼어요.]

대체 어쩌라는 걸까.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햇님: 근육 증량 내기를 했는데, 무려 제가 100g이나 오라버니보다 근육이 더 붙었지 뭐예요? 이번 단백질 쉐이크랑 크레아틴은 제 몫까지 오라버니가 사기로 했어요. 대단하죠?]

[나: 그건 진심으로 대단하다.]

역시나 별로 궁금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근육이 100g 붙었다는 게 아니라 달님이보다 100g 더 붙었다는 것은 다소 놀랍다. 서로 얼만큼 근육량이 증량한 건지 순수하게 호기심이 생긴다.

나도 이전에 건강 목적으로 헬스장에 다녔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저게 얼만큼 대단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햇님: 물론 그 소식만 얘기하려고, 자고 계신데 깨운 건 아니구요. 어제 저녁을 기준으로 무려! 오누이 식당 지명도 레벨 2를 달성했습니다. 짝짝짝-!]

[나: 그랬구나. 어제 미처 확인을 못했네.]

어젠 예기치 못하게 한바탕 얼굴을 적셨던 터라 그런 것을 확인할 만큼 여유가 있지 못했다.

[햇님: 그러실 줄 알고 알려드리려고 연락한 거예요.]

가게를 운영할 때 참고해야할 중요한 소식이다.

오누이의 설명에 따르면 가게 지명도가 오르면 많은 영향이 있다고 했다.

우선 가게에 유입되는 손님이 늘어나는 것.

지금까지 오누이 식당은 동네 맛집 수준이었다.

인근 회사나 직장에서 종종 들러주시는 분들이 많은 정도.

테이블 수가 많지 않아 꽉꽉 채워앉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지만 결국 동네 장사였다.

[나: 이제부턴 동네 밖에서도 손님들이 많이 와주시겠네.]

[햇님: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죠. 오누이 식당 덕분에 미미하지만 성북천 근처로 손님 통행도 증가할 정도니까요.]

오누이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 식당이 무슨 관청이나 공공기관도 아닌데, 덕분에 통행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선뜻 상상하기 어려운 효과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말하면 그게 옳을 것이다.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오누이가 이런 걸로 허풍을 떨진 않는다.

[햇님: 그리고 저희가 현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더 커졌다는 거!]

[나: 예를 들면?]

[햇님: 식물의 몸을 빌려서 잠시뿐이지만 현계에 현현할 수 있다던가?]

하필이면 식물이라니.

동물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동물들은 식물들에 비해 자아가 강하다.

대략 그런 이유로 아직은 식물까지가 한계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 암튼 잘 됐네. 점점 식당도 안정화되는 것 같고. 수익도 괜찮게 벌리고 있어. 이사 생각해도 될 정도로.]

당장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줄곧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집은 둘이 생활하기엔 좁다.

대출을 조금 끼면 15 - 20평 정도 되는 다세대주택쯤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전세 자금까지 빼서 보태면 충분하다.

[햇님: 그건 정말로 잘 된 일이네요. 두 분 남매가 요즘 들어 더 행복하게 살고 계신 것 같아서. 저랑 오라버니도 기분이 좋답니다.]

[나: 고마워, 너희 덕분이야.]

[햇님: 협력 관계잖아요. 저희도 덕 많이 보고 있습니다.]

훈훈한 분위기.

달님이와 다르게 햇님이는 차분한 면이 돋보인다.

둘 다 운동광인 것은 변함 없지만.

[햇님: 아무튼 그래서 지금부터가 본론인데요.]

[나: 지금까지는 본론이 아니었다고?]

[햇님: 무려 그렇다는 거!]

[나: 또 뭐가 남았어?]

[햇님: 아마 곧 있으면 건물주분, 정민구씨한테서 연락이 올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일어나계시는 편이 좋아요.]

[나: 갑자기?]

[햇님: 가게 쪽에서 기다리고 계실 걸요.]

[나: 오늘 휴일인 거 민구씨도 아실 텐데.]

[햇님: 식사하러 오시는 게 아니거든요.]

햇님이의 메시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민구씨였다.

윤슬이가 옆에서 자고 있으므로 조심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네, 여보세요."

-  주현씨 잘 지냈어요?

"그럼요. 덕분에 손님들도 많이 오시고, 열심히 장사하고 있죠."

-  하하하, 지금 목소리가 다 잠긴 게 제가 안 좋은 타이밍에 전화한 것 같네요.

"아뇨, 어차피 방금 일어났어서 전화하셔서 깬 건 아니에요. 괜찮아요."

-  그럼 다행이구요. 오늘 오누이 식당 휴일인 거 알긴 하는데. 미안하지만 가게에서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없을까요?

"혹시 어쩐 일로 그러시나요?"

-  어... 좀 복잡해서 통화로 얘기하기 애매해서요. 대충 먼저 알려주자면 월세랑 가게 관련해서 말 좀 나눠야될 것 같아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서.

잠시 멈춤.

월세.

그 단어가 신경을 거스른다.

설마 요즘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월세를 올릴 생각인 걸까. 저번에 정민구씨를 만났을 때 그런 기색은 없었는데 말이다.

사람 속이란 모르는 것이긴 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는 못 갈 것 같고. 12시까지는 도착해볼게요."

-  쉬는데 미안해요. 진짜 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부탁 좀 하겠습니다.

무겁게 심호흡하며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을 때마저 민구씨는 정중했다.

월세를 올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화를 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굳이 오늘, 이런 휴일에 불러낼 사람도 아니다.

괜한 의심은 하지 말자.

[햇님: 괜찮아요. 절대 주현 오라버니 입장에서 나쁜 일 아닐 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세요.]

[나: 넌 무슨 일인 줄 알고 있구나?]

[햇님: 저는 알죠. 저랑 오라버니가 얼마나 힘썼는데. 근데 비밀이에요.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거거든요.]

[나: 그렇구나. 알겠어. 그럼 진짜 선물 같은 일이 기다리는 줄 알고, 긴장 안 하고 갈게?]

[햇님: 그러셔도 돼요! 믿으세요.]

햇님이의 믿으란 말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일단 윤슬이부터 깨워야겠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 화장실을 나오는데.

"응?"

화장실 문 왼쪽, 사각지대에서 인기척 감지.

신장은 105cm 정도. 또래에 비해 약간 큰 편.

체중은 13.5kg 내외. 신장에 비해 가벼운 체중이 특징.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동생이라 번쩍 들어올려도 별로 안 무거움.

나를 놀래켜줄 생각으로 숨을 한껏 죽이고 있는 게 느껴짐. 그 와중에 긴장했는지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약간 삐져나와 다 들켰음.

결론: 미치도록 귀여움.

"아이구, 이제 외출해야 하니까 윤슬이 한 번 깨워볼까? 투정 안 부리고 잘 일어날 수 있으려나?"

"히히- 모르구 이써."

그렇게 작게 혼잣말 해봤자 다 들리는 거리다.

그러나 이 세상엔 모르는 척이라는 개념이 있다.

터벅터벅-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걷는다.

"으앙! 옵바 자바 머근다!"

으앙! 오빠 잡아 먹는다!

후다닥 달려와서 내 허벅지에 안겨드는 5세.

작은 이빨로 허벅지 앞 부근을 잘근잘근 깨문다.

콩알 펀치와 마찬가지로 데미지는 0에 수렴한다.

"이러다가 오빠 뼈만 남겠는데? 그럼 윤슬이랑 같이 재밌는 곳도 못 가고, 맛있는 것도 못 먹는데?"

"으앗! 맞따! 윤스리가 모르구 그래써. 옵바 머그믄 안 대는데."

아무래도 5세 본연의 맹수 본능이 발현된 듯하다.

윤슬이에 한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럼 윤슬이가 오빠 살려줬으니까, 같이 맛있는 거 먹을까? 외출해야 돼요."

"잉? 어디가여?"

"가게 가야 될 것 같애."

"움? 오늘 쉬는 날인 거 윤스리두 알어."

"근데 오늘 민구 삼촌이 와달라고 해서 잠깐만 들려야 될 것 같은데. 윤슬이 피곤해서 못 가겠어?"

가게에 들러야 된다는 얘기를 듣자 윤슬이의 표정이 그닥 좋지 않다.

"윤스리는 갠차나. 근데 옵바가 오늘 쉬어야 대는데. 못 쉬자나. 그래서 윤스리 화나써."

"그래서 화가 났다는 말이야?"

큰 일이다.

이대로 갔다간 5세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민구씨의 허벅다리를 모두 뜯어먹을 수도 있다.

아무리 우리 윤슬이가 대부라지만 건물주의 다리를 먹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

"움! 윤스리 화가 나써!"

"그럼 맛있는 밥을 먹어야 되겠네? 화가 한층 풀리겠지?"

"옵바가 밥을 해주므는 기분이 풀려."

"그래? 그럼 맛있는 거 먹고 잠깐 산책 나가는 느낌으로 가게까지 자전거 타구 다녀올까요?"

"그러믄 대게써여."

정민구씨의 다리를 지켜드리기 위하여 맹수의 밥을 미리 챙겨주기로 했다.

이렇게 배를 불려놓으면 우리 가게 건물주의 다리를 보고 침흘리는 일은 없겠지.

오늘 아침으로 택한 것은 계란말이다.

얼마 전에 가게에서 윤슬이한테 먹여봤더니 반응이 제법 좋았다.

계란물에 물과 맛술을 조금씩 섞어서 굽게 되면 농도가 잡혀 부드러운 계란말이가 완성되는데, 그게 윤슬이 입맛에 맞았던 것 같다.

아침 상에 내어주자 내 무릎 위에서 만족스럽게 계란말이를 먹는 윤슬이.

밥 먹을 때도 집에선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가게에선 혼자 냅둬도 잘만 먹는데. 집에선 조금 더 응석을 부리고 싶은가보다.

"윤슬이 맛있어요?"

"우물우물... 당연해여."

"당연히 맛있어요?"

"옵바 요리가 젤루 조아. 우물우물..."

그렇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요리인는 요리를 하는 것이라고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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