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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85화 (85/200)

85화: 어떻게 상어가 105cm (1)

할머니가 살고 계신, 아파트의 단지 바깥으로 나왔다. 윤슬이의 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지만 이내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단지 밖 건널목 저편에 주차된 SUV의 조수석 창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6세 차유민군이다.

"옵바, 저기 유미니!"

윤슬이가 손을 뻗어 방향을 가르킨다.

유민이는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드물게 지나가는 차들의 행렬만 무기질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네. 얼른 갈까?"

"웅! 빨리 가야대. 유미니 재미 없는가봐."

확실히 유민이의 표정은 어딘가 벙쪄있었다.

평소보다 빨라진 윤슬이에게 이끌리듯 횡단보도를 건너 미정 쌤의 주차된 차 앞에 도착했다.

운전석 창문을 똑똑 두들기자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머리를 쓸어넘기고 피식 웃는다.

여느 때처럼 트레이닝복 상하의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중형 SUV 운전석에 앉아있는 게 이토록 어울리는 30대 여자도 드물 것이다.

덜컥-

차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우리는 자연스레 뒷자석을 열고 차에 탑승한다.

"안녕하세여 선샌님, 그리구 유미니!"

-  윤슬이 안녕.

-  윤슬이다...

유민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며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려 윤슬이를 바라본다.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건가 싶다가도 차 안에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려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

이토록 격렬한 분노를 느낀 적은 없었다!

-  바로 출발할까? 리조트 주소지는 네가 문자로 보내준 데 맞지?

"네, 맞아요."

-  오케이, 아들?

-  응!

유민이는 '아들'이란 단순한 신호를 듣고는 제깍 움직인다. 선생님의 핸드폰을 받아들어 그곳에 쓰인 주소지를 보고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있다.

도저히 6세가 할 만한 일로 보이진 않으나, 유민이는 제법 능숙하게 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유민이가 조수 역할을 제대로 해주네요?"

-  그럼! 누구 아들인데.

-  엄마 아들.

누구 아들인데.

그 말이 질문인 줄 알았나보다.

"윤스리는 옵바 동생."

옆에서 5세도 한 마디 거든다.

유민이가 일일이 독수리타법으로 주소지를 입력하다보니 시간이 적잖이 걸렸지만 무사히 주소지가 네비게이션에 입력되었고, SUV는 무겁게 운행을 시작한다.

"부루루루룽!"

윤슬이는 이 차량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가 달리는 소리를 따라하며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미정 선생님과 유민이.

두 사람이 이번 강릉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은 여러 이해관계의 합치 덕이다.

우리는 차가 없고, 공짜로 얻은 리조트 이용권이 있다. 반대로 저쪽 집은 리조트 이용권이 없고, 차가 있다.

강릉 여행에 오게 되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이 놓여있는 도시도 아닐뿐더러 수도권만큼 버스가 많이 다니지도 않는다.

그래서 곳곳을 돌아다니기엔 차량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택시비를 쓰기엔 돈이 아깝지 않은가.

우린 차가 필요했다.

또, 성수기에 강릉 리조트에서 몇 박을 묵기 위해선 꽤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어느 집에서건 부담될 만한 가격이다.

결국 두 집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철저하고 딱딱한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미니 마니 더워써?"

-  으응... 괜차나.

"윤스리가 부채질 해주께."

-  고마워.

손을 파닥파닥- 유민이 얼굴에 부쳐주는 윤슬이.

누굴 닮아서 그런지 심성이 참 곱다.

그러나.

....

이토록 격렬한 분노를 느낀 적은 없었다!

-  주현아, 너 표정이 살벌해지고 있다.

"아아... 그래요?"

-  우리 아들한테 질투하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차라리 이참에 얘들 둘 결혼시키는 건 어떻게 생각해?

"결사 반대입니다."

"윤스리두 반대."

-  응? 윤슬이도 반대야?

"윤스리눈 옵바랑 살 꺼야."

"훗."

5세의 의향은 확고하다.

종종 어른들이 이런 흐름의 장난을 치면 자기는 커서도 옵바랑 살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 말이 6세에겐 충격적이었는지 유민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침울해진 6세, 차유민군. 비맞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축 늘어진다.

"...."

유민이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동정심이 단전에서부터 솟아오른다. 윤슬이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민아."

-  네...

고개를 조수석 쪽으로 숙여 작은 목소리로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그거 알아? 윤슬이가 아까 횡단보도 너머서부터 유민이 발견한 거."

-  .... 진짜?

"응, 윤슬이가 유민이 많이 좋아해. 친구로서."

-  응... 그렇구나!

"윤슬이는 유민이가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  웅, 고마워요! 형아.

유민이가 다시금 밝아졌다.

입가에 빵긋빵긋 미소가 도는 게 윤슬이와 버금갈 정도로 귀엽다.

내 동생이 최고지만.

잡담을 나누고.

차는 나아간다.

어느새 미정 선생님이 차량용 스피커로 틀어둔 음악은 경쾌한 분위기의 팝송.

여행 느낌이 물씬 나는 흥겨운 초이스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우리가 이용권을 소지 중인 리조트앞에 도착한다.

대기업에서 지은 신축 리조트인지라 크고 으리으리하다. 웬만한 고급 아파트 몇 채를 갖다 조화롭게 붙여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이지 색으로 촘촘히 칠해진 외벽과 고대 그리스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기둥이 1층의 진입로 쪽에 우뚝 세워져있다.

-  야... 주현아, 너는 이런 리조트 이용권을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냐?

"움! 윤스리 알어. 옵바가 쿠이즤~ 다 맞춰써. 그래서 거기 나오는 아저씨가 선물해조써."

-  쿠이즤?

"퀴즈요. 저번에 인터넷으로 참여할 수 있는 퀴즈 대회가 있길래 한 번 참여해봤는데, 운 좋게 2등을 해서요. 그때 경품으로 얻었죠."

-  퀴즈 대회에서 운이 좋아서 2등을 할 수가 있냐?

기분 좋은 반문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  우아, 윤슬이네 옵바 되게 똑똑하다.

"그치? 우리 옵바가 제일 똑또캐."

리조트의 복잡하고도 광활한 주차장을 헤치고 어떻게든 차체의 보금자리를 찾아냈다. 사각형이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모습이 바둑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사이마다 혼잡한 차량들을 통제하는 직원들이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각각 윤슬이와 유민이의 손을 잡고 나와 선생님은 곧장 리조트의 로비로 향한다.

로비는 사람도 많고, 어수선했다.

그래서 체크인을 할 땐 머리를 썼다.

선생님이 두 꼬맹이를 데리고 의자에 앉아있기로 했다. "우우... 옵바 다녀와. 빨리 와야대."라며 윤슬이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듯 보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나만 잽싸게 줄을 서서 빠르게 카드키를 받고 대략적인 이용수칙을 확인했다.

객실까지 올라가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은 패밀리 사이즈로 VIP형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이지만 넷이서 쓰기엔 더할 나위 없다. 무려 복층이니 말 다했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탁 트인 바다의 전경이 눈길을 끈다. 복층형 객실의 층고를 이용한 통유리 창문이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우아! 옵바 저거 바바!"

-  오오... 이뿌다.

두 꼬맹이가 신이 나서 신발을 내팽겨치고 객실 안쪽으로 달려들어간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각자 꼬맹이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따라 들어간다.

-  오... 바다가 확실히 잘 보이긴 하네.

"그러게요. 공짜로 받았는데, 이 정도면."

-  엄청 득본 거지. 우리 제자가 한 건 했네!

선생님이 거칠게 등판을 두들긴다. 체육 담당답다.

얼얼한 등을 살살 문지르며 오션뷰를 감상한다.

파도치는 물결이 작지만 세세하게 보인다.

또, 바다의 저편에 일렁이는 빛깔.

"저기 윤스리가 이써."

"그렇네. 진짜 윤슬이가 있네."

-  윤슬이는 여기 있는데.

우리 남매의 대화를 듣고 유민이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걸 보고 윤슬이가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유미니 저거 바바."

-  웅.

"저거 바다. 멀리 빤짝빤짝한 거 보이지?"

-  웅.

"저거를 윤스리라고 해거둔!"

-  저걸 윤스리라고 해?

"웅! 저번에 안경 쓴 엄청엄청 똑또칸 할부지가 알려조써."

-  그렇구나. 그럼 윤슬이는 되게 반짝거리고 이쁜 거네? 대단하다!

".... 그렇다구 볼 쑤 이찌."

유민이가 돌직구를 시전했다.

윤슬이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말을 머뭇거리며 유민이 쪽에서 시선을 슬쩍 돌린다.

쑥쓰러워한다는 증거다.

....

이토록 격렬한 분노를 느낀 적은 없었다!

-  주현아, 너 또 표정 살벌해지고 있다.

"아아... 그런가요?"

-  그냥 이참에 얘들 둘 결혼시키자니까? 그럼 내 손주까지 비주얼 덩어리라서 죽기 전까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윤스리 그거눈 반대."

-  .... 힝.

또 다시 침울해진 6세 차유민군.

어쩌다보니 아까 차 안에서 했던 대화의 패턴이 재현되고 말았다.

**

바다까지 나가기에 앞서 우선 짐을 정리했다.

3박4일 동안 여기에 묵을 예정이기에 챙겨온 것은 적지 않았다.

각종 생활용품부터 속옷, 일상복까지.

그밖에 전자기기 등등.

윤슬이가 강력하게 희망했기 때문에 우리 남매가 객실의 2층을 쓰게 되었다.

확실히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의 절경은 예술이다. 그래도 화장실 갈 때마다 불편할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었는데.

"윤스리는 2층에서 자보구 싶었거둔."

앙다문 입술로 순순히 제 바램을 고백하는 동생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유민이는 1층을 쓰던 2층을 쓰던 상관 없는 눈치였다. 어른들의 의사는 자연스레 둘째였다.

-  주현아! 윤슬아! 둘이 잠깐 내려와볼래?

짐을 다 풀어 제자리에 놓아둘 때쯤 계단 아래쪽에서 미정 선생님이 우릴 큰 목소리로 부른다.

윤슬이와 눈을 마주친다.

동시에 눈을 꿈뻑이며 어깨를 들썩인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원목 디자인이 세련된 식탁 위에 포장된 물건이 하나 놓여있다.

빨간색 포장지로 정성스레 포장되어 있는 게 누가 보더라도.

-  선물이다! 윤슬이 꺼.

"오오...! 선물."

윤슬이는 입을 벌리며 깜짝 놀랜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웬 선물이에요?"

-  아니, 우리가 아무리 차로 너희 남매를 데리고 다닌다고 해도. 리조트에 공짜로 묵는데 아무 것도 안 해주긴 선생님이 미안해서. 뭐라도 가져온 거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미정 쌤.

쑥쓰러운가보다.

그 옆에서 유민이는 왠지 모르게 기대감에 부푼 듯한 얼굴이다. 두 눈망울이 아롱져있다.

"윤스리가 열어바두 대지여?"

-  그럼! 열어봐. 기대 이상일 걸?

자신 있게 말하는 미정 쌤.

과연 어떤 물건일까.

선물이라고 해도 정갈하게 포장되어 있는 데다가 무게는 가벼웠고,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윤슬이 선물이라고 하니 선생님의 성격 상 그다지 기대할 만한 물건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북-

북-

조잡하게 포장지를 뜯는 5세의 손놀림.

도와주기를 거부하는 등살이 완강하게 자기 스스로 뜯고 싶음을 강조하기에 그대로 냅두었다.

이윽고 포장지의 내용물이 윤슬이 손에 들리는데.

".... 상어 지느러미?"

덧붙이자면 샥스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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