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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96화 (96/200)

96화: 해치지 않아?(4)

결의에 찬 얼굴로 손을 내민다.

상대는 루미.

루미의 콧잔등에 작은 손이 얹히자 관객석에서 응원의 함성이 터져나온다.

-  윤슬이 힘내라! 멋있어!

-  애기가 엄청 용감하네? 우리 아들도 저만큼 용감해져야 되는데.

-  가까이서 보면 더 무서울 텐데. 힘내...

그 덕에 더욱 용기를 얻은 윤슬이.

슥삭슥삭-

내 배를 문질러줄 때처럼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래를 쓰다듬어준다.

루미는 그런 윤슬이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물 속으로 반쯤 집어넣더니.

푸웃-!

"읏, 차거."

윤슬이에게 물대포 공격을 시전했다!

선공을 빼앗긴 5세는 이래 봬도 상어다.

당하고만 살진 않는다.

"이잇, 너두 당해바."

수면 위에 손을 얹어 살짝 물을 모은 다음에 루미한테 뿌린다. 그러자 루미는 즐겁다는 듯이 더욱 희죽거리며 물대포를 한 번 더 발사한다.

푸웃-!

"으읏... 질 쑤 업써..."

참방참방!

푸웃-!

푸웃-!

세기의 대결.

돌고래 루미와 105cm짜리 상어.

그 결과는.

"윤스리가 졌슴미다..."

루미의 완승.

애초 해양생물과 물싸움을 해서 이길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루미는 의기양양하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승리를 만끽한다.

-  자아, 우리 남매 손님이랑 재밌게 놀았으니까. 로미랑 루미. 인사드려야죠? 인사~.

로미와 루미는 사육사의 말에 따라 우리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자 윤슬이는 패배의 쓴맛을 본 것은 잊고 고개를 끄덕인다. 돌고래들이 저렇게 사람 말에 따라 움직이는 광경은 마음을 절로 간질였으니까.

"윤스리가 바준 걸루 알므는 대. 루미야. 다음에는 윤스리가 이길 꺼야."

악당다운 대사로 루미에게 선전포고하며 무대를 뒤로했다. 역시나 오누이 식당의 두목답다.

**

돌고래 쇼가 끝난 뒤에는 간단히 식사를 했다.

유원지 내부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서 밥을 먹었는데.

메뉴가 윤슬이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우물우물... 이거 디게 마시따."

"오므라이스라고 해. 그건."

"오무라이쓰."

각종 채소들과 햄, 베이컨이 들어간 케찹볶음밥.

그 위에 얹힌 계란.

나도 윤슬이를 먹이려고 오무라이스를 몇 번 해준 적이 있긴 한데, 여기서 판매하는 메뉴는 약간 특이하다.

뱅글뱅글 회전하는 모양의 계란이 얹혀있고, 주위에 은은한 맛의 데미그라스 소스를 뿌려 색감까지 살렸다.

맛은 엄청 특별하진 않아도, 시각적인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요리도 일종의 쇼가 될 수 있다. 보는 맛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니까.

"윤슬아, 다음에 이거 우리 가게 메뉴로 만들어서 팔까? 오무라이스."

"오오! 그러믄 윤스리두 이니 언니처럼 다섯 그릇 머글 쑤 이써."

"그래? 그럼 꼭 가게에서 한 번 만들어야겠네. 잊지 않고 기억해둘게."

"역씨 옵바야."

내가 만들면 맛까지 살릴 자신이 있다.

밥의 간을 조금 더 강하게 하고, 소스의 맛과 밸런스를 맞추면 더 좋을 듯하다.

오무라이스의 맛을 기억하려고 천천히 씹으며 식사를 즐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한 뒤 우리는 사파리 코너로 향했다.

기린.

코뿔소.

얼룩말.

원숭이.

등등.

다양한 동물들을 마주칠 수 있는 장소였고.

윤슬이는 곳곳을 구경하며 어느 정도 만족한 듯했다.

특히 기린을 보고서는 입을 떡 벌렸다.

"윤스리는 저만큼은 못 크겠찌?"

라고 묻는 동생.

성장 욕구가 벌써부터 어마어마했다.

다만 동물들이 그다지 행복해보이진 않았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아픈 병에라도 걸린 듯.

동공이 흐릿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몸을 바위에 기대어 늘어지는 등.

그런 행동들이 종종 보였다.

그나마 아까 봤던 루미와 로미는 사육사들과 함께 행복하게 자란 듯했지만.

그마저도 일차적인 감상일 뿐이다.

그 아이들이 평소에 어떻게 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우리로선 알 도리가 없다.

유원지를 조금 더 전전하다가 해가 질 때즈음.

우리 남매는 집으로 돌아왔다.

"움... 옵바. 윤스리는 걱정이 대."

"무슨 걱정?"

"동물 칭구들은 맨날 거기에 있짜나."

"그렇지."

"쫍지 않을까?"

"그러게, 좁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바. 윤스리가 생각하기에는 아까 칭구들이 다 나가고 싶어보여써."

이 어린 동생 눈에도 그리 보였으니 오죽 스트레스가 심할까. 사실 나는 동물원에 직접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태껏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했으니까, 그런 곳에 가볼 엄두는 못 내었다.

그러나 윤슬이가 동물에 요근래 관심을 가지기에 한 번 들러본 것인데.

직접 그곳의 풍경을 관찰하니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물론 그 아이들 중에서 동물원 생활을 만족하는 친구가 한 마리도 없으리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또, 수많은 사람들의 수요가 있으니 그렇게 도심에 유원지로써 자리잡을 수 있었으리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의 그 눈빛을 보고도 담담히, 그러려니 하긴 어렵다.

우리 남매는, 어딜 놀러간 것치고는 처음으로 찝찝한 기분으로 귀가했다.

대신 윤슬이가 좋아하는 제육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요즘 가게를 열지 않아서 그 맛이 그립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던 걸 여행 다녀오느라 지금에서야 만들어준다.

그리고 연습 삼아 회오리 계란도 만들어보았다.

제육에 들어가는 매운 향을 중화시켜줄, 좋은 곁들임이다.

"움... 오랜만에 머그니까는, 또 색다르구만."

우리 다섯 살짜리 애늙은이는 포크로 계란을 찍고, 그 밑에 제육을 겹쳐서 꽂은 후 한 입에 삼킨다.

입도 크다.

먹보스의 먹방 스킬이 점점 늘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아까 유원지 내부에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보이던 몇몇 어린 아이들은 윤슬이 또래인데도 식사 중에 투정을 부리던데 말이다.

그 탓에 우리 집 꼬맹이가 얼마나 말을 잘 들어주는지 실감이 되기도 했다.

[나레이션: 고양잇과 동물인 치타는 굉장히 온순한 동물입니다. 종종 표범이나 사자와 같이 야생성이 뛰어난 녀석들과 비슷하게 취급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죠.]

저녁 식사 중에 적적함을 줄이고자 튼 텔레비전.

웬일로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채널이 흘러나온다.

보통 이 시간대에 윤슬이랑 TV를 보면 둘 중에 한 채널이다.

뉴스나 레이싱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곳.

오늘 저녁 같은 경우 윤슬이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야생동물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나보다.

[나레이션: .... 그래서 치타는 아프리카 지역의 주민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치타가 다가온다고 해서 겁 먹거나 도망치지 않죠. 그들 역시도 치타가 자신들의 위협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전시하는 치타들은 행복해보인다.

동물원에서 보던 동물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풀숲을 활보하고, 동족들과 흙바닥을 구르며 아프리카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대지에 굳건히 선다.

그런 장면을 보자하니 흥미가 솟는 한편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전에 방문했던 동물원이 계속 생각나서.

"월래 저렇게 행복카게 사는구나. 동물들은."

"그러게 오빠도 지금 처음 알았네."

윤슬이는 밥을 먹다말고 내 무릎 위로 기어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콩콩-

콩콩-

뒤통수를 가슴팍에 박다가 고개를 위로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친다.

"옵바, 우리가 도와줄 쑤는 없게찌?"

"동물원에 있는 친구들 말하는 거야?"

"웅..."

"미안해, 그건 어렵지 않을까?"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도 큰 문제다.

그곳의 동물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당장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저 무작정 탈출시킨다고 능사일까?

그것은 아닐 듯하다.

동물원에 살던 북극곰이나 기린 등등.

그들은 생에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조차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이미 저 야생의 치타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동물들이다.

"그거눈 너무 아쉽다."

윤슬이는 무력감이 분한지 자꾸만 내 가슴팍에 머리를 대고 콩콩 두들긴다.

그게 심장박동과 이어져, 마치 심장이 두 배로 빠르게 뛰어오르는 것만 같다.

너무도 분하고, 화가 나서.

아마 오누이에게 연락하여 어떻게든 부탁하면 뾰족한 수까진 아니더라도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햇님과 달님에게 의존하는 게 좋은 방법이리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즈니스 '파트너'니까.

그러나 때마침 흥미로운 광고 배너가 하나 떠오른다.

다큐멘터리 채널의 밑부근에 흐르는 한줄짜리 광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움?"

나는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어 여러 가지를 검색한다.

광고 배너에 떡하니 박힌 비영리 단체의 이름.

그것을 검색하자 활동 이력을 비롯해 해당 단체의 평가까지 갖은 정보가 쏟아진다.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살펴본다.

과연 그곳이 언제 시작된 단체이며,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해왔는지.

비영리이면서도 믿을 만한 단체인 것 같았다.

특히, 이곳에서 주도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사업.

동물원 내 복지 증진이다.

감옥형 우리에 가두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로만 생명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동물원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각 동물들의 습성을 고려하여 환경을 조성하는 일.

어느 뉴스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동물원의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기부... 해볼까?"

"기부?"

"응, 여기 단체가 있잖아...."

윤슬이에게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이 단체가 무얼하는 곳인지.

그리고 기부가 무엇인지.

그러자 윤슬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믄 여기서 윤스리랑 옵바 대신 동물들 도와주는 거 맞찌?"

"응, 동물들이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대. 뉴스에서도 그랬으니까 맞을 거야."

"움! 알게쏘."

윤슬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옷장 서랍을 열고는 막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꺼낸다는 게.

"윤슬아, 그거 민구 아저씨가 주신 거잖아. 초콜렛 사먹으라고."

"웅... 마저. 밍구쓰가 줘써여. 근데 윤스리가 모아써. 초코는 어짜피 마니 있으니까 나즁에 마니 사서 머글라구. 저금해둬써."

4만원.

정확히 만 원짜리 네 장이다.

정민구씨는 우리 가게에 올 때마자 윤슬이에게 지갑을 연다. 외제 초콜렛을 선물해주시거나 용돈을 주시는데 그때마다 윤슬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지금 내게 선뜻 내미는 것이다. 자기 전재산인데도.

"옵바가 이걸루 동물 도와주는 아저씨들한테 보내주라. 윤스리가 잘 부탁한다구 그랬따구 전해주므는 조켔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웅! 윤스리는 갠차나. 이거 업써두, 윤스리는 옵바두 있구. 초코도 있구. 유미니두 있구. 루이두 이써. 그니깐 갠차나. 근데 동물들은 이거 업쓰면 별루 안 행복해. 그래서 이거는 동물들이 쓰는 게 더 조아."

"그래? 알겠어. 그럼 오빠가 이거랑 같이 얼마 모아서 동물들 행복하게 지내는 데 보탬으로 써달라고. 전해둘게."

"웅! 고마어."

나는 윤슬이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4만원과 저번에 퀴즈쇼의 상금으로 받았던, 얼마 남지 않은 돈 중 6만원을 꺼내어 10만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비영리 단체의 사이트에 찾아가 기부금으로 넣었다.

10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다.

우리 남매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10만원 이상의 뿌듯함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생돈을 버렸다거나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진 않는다.

최근 장사가 잘 되고 있어, 생활도 안정됐으니 말이다.

기부자 명의로는 동생 이름을 적었으며 추가적으로 달 수 있는 코멘트란이 있기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장윤슬 - 5세]

[동물들도 윤슬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동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힘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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