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95화 (95/200)

95화: 해치지 않아?(3)

곰들이 움직인 이유.

그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사육사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몸만 딸랑 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먹이와 함께.

"저 친구들 밥 먹을 시간인가봐."

"오오! 그러믄 지금 곰들 다 밥 머거?"

"그렇겠지?"

"저러케 크니깐 음청 잘 먹겠찌? 이니 언니보다두 더 잘 먹게찌?"

"글쎄. 그건 비교를 한 번 직접 해보기 전까진 모를 것 같은데."

백수인씨는 정말로 잘 먹으니까 말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 가게 단골 중 최고 대식가다.

약간 떨어져서 보기 때문에 무엇인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육류를 던져주는 사육사.

그리고 그걸 뒤뚱거리며 받아먹는 북극곰들.

보고 있으니까 신기하긴 한데 묘하게 피곤해보여서 마음이 쓰인다.

"움... 옵바, 저기서 저거 하나만 사오면 안 대지?"

윤슬이는 멀리 있는 츄러스 판매대를 가리킨다.

놀이공원 물가는 일반 시장 대비 2배를 호가하지만.

"안 될 건 없지. 우리 윤슬이가 먹는 건데."

"움! 좋쏘."

츄러스를 구매한 윤슬이는 두 손으로 그걸 들고서는 곰들의 앞까지 그걸 가져간다.

주려고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랬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묵묵히 그걸 곰들 앞에서 같이 먹는다. 곰들이랑 원거리 겸상을 하려는 듯하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곰들이랑 같이 식사하는 거야?"

"마자여... 우물우물... 이케 하믄 윤스리한테 관심을 주지 않으까?"

그러나 곰들이 끝내 윤슬이를 봐주는 일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우우... 곰들이랑 칭구 하구 시펐는데."

"괜찮아, 윤슬아. 우리한테는 아직 이게 있잖아."

"맞찌!"

내 손에 들린 두 장의 티켓.

돌고래쇼를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이것이므로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심기일전.

돌고래쇼가 시작하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북극곰들은 오늘 많이 피곤한 관계로 다른 섹터로 향한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펭긴!"

"와... 펭귄 여러 마리 있네?"

윤슬이만한 펭귄들이 띄엄띄엄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중 몇 마리는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헤엄치는 펭귄들이 압권이다.

슈웅-

슈웅-

육지에서는 뒤뚱거리는 반면 물 속에서는 마치 제트기처럼 빠르고 매섭다.

"우아... 옵바 펭긴 빠르다. 붕붕이 3호보다 더 빨라."

"그러게. 3호보다 빠르긴 쉽지 않은데. 그치?"

"그러타구 볼 쑤 있찌."

덧붙이자면 윤슬이의 애마, 유아용 전동차인 붕붕이 3호의 최고 속력은 시속 15km 이하다.

물 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펭귄들은 마치 춤을 추듯이 뱅글뱅글 돈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구경꾼들에게는 나름의 볼거리다.

그런데도 왜 보고 있자하니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걸까.

"옵바, 구냥 궁금해서 무러보는 건데."

"응, 뭔데?"

"펭긴도 마시써? 닭은 마시짜나."

"그건 먹어본 사람만 알 것 같은데. 먹어본 사람이 없을 거 같아."

"움... 펭도리? 냠냠?"

제2의 농돌이가 탄생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펭귄의 생명 부지를 위해 우린 다른 동물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번엔 늑대처럼 생긴 허스키였다.

어느새 해양생물들의 섹터에서는 멀어져있다.

그곳에는 간략하게 개과 동물들의 습성에 대해 적어둔 책자가 있었다.

윤슬이가 궁금하단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 글자씩 읽고 있길래 내가 받아들었다.

[개과 동물들의 친애의 표시: 우리의 반려로도 키워지는 개과 동물들은 친구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입으로 물기도 합니다. 이때 송곳니를 쓰지 않고 잘근잘근 무는 것은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걱정마세요!]

친절한 설명이다.

그런데 윤슬이한테 이 내용을 읽어주니까.

"오오, 그러타면!"

내 뒤로 뱅글 돌더니.

깨물!

"윽."

내 하반신 중 특정 부위를 깨물었다.

살살이긴 한데.

그 부위가 영 좋지 않다.

왜 하필 엉덩이를 깨무는 것인가.

"윤슬아 왜 하필 엉덩이를 깨무니?"

"움? 옵바를 해치지 않을라구."

키 차이 때문에 우연치 않게 엉덩이를 물어버린 것 같다.

어느새 상어에서 개과 동물로 변해버린 5세였다.

별난 광경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윤슬이가 내 엉덩이를 무는 것을 보고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 손님들 사이에서 자잘한 트러블이 발생했다.

-  나두 아빠 엉덩이 깨물래! 으앙!

-  아악! 거긴 안 돼... 치, 치질... 아니, 피 난다고!

아들에게 가차없이 엉덩이를 물린 아저씨는 비참한 몰골로 환부를 움켜쥔 채 떠났다.

마음이 아팠다.

그 옆에서 부인으로 추정되는 분이 아들내미에게 따봉을 보인 것은 비밀이다. 화목한 가정인 듯하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다.

돌고래 쇼의 시작이다.

우린 걸음을 바삐 옮겨 돌고래쇼가 진행되는 무대에 도착했고, 맨 앞자리를 사수해냈다.

"우아... 옵바 여기서 보므는 음청 잘 보이겠따! 윤스리 기대댄다."

"오빠도 기대된다."

돌고래와 사육사가 위치하는 스테이지와 열 걸음 정도 차이나는 좌석이었다. 돌고래가 마음 먹고 점프해서 수면을 차고 오르면 이쪽 좌석에까지 물이 튈 것만 같다.

"옵바, 걱정 안 해두대. 돌고래가 갑자기 공격하므는 윤스리가 지켜주께."

라며 내 옷 소매를 꽉 쥐는 윤슬이.

지켜주겠다는 것치곤 다리를 슬슬 떠는 게 불안해보인다. 돌고래랑 실제로 가까이서 대면하려니 약간 겁먹은 듯하다.

"그럼 윤슬이도 걱정마. 혹시 돌고래가 실수로 우리 공격해도 오빠가 꼭 지켜줄게."

"우우... 고마어. 사실 쪼꿈 무서워써."

솔직하게 말하며 내 옆구리에 고개를 들이민다.

이렇게 진솔한 점이 또 내 동생의 매력이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쇼가 시작될 때까지 손을 붙잡고 있었고. 하나둘씩 관객석이 차기 시작했다.

만석이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플끼리 온 관객도 있었으나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님들이 많았다.

그 수많은 키즈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띤 것은 우리 윤슬이다. 복장 어그로가 어마어마한 덕이다.

돌고래 두 마리와 파트너가 등장하며 쇼가 시작된다.

-  루미와 로미를 보러온 손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본 공연에 앞서 주의사항 몇 가지만 다시 짚고 갈까요?

돌고래 쇼를 주도할 사육사가 정돈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이 많을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하이톤으로 목소리를 깔되 발음은 또박또박.

꽤 숙련된 전문가라는 게 느껴진다.

설명된 내용은 음식물 투척이나 고성방가 금지 등의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루미? 움... 루이랑 이름 비슷하다. 루이 보구 십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금방 가게 다시 열잖아."

"웅, 마저."

돌고래 두 마리와 사육사의 현란한 쇼가 이어진다.

수신호와 몸짓에 따라 물 속을 종횡무진 휘젓는 돌고래들.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는 그 힘에 놀라게 된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실감 나는 정도가 다르다.

"읏, 차거!"

실제로 물살이 튈 때 약간의 물방울이 튀기도 했다.

유리 펜스로 잘 막아져있음에도 워낙 물줄기가 높게 치솟던 탓이다.

그리고 돌고래의 울음소리도 난생 처음 들었는데.

이래서 초고음에 대해 돌고래 소리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루미와 로미의 수중 쇼가 지속되는 가운데.

잠시 사육사가 쇼의 진행을 멈추고는 관객석을 둘러본다.

-  자, 여기 어린이들 중에서 로미나 루미랑 직접 교감해보고 싶은 친구 없나요?

올 것이 왔다.

이 돌고래 쇼의 메인메뉴.

사육사의 지도 하에 돌고래와 직접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사육사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윤슬이가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우우..."

"윤슬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볼까?"

"맞처바."

"저기 나가고는 싶은데, 무섭지?"

"움... 맞눈데 무서운 거눈 쪼꿈이야. 마니는 안 무서워."

"그럼. 우리 윤슬이가 얼마나 용감한데."

"우우... 그래두 쪼꿈 무섭다."

손을 들까말까 고민하는 윤슬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수줍어서 혹은 무서워서.

돌고래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럴 만도 한게 방금 로미와 루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멋있고, 화려했지만 그만큼 경외심을 끌어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동물과 자연이란 본래 저런 모습으로, 거칠디 거칠은 야생을 활보하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 것이다.

아까 본 북극곰들이 그리도 기운 없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야생성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녀석들이다.

그 제한된 공간에서 살다보면 여러 모로 신경도 쇄약해질 것이다.

-  음! 그럼 저기 무시무시한 상어 옷을 입은, 친구랑 그 옆에 아버님? 이신가요. 같이 무대 앞으로 나와주시겠어요.

다들 고민하는 사이, 사육사분이 우리를 지목해버렸다.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다.

윤슬이의 복장이 너무도 귀여우니 지나치게 눈에 띤다.

동생은 처음엔 쫄아있다가도 사육사가 입에 담은 '무시무시한'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는지 당당하게 일어서 거침없이 무대로 나아간다.

방금 쫄아있던 애가 맞는가, 순간 눈을 의심한다.

그러나 루미와 로미의 앞.

물이 일렁이며 신발의 끄트머리를 적시는 곳까지 이르자. 금세 쭈뼛댄다.

그리곤 내 옆에 바짝 붙는다.

-  아이구, 아버님이 많이 도와주셔야겠네? 우리 따님 성함이 어떻게 돼요?

"압바 아니구 옵바에여! 그리구 윤스리에여!"

아빠가 아니란 것만큼은 강력하게 주장하는 우리 동생.

쫄아있는 것에 비해 목소리가 커서 사육사분이 움찔한다.

-  아하! 왠지 젊다 싶더니 아빠가 아니라 오빠에요? 완전 미남미녀 남매네?

능숙하게 대화를 풀어나가는 사육사의 솜씨에 관객들의 뺨이 느슨해진다. 윤슬이의 큐트함이 한 몫 더한 부분도 있다.

-  그럼 한 번 우리 멋진 오빠가 먼저 나와서 로미 머리 쓰담쓰담 해주실까요?

"제가요?"

-  그럼요! 동생이 힘내려면 오빠가 먼저 보여줘야죠.

"그건 그렇긴 한데."

"옵바, 파이팅."

-  여러분 한 번 박수 주시면 오빠가 힘내실 거 같은데?

짝짝짝짝짝!

휘유! 휘유!

-  힘내라!!

이어지는 관객들의 환호.

뒤로 무를 수도 없게 되었다.

사실 그다지 겁나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근데 왜 손이 떨리지?

손바닥을 펼쳐 돌고래의 콧등에 살짝 얹는다.

뽀짝-

단단하면서도 말랑말랑하다.

역설적이지만 그것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축축하고 매끈하기도 하다.

그때였다.

로미가 장난기가 많은 친구인 건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문다.

기겁할 뻔했지만 동생 앞이므로 전혀 무서운 티를 내지 않.

으려 노력은 했다.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  로미가 오빠분이 마음에 들었나보네. 로미 입이 비싸서 아무 손이나 안 먹는데. 그 정도면 자랑하셔도 돼요!

관객들은 사육사의 농담 섞인 몇 마디에 웃지만 당사자는 반쯤 죽을 맛이다.

그럼에도 로미의 입 안에 있는 뭉뚝하고, 촘촘한 이빨이 생생하게 느껴져 약간 소름 돋는다.

근데 윤슬이는 그 로미의 행동을 보고 또 다른 생각을 한 것 같다.

"움? 해치지 않아?"

아까 개과 동물들의 습성을 적어둔, 그 책에서 설명했던 것이다. 돌고래는 그저 장난인 셈으로 하는 행동이겠지만.

윤슬이한테는 그게 해치지 않겠다는 우호의 신호로 보였나보다.

"움! 윤스리두 할 쑤 이쓸 거 가태."

용기를 얻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