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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94화 (94/200)

94화: 해치지 않아?(2)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동생은 내 상태를 파악하더니.

부비부비...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감기에 다 나은 걸 확인하고 안도했나보다.

"우움... 꺼끌꺼끌허당..."

"미안, 오빠 어제부터 면도를 안 했어."

"갠짜나. 옵바가 나아서 다행이야. 윤스리 걱정 마니 해써."

"그랬단 말이야? 그럼 미안하니까, 오늘 동물원 가서 더 재미있게 놀아야겠네?"

"그러타구 볼 쑤 이찌!"

엄격.

근엄.

진지.

그런 표정으로 동생은 손가락을 높게 치켜든다.

그 기세는 가히 장군처럼 기백이 뛰어나며, 귀엽다.

"옵바한테 부탁할 게 이써."

"부탁하실 게 뭘까요?"

"원하는 게 이씀미다."

"원하는 게 뭔데 그러세요."

웬일로 뜸을 들인다.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옷장 쪽으로 걸어가서 뒤적거린다. 그리고 대뜸 꺼낸다는 게.

"상어?"

"움! 윤스리 이거 입구 동물 보러 가구 시퍼."

"그거 수영복인데."

"그래두 입구 시퍼."

확고한 주장.

수영복을 내 앞에 들이밀며 요구한다.

이토록 강력히 주장해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럼에도.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동생님."

"에엥?"

"아무리 그래도 수영장도 아닌데, 동물원에 수영복 입고 가는 건 좀 그래."

물론 상어 모양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수영복 같진 않다. 동물 모양 인형탈 느낌에 가깝다.

그럼에도 공공장소에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윤슬이가 상어 수영복을 입으면 눈에 띠게 귀여워서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어그로가 끌릴 것 같다.

그 정도로 관심을 끄는 것은 성래 시장 안에서면 충분하다.

"이러케 해두 안 댄다니. 이건 실맹이야."

얼마나 실망했으면.

또 실망을 실맹이라고 발음할까.

이쯤 되면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

우선 한 번 안 된다고 해두었지만.

정말 끝까지 상어 수영복을 입고 가고 싶다고 하면, 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

아침밥을 준비한다.

계란 후라이에 식빵과 버터를 준비.

간단히 떼우기 좋은 조합.

뜨뜻하게 겉면을 데운 식빵에 버터를 바르자 사르르 녹아흐르며 빵의 면면에 스민다.

그 향이 고소하니 식욕을 자극한다.

"윤슬아, 이거 식빵 봐봐. 엄청 맛있겠지?"

성래 시장에 있는 빵집을 종종 들리면서 밥뿐만 아니라 빵맛에도 눈을 뜬 5세는 버터 바른 식빵을 꽤 잘 먹는다.

그러나.

"우웅... 윤스리 안 머거."

"아, 안 먹어?!"

"웅, 갠차나. 입마시 업써."

"주혀니 충격!!"

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단식 투쟁?

광화문에나 나가야지 볼 수 있는, 그것 아닌가.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야 인지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윤슬이 얼굴을 들여다보니.

나라를 한 세 번 정도 잃은 표정이다.

명백히 비상사태다.

그러나 윤슬이 오빠 포지션에 역임한 지 어언 반 년이 다 되어간다.

이 정도 좌절이라면 빠르게 해결해줄 수 있다.

"그렇게 상어가 입고 싶었어?"

"네..."

버터 바른 빵은 내팽겨치고 우선 동생을 무릎에 앉힌다.

무릎에 올려주니까 또 순순히 잘 올라온다.

대신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최대한 불쌍한 포즈를 시전한다.

"상어가 입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오빠한테 설명을 해주면 한 번 생각을 해볼게요."

"움... 왜냐믄 윤스리두 동물이 대야지. 그래야지 따른 동물들이랑 친해질 쑤가 이짜나."

"그럼 동물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상어가 되려고 한 거야?"

"웅... 그랬던 거에여."

이 얼마나 순수한 이유인가.

도저히 안 된다고 엄포를 놓을 수가 없다.

"대신 그럼 이렇게 하자."

"움? 어뜨케?"

"지하철 타고, 동물원 갈 때까지는 그냥 옷 입고. 동물원에 도착해서 상어로 갈아입자. 그럼 어때?"

"그러믄 상어 입구 동물언 돌아다녀?"

"그렇지."

"그거눈 조아."

"그럼 그렇게 할까요?"

"네!!"

다시 금방 기운을 차린 5세.

방방 뛰어다니다가 상어 수영복을 옷장 옆에 고이 내려두고는 호다닥-

달려가서 밥상을 핀다.

"오늘 아침 빵이당..."

"아까는 입맛이 없다면서요?"

"입마시가 돌아와써여."

가출했던 입맛이 상어 수영복의 착용 허가를 듣고 귀환했다는 희소식이다.

그렇게 단식 투쟁은 장장 3분만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윤슬이의 빵 먹방이 시작된다.

바삭!

식빵의 테두리가 튀기듯이 구워져 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우리 동생은 저 부분도 각별히 좋아한다.

바삭한 식감을 사랑하는 아이다.

특히 식빵에 버터를 발라서 주는 걸 좋아하는데 버터가 식빵의 살부분에 녹아서 부드러워진 것과

바삭한 테두리의 조화가 겉바속촉의 식감을 자아내기 때문에 좋다고 하더라.

물론 '겉바속촉'이란 단어를 입에 담진 않았으나 대충 그런 느낌이라서 좋다고 말하는 듯했다.

역시 우리 집 5세는 먹는 것에 관해서도 보스다.

줄여서 먹보스라고 하도록 하자.

또, 계란 후라이는 반숙을 좋아하는데.

먹는 방법이 특별하다.

포크로 한 번 반숙의 노른자를 콕 찍어 그 안의 액체가 줄줄 새어나오게 한다.

그럼 그걸 숟가락으로 음푹 떠 한 입에 넣고 한참을 음미한다.

"움... 보드라우..."

부드럽단 뜻.

그렇게 노른자를 한 번에 음미하고 나서는 조금씩 흰자 부분을 떼어 식빵 위에 얹어서 먹는다.

괜히 먹보스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옵바, 잘 머거써!"

가벼운 아침식사는 이렇게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윤슬이랑 함께 먹으면 식욕이 괜스레 더 살아나는 기분이라 좋다.

**

동물원에 도착했다.

식물원이나 놀이동산도 붙어있는 대규모 유원지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동물원을 주로 돌아보며 교감을 해나가는 게 목적이다.

무려 5세는 지금 105cm짜리 상어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일전에 우리 뱃속으로 들어간 농돌이와 30cm 자 정도의 길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치명적인 스펙이다.

동물원에 도착해 가장 처음한 행동은 당연히 환복이었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 갈아입혔는데, 이토록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니.

아침에 안 된다고 했던 게 다시금 죄책감이 들 정도다.

"옵바, 상어 같아여?"

한 바퀴 제자리에서 빙글 돌며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강릉에서 해변가에서 봤을 때도 귀여웠지만, 이렇게 유원지 인근에서 보아도 좋다.

역시 이만한 아이가 하면 대개 용서되는 것 같다.

"그럼, 완전 무시무시한 상어 같은데!"

"그치? 윤스리두 그러케 생각하거둔."

105cm짜리 상어가 그렇게(무시무시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고 계신단다.

"그러믄 동물들이랑 칭구를 할 쑤 있겠찌?"

"그건 어떨지 직접 한 번 확인을 하러 가볼까? 지금부터."

"그게 조을 거 같애."

우리는 인적이 한적한 유원지의 거기로 들어선다.

그런데 대문을 지나자마자 재미있는 광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오오! 물이다. 물이 비처럼 막 이케 떨어져!"

"그렇네. 윤슬이가 상어 입고 올 거를 미리 알고 계셨나보다."

"아앗! 그런 쎈쓰가!"

센스란 단어는 또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물이 비처럼 떨어진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유원지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듯.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아니, 솟아오른다기보다는 곡형을 그리며 관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물줄기로 이루어진 관문들이 여러 개 겹치며 진입로의 풍경은 마치 물의 정원 같다.

그 밑에선 윤슬이 또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왔는지, 몇몇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있다.

상어 수영복을 입히는 게 눈에 띠는 행동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상한 취급을 받진 않을 것 같다.

"윤슬이도 저기 가서 같이 놀까? 애들이랑."

"우움... 그것두 조아. 그치만 오늘은 동물을 보러 와써여."

"그래? 그럼 날이 더우니까 오빠랑 천천히 걸으면서 물 좀 맞으면서 가는 건 어때?"

"그게 조아!"

우리는 걷는다.

물줄기가 환영하는 유원지의 진입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물방울은 우리를 축복하듯 섬세하고 자상하게 머리를 적신다. 어깨가 축축해지고.

신발의 콧등이 젖어들어간다.

오늘보다 조금 더 선선했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윤슬이와 동네를 돌아다니던 날.

쮸르르르-

쮸르르르-

체인 소리를 입으로 직접 따라했던 날.

그날 윤슬이와 함께 J 고등학교를 잠시 구경했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생들을 먼발치서 바라보던 동생.

그때의 표정이 불현듯 떠오른다.

언뜻 보기에 쓸쓸한 듯.

아니면 무언가를 체념한 듯.

혹은 애써 외면하려는 듯.

결코 다섯 살이 지을 만한 얼굴이 아닌.

그런 윤슬이의 표정을 보고 쓸쓸한 감정이 횡경막 윗부근에서 싹터 올랐다.

내가 이 아이와 함께 해주어야지, 오래도록.

그런 마음이 본격적으로 태어난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그리고 그날의 윤슬이가 짓던 표정과

오늘의 표정.

그 둘은 사뭇 다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자기들끼리 노는 아이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전혀 쓸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오히려 날 보며 환하게 웃어준다.

손을 꼭 잡아준다.

물방울은 우리를 축복하듯 섬세하고 자상하게 머리를 적신다. 천천히 걷다보니 그 축복이 더욱 충만해진다.

승모근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고 등판까지 젖는다.

신발의 콧등의 매쉬 부분은 물 때문에 무게가 무거워졌다.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성수처럼 느껴진다.

"옵바, 시원해서 조타. 그치?"

"그러게. 나는 윤슬이랑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은데."

"그거눈 윤스리두 마찬가지."

우리는 손을 잡는다.

미끄러워진 손을 놓치 않으려 꼬옥 잡는다.

물의 정원을 빠져나온다.

이제 5세는, 105cm짜리 상어는, 외롭지 않은 아이는 동물들과도 친구가 되려 동물원으로 들어간다.

**

가장 처음 향한 동물원의 섹터는 해양동물들이 사는 곳이다. 수족관은 아니기에 물고기들은 없다.

그러나 물고기들보다 재미있는 친구들은 많다.

"우어어어...."

안 그래도 윤슬이가 입을 떡 벌리고, 지켜보는 커다랗고 뒤뚱뒤뚱한 자태.

흰 몸뚱아리가 웬 자동차만하다.

우리에서 가로로 누워 엉덩이를 벅벅 긁는다.

"고미당..."

"그렇네? 북극곰이네. 한 번 인사해줘야지."

윤슬이는 울타리까지 가까이 가서 안쪽에 드러누운 북극곰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좌우로 마구 흔든다.

"애드라! 윤스리가 와써. 상어루 착각하므는 안 대! 윤스리는 해치지 않거둔."

방금까지 무시무시하다고 자칭하던 5세는 어디 갔는가.

-  어머머, 저 애기 좀 봐. 동물원에 온다고 상어 옷을 입혔네?

-  나중에 우리도 애 생기면 저런 거나 입혀줘볼까?

우리 옆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신혼부부가 윤슬이를 보더니 자녀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출산률 저하가 심각한 요즘 시대, 5세의 간접적 애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슬이는 계속해서 관심을 끌려고 손도 흔들어보고.

지느러미도 흔들어보고.

엉덩이도 씰룩거려보고.

끝내 내 손까지 빌려 곰들에게 구애해보지만.

긁적긁적-

가로누운 곰들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변함 없다.

"우우... 기우니가 업나바여."

기운이 없나봐요.

"그러게, 왜 기운이 없을까?"

윤슬이 앞이라서 시치미를 뗐지만 대개 동물원에 있는 친구들은 이런 법이다.

윤스리는 이내 '실맹'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린다.

곰들과 교감하고 싶었나보다.

아쉽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엉덩이나 긁고 있던 곰이 벌떡 일어나 우리 한 켠에 나있던 문쪽을 기웃거린다.

심지어 안쪽에 뚫려있던 굴에서 두 마리의 곰이 더 튀어나온다.

"오오! 옵바, 고미 두 마리 더 생겨써."

윤슬이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다.

엉덩이가 씰룩거린다.

지느러미도 같이 씰룩거린다.

상어 수영복은 사기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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